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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함께 한 파이오니아 반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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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함께 한 파이오니아 반려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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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88 9/1 19-23면

평생을 함께 한 파이오니아 반려자

웨일스(영국), 카디프에 있는 산뜻하고 간단한 가구들로 꾸며진 방에서, 회중 서적 연구가 막 끝났다. 연구 사회자는 이제 90대가 된 모드 클라크와 메어리 그랜트라는 두 파이오니아 자매에게 그들이 베푼 후대에 감사를 나타내며 그들이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여 이야기하도록 격려한다. ·⁠·⁠·

모드: 메어리와 내가 처음 만나 함께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한 지 이제 65년이 되었지요.

메어리: 그래요. 그때는 1923년 1월의 눈 내리는 추운 밤이었어요! 모드, 생각나요? 내가 모드를 머치웬록 기차역에서 내 숙소로 안내했잖아요.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그림자인 성막」(Tabernacle Shadows)을 함께 연구했지요. 이튿날 아침에는 자전거를 타고 슈롭셔 농부들에게 전도하러 갔지요.

진리를 처음 접한 때

모드: 물론, 우리는 전도할 각오를 하고 있었지요.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파이오니아 봉사를 해오던 중이었으니까요. 어렸을 때에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성서 한권을 무료로 얻기 위하여 교회에서 시편 일곱편을 암송했던 생각이 나는군요! 내가 11세였던 1908년에, 큰 언니는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읽고 우리가 다니던 교회를 탈퇴하여, 성경 연구생이 되었어요. 우리는 집에서 성서 진리에 대하여 주로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사망하자, ‘죽은 자는 어디에 있는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고향인 셰필드에서 상영되었던 「창조 사진극」(The Photo-Drama of Creation)을 보러 가서 그 해답을 얻게 되었을 때 참으로 감격했어요! 축음기의 음반과 함께 돌아가는 활동 사진에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일으켜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바로 거기서, 죽은 자들은 부활될 때까지 무의식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열왕 하 4:32-37.

나는 즉시 성공회를 탈퇴하여, 내가 교회 잡지를 배부하던 바로 그 구역에서 성서 서적을 제공하는 이른바 양치는 일을 시작했어요. 1918년 8월에 리즈 시 근처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여호와께 대한 나의 헌신을 상징하였지요.

더비셔에서 두 콜포처 자매와 함께 휴가를 즐겁게 보낸 후에, 파이오니아 봉사를 평생의 일로 삼으리라고 결심했어요. 1922년 8월에, 첫 임명을 받았는데 임지는 베드퍼드셔의 비글레스웨이드였어요.

한 콜포처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만일 자매가 처음 6개월간을 지탱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몇달은 쉽지 않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었죠. 그 즈음 첫 파이오니아 반려자가 집으로 돌아갔구요. 그러나 나는 계속할 것을 결심하고, 협회에 반려자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그러자 여호와께서 메어리를 보내 주신 거지요!

메어리는 나보다 더 먼저 진리를 받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메어리?

메어리: 그래요 모드. 웨일스 남부 지방에 있는 카디프에 살던 때였지요. 16세 때, 할머니로부터 성경 연구생들이 조직한 공개 집회에서 할머니가 구한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읽어 보도록 권유받았어요. 나는 항상 성서를 이해하고 싶어했고, 성인이 되면 선교인이 되기를 원했어요. 그 책을 읽자, 진리를 발견했음을 알았지요

어머니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경 연구생들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아시다시피, 우리 부모는 부유했고, 내가 직장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매우 통제받는 상태에 있었어요. 그렇기는 했지만, 일련의 성서 연구용 보조 서적들 중 나머지 부분들을 가까스로 구입했어요.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화가 나서 책들을 태워 버리고는 나는 아직 너무 어리므로 그런 문제는 몰라도 된다고 말했어요. 그 책들을 다시 구하기 위하여 나는 아침 일찍 집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한 성경 연구생의 집에 가서, 책들을 하나씩 몰래 집에 가지고 와야만 했어요.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 그 책들을 열심히 읽고는, 낮에 그것을 마당의 헛간에 숨겨 놓곤 했어요.

