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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 음악은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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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 음악은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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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12/15 4-7면

‘크리스마스’ 음악은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크리스마스’ 음악과 그 가사가 지니고 있는 힘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인간 감정에 강한 영향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감정을 움직이는 어떤 즐거운 것들로 인해 아무리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예수와 관련된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성서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한다면, 진리가 최상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가? 사실상, 진정한 사실을 혼미케 하는 거라면, 감상주의는 방해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고 조장하는지 알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객관적이고 허심 탄회하게 연구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음악들은 진실한가?

어떤 사람이 인기있는 ‘크리스마스’ 노래들의 진실성 여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면, 의아하게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종종 간과해 온 일부 사실들은 정직하게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사실을 말인가?’라고 혹자는 궁금하게 여길지 모른다.

예를 들면, 상당한 수의 ‘캐럴’은 예수께서 ‘크리스마스’날인 12월 25일에 탄생했다고 공언한다. 사실이 그러한가? 솔직히 말해서, 제반 사실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그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추운 겨울이 아니라 가을에 탄생했음을 지적하신다. 그 문제의 진상에 주목해 보자. 어떤 ‘크리스마스 캐럴’의 가사들은 누가 복음 2:8을 바꾸어 놓은 것인데, 그 귀절에는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곡조들은 이 성귀의 말을, 연중 온화한 초가을이라는 시간상의 전후 관계를 12월의 겨울 밤으로 바꿔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그것은 그러한 ‘캐럴’에 나오는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왜 중요한가?

만일 12월 말경 그 지역에 있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계절에는 ‘베들레헴’ 근처 야산의 날씨가 보통, 춥고 비가 오며, 간혹 땅에 눈이 덮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이 주목할 만한 점에 대하여 몇 가지 명백한 성서적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거의 어느 성서 백과 사전을 찾아보아도, 현재의 12월이 고대 ‘히브리’ 달력의 아홉째 달(기슬레) 후반과 열째 달(데벳) 전반에 해당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베들레헴’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에스라 10장 9절에 나오는 기록을 고려해 보자.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 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이 성귀에 들어 있는 중요한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가? 정신이 있는 ‘히브리’인 목자라면 아무도, 찾아다닐 만한 풀이 거의 없이 얼어붙은 들판에서 자기 양떼들을 위태롭게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 필자 ‘누가’는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때에 ‘베들레헴’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떼를 치고 있었다고 확증해 준다. 이것은 겨울인 12월 하순 경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 가사들은 결국 과오를 저지른 것이거나, 진리를 곡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귀절들은 심지어 거짓말에 곡을 갖다 붙인 것일 수도 있다.

명백하게도 이러한 노래들은 ‘크리스마스’ 시기에 대하여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노래들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한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디도 1:2) 더 나아가 그 노래들을 부르는 것은, 예수께서 그토록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방법이겠는가? (요한 4:24, 새번역) 실제로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이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곡조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에 의해서 영예롭게 되신다. (시 31:5; 요한 14:6) 더구나 이런 ‘캐럴’들이 불려지는 ‘크리스마스’철에, 많은 교직자들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근거로서 누가의 목자에 관한 기록을 인용한다. (누가 2:8-14) 하지만, 이 귀절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성경 귀절도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서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조작하는 것은 불리한 심판을 초래한다고 성서는 명확히 알려 준다. ‘이스라엘’의 거짓 예언자들이 “사시는 하나님 ·⁠·⁠· 의 말씀을 망령되이[변경하여, 신세]” 쓴 극단적인 경우에, 그들은 자기 생명을 대가로 치러야 하였던 것이다.—예레미야 23:16-22, 29-32, 36; 신명 12:32; 18:20; 잠언 30:5, 6.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리던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그 가사의 심각성을 무시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진실이 아닌 것, 특히 그분의 밝혀진 진리에 직접 역행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신다. (시 5:4-6)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화음과 유쾌한 선율에 감동을 받아 어떤 거짓된 것이 불려지든지 간에 무시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께서 그렇게 여기시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분들은 그분들이 승인하시지 않는, 거짓말로 사탕발림을 한 가사로는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기념해야 하는가?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부면이 있다. 우리가 성서적 증거와 일치하는 때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어떤 성서적 증거를 알고 있는가?

선하신 아버지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의 숭배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하여 명확하시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은총과 축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그분은 종종 우리가 어떤 오해에 빠지지 않도록 반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였다.a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서, 그분 아들의 지적 생일을 기념해야 된다는 직접적 명령이나 어떤 암시조차도 발견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중점을 두시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직 예수의 죽음의 기념일만 매년 기념할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누가 22:19, 20; 고린도 전 5:7, 8; 11:23-26) 따라서, 주제넘게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도록 요구하는 ‘크리스마스 캐럴’들은 성서에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 전 4:6)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진실하던 간에, 주제넘음과 불순종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없다.—사무엘 상 15:22, 23.

풍습과 신앙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기의 순결한 숭배에 이교적 관습 및 신앙을 혼합하는 것에 관해 경고하고 계신다. (고린도 후 6:14-17) 이교적 관습이라고? 그렇다. 앞으로 제시하겠지만, 많은 이교적 관습들이 ‘크리스마스’와 결합되어 있다. 그러한 관습들은 ‘가나안’ 족속의 관습들처럼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여기시는 것들인데, ‘모세’는 ‘가나안’ 족속에 관해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 행”한다고 말하였다. (신명 12:31)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므로,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이교 관습과 순결한 숭배의 혼합을 장려하는 ‘크리스마스 캐럴’들을 그분께서 어떻게 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말라기 3:6; 신명 12:1-3, 29-32.

