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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란한 말—얼마나 해로운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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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5/15 5-7면

음란한 말—얼마나 해로운가?

미국의 일부 대도시들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매 다섯번째 말은 천한 말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반(反)신성 모독 전국 연맹’의 추산에 의하면, 하루에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해 발해지는 모독적인 말의 수는 10조를 넘는다고 한다. 참으로 불경한 욕을 하는 것은 많은 곳에서 주된 심심풀이가 되고 있다.

그것은 박수 갈채를 보낼 일이라고, 불경함에 관한 잡지인 「맬레딕타」의 편집인 ‘암만’은 말한다. 그는 구두로 하는 공격은 신체적인 공격보다 나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암만’은 “나는 가슴에 총알을 맞거나 칼로 찔리느니 [*@ *@]라고 불리겠다”고 말한다.

또한 나쁜 말들을 좋은 말로 설명하면서 ‘체이터 메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불경함, 욕설 혹은 그것을 무어라고 부르고자 하든지 간에 그것은 욕구 불만으로 인해 누적된 감정을 해소시켜 주는, 시간의 시험을 받은 효과적인 방법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경함을 관용하게 되어 그것은 무해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우에 적합한 음란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십대 소녀들을 위한 잡지인 「세븐틴」지는 이렇게 진술한다. “가끔 한번씩은 여자 아이들, 혹은 남자 아이들—혹은 그 일에 있어서는 남녀가 다—과 함께 모여 야비한 말, 불경한 욕을 누가 제일 잘하나 경연을 갖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 여자 대학 기숙사 3층에서 열렸던 도색학 ‘콘테스트’가 생각난다. 그 날 밤에 공중에 뱉어댄 야비한 말들을 풍기 단속 경찰이 들었으면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당신은 불경함이 정당화된다는 데 동의하는가? 음란한 말은 얼마나 해로운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도색학 ‘콘테스트’”란 무엇인가? 「대학생용 웹스터 신 사전」에 의하면 “도색학(Scatology)”은 “배설물에 대한 연구; 따라서, 음탕한 것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된다. 추잡한 말을 사용하는 데서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날 젊은이들이 흔히 벌이는 불경한 말 경연에 붙이는 용어는 “순위 결정” 혹은 “일등 뽑기” 등이다. 그 목적은 흔히 그러한 말을 주고 받는 데 누가 최고냐에서 상대방의 어머니에 대해 모욕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인 경쟁자들은 일단의 친구들이 둘러싸고는 보다 익살맞은 편이 친구의 어머니를 깎아 내리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웃는다. 그와 유사한 행위로 별명 부르기가 있다. 그것은 남의 외모를 돼지, 쥐 혹은 ‘스컹크’ 같은 불유쾌한 동물에 비유하여 묘사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들과 더불어 심심풀이로 음탕한 농을 하는 것은 매우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한 일들에 참여하는 것은, 음란한 것들에 대해 농담을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것들이 별로 나쁠 것이 없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이러한 행위들 때문에 음란한 말들이 일상적인 말의 일부가 되어 “지적 직업인”들과 “세련된” 사람들까지도 그러한 말들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음란한 말들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는 것보다 잠재적으로 더 해로울 수 있는가?

음란한 말의 영향

춘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고 음란한 말들은 입으로 뱉는 것이다. 구두로 춘화를 묘사하는 것은 성적인 영상이 떠오르게 자극한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노골적인 말들이 정기적으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한 말들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것들을 더 쉽사리 행하게 되지 않겠는가? 확실히 음란한 말의 엄청난 증가와 음행, 간음 및 동성애의 증가가 평행을 이루어 왔다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이 점을 볼 때, 다음과 같이 강권한 성서의 교훈의 지혜를 절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음탕한 농, 신세]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에베소 5:3, 4.

사실, 음란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음란한 말을 반복할 때마다 그는 그 부패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다음과 같이 교훈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일들, 곧 격분과 분노와 악의와 모독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음탕한, 신세] 말 같은 것들을 버리시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골로새 3:8, 새번역; 에베소 4:29) 또한 성서는 이렇게 강권한다. “모든 더러운 것 ·⁠·⁠· 을 내어 버리라.” (야고보 1:21) 이 교훈에 역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즉 두 사람이 모욕적인 말들을 주고 받는다면, 그들이 그 시합의 결과로 향상된 관계에 이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설사 모욕적인 말의 결과로 신체적인 싸움을 피한다 할지라도, 두 사람이 정말 자신들의 문제들을 해결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오히려, 모욕적인 말들을 외쳐대는 것은 싸움의 가능성을 최소로 줄이기는커녕 실제로는 증가시키지 않는가?

그러면 사랑과 이해심은 어떻게 촉진되는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음으로써 촉진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명한다. 도리어,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진노하심에 맡”겨야 한다.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친절한 말과 행동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 것이 되어 아마 당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부드러워지게 할 것이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적극적인 교훈을 항상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로마 12:17-20, 14.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이 불경건한 세상의 경향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함은 명백하다. 세상의 침식 요소들에 대해 면역성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경함에 관한 책을 저술한 ‘버어지스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불경을 일반적으로 어휘력 질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전염되고 누가 그 병에 걸리는가? 대답은 쉽다. 즉 그것은 전염성이 있을 뿐 아니라 감염성도 있는 것이다. 그 병균이 우리 모두의 내부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성서도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그릇되고 부도덕한 행동에 이끌리기 쉬움을 확증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란한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창세 8:21; 시 51:5.

음란한 말을 피하는 것을 시작하는 단계는 그러한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감정과 행동을 억제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이 그러한 것들인가? 성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을] ·⁠·⁠· 내어 버리[시오.]” (에베소 4:31, 새번역) 그러므로 욕하고 싶은 사람에게 격한 분노를 터뜨릴 정도에 이르기 전에, 멈추어서 억지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좋은 점들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라. 분노로 인해 음란한 말을 사용하게 되는 일이 없게 하라. 성서의 다음과 같은 명령을 청종하고자 노력하라. “오만한[억제되지 않은, 신세]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사무엘 상 2:3.

올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이다. 정신을 올바른 생각으로 채움으로써 우리는 마음에 올바른 욕망을 심어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언행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태 12:34.

주저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그분의 영을 주실 것을 구하라.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우리의 혀를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하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후원해 주실 때 우리는 불경함의 덫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면 삽화]

당신은 다른 사람이 욕할 때 응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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