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벗관계는 비우호적인 세상에서도 지속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누가 16:9.
1. 잠언 14:20이 지상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잠언 14:20)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이 잠언은 지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분으로서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을 물질적 재산을 통하여 자신과의 친밀한 교제 안으로 이끌어들이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또한 지상의 부가 참되고 지속적인 벗관계의 기초라고 하시지도 않았읍니다.
2.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어떠한 벗관계를 맺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누가 16:9) 그러나 예수께서 염두에 두신 “친구”란 모든 가치있는 소유물들의 원천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무한하게 부유하신 아버지의 아들인 그 자신이었읍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동일한 교훈을 따른다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벗관계 곧 자기 희생적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벗관계 안으로 인도되게 됩니다.
3. 하늘에 계신 이러한 벗들은 우리를 어떠한 “처소”로 들어가도록 안내하실 수 있읍니까?
3 불멸의 생명을 지녔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이분들은 계속 우리의 굳건한 벗들이 되어 주실 수 있으며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들어가도록 안내하실 수 있읍니다. 이 점은 이 “영원한 처소”가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있는 하늘에 있는 것이 되든, 이곳 지상의 회복된 낙원에 있는 것이 되든 마찬가집니다.—누가 23:43.
가장 훌륭한 벗관계 안으로 받아들여 짐
4. (ㄱ) 하나님과 벗관계를 돈으로 살 수 있는지를 어떠한 성서의 예가 알려 줍니까? (ㄴ) 우리의 소유물들을 어떠한 합당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읍니까?
4 지존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벗관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제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 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 강조되었읍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명예나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인하시는 방법으로 지상의 소유물을 사용할 수 있읍니다. (사도 5:1-11)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누가 16:9, 공동번역.
5. ‘삭개오’는 어떠한 행로를 추구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5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로마’ 제국의 세리들과 기타 죄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위해 지상에서 물질적 부를 얻는 일에 관심이 없었읍니다. 사실 그분은 자기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을 위해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 정부의 ‘유대’인 세리였던 ‘삭개오’는 메시야 예수의 이러한 교훈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였읍니다. 왕국 권익을 지지하는 이러한 행동을 보시고 ‘삭개오’의 가장 고귀한 손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 19:1-10) “잃어버린 자” 중에는 세리인 ‘삭개오’ 자신도 포함되었읍니다.
6. ‘삭개오’는 무엇 안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러나 누구의 그릇된 행로는 경고의 역할을 합니까?
6 ‘삭개오’는 전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벗관계, 곧 당시 그가 대접하던 그 특별한 손님의 하나님 아버지와의 벗관계 안으로 받아들여졌읍니다. ‘삭개오’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분을 보고 그 중대한 날인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있던 약 120명의 제자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성서 기록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삭개오’는 그보다 약간 후에 보고된 영으로 출생한, 기름부음받은 5,000명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2장 및 4장; 고린도 전 15:1-6) 그러나 앞서 언급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얼마나 대조를 이룹니까! ‘예루살렘’ 회중과 연합해 있던 그 두 사람은 자기들이 헌금한 양을 속임으로써 제자들 사이에서의 명성을 드높이려고 하였읍니다. 부정직 때문에 그들에게 닥친 형벌의 대가로 그들은 가장 훌륭한 벗관계를 박탈당하였고,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의 역할을 합니다.—사도 4:34-5:11.
7. 비우호적인 이 세상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은 어떠한 희귀한 상태를 누리고 있읍니까?
7 비우호적인 현 20세기 세상에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훌륭한 벗관계를 계속 누리고 있읍니다. 그러나 천여가지의 종교 제도들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 희귀한 상태를 그들이 누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거가 알려 주듯이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이 해오지 않은 중대한 일을 행해 왔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증인’들이 거짓 종교 제도들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이것들이 성서에서 큰 ‘바벨론’이라고 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구성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거짓 종교에서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여호와의 조직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또 다른 종교 제도에 가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 오늘날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명령은 누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졌읍니까?
8 유의해야 할 사실은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계시 18:4) ‘히브리’어 성경에 의하면, 이같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바벨론’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한 ‘이스라엘’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비슷합니다. (이사야 52:11) 그러므로 “내 백성”이라는 명칭은 아직 지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출생한 기름부음받은 제자들 중 남은 자들에게 직접 적용됩니다. 1914-18년 사이의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큰 ‘바벨론’은 이 세상의 정치, 군사 및 사법 요소들을 사용하여 이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포로로 잡아감으로 이 영적 남은 자들이 무활동 상태에 빠지게 하였읍니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봉사에서 활동하는 자유를 잃은 포로 상태에 있게 되었읍니다.
9. ‘여호와의 증인’은 어느 정도로 큰 ‘바벨론’에서 나와야 하였읍니까?
