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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후대에 힘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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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후대에 힘쓰”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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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그리스도교의 표
  • 그리스도인 여자들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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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파86 4/1 21-23면

당신은 “후대에 힘쓰”는가?

따뜻한 어느 날이었다. 일단의 ‘여호와의 증인’이 노소를 막론하고 ‘왕국회관’을 보수하기 위해 힘든 작업과 청소, 페인트 칠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한낮이 지날 무렵, 그들은 다소 지치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세명의 ‘증인’ 자매가 샌드위치와 쿠키, 케이크, 코오피, 차 및 기타 음료수를 갖고 왔다. 피곤했던 이들은 한편 놀라면서도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이들 세 자매가 자진해서 나타낸 후대와 사랑은 일하는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새 힘을 얻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날 오후 그곳에 있었던 전체 형제 자매들의 연합체 내에 따뜻하고 사랑에 찬 영을 배가시켰다.

참 그리스도교의 표

물론 후대와 사랑은 그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참 그리스도교의 설립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진정한 추종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지적하셨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후대에 힘쓰라”고 훈계하였다. (요한 13:35; 로마 12:13, 신세)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이기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온 손대접은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생활의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그러한 특성들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특성들을 배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 예언대로 대다수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가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마태 24:12) 하지만 실로 대조적이게도 그러한 특성들이 실재하고 있다! 밀접히 연합된 가족 성원들은 서로 교제를 즐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은 정기적으로 집회와 야외 봉사에서 그리고 다른 기회에 함께 교제할 때, 서로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들은 진정한 벗이 되며, 친가족보다 훨씬더 가까와질 수 있을 것이다. (잠언 18:24) 여호와의 동료 증인들 사이의 이러한 우정의 띠는 세상의 불건전한 영향력을 막아 주는 강력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 여자들의 역할

“후대에 힘쓰라”는 훈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상, 후대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실제적인 일은 대개 여자들 특히 아내들이 하지 않는가? 남편이 그리스도인 교제를 하기 위해 회중 내의 어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물을 준비하고 또 뒷처리를 하는 것은 아내가 아닌가? 남편과 자녀들이 도와줄 수 있고 또 기꺼이 도와 주어야 하지만, 모든 일이 제대로 돌보아지고 있는지 살피는 일은 부득이 아내가 도맡게 된다.

칭찬할 만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 아내들은 영적인 형제 자매들에게 참다운 후대를 하고자 적극 힘쓰고 있다. 일례로 홍콩에서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으며 남편이 지방 회중의 장로인 딥 이를 생각해 보자. 형제 자매들을 초대하는 것, 때로는 심지어 서적 연구 집단 전체를 초대하는 것이 분명히 그에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는 기쁘게 후대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우리는 식사를 간단하게 마련하지요. 형제들이 마음껏 교제를 즐기면서 그로 인해 격려를 받는 것을 보는 것은 흐뭇한 일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후대를 통하여 회중 내에 따뜻한 영을 키워 나가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후대하는 일과 관련된 이 모든 점들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그리스도인 여자들에게는 근면함과 자기 희생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들은 남편과 대접받아 고마와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의 노고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이따금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에 대해 합당히 나타내야 할 감사하는 태도를 나타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언짢게 여기어 후대하는 일을 그만둘 이유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그들이 우리가 기울인 노력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후대하기 원하는 주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고도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신다.

균형잡힌 견해를 가짐

오늘날과 같이 물가가 치솟는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후대할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망설일지 모른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균형잡힌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물을 특별하게 장만하는 것이 즐거움을 더해 줄 순 있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매우 현명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지적한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17) 무엇을 차려 놓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하고도 고맙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상호간의 세워 주는 교제와 우리가 나타내는 사랑의 영인 것이다.

반대하는 남편을 둔 40대의 자매 풍힝의 경우를 고려해 보자. 그는 홍콩의 거대한 공용 주택 단지에 있는 자그마한 단간방에서 살고 있다. 그는 결코 넉넉하지 않다. 사실상 그는 가족의 수입을 보조하느라 시간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인색하지 않다. 회중 내의 ‘증인’이 그의 이웃에서 호별 방문 전파 활동을 하면, 흔히 그는 그들을 초대해서 간단한 다과를 대접한다. 그처럼 사랑을 나타내는 태도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고맙게 여겨질 뿐 아니라 넉넉한 사람만이 진정한 후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하지만 아무리 조촐하게 대접하려고 한다 해도 후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만일 우리가 참다운 그리스도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움직인다면, 확실히 그러할 것이다. 희생이 따르지 않는 사랑이 있겠는가?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심으로써, 즉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제공하시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바치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다.—요한 3:16; 15:13.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사랑을 나타내는 행로를 따랐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는 형제들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 ·⁠·⁠· 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였도다.]” (고린도 후 8:2-4) 그들의 “극한 가난”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한 점이 그들의 관대함을 더욱더 순수하며 감동적인 것이 되게 했다.

그러나 가난하든 비교적 넉넉하든, 그리고 현대식 편이 시설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손 대접하는 데는 시간과 힘과 재원이 든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교제의 유익을 즐기도록 해주기 위하여 기꺼이 힘쓰는가? 이러한 성서의 잠언을 기억하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여호와께서 알려 주신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그분의 웅대한 본을 모방한다는 면에서 손 대접을 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함으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잠언 11:25; 19:17.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한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누가 14:12) 예수께서 여기서 지적하신 점은 우리가 벗이나 친척들을 식사에 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의 경우처럼, 때때로 벗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그분이 말씀하신 의도는, 우리가 손 대접을 할 때 무언가를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듯이, 초대를 할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사람들은 그러한 교제로부터 가장 유익을 얻을 사람들이다. (누가 14:13)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격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진리 안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 소심하거나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 및 연로한 분들이 포함된다. 매우 열심이 있지만 건강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연로한 자매인 오이 육의 이러한 말로부터 그러한 교제가 줄 수 있는 격려적인 영향을 알 수 있다. “종종 형제들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 나를 초대하고는 여러 가지 면으로 친절을 베푼답니다. 대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은 나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해줍니다!”

분명히, 그러한 모임의 목적은 단순한 사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세워 주며 여호와의 동료 숭배자들 간에 사랑의 띠를 강화시켜 준다. 그러므로, 음식물을 많이 차리는 것보다는 건설적이고 격려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경우에 있게 되는 활동이나 대화에 대해서도 얼마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모든 활동을 성서를 중심으로 하거나 모든 대화를 성경 주제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항상 건설적이고 격려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은 현명하고도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될 것이다. 경쟁적인 게임이나 쓸데없는 말질, 험담같은 것은 분명코 하지 말아야 한다.—에베소 4:29, 31.

후대에는 풍부한 상이 따른다

무언가를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으로 후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대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달리, 진정한 후대를 할 때, 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상이 따르게 된다. 그로 인해 새로운 벗들을 알게도 되고, 오래된 벗들과의 정이 더욱 두터워지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관대함과 후대의 영을 배양하도록 고무한다. (누가 6:38; 잠언 11:25) 무엇보다도, 우주에서 가장 후대하시는 분이신 인자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후대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핍절해지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실 것인데, 그것은 그분이 자신이 하는 바와 같이 “후대에 힘쓰”는 사람들을 인식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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