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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인 봉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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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장이 불가피해지다
  • 거리상의 도전
  • 앞으로의 왕국 사업을 위해 준비됨
  • 봉헌식 날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11/15 21-24면

역사적인 봉헌

“극히 짤막한 발표문과 더불어, ‘오스트레일리아’ ‘여호와의 증인’들의 새로운 본부 건물 아마 ‘오스트레일리아’의 종교 단체가 지은 것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기능을 지닌 건물이 토요일에 문을 열 것이다. ·⁠·⁠· ‘여호와의 증인’들—설계자, 기술자, 배관공, 벽돌공 등—자신들이 전 작업을 자진하여 수행하였다.” 이상과 같이, 1983년 3월 16일자 「시드니 모오닝 헤럴드」지는 설명하였다.

경사지에 건립된 본관 복합 건물은 부속 사무실과 통로로 연결된, 부분적으로 냉방 시설이 된 세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단층의 현관 건물에는 관리 사무실과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왕국회관이 있다.

2층으로 된 공장 건물은 5,400평방 ‘미터’에 달하는 면적의 공간이 있어 앞으로 있을 확장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 2층 내지 4층으로 되어 있는 숙소동은 135명을 위한 거처이다. 이 건물에는 또한 식당 시설, 의무실, 세탁실, 치과실, 이발 및 미용실과 식품 보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 모든 건축 공사가 수천명의 헌신적인 자진 봉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해 통상적인 건축 비용의 절반 정도로 준공되었다!

확장이 불가피해지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부 사무실을 1929년에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이전하였을 때는, 다만 11명의 지부 가족 성원들과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통하여 약 340명의 활동적인 ‘증인’들이 있었다. 1971년까지 ‘증인’들의 수는 23,00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파수대」지와 「깨어라!」지를 인쇄하는 일을 이곳에서도 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일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시드니’에 있는 동일한 부지에 3층으로 된 커다란 인쇄 공장 및 사무실 건물이 건축되었다.

그 후 5년 남짓 지나자, 왕국 전도인들의 더 많은 증가로 인해 더 많은 건축 사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드니’의 기존 대지 위에 4층 건물을 세우려던 계획은 지방 의회로부터 부결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미 40년간 지부의 소유지로 있던, 도시 중심부로부터 꼭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대지 즉 40‘헥타아르’ 넓이의 농장이야말로 확장을 위한 가장 적합한 부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반 전원 지구인 이곳에 하나의 복합 공장 건물에 대한 건축 허가가 나올 것인가? 지방 의회에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허가한다”는 회신이 왔다.

1978년 12월에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는 이 문제를 확인하였으며, 설계 및 정지 작업이 신속히 진행되었다. 그러는 동안, 건축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와서 1년이나 그 이상 기거할 수 있는 자진 봉사자들에 대한 초대가 있었다. 이들 개개인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 직면해야 했던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야 할 점들이 있다.

거리상의 도전

‘오스트레일리아’는 전세계에서 면적이 여섯번째로 큰 나라이다. 그 면적은 미국(‘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의 면적과 맞먹는다. 하지만 인구는 고작 1,500만명에 불과하며, 그 중 90‘퍼센트’가 바다로부터 12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 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광활하면서도 비가 몹시 적고 인구가 희박한 내륙 지방은 오지(奧地)라고 불린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의 대다수는 이 나라의 주요 6대 도시에 거주하며, 그 도시들은 어마어마한 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웨스트 오스트레일리아’ 주 ‘퍼어드’에서 ‘시드니’까지의 여행 거리는 4,000‘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러나 수백명의 ‘증인’들은 도움을 베풀기 위해 그러한 여행을 하였다. 전공사 기간을 통하여 약 3,000명이 초대에 응하였으며, 그들 대부분은 적어도 1,600‘킬로미터’를 여행해 왔다. 그들은 스스로 경비를 부담하면서 현장에 와서 몇 주일, 몇 달 혹은 심지어 몇 년간 일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집을 팔았고 사업체의 문을 닫았는가 하면 휴가를 냈고 기타 희생들을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는’ 것을 보여 주는 실제적인 예였다.—시 110:3.

일군들 가운데 일부는 전문적인 기술자들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필요할 때 와서 일하였다. ‘웨이터’에 경험있는 한 형제는 식당의 일을 돕기 위해 두 차례나 와서 일하였으며, 그리하여 한 젊은이가 식당에서 벗어나 건축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번은 대형 ‘그레이더’를 들여왔으나 그것을 작동시킬 사람이 없었다. 그것을 간신히 현장까지 끌어왔을 때 ‘태즈메이니아’ 섬으로부터 한 ‘그레이더’ 운전 기사가 전화를 하여 자기가 삼 주일간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데 가능한지를 물어 온 것이다.

또 다른 도움으로는 일단의 노련한 기술공들이 그들의 기술이 필요로 할 때면 흔히 한번 이상 먼 거리를 여행해 와서 일한 것이었다. ‘콘크리이트’공들이 일련의 주요 ‘콘크리이트’ 작업을 위해 1,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왔다. 천정 마무리공들이 1,100‘킬로미터’의 거리에서, 벽 축조공들이 1,500‘킬로미터’의 거리에서 왔다. 더우기, 토요일에는 반경 200‘킬로미터’ 이내의 지방 ‘증인’들이 와서 일을 거들었으며, 흔히 200 내지 300명 이상의 정규 노동력을 지원하였다.