17세가 되던 1913년에는 런던으로 관광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다행히도, 이 때는 킹스웨이 홀에서 대회를 갖기 위해 러셀 형제가 방문한 시기였어요. 거기서 나는 침례를 받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냈어요. 카디프에서 일하던 한 콜포처 자매는 러셀 형제에게 가서 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어요. 러셀 형제는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내가 성경을 이해하는지와 내 생명을 여호와께 바쳤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질문을 하더군요. 그후 나는 까만색의 긴 가운을 입고, 런던 성막에서 침례 지원자들의 대열에 서게 되었어요. 우리가 물에서 나올 때 불렀던 가사가 뚜렷하게 생각나요.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

그분과 함께 일으켜지리,

내게 남겨진 일은 무엇이리?

다툼과 분쟁을

다만 끝내는 것,

새 생명으로 다만 걸어가는 것.”

그후, 한 형제가 다가와, “자매는 144,000명의 마지막 성원으로 들어왔음에 틀림없어요. 부르심을 받고 선택받은 것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다가오는 1914년을 크게 기대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기가 집에서의 심한 반대를 극복해 내야 하는 시험받는 때였어요. 나는 가능한 한 자주 집회에 참석하였어요. 1916년에, 카디프에서 「창조 사진극」을 상영할 때 안내원으로 봉사하는 특권을 누렸어요. 맨체스터에서 간호원 연수를 끝내고, 1922년에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읍니다.

시골에서 증거함

모드: 우리는 그때 참으로 솔선력을 나타내야만 했어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누구에게든지 말했지요. 당시 사람들은 독서가들이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거문고」와 시리즈로 된 「성경 연구」를 제공했어요. 물론, 그 모든 서적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는 아주 커다란 가방이 필요했지요. 내 가방은 너무 컸기 때문에, 어느날 외떨어진 어느 농가에 도착했을 때 농부의 아내는 내가 캐나다에서 방문한 친척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어요. 얼마나 웃었던지 몰라요!

우리는 파이오니아 봉사하는 생활만 하였으므로, 왕국 소식이 담긴 서적을 배부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어요. 서적을 버터와 기타 농작물과 교환하기도 하고 농장 짐차가 먼지나는 울퉁불퉁한 길에 떨어뜨린 감자와 순무우 및 양배추를 줍기도 하면서, 우리는 가진 것을 주의 깊게 사용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어요. 펑크 난 자전거 타이어를 수선하는 데 익숙해졌고, 재봉술도 늘어 옷도 직접 만들어 입었어요.

순회 연사로 봉사하는 형제들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성서 강연을 할 때, 메어리와 나는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전파한 일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을 도와주었지요. 관심자들의 작은 그룹들이 슈루즈베리를 비롯한 다른 마을에서 생겨났어요.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대회를 학수 고대했어요! 1926년의 런던 대회는 매우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런던 시가에서 「만민을 위한 깃발」이라는 소책자를 배부하는 부가된 특권을 즐겼어요. 그후 협회에서 온 편지를 읽고 마음이 부풀었지요. 그것은 우리의 임명 변경에 관한 것이었는데, 바로 북아일랜드로 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새로운 구역에서의 파이오니아 봉사

우리는 북아일랜드의 앤트림 주에 도착하여,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처음에 그린아일랜드에 정착했지요. 날씨는 습하고 추웠는데, 영국에서 석탄 파업이 일어나서 몇 주일 동안 불을 피울 수 없었어요. 저녁 때에 코트를 입고 장갑을 끼고 앉아서, 추위에 떨면서 공부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후 여름이 되었을 때는, 앤트림 골짜기의 아름다운 환경에서 봉사하는 특권에 대하여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몰라요. 사람들은 왕국 소식을 잘 들었어요. 물론, 때때로 논쟁도 있었지만, 그들은 친절했어요. 그들은 “들어오세요”라며, 물을 끓이기 위하여 그리샤(뻘겋게 피어 오른 이탄 덩어리) 위에 주전자를 올려 놓고, 대화를 계속하곤 했읍니다.

