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4 2/1 4-7면
  • 성서는 지상 낙원을 약속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성서는 지상 낙원을 약속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하늘의 생명에 대한 약속
  • 무슨 낙원이 행악자에게 약속되었는가?
  • 지상 낙원
  • 낙원의 그림
  •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어디에? 언제?
    깨어라!—1979
  • 낙원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 “낙원에서 만나요!”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18
  •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위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음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2/1 4-7면

성서는 지상 낙원을 약속하는가?

“낙원은 하늘을 가리키는 한 가지 명칭이다.” 「워얼드 북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던 강도에게 말했을 때 그 단어를 이런 의미로 사용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어가던 강도에게 실제로 하늘의 낙원을 약속하셨는가? 아니면 지상 낙원을 약속하셨는가?

하늘의 생명에 대한 약속

예수께서 자기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하늘의 생명의 희망을 제시하셨다는 데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처형당하시기 전날 밤 그분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늘 생명에 대한 얼마나 웅대한 약속인가!—요한 14:2, 3.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통치할 사람들을 인류 가운데서 선택해 오셨다.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선택된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하실 것인지 알려 준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아 왕으로서 이 땅을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계시 5:10, 현대인의 성경; 디모데 후 2:11, 12.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 위해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사람들의 수가 144,000명이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모든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적은 무리”가 될 것이었다. (계시 14:1-3; 누가 12:32; 요한 10:16) 하늘로 들어갈 희망을 가진 이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 2:7; 요한 16:33; 요한 1서 5:4) 이 상징적인 “하나님의 낙원”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다.

그러나, 예수의 모든 추종자들 앞에 놓인 낙원은 하늘의 낙원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가? 동정적인 행악자는 하나님께 충실한 행로를 추구함으로써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악한 행동 때문에 의당 사형당한 것이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낙원은 무슨 낙원이었는가?

무슨 낙원이 행악자에게 약속되었는가?

예수 곁에 달려 있던 행악자들 중 한 사람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정적인 행악자는 그를 꾸짖었다. 그 다음 예수 쪽으로 돌이켜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주목할 만한 약속을 하셨다.—누가 23:39-43, 신세.

이 약속된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이 귀절이 수많은 성서 번역판에 번역된 방법이, 이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견해에 영향을 끼쳤다. 대부분의 성서는 「개역 한글판」처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같은 번역에 따르면, 예수와 행악자는 죽은 바로 그 날에 낙원에 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시자 ‘하데스’ 즉 ‘스올’로 가셨다고 알려 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사도 ‘베드로’는 그분이 3일 만에 거기서 부활하신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가 ‘하데스’[‘히브리’어로 ‘스올’]에 버림을 당하지 않고 ·⁠·⁠·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말했다.—사도 2:31, 32, 새번역; 시 16:10.

예수께서는 부활받기 전에 분명히 ‘스올’ 곧 ‘하데스’(인류의 일반 무덤)에 계셨으므로, ‘J. P. 레인지’ 저 「성경 주해」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 낙원을 하늘의 낙원이 아니라 ·⁠·⁠· ‘게헨나’와 반대되는 ‘스올’의 일부분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또한 낙원으로 일컬어졌다.”

‘D. D. 웨돈’은 자기 저서 「복음서 주해」에서 낙원에 관한 이런 견해의 일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 명칭[낙원]의 뜻하는 바는 [‘에덴’의 원래 낙원으로부터], ‘유대’ 교회에 의해, ‘하데스’의 축복된 부분 곧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상태로 옮겨졌다. 죽어가던 강도에게 이야기한 낙원이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예수의 의도였다는 데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낙원이 “‘하데스’의 축복된 부분”인가? 이것은 분명히 ‘유대’인 선생들에게서 유래한 견해였다. 거룩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성원들은 낙원이 ‘하데스’의 일부분이라는 견해를 수긍하지 않는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지적한다. “‘가톨릭’ 신학자들과 주석가들의 지배적 해석에 따르면, 이 경우의 낙원은 그 강도가 구주와 함께 할, 축복받은 사람들의 하늘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필자들은 ‘가톨릭’교의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J. G. 버틀러’는 자기가 저술한 주해서 「성서—저작물」에서 이렇게 감탄한다. “죽어가던 그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날이던가! 아침에는 지상 법정 앞에서 정죄된 죄인이던 그가 ‘시온’ 언덕에 저녁 으스름이 채 덮이기도 전에 하늘 법정에 들어가 서 있었으니.”