9 계시록 17장에서 큰 ‘바벨론’은 일곱 머리와 열뿔을 가진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로 상징되어 있읍니다. 무저갱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그 상징적 짐승이 상징하는 것은 현대의 세계 평화를 위한 기구, 곧 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무저갱에 들어갔던 ‘국제 연맹’의 후신인 ‘국제 연합’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 여호와의 백성이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그들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지배와 권세 아래서만이 아니라, 그것의 정치적 동료들 곧 현재 UN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 요소들의 지배 아래서도 나왔읍니다.
10. ‘여호와의 증인’은 오늘날의 어떠한 국제 조직과 무관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현 사물의 제도의 정치 및 군사적인 일들과 관련하여 엄정 중립을 지키기로 하고 그것을 유지해 왔읍니다. (요한 15:19) 그들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서 하늘에 설립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읍니다. 1918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이 왕국을 무시하고 ‘국제 연맹’이 설립되었으며 큰 ‘바벨론’은 그것을 승인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이 국제 조직은 여호와 하나님과 지상의 영적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는 혐오스럽고 가증한 것입니다. 그들이 신뢰하는 것은 여호와의 왕국 그 자체이지, 자칭 그것의 대용물이라고 하는 지상의 그 어떤 것이 아닙니다. (마태 24:15, 16) 또한,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이 상징한 현대의 “큰 무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계시 7:9-17; 에스라 2:43-58.
11. (ㄱ) 예수의 제자들이 이 세상의 벗이 되는 것이 그릇된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 세상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읍니까?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계속 누리고 있읍니까?
11 예수께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생명이 걸린 재판을 받으실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 18:36) 그러므로 예수의 “종들” 곧 제자들이 이 세상의 벗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일일 것입니다. 그보다 일찌기 예수께서는 최초로 자신의 “종들”이 된 사람들 곧 11명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그들은 ‘사단’ 마귀가 “임금” 노릇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30; 15:19; 비교 고린도 후 4:4)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다를 바 없이, 현 20세기의 예수의 제자들도 비우호적인 세상에 처해 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벗관계, 곧 “새 하늘과 새 땅”과 더불어 장차 의로운 세상을 가져오실 하나님과 벗관계를 계속 누리고 있읍니다.—베드로 후 3:13.
12. 큰 ‘바벨론’에서 나오고 그것의 세상적 정부(情夫)에게서 떨어져 나오면 어느 편에 서는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는 무엇이 수반됩니까?
12 큰 ‘바벨론’에서 나오고 그것의 세상 동반자들인 대기업과 정치 및 군사주의에서 떨어져 나오면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입니다. 바로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우주 조직 편에 서는 것뿐입니다. 중간 지대란 없읍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개인은 이 세상의 비우호적인 태도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은 큰 ‘바벨론’과 그것이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세상을 버리고자 마음 먹기가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가장 훌륭한 벗으로부터 받은 “새 이름”
13. 기원 제 1세기에 예수의 제자들은 섭리에 따라 무엇이라고 불리었읍니까?
13 하나님과 맺게 된 소중한 벗관계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이라 불리게 된 것을 행복하게 여깁니다.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벗과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행전 11:26에서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제자들이 [‘시리아’] ‘안디옥’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신세]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유의할 수 있듯이, 「신세계역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컬음을 받다’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단순히 무심코 부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벗이 되시는 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명칭을 승인하신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떠한 질문들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까?
14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발전하여 그리스도교국이라는 명칭이 되었고, 그 말은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모든 자들의 전체 영역에 적용되며, 그 영역에는 가지각색의 종교적 분파들과 교파들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이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수여된 것도 아니고 사도들을 통해서 혹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섭리로’ 전달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상황은 제 1세기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비우호적인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벗관계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즉 영감받은 성경에 순응하는 진정한, 참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또 다른 의미 심장한 질문은 ‘여호와의 증인’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벗들로 삼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15. 어떠한 상황으로 보아, 여호와께서 이름을 널리 알리실 때가 도래하였으며, 이 점에 있어서 현재 ‘그분의 이름을 위할 백성’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읍니까?
15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 그리스도교국이 어떻게 여호와와 벗관계를 누릴 수 있겠읍니까? 그리스도교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으로 내세워,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 여호와는 거의 축출하다시피해 왔읍니다. 그러나 성서 예언과 일치하게,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실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이 대두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 그분은 자신의 참된 증인들 곧 자신과 벗관계를 누리고 있는 자신의 선민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도들 및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그외의 추종자들이 제 1세기에 개최한 한 특별 모임에서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느니라.]”—사도 15:14.
16, 17. 그리스도교국의 성서 번역판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어 왔읍니까?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신세계역」은 어떠합니까?