메어리: 우리가 임명된 곳에 모두 4명의 파이오니아 자매가 있게 되었기 때문에, 신권적 집회 계획표를 온전히 따르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우리는 한 가지 성구를 토론하고 “나의 아침 결의”를 읽었는데, 그 결의문의 일부는 이러하죠. ‘날마다 나는 하늘의 은총의 보좌에서 추수하는 일이 주는 폭넓은 유익과 특히 나 자신도 특권을 받아 그 일을 즐기는 데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 및 벧엘 및 모든 곳에서 일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기억하리이다.’ 수요일 밤에는 기도, 찬양 및 증거 집회를 열었어요. 일요일에는 「파수대」를 함께 연구하였고, 간혹 가정 집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오르간 주위에 모여 「천년기 새벽의 찬송가」(Hymns of the Millennial Dawn)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승리를 얻었다고 생각지 마세,

편안히 쉬려고 앉지도 마세

그대의 고된 과업은 끝나지 않으리

그대의 면류관을 얻을 때까지”

모드: 펼쳐진 특별한 일에 우리가 임명받은 것은 참으로 큰 변화였는데, 우리는 “사업 구역 파이오니아”가 된 것이죠. 실업가나 은행 지점장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대관절 어떻게 증거할 수 있었을까요? 벨파스트에 있는 커다란 건물들로 인해 위압감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빌립보서 4:13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했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임명을 거절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그들에게 많은 서적들을 전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경험이 되었어요! 1931년까지 사업 구역들을 다 끝냈고 북아일랜드에서 5년을 지냈어요. 다음 임명지는 어디가 될까 궁금했지요. 놀랍게도, 더블린에 있는 사업 구역으로 임명되었읍니다.

다시스로 가느냐, 니느웨로 가느냐?

처음에, 우리는 니느웨로 가서 전파하라는 임명을 받고 나서 그리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향했던 요나처럼 느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다른 곳으로 임명되기를 바랐지요. 우리는 곧 여호와께 얼마나 의뢰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하지만, 더블린의 넬슨탑 옆에 서서, 사제와 수녀들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시하여 모자를 벗어 들고 인사하는 신사들 및 십자를 긋는 여자들로 가득찬 거리를 보았을 때 얼마나 겁이 났던지요. 그 당시 더블린에는 단지 4명의 성경 연구생이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 교인 가정에 가까스로 방을 구했어요. 물론, 사제가 그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했기 때문에 침대 밑에 서적들을 숨겨 놓아야 했지요. 어느날 더블린의 한 실업가가 우리 숙소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이 우리 은행에 서적들을 전해주고 갔읍니다.’ 그는 그 서적들을 읽고 매우 감동을 받아서 혹시 러더퍼드 판사의 책을 파는가 하고 서점마다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그후 뉴욕으로 문의 편지를 써서 우리의 주소를 받게 된거지요. 그는 자신이 배워 알게 된 것에 관해 친구들 모두에게 알려 주려고 파티를 열었어요.

그해 말경,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듣게 되었어요. 더블린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회 결의문을 수록한 「천국, 세계의 희망」이라는 소책자를 배부하는 운동에 참여했어요. 모든 수도원, 수녀원 및 사업 구역을 방문하여 그 소책자를 무료로 배부하였지요. 소책자들을 모두 다 전했읍니다!

메어리: 어느날 리피 강을 순항하는 배 한척을 보자, 선창에 있는 배의 승무원들에게 증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선착장에 들어가려 할 때, 경찰관이 가로막고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어요. 그에게 책자들을 보여주자, “들어가시오”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증인을 알고 있는 여러 명의 외국인 선장들을 만났어요. 그 경험을 회상해 보면, 우리가 각각 다른 배에 승선했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살피신 방법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읍니다.