하지만 잠깐! 성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하늘이 아니라 ‘스올’ 곧 ‘하데스’로 가셨음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그분은 3일 동안 인류의 일반 무덤에 무의식 상태로 죽어 계셨다. (전도 9:5, 10) 따라서 그분은 하늘에 가실 수 없었다. 예수께서 부활되신 지 40일 후에 하늘로 돌아가셨다고 성서는 알려 준다.—사도 1:3, 6-11.

분명히, 예수께서는 그 행악자에게 그가 단지 낙원에서 부활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지, 바로 그날 낙원에서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을 정확히 옮긴 번역판에는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많은 성서 번역판에 이렇게 되어 있으며, 그 중 하나(람사역)는 각주에서 “고대 원문에는 구두점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쉼표를 오늘 앞에도, 뒤에도 찍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악자에게 약속하신 낙원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언제 그것을 즐기게 될 것인가?

지상 낙원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의 ‘에덴’ 낙원을 바로 이곳 지상에 창조하셨음을 이미 살펴보았다는 점이다. 틀림없이, 인간이 평화와 안전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지상 낙원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 목적을 성취시키지 않으신 채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은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46:10, 11)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목적하신 일을 하실 것이다! 또 그분의 약속은 이러하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29.

그러므로 예수께서 행악자에게 낙원에 대한 약속을 하신 것을 읽을 때, 우리는 열매가 많이 열린 정원같이 살기에 아름다운 곳이 된 이 온 땅을 머리 속에 그려야 한다. “낙원”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여기 지상 낙원에서 이전의 행악자와 함께 계실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지상 낙원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하늘에 계실 것이다. 그분은 그 행악자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그의 육적 및 영적 필요를 돌보아 주신다는 의미에서 그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 행악자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공동 통치자로서 생명을 받을 자격을 갖춘, 충실한 그리스도인 승리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수께서 부활시키실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처럼 악한 일을 했다. (사도 24:15, 새번역)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악한 일을 행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낙원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침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들이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는지 증명할 기회를 받게 될 것이다.

낙원의 그림

낙원이 “지구와 구별되는 장소”라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메시야 왕이 이룩할 평화와 이상적 공의는 이사야 11:6-11에 나오는 낙원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거기 묘사된 아름다운 낙원을 생각해 보자.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관해 말한 다음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예언은 계속해서 6절부터 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기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된 낙원 상태가 어디에서 성취될 것인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선생들은 그런 상태가 지상에 실제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사야’가 그린 그림의 모든 특성에는 현존하는 지상의 육체성이라는 특징이 들어 있다”고 ‘J. P. 레인지’ 교수는 시인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부언한다. “이 지구상에서는 그 예언이 실현될 수 없다. 이 예언이 성취되기 위하여 새로운, 영적이며 영광스럽게 된 육체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이 예언은 하늘 낙원에서 사람들이 즐길 평화와 안전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여기 지상에서 있을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이미 오늘날에도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들의 조직 내에는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가 아름답게 묘사한 대로 영적 번영, 평화, 안전 상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낙원 상태가 확장되어 머지않아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가?

그리스도교국의 대부분의 종교 선생들이, 하나님께서 동물들이 서로 그리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게 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비웃을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물계에 이런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한 성서 주석가가 이 성서 예언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바와 같다. “모두가 단지 상징적인 것이라면, 동물들의 변화에 관해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의의가 어디 있는가? 또 인간의 범죄 이전의 상태와 병행하는 일 또는 비교될 만한 일이 여기 설명되어 있는 것 같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동물들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사람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훌륭했다. 최소한 사람과 동물 사이에 적대감이 있었다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렇다. 메시야의 통치에 관한 ‘이사야’의 이 예언적 묘사와 ‘에덴’ 동산에 존재한 상태 사이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병행점들이 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완전한 아들 ‘아담’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던 것처럼, 메시야 통치하에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것이다. 성서는 그때 동물들에게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었다고 특히 설명한다. 동물들끼리 잡아먹지 않았다. (창세 1:30) 그리고 동물들은 사람에게 복종하며, 이름지음을 받기 위해 사람에게 나오라는 명령에 순종했다.—창세 2:19, 20.

전 지구에 회복될, 이런 조화와 안전 상태를 보는 일은 얼마나 웅대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람들 사이의 이 웅대한 평화가 동물계 내의 적대감의 종결로 반영되기까지 할 영광스런 지상 낙원을 즐기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특권일 것인가! 성서는 참으로 지상 낙원을 약속하고 있다!

[6면 삽화]

이런 상태가 참으로 지상에 편만할 것인가?

[7면 삽입 성구]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시편 37:9, 29, 34.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