16 ‘하나님의 이름을 위할 백성’이라면 그분의 벗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옹호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 내에서는 어떠해 왔읍니까? 그리스도교국에서 널리 보급된 성서 번역판들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이 칭호에 가려져 왔읍니다. 사실, 오늘날 가장 널리 보급된 영어 번역판에는 그분의 이름이 단 네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 6:3; 시 83:18; 이사야 12:2; 26:4, 흠정역) 더우기 ‘히브리’어 성경의 ‘유대’교 번역판들에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은 “주”라는 말로 번역되어 왔읍니다. 그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삭제하려고 드는 것은 그분의 벗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17 그러나 1950년에, 「신세계역 성경」(New World Tr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이 종교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원래의 ‘히브리’어 성서 본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모든 경우에 그 이름을 재생시켰읍니다. 또한 「신세계역」에서는 소위 신약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본문의 합당한 위치에도 237회나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시켰읍니다. 이것이야 말로 여호와의 벗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18. 하나님의 백성은 이사야 62:2의 정신을 가지고, 1931년에 어떠한 단계를 밟았으며, 그들은 어떠한 책임을 이행해 왔읍니까?
18 여호와의 벗들은 이사야 62:2의 말씀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침례받은 영으로 출생한, 메시야의 제자들로 된 보이는 조직에 주어진 그 귀절은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라.]” 그 “이름”이 가리키는 축복받은 상태 안으로 이들 현대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은 모아들여졌읍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할’ 백성이 되기 위하여, 그분의 보이는 조직의 성원들의 남은 자들은 당연히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그분의 이름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때가 되자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이사야 62:2의 정신을 가지고, 1931년에 ‘오하이오’ 주 ‘콜룸부스’ 대회에 모인,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한 조직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즐거이 채택하였읍니다. 그 본을 따라 여호와의 헌신한 백성의 모든 회중도 그 이름을 채택하였읍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세상이 반대로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하게 되었읍니다. 계시록 3:14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므로 합당하게도, 그 기억할 만한 해인 1931년부터 지상에 있는 그분의 제자들로 된 회중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 이름을 고수해 왔읍니다. 그때 이래 그들은 그 이름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그 이름을 알리는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읍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이름—그들의 가장 훌륭한 벗의 비할 데 없는 이름—은 전세계에서 대두되어 왔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놀라울 정도로 뚜렷이 나타내 오신 바와 같이 그분의 증인들에 대한 벗관계는 이 늦은 시기까지도 지속되고 있읍니다.
19. (ㄱ)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이 이 세상의 비우호적인 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충절을 고수하는 자들은 ‘아마겟돈’에서 어떠한 특권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까? (ㄴ) 무엇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모두 여호와께 드립니까?
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헌신한 증인들인 우리를 지지하시므로, 우리를 대적하여 성공할 자가 과연 누구겠읍니까? (로마 8:31-3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적대적인 세상이 보이는 비우호적인 태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메시야 왕국의 대사 혹은 공사의 사명을 이행하면서, 양같은 사람들이 왕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촉구하고 있읍니다. (고린도 후 5:20) 이러한 이유에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그들의 반려자들인 “큰 무리”에 대한 이 세상의 적의가 계속 쌓이고 있지만, 전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벗관계, 곧 여호와 하나님과의 벗관계는 충성스럽게 계속 지속되고 있읍니다. (계시 7:9) 우리가 그분께 대한 충절을 고수하는 한 그 관계 곧 우정이 우리에게서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조만간, 모든 전쟁 중의 전쟁인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인 ‘아마겟돈’ 중에 그 벗관계, 곧 우정은 전례가 없는 정도로 전시될 것입니다. (계시 16:14, 16) 그 전쟁에서,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무리 및 그의 보이는 모든 지적 조직을 맞서서 여호와께서는 그 어떤 시대에 거두신 것보다도 가장 뛰어난 승리를 통하여 자신의 우주 주권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현재까지 계속해서 여호와와의 훌륭한 벗관계 곧 우정을 가져온 우리는 그때에 보존을 받아, 정복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이 비할 데 없는 승리를 거두시는 것을 목격하는 영광된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시 110:1, 2; 이사야 66:23, 24) 여호와 하나님과 지속적인 벗관계 곧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와 찬양을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바입니다!—시 136:1-26.
어떻게 대답하시겠읍니까?
◻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어떠한 벗관계를 맺도록 촉구하셨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어떠한 “처소”로 들어가도록 안내될 수 있읍니까?
◻ 세상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어떠한 벗관계를 계속 누리고 있읍니까?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할’ 백성은 그분의 이름에 관한 어떠한 책임을 이행해 왔읍니까?
◻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이 이 세상의 비우호적인 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면 삽화]
‘삭개오’는 전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벗관계 안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신도 동일한 체험을 하였는가?
[22면 삽화]
가장 훌륭한 벗이신 하나님과 벗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기뻐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1931년에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로 결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