북부의 ‘퀴인즐랜드’에 사는 제재소를 경영하는 얼마의 ‘증인’들은 가장 질 좋은 지방 목재 여러 ‘트럭’을 3,200‘킬로미터’ 거리에서 실어 왔다. 그 재목들은 켜서 현장에서 곱게 다듬은 뒤 복합 건물의 한 가지 특색이 되게 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감탄의 말을 자아냈다. 목재들 가운데는 단향목, ‘칼러필럼’(Calophyllum), 붉은 ‘튜울립’ 참나무, ‘페더톱’(Feathertop) 등 희귀한 나무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들어온, 건축 비용을 충당하도록 하기 위한 헌금 형태의 지원도 놀라왔다. 여섯살난 한 어린이는 친히 손으로 정성들여 쓴 글씨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학교 은행에서 찾은 돈을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해요. 그 돈은 1년 동안 저축한 거예요.” 그 어린이는 41‘달러’를 동봉했다! ‘퀴인즐랜드’에서는 수표를 한장 보냈는데, 헌금 내역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쪽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믿음 안에 있는 여러분의 자매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익명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는 과부이며, 성서에 나오는 그 과부와 아주 흡사합니다. 이것이 그의 소유의 전부입니다. 그의 희망은 여호와께 있읍니다.” 동봉한 금액은 6,283.94 ‘달러’였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심으로 즐거이 드리도록’ 마음을 움직이셨음이 분명하다.—역대 상 29:9.

앞으로의 왕국 사업을 위해 준비됨

새로운 지부 복합 건물은 광활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571개 회중에서 활동하고 있는 36,000명의 ‘증인’들의 전파 활동에 기여할 훌륭한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다수는 다른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 혹은 그들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인종군들을 위해 52개 언어의 인쇄물을 갖추어 두고 있다. 부가적으로, 인쇄하는 일은 ‘파푸아 뉴우 기니아’, ‘솔로몬’ 제도 및 ‘피지’ 섬과 같은 태평양의 많은 섬들을 위하여 14개 언어로 행해지고 있다.

매월 750,000부 이상을 생산하는 영어판 잡지를 1983년 4월에 ‘브루클린’ 본부에서 도착한 새로운 ‘오프셋’ 윤전 인쇄기가 떠맡아 생산하고 있다. ‘오프셋’ 인쇄 시설로의 전환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신식 ‘컴퓨터’ 장치를 한 ‘카메라’와 현상 장비를 갖춘 암실 및 사진 식자부를 설치하였다.

지난 18개월 동안에 활동적인 ‘증인’들의 수가 4,000명 이상 증가하였으며, 이것은 13‘퍼센트’의 증가였다. 현재 16,200건의 가정 성서 연구가 사회되고 있고 1983년 그리스도의 죽음의 기념식에는 72,457명이 참석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급속한 성장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봉헌식 날

1983년 3월 19일, 일주일간 내리던 비가 멈추고 날씨가 활짝 개었다. 대다수가 1945년 이전부터 ‘증인’으로 활동해 온, 초대받은 2,000명 이상의 손님들은 새로운 시설물에 봉헌식을 위해 모여 있었다. 사회자가 지적한 대로, 그들은 도합 65,000년 이상을 충실한 봉사를 위해 바쳐왔다. 이야말로 얼마나 감회 깊은 재회인가! 미국, ‘피지’, ‘뉴우지일랜드’, ‘파푸아 뉴우 기니아’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로부터 인사와 경험담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부는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미국 밖에서 세번째로 설립한 지부이다. 한때 이 지부는 남태평양의 거의 모든 섬들을 포함하여 지금의 ‘타일랜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및 중국 전체 즉 지구 표면의 거의 사분의 일을 감독하였었다. 현재 이들 섬에는 왕국 전파 사업을 감독하는 13개의 별도의 지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업이 시초에는 193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파이오니아’들에 의해 활동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이들 중 다수의 사람들이 이 봉헌식에 참석하였으며 88명의 ‘오스트레일리아’ ‘벧엘’ 가족 성원들은 이들 영적 조부모들을 환대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오후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의 한 성원이며 194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 ‘벧엘’ 가족의 일원이기도 했던 ‘로이드 베리’ 형제가 이 복합 건물을 어떤 인간이나 조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 공식적으로 봉헌하였다.

다음 날인 3월 20일 일요일에는 또다시 비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있는 ‘와르위크’ 농장 경마장에는 이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사업의 확장과 더불어 계속 매진하도록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10,468명이 모였다. 다른 열개의 장소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듣도록 직접 전화선이 연결되었으며, 그리하여 일요일의 총 참석자 수는 36,757명에 달하였다!

좋은 경험담들이 많이 제공되었으며, 그 ‘프로그램’은 모두에게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구석 구석까지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힘쓰도록’ 결의를 강화시켜 주었다.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 지부 건물을 세우도록 하였고 이 건물의 가치를 계속 보장해 주는 것도 바로 이 사업인 것이다.—누가 13:24; 마태 24:14, 신세.

[22, 23면 삽화]

1983년 3월 19일에 봉헌된 새로운 ‘오스트레일리아’ 지부

[24면 삽화]

어린이들도 건축 사업을 지원하였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쇄기를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학교 은행에서 찾은 돈을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해요. 그 돈은 1년 동안 저축한 거예요. 나는 여섯살이예요.

사랑

니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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