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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5 1/15 16-20면
  • ‘너희는 마땅히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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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마땅히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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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파85 1/15 16-20면

‘너희는 마땅히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주의 종은 가르치기를 잘 하여야 할지니라.’—디모데 후 2:24.

1, 2.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특출한 면에서 예수를 본받아야 합니까?

기원 31년 어느 봄 날, 예수께서는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인 잡다한 많은 청중에게 공개적인 연설을 하셨읍니다. 그분은 현대의 확성 시설의 도움없이 말씀하셨지만 산 기슭의 자연적인 음향 효과를 사용하여 자신의 말이 들리게 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읍니다. 그분이 연설을 마치자 듣던 사람들은 그 전에 그와 같은 연설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음을 이구 동성으로 인정하였읍니다. 그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라.]” (마태 7:28) 그때에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는 참으로 탁월한 선생임을 나타내셨읍니다.

2 더우기, 그분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가르치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가르치는 사람, 공동 번역]이 되었어야 한다”고 말하였읍니다. (히브리 5:12) 그는 또한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여야 할지니라.]”—디모데 후 2:24

3.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부면들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까?

3 가르치는 일이 이토록 강조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집집으로 그리고 가두에서 전파할 때, 혹은 관심자들을 재방문하고 성서 연구를 사회할 때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접하는 모든 경우를 가르칠 기회로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참조 요한 4:7-15)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인 봉사자는 왕국회관에서 회중에게 연설할 때, 혹은 개인적 교훈을 할 때 가르칠 필요가 있읍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여자들은 보다 젊은 여자들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라는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디도 2:3-5) 또한, 그리스도인 부모들도 자기 자녀들을 “징계와 여호와의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가르치는 능력을 많이 요하는 일입니다. (에베소 6:4, 신세; 신명 6:6-8)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당연합니다!

4, 5.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는 무슨 도움을 받고 있읍니까?

4 그러나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술입니다. (디모데 후 4:2, 신세 참조)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읍니까? (고린도 전 1:26) 여호와의 도움이 있을 때 비로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마태 19:26) 여호와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야고보 1:5) 그분의 성령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서는 ‘가르치는 일에 유익’하며, 가르치는 일을 포함한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완전히 갖출 수 있게” 도와줍니다.—디모데 후 3:16, 17, 신세.

5 성서는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성서는 특히 예수의 봉사를 충실하게 알려 줌으로써 그러한 도움을 줍니다. 그분의 가르치는 능력은 동 시대 사람들을 참으로 놀라게 하였읍니다. (마가 1:22) 그분이 어떻게 해서 그처럼 훌륭한 선생이 되셨는지를 알게 되면 그분을 본받고자 노력할 수 있읍니다. 사실상,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부면은 두 가지가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특성들과 그가 가르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예수의 경우에 그러한 면이 얼마나 잘 나타났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가르치는 사람 ·⁠·⁠·

6. 예수의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 부면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한 7:16) 또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노라.]” (요한 8:2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자신이 메시야이셨지만, 그분의 동기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마태 6:9; 요한 17:26) 이 겸손한 태도가 예수께서 가르치는 분으로 탁월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와 비슷한 겸손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들의 동기는 그들 자신이 선생으로서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르치는 말씀의 저자이신 여호와께 찬양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연구생들은 어떤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비교 사도 20:30.

7, 8. (ㄱ) 진리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어떤 훌륭한 태도를 가지고 계셨읍니까? (시 119:97) (ㄴ) 그와 같은 태도는 어떻게 우리의 가르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줄 것입니까?

7 그 다음에 고려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 오셨으며 자신의 제목에 대하여 완벽한 지식을 가지셨다는 점입니다. (요한 17:17; 18:37) 이미 12세의 나이에 그분은 성경적인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누가 2:46, 47) 분명히 예수께서는 진리를 사랑하셨읍니다. (시 40:8) 진리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그분의 소식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신하셨고 그것을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가르치고자 결의하셨읍니다.—요한 1:14; 12:49, 50.

8 우리는 어떠합니까? 아마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랑합니까?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는 데 더 능숙해지기 위해 연구하는 데 시간을 바칩니까?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까?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깊어짐에 따라, 진리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정 역시 자라갈 것입니다. 시편 필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선언하였읍니다. 성서에서 말하듯이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하며, 그 가운데는 가르치는 일이 포함됩니다.—시 1:1-3.

9. 예수의 어떤 다른 특성이 그분의 훌륭한 가르치는 능력에 기여하였읍니까?

