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의 질문
◼ 그리스도인 생활 행로는 현재에도 보람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기술한 이유는 무엇인가?
참 그리스도교는 확실히 훌륭하고 만족을 주는 생활 행로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5:19에서 사도 ‘바울’의 설명이 알려 주는 바는 자신의 희망 때문에 고통을 인내한 사람은 만일 그 희망이 근거없는 것이라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교를 실천함으로써 산출되는 생활 행로는 훌륭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읍니다. 그에 대한 몇 가지 증거를 고려해 보십시오. 참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도움과 물질적인 도움을 기꺼이 베푸는 깨끗하고, 건전하고 사랑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회중의 일부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기 때문에, 부도덕, 과음, 흡연 및 마약 남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신체적인 위험과 질병에서 보호받습니다. (로마 1:26, 27; 고린도 전 6:18; 고린도 후 7:1; 에베소 4:18, 19) 그는 인생의 의미와 방향이 불확실해서, 목표없이 헤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창조주와 자신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만족을 얻습니다. 그가 성서에 기초한 원칙들을 따르는 것은 더욱 안전하고 성공적인 가정이 되는 데 기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직성 때문에 고용인으로 채용될지 모르며, 일자리를 잃거나 해고될 가능성이 적을 것입니다.
이처럼 몇 가지만 열거해 보아도, 그리스도인 생활 행로는 참으로 의미 깊고 보람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리스도인은 반대, 박해, 심지어는 폭행을 겪을 수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2) 예수께서는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마태 24:9, 10; 마가 8:34; 10:30; 누가 21:12; 요한 16:2) 고대 ‘고린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알았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이제 핍박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는다고 편지했읍니다. (고린도 전 15:9; 4:12; 고린도 후 11:23-27)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논리적으로 설명했읍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린도 전 15:30-32.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박해는 그들의 희망과 관련이 있었읍니다. 그 희망이 단순한 망상이었다면, 그들이 핍박당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 전 15:19.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틀림없이 부활되셨음을 알았읍니다.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수백명의 증인들에게 나타나셨읍니다. (고린도 전 15:3-8)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이처럼 강권했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 전 15:58.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자기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불쌍한 자들이 아님을 확신하였읍니다. 그는 온전하고, 잊지 못할, 부러움을 살 만한 인생을 살았읍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는 말이 그에게 참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참될 수 있읍니다.—디모데 전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