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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 사람들이 종교를 바꾼 이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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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와 희망을 얻게 하는 관계
  • 진리와 참다운 벗을 얻는 일
  • 그들은 배우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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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파88 6/1 4-7면

일부 사람들이 종교를 바꾼 이유

자신의 종교를 바꾸는 것과 같은 과감한 단계를 밟으려면 확실히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유익한 점이 모든 불리한 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창조주를 알고 그분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그 대상자를 잘 알게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는 낯선 사람을 알게 되기 전에는 그의 손을 붙잡기를 두려워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게 되어야 비로소 그분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하나님을 숭배의 중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뚜렷이 밝혀진 성품이 없는, 모호하고도 멀리 있는 존재라는 점도 사실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우리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둘러보면서 외경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움, 지성 및 능력을 감지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있지만, 그 기원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책이 하나 있다. 그 책은 성서(聖書)다. 그 책을 한장 한장 읽어 가면서, 우리는 경이로운 사물들이 이름과 성품을 가지고 계신 창조주로 말미암은 것임을 배우게 된다. 성서를 주의 깊이 연구함에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해 진다. 우리는 그분이 사랑과 관심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성서는 말한다. (요한 1서 4:8) 우리는 사랑, 지혜, 공의 및 능력에 있어서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계신 이 웅대한 인격에 이끌리게 된다.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된다.

미사에는 여호와에게 이끌리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하였다. 미사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렸을 때에, 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배웠어요. 수(水) 신, 목(木) 신, 가옥 신 등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들의 존재는 의심했지만, 틀림없이 참 하느님은 한분 계실 것이라고 분명히 믿었어요. 불교와 신도로 엄하게 교육받은 관계로, 하느님을 무서운 분 즉 잘못한 일에 대해 벌이나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였어요.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배우고 싶었지만, 불교적인 배경 때문에 주저하였지요. 그러던 참에, 어떤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성서 연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더군요. 바로 그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분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인자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를 항상 지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벅찼읍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서 종교를 바꾸었지요.’ 미사에는 약 29년간 만족을 주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기고 있다.

자유와 희망을 얻게 하는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얻게 된 부차적인 유익이 있다. 다른 관계들을 생활에서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일이라든가 참된 의미나 가치가 결여된 압제적인 습관들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허식과 전통을 유지하느라고 부담스러운 비용을 들이는 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는데 많은 가정은 그러한 비용 때문에 끊임없이 빚을 지고 있다. 성서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는 보증을 덧붙인다.—잠언 29:25.

얻게 되는 또 다른 자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다. 위에서 언급한 미사에는 이렇게 말한다. “22세 때, 장티푸스에 걸렸었어요. 의식이 희미한 채 누워 있을 때, 친구와 식구들이 내가 죽게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죽음이 두려웠어요.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다행히 병이 나았어요. 그후 성서 연구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어요. 죽음이란 단지 무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성서는,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전도 9:5, 10) 누군가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는 죽은 사람이 계속 살아 있으므로 부활이라는 놀라운 희망이 있다.—요한 5:28, 29.

성서를 연구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자신이 배운 것들이 생활에 참된 의미와 희망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즉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성서가 기록된 한 가지 이유다. (로마 15:4) 불교는 창조주 곧 하나님에 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악과 고통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끝없는 재생의 순환을 통해서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서양의 대부분의 종교는 선한 사람이 막연한 장소인 하늘로 갈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그들도 확실히 모른다. 그들의 생활에 희망이나 의미를 거의 주지 못하는 이러한 종교 철학과는 반대로, 성서는 사람이 땅의 관리인으로서 지상에서 영원한 삶을 즐기도록 만들어졌다고 가르친다. (창세 2:15-17; 이사야 45:18) 따라서 우리는 소유물을 모으고 자신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비이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생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다.—전도 12:13; 마태 22:37-39.

진리와 참다운 벗을 얻는 일

일부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자신의 종교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이유들 가운데 종교적 진리를 찾아내려는 욕망이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고 생각하며 성서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은 ‘찾지 않는다.’—시 10:4, 난외주 참조.

그렇지만 실제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중부 지방에 사는 사카에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25년간 불교의 여러 분파들을 전전했다. 그러나 전혀 만족을 얻지 못했다. 사카에는 각 조직에서 책임있는 지위에 오를 때마다, 실족하게 하는 것들 이를테면 상업주의, 부도덕, 착취 행위 등을 보았다. 사카에는 부처가 생활하고 가르쳤던 역사적 본거지에서 불교의 근원을 찾아내려고 인도에 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힌두교 나라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그후 사카에는 여호와의 증인과 대화를 하다가, 모든 종교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며 그분의 적인 사단 마귀로부터 나오기도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린도 전 10:20.

사카에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생각하며 조사해 보게 되었다. 사카에는 「종교는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a와 그 밖의 성서 출판물들을 읽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 행해지는 불교는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성서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카에의 탐구는 결실을 맺었다. 자신이 찾고 있던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사카에는 마치 예수의 비유 가운데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고는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던 사람처럼 기뻐하였다.—마태 13:44.

종교적 진리를 발견한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동료감”을 나타낸다. (베드로 전 3:8, 신세) 사실상, 그들의 따뜻함과 진정한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서 연구에 매력을 갖게 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요한 13:35)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사랑의 분위기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나고야 가즈히코는 도쿄 「요미우리 신문」의 칼럼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했을 때 자신이 받은 환대에 대해 논평했다. 나고야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이전 집회에서 알게 되어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지만 전혀 낯선 사람들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미소로 반겨 주었을 때 “매우 행복했다”고 하면서 나고야는 이렇게 상기한다. “그 사람들은 매 집회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할 때 바로 그러한 식으로 미소짓는다.”

따뜻함과 사랑은 사람들이 지방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서로를 잘 아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서를 정기적으로 연구하고 성서의 원칙을 생활에서 적용함으로 인한 결과다. 외국에서 열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1985-86년 “충절 고수자” 지역 대회에 참석하도록 초대된 많은 사람들은 주최측 증인이 나타낸 사랑과 환대로 인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필리핀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했던 일본의 한 젊은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언어로 마치는 노래를 함께 불렀을 때 그것은 매우 감동적이었읍니다. 참으로 국제적인 형제 관계에 속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처음으로 느꼈읍니다.”

끝으로, 많은 사람들은 성서를 연구하고 적용한 결과 자신들의 생활에서 경험한 큰 변화에 관해서 말할 것이다. 이전에는 양과 이리 차이만큼이나 성품이 달랐던 사람들이 이제는 평화를 좋아함에 따라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사이좋게 어울린다. (이사야 11:6) 어떤 사람들은 시무룩하고 쌀쌀하고 성급하고 무섭기까지 하였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성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도 있었다. 극복해야 할 나쁜 습관을 갖고 있던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과 함께 근면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그들은 과감한 변화를 할 수 있었다.

독자는 어떠한가? 변화해야 할, 위에 설명한 이유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점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진지하게 성서를 연구해 보기 바란다. 성서는 모든 거짓 종교가 성서의 하나님과 충돌 선상에 있다고 알려 준다. 앞 기사에서 언급한 조종사와 같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과감한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7:13, 14) 확실히, ‘크고 넓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종교를 바꾸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각주]

a 뉴욕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5면 삽화]

불교와 신도로 엄하게 교육받은 관계로,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였다

[7면 삽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협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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