9 그러나 단순히 제목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노련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자신의 과목에 대해 잘 알기는 하지만 가르치는 면에서는 빈약했던 교사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왜 그러했겠읍니까? 그에게는 예수께서 풍부하게 가지셨던 한 가지 특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읍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입니다. 기록은 이런 일이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무리를 보시고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태 9:36) 그분은 너무도 피곤하거나 골몰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신 일이 결코 없읍니다. (요한 4:6-26) 그분은 친절하고 온유하셨고 다른 사람들의 약함에 대해 참을성있으셨읍니다. 그분은 도와 주기를 원하셨읍니다. (누가 5:12, 13) 오늘날 그리스도인 역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성공적이 되려면 그와 동일한 특성들이 필요합니다.

10. 좋은 본이 가르치는 일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한 부면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또한, 예수를 선생으로 돋보이게 한 네번째 점에 유의하십시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니라.]” (베드로 전 2:22)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을 손상시킬 일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우리도 그러합니까?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적질 말라’ 가르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로마 2:21) 그와 비슷하게, 회중에게 야외 봉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장로 자신도 야외 봉사에 활동적입니까? 성서를 읽을 것을 권고하는 연설을 하는 사람 자신도 성서 읽기 계획을 가지고 있읍니까? 얼마의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단지 행위만으로 반대자를 ‘얻’는 수가 있읍니다. (베드로 전 3:1) 행동은 말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읍니다. 확실히 우리의 행동이 말과 모순된다면, 연구생은 그 차이점을 신속히 눈치챌 것이며, 우리의 가르침은 헛되게 될 수 있읍니다.

11. 이 항목에서는 가르치는 일의 어떤 부면을 더 논하고 있읍니까?

11 여호와를 찬양하려는 가르치는 사람의 욕망, 진리에 대한 이해와 사랑,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한 관심 및 좋은 본, 이 모든 것은 훌륭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데 아주 중요한 부면들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방식과 기술에 있어서 특별한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진실한 연구생들은 그러한 특성들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일은 확실히 하나의 기술이며, 가르치는 방식과 기술을 고려해 보면 우리의 가르침은 향상될 수 있읍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기술적인 면 몇 가지를 고려해 보고, 그것들이 우리가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 그리고 그의 가르침

12. (ㄱ) 마태 복음 5:3-12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의 어떠한 특징이 돋보입니까? (ㄴ) 우리는 자신의 가르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이 특징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12 예수의 가르침을 맛보기 위해, 그분의 산상 수훈 중 처음 몇 귀절을 직접 읽어 보십시오. (마태 5:3-12) 즉각 어떤 감명을 받게 됩니까? 우선,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신중하게 선택하셨읍니다. “·⁠·⁠· 복이 있나니”라는 말로 소개되는 일련의 간결한 문장들은 잊지 못할 머리말을 이룹니다. 그러나 또한 그분이 난해하고 어마어마한 낱말이나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신 점에도 유의하십시오. 표현된 진리는 심오한 것이지만 그것은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읍니다. 여기에 잘 가르치는 비결 하나가 있읍니다. 즉 간결성입니다. 예수의 연설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어보고, 심오한 진리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된 몇 가지 다른 예들을 유의해 보십시오. (마태 5:23, 24, 31, 32; 6:14; 7:12) 그 다음에, 심오한 진리 몇 가지를 자신이 얼마나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아마 이방인의 때, 혹은 성서에서 하늘 희망과 땅의 희망 두 가지를 약속하는 이유 등에 관해서입니다.

13, 14. 실례들은 어떻게 예수의 말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읍니까?

13 이제 마태 복음 5:14-16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겸손한 청중에게 훌륭한 말과 행실로써 진리를 널리 전하라고 권고하셨읍니다. 아마 이러한 견해는 그들을 놀라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 민족 중에서 가르치는 자로 여겨진 사람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요점을 뛰어나게 하심으로써 매우 이치적으로 들리게 하셨읍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뛰어난 예를 사용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바로 실례는 예수께서 가르치는 데 자주 사용하신 가치있는 보조 수단입니다.

14 왜 실례를 사용합니까? 우리의 정신은 그림을 볼 때 사고 기능을 더 잘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례들은 잘 아는 것들을 묘사함으로써 영적인 것들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인 여호와를 자녀들에게 좋은 것들을 베푸는 아버지에 비하셨읍니다. 생명에 이르는 어려운 길은 협착한 길을 향해 열려 있는 좁은 문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양으로 가장하는 이리 혹은 썩은 열매를 맺는 나무에 비유되었읍니다. (마태 7:7-11, 13-21) 이러한 실생활에 연관된 실례들은 예수의 말씀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읍니다. 그분의 교훈은 기억하기 쉬운 잊혀지지 않는 것이 되었읍니다.

1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르치는 일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례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15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실례를 사용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을 보다 더 잘 받아들이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불 교리가 비이치적임을 설명하는 데, 불순종한 자녀의 손을 불속에 집어 넣어서 자녀에게 벌을 주는 부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듣는 사람에게 질문함으로써 실례를 들어 설명해 왔읍니다.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 하늘에 가고, 대부분은 지상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소수만이 정부에 소속되어 있고 대부분은 그 정부의 혜택을 즐기게 되는 하나의 국가의 예를 들 수 있읍니다. 그러나 실례는 보통, 듣는 사람이 잘 알고 있는 것들에서 이끌어낸 것이어야 합니다. 장황하게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너무나 길어서 가르치는 요점이 흐려지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16. 어떠한 실례들이 특히 생생합니까?