예를 들면, “서양 감탕나무 가지로 방을 장식하라”고 노래에서 충동하는 것은 고대 이교 미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풍습과 민속에 대한 탐구」라는 소책자에서, ‘마아가렛 베이커’는 상록수로 집안을 장식하는 것이 ‘로마’와 북‘유럽’의 풍습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부가하여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푸른 나무를 동지에 집안에 들여 놓는 것은 식물이 대지에 회귀하는 것을 보증하는 주문으로 여겨진듯 싶다. ·⁠·⁠· 서양 감탕나무는 행운과 많이 관련되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장과류를 행운을 간직한 것으로 여겼다. ·⁠·⁠· 교회 장식물 중에서 숨겨 가져온 장식 조각들은 특히 재수 좋은 것들로 여겨졌다. ·⁠·⁠· 그리고 옥외에 심은 나무는 천둥, 번개, 화재 및 흉안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29, 32면.

만일 기타 ‘크리스마스 캐럴’들의 유래를 유심히 살펴본다면, 그 노래들이 갖가지 미신적 풍습을 승인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b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관습들을 승인하실리 없다. 왜냐하면, 그 관습들은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두려움과 무지에 속박시키기 때문이다. 미신을 가르치고 조장하는 음악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산타-클로오스’를 다루는 ‘크리스마스’ 음악은 아주 민감한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끈다. 감정을 들뜨게 할지 모르나, 이러한 곡조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빨간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기른 이 신화적 인물이 사실상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르칠 수 있다. 그는 모든 아이들이 언제 착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어서, 오직 착한 소년 소녀들에게만 장난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이러한 물질주의적 선물을 받기 위하여만 행동하도록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우리는 우리의 기만적인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이 지배하게 해야 한다. (예레미야 17:9) ‘산타-클로오스’는 이교 전통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발랄한 가락에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알려 주는 가사가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러한 음악은 여호와 하나님만 소유하고 계시는 전지(全知)의 특성을 ‘산타-클로오스’에게 돌리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이 그런 것들을 믿고 노래하도록 가르쳐야 하겠는가? 그러한 부모들이라면 이교적 ‘산타-클로오스’가 성서의 그리스도교와 관계있다고 자기 자녀들에게 꾸며대겠는가?

현명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뇌물로 매수하여 착해지게 하지 않는다. 더우기 ‘크리스마스’ 음악은 아이들이 가상적으로만 행동한다면, ‘산타-클로오스’가 장난감을 놓고 갈 것이라고 믿게 한다. 그 점이 바로 교묘하면서도 틀림없는 뇌물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형성기에 있는 어린이들의 도덕적 기질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뇌물이 아니라]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여호와께서는 단언하신다. (잠언 22:15) 결론은 명백하다. 즉 ‘산타-클로오스’에 관한 노래들은 엄청난 기만인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성서의 참된 원칙에 대한 존경심을 침식할 뿐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눈빛이 총총한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진리의 “떡”으로 양육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탐구심 많은 정신을 거짓말의 “돌”로 만족시켜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마태 7:9.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크리스마스’와 그 음악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감히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근원은 무엇인가? 이치적으로 추론해 보면, 현재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오도하려는 목표를 가진 누군가에게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사단’ 마귀의 목표라고 성서는 말한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그 장식물들이 ‘사단’ 마귀가 인류를 오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더할 나위 없는 도구일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어 성서에 기초한 진리에 대해 정신이 눈멀게 한다. (고린도 후 4:4) ‘사단’은 음악이 인류에게 주는 막강한 영향력을 알고 있다. 지구 도처에 있는 여러 교회와 사원에서 그는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는 가르침과 풍습을,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로 교활하게 위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음악이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터툴리안’이 이교적인 오락에 관해 한 평을 살펴보자. 제 2 세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던 그는 이렇게 썼다.

“가령 어떤 유쾌한 사물, 그 자체가 호감을 주며 순수하고 심지어 탁월한 사물이 거기에 있다고 치자. 그 어느 누구도 독약을 쓸개즙(지독히 쓴맛과 독성을 함께 지녔음)으로 묽게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저주받을 일에는, 맛있게 하며 매우 감미로운 양념을 친다. 그와 같이 마귀도 자기가 준비한 소량의 치사적인 것을 가장 즐겁고 용납할 만한 하나님의 일에 넣는다. 그렇게 되면 훌륭하고 고상하고 당당하고 선율적인, 혹은 맛이 기막힌 모든 것들이 치사적인 것을 내포하게 된다. 마치도 독이 든 과자에 꿀이 덮여 있는 것과 같다.”—연예 오락(The Shows), 제 27장.

정말 그렇다. ‘사단’ 마귀는 ‘크리스마스’ 음악을 신성하게 만들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게 영예를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양 교묘하게 꾸밀 수 있다.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정반대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고린도 후 11:14.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크리스마스’ 음악의 기만적인 힘과 미에 현혹당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음악을 ‘꿀이 덮여 있는 독이 든 과자’를 피하듯이 피할 것이다.

[각주]

a 출애굽기 12:1-27; 23:14-17; 레위기 23장; 신명기 16:1-16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절기를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에 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부점들에 유의할 수 있다.

b 「깨어라!」 1970년 12월 22일호 3-6면. “‘크리스마스’ 음악” 참조.

[5면 삽화]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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