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2 8/15 3-4면
  •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필수적인 이해와 균형
  • 사랑의 징계의 가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 징계는 평화로운 열매를 맺는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 각자가 답변하게 될 것이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 부모 여러분—자녀를 사랑으로 훈련시키십시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7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8/15 3-4면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의사들은 참으로 좋은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치료받고 있는 그 환자는 신생국의 가장 유명한 시민이었다. 그 의사들은 성실하게 그 시대의 치료법인 방혈 치료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치료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환자인 유명한 미국인, ‘죠오지 워싱톤’의 죽음을 재촉하였다.

오늘날 많은 의사들은 대부분 실제로 환자에게 해가 되는 수혈을 하도록 지시하는 경향이 있듯이, 그 당시의 의사들은 방혈을 실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모든 점들은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말의 진실성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

그러나 세속적인 역사로부터 성서 역사로 주의를 돌려보자. 사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동일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사건을 기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말한 ‘베드로’를 칭찬해 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으므로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설득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태 16:13-23) 분명히 ‘베드로’에게는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였다. 그는 좋은 동기를 나타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필수적인 이해와 균형

좋은 동기를 나타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에게는 또한 지식, 계몽,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적절하게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사랑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계속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정확한 지식과 온전한 분별성으로 더불어 점점 더 풍성해 지고 여러분이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하여 ·⁠·⁠· 흠이 없고 남을 넘어지게 않지 않는 것입니다.”—빌립보 1:9-11, 신세.

그렇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선을 행하려면, 우리는 좋은 동기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감정을 지혜와 올바른 판단으로 균형잡을 필요가 있다. 이 점은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중요하다.

부모들은 흔히 어린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생각지 않고서, 감정과 친절만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부모들은 감정으로 인해 자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며, 응석을 받아 주어서 실제로 그들을 해롭게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게 하거나 현명하지 못하게도 지나치게 많은 자유를 허락할지 모른다. 그런 부모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청소년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녀들이 나이가 들고 좀더 자기 뜻대로 행동하게 됨에 따라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절망하게 되는 결과를 번번히 낳는다.

그러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들은 현명하게 그 사랑을 확고함과 징계로 균형잡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므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징계하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알려 주는 바와 같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22:15; 13:24) 이 원칙은 아들과 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신하라.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지적 자녀들을 대하시는 방법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브리 12:5, 6)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징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을 위한 것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신다. 물론 징계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히브리 12:11.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한 영양사는 훌륭한 요리사와 결혼하는 남자는 치명적으로 위험하다고 밝혔다. 왜 그런가?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허다한 육체적 질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좋은 식욕을 가지고 있는 남편에게 더 많이 먹도록 격려하는 것이 좋은 동기를 나타내는 것일지 모르지만, 현명한 일인가?

남편들의 경우에, 그들이 좋은 동기를 잘못 나타내는 것은 좀 다른 것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매우 열심이어서 가족을 위해서 바칠 시간과 힘이 거의 없게 된다. 혹은 어떤 그리스도인 남편은 회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너무 열심히 도우므로 자신의 가족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남들에게 갖는 것만큼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남편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의무와 남편들에 대한 의무를 균형잡아야 한다.

이러한 예들은 무엇을 강조하는가? 균형의 필요성이다.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균형잡히신 분이다. 언제나 그분의 행동은 그분의 4속성인 지혜, 공의, 능력, 사랑으로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분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자신을 묘사한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아무도 그를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후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묘사하는 음성을 들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느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문제들을 그렇게만 보시는가? 아니다. 아무도 여호와의 자비와 사랑의 친절을 무조건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도, ‘모세’는 이러한 균형잡힌 말을 들었다.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시느니라.]”—출애굽 34:6, 7.

동일한 원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모두의 행동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가장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친절을 비이기적으로 나타내면서 좋은 동기를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지혜와 정의가 그런 특성들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좋은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