16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례는 또한 시각적인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질문을 받으셨을 때, 자신의 대답을 실증하기 위해 ‘데나리온’ 동전을 요구해서 그것을 사용하셨읍니다. (마태 22:17-22) 겸손의 필요성을 강조하실 때, 그분은 어린 아이를 부르심으로써 그 점을 실증하셨읍니다. (마태 18:1-6) 그리고 100‘퍼센트’ 정성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모든 소유—두 닢의 작은 동전—를 성전 연보궤에 넣고 있는 실제 과부를 지적하셨읍니다. (마가 12:41-44) 그와 비슷하게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일부 연사들은 칠판이나 그림, 도표 및 환등이 매우 유익함을 알게 됩니다. 한편 가정 성서 연구에서는 삽화나 다른 보조물들이 사용될 수 있읍니다. 시각적인 실례는 단순한 말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읍니다.

17. 예수께서 매우 자주 사용하신 또 다른 가르치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17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마태 복음 12:10-12에 나와 있는 그 경우에 ‘바리새’인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읽어 보십시오. 그분이 매우 교묘한 질문에 얼마나 능숙하게 대답하셨는지에 유의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분은 비유를 사용하셨지만, 그 비유를 어떻게 표현하셨는지 유의하였읍니까? 질문이었읍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분은 듣는 사람들이 안식일을 보다 균형잡힌 방법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르치는 일에 사용하신 매우 가치 있는 또 다른 보조 수단은 질문들입니다. 예수께서 듣는 사람들이 멈추어 생각하도록, 그리고 반대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도록 질문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에 유의하십시오.—마태 17:24-27; 21:23-27; 22:41-46.

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리 토론에서 질문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십시오.

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질문들을 그와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함으로,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이 마태 복음 28:18을 사용하여 예수께서 전능하시며 따라서 하나님과 동등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때, 가르치는 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질문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아마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읍니다. ‘그 성귀가 알려 주듯이 모든 권세가 예수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그분께 준 분은 누구였읍니까? 그리고 그것을 받기 이전의 예수의 지위는 어떠하였읍니까?’ 그렇게 할 때 삼위일체론자는 그 성귀를 새로운 견지에서 보게 됩니다. 그와 비슷하게 지옥불을 믿는 사람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사용하여 불타는 지옥이 있다고 증명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누가 16:19-31)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갔읍니까? 하늘로 갔다면 그것은 하늘에 있는 모든 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는 의미입니까? 게다가, 예수께서는 그 당시까지 하늘에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읍니까? (요한 3:13) 그러한 질문들은 그 비유에 묘사되어 있는 그 가난한 사람의 사후 상태가 상징적인 것임에 틀림없음을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죽”은 후의 상태 역시 상징적인 것이며,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지옥에 관하여 다른 성귀들이 말하는 바를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전도 9:10.a

19. 어떤 상황에서 가르치든, 질문이 매우 가치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질문들은 연구생이 가르치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수사 질문(듣는 사람이 대답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도 듣는 사람의 생각을 자극합니다. 예수께서 마태 복음 11:7-11에서 수사 질문을 사용하신 것에 유의하십시오. 또한 질문은 다른 방도로도 사용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도와 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경우가 있읍니다. 예수와는 달리 우리는 마음을 읽을 수 없으므로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입니다. 바로 주의 깊이 생각해 낸 질문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잠언 18:13; 20:5.

20. ‘우리 자신과 가르치는 일을 잘 살필’ 때의 상은 무엇입니까? (디모데 전 4:16, 새번역)

20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기술입니다. 그 기술을 기르기 위해서, 가르치는 사람은 발전시켜야 할 특성들이 있으며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 기술은 기를 수 있읍니다. 여하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에는 가르치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적용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일과 가르치는 일을 잘 살[피시오.]” 물론, 이 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재능을 더 타고난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열심을 내고 여호와께 도움을 구한다면 누구나 가르치는 일에 성공적이 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의 상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꾸준히 이 일에 힘을 다하시오. 그리하면 그대 자신도 구원하고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디모데 전 4:16, 새번역.

[각주]

a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및 부록 4-B 참조.

설명하실 수 있읍니까?

◻ 예수께서 잘 가르치는 분이 되시는 데 무슨 특성들이 도움이 되었읍니까?

◻ 이러한 특성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입니까?

◻ 가르치는 사람에게 간결성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실례 및 질문들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가르침을 어떻게 향상시켜 줄 것입니까?

[17면 삽화]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 종교 지도자들과 다르셨다

[18면 삽화]

예수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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