집중 공습시에도 증거함

모드: 전쟁이 발발한 1939년에, 리버풀로 돌아가서 파이오니아 숙소에 살고 있던 20명의 다른 파이오니아와 함께 살게 되었읍니다. 그때 우리는 공습과 폭격이 빈번한 속에 살면서도 듣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증거했어요. 축음기에 음반을 올려 놓고 왕국 소식을 전하다가, 파이오니아 숙소로 다시 달려가거나, 이쪽 방공호에서 저쪽 방공호로 재빨리 옮겨 다니기도 했어요. 우리는 이 기간 내내,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주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거리로 나갈 때면 수없이, 전시에 증인이 고수하는 중립 입장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욕설을 퍼부었어요.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한 청년이 녹음된 소식을 듣고 정기적인 성서 연구를 받아들인 것이 기억나요. 그런데 어려움이 있게 되었지요! 그는 얼마 전에 영국 해군 입대를 지원한 상태였어요. 그는 당국에 자신의 중립적인 입장을 진술하는 서신을 제출하여 병역 의무를 완전히 면제받는 회답을 받게 되었어요. 그는 나중에 우리와 같은 전 시간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읍니다.

메어리: 모드, 나도 전시를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1942년에 체셔의 너츠퍼드로 이사했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나요? 어떤 여자가 이렇게 고함쳤잖아요. ‘전쟁이 한참인데 당신들은 무얼하고 다니는 거요?’ 우리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지나가던 사람이 ‘그 사람은 우리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요’라고 말했지요. 한 연로한 남자도 ‘그들은 선한 일을 하고 있는 거요’라고 맞장구를 쳤구요.

모드: 사실, 성서 연구를 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지요. 어떤 농장을 방문하여 교통 사고로 어린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한 주부를 만난 감명깊은 경험을 하였어요. 「죽은 자들을 위한 희망」(Hope for the Dead)이라는 소책자를 그에게 전하고 성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연구가 단지 일곱번 진행된 후에, 그 부인은 나를 따라 증거하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몇달 후에는 그의 남편도 진리를 받아들였고, 2년이 채 못되어 그 부부는 농장을 팔고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어요. 나중에 그들의 딸도 부모처럼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하여, 지금은 남편과 함께 런던 벧엘에서 봉사하고 있어요.

1941년 레스터 대회에서, 슈로더 형제는 특별 파이오니아가 생활 필수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액의 수당을 받게 될 것임을 발표하였읍니다. 거의 20년간,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출판물을 배부하는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지요. 여호와께서는 결코 우리가 난감하도록 버려 두시지 않았어요. 우리는,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는 말씀을 경험했어요.—열왕 상 8:56.

웨일스 지방에서 “양”을 찾는 일

1954년에 우리는 웨일스 지방의 밀퍼드헤이븐으로 갔어요. 교직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파했고 반응을 나타낸 양 같은 자들을 찾게 되었죠. 그 사람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조직하여, 그들에게 집회를 사회하는 방법과, 짧고도 의미깊은 해설을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양을 씻기는 약물통에 큰 우유통으로 길어온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7명이 침례를 받는 것을 본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지요!

애버사이넌의 웰시 계곡 마을에서, 잡지 통로 방문은 좋은 성과를 가져왔어요. 잡지를 정기적으로 받은 한 여자는, “댁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기는 하면서도, 잡지는 읽고자 했어요. 그 후의 방문에서, 바쁘게 집 단장을 하고 있는 그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정적인 대화를 나눈 후에, 그 다음주에 성서 연구를 시작하기로 약속했어요. 연구에 함께 참여하게 된 세 아들과도 친해졌지요. 결국, 그 여자와 아들들은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읍니다. 현재까지, 그 가족 중 35명이 진리를 받아들였고, 일부는 보조 파이오니아, 정규 파이오니아 혹은 특별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고, 장로로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제 우리는 살아 온 생애를 회상하면서, 이곳 카디프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물질적인 면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오셨어요. 우리는 파이오니아로서 함께 봉사하면서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되었고, 여전히 전 시간 봉사를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보배로 생각합니다.

이제 증가하는 파이오니아 대열을 보면서 마음이 감동됩니다. 또한 이 귀중한 봉사를 시작하는 그 모든 젊은이를 보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모릅니다! 메어리와 나는 65년간 함께 파이오니아 봉사를 해왔어요. 우리의 생활은 단순했지만 바빴고, 어려웠지만 보람있었읍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평생토록 파이오니아 봉사할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23면 삽화]

모드(왼쪽)와 메어리는 여전히 여호와께 대한 전 시간 봉사에서 가장 값진 보배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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