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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2 3/1 16-21면
  • “주의 일에” 열심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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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의 일에” 열심을 품으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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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3/1 16-21면

“주의 일에” 열심을 품으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린도 전 15:58.

1. 부활의 희망이 왜 우리 모두에게 실제적 의미를 지녀야 합니까?

부활의 희망은 우리 각자에게 언제나 큰 자극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수인 죽음은 때때로 우리 각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호와의 웅대한 목적을 숙고해 봄으로써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4:13, 14)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여호와께 대한 헌신을 이행하는 일에 충실했다면, 여호와께서 부활로 우리를 기억해 주실 것이라는 보증된 기대도 가지고 있읍니다.—요한 5:28, 29; 6:40.

2. 전도서 9:11을 볼 때 생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2 이 “마지막 날”이 그 절정을 향해 신속히 다가감에 따라, 우리 중에는 “큰 환난”을 죽는 일 없이 살아 남게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마태 24:21; 디모데 후 3:1, 새번역) 그러나, 재빠른 사람이든, 힘이 센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든—“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합니다. 예기치 않은 질병, 사고 혹은 재난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읍니다. 그런 일이 닥칠 때, 우리가 그 때까지 하나님의 봉사에 우리의 온 마음, 영혼, 정신 및 힘을 다하여 진력했다면, 그것은 얼마나 값진 일일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의 승인을 받고 부활에 참여할 것이 보증된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가 지킨 성실은 우리를 관찰하고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에게 격려와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도 부활의 희망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전도 9:11; 마가 12:30; 디모데 전 4:15, 16.

부활의 희망으로 강화됨

3. (ㄱ) 우리의 눈은 어떠한 목표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며, 왜 그렇습니까? (ㄴ) 부활의 희망은 기름부음받은 자이거나 “큰 무리”이거나 간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어떻게 유지시켜 줍니까?

3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전파하는 일도 헛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보증된 목표, 곧 여호와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에 확고하게 고정되어 있읍니다. 우리는 그 목표에, ‘아마겟돈’을 살아 남아서, 혹은 어떤 사람들의 경우처럼 죽은 자로부터의 이른 부활을 통하여 도달하게 됩니다. ‘바울’ 당시에 그의 편지를 받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예수께서 ‘갈보리’에서 처형당하시기까지 삼년 반 동안 경험하신 것처럼, 죽음 안의 침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죽은 자들이 전혀 일으킴을 받지 않는다면, 왜 그들이 그렇게 되기 위하여 침례를 받습니까?”(신세) 그렇습니다, 부활의 희망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유지시켜 주어 그들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하늘 왕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든—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그 왕국의 지상 영역에서의 생명이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유지시켜 줍니다.—고린도 전 15:13-19, 29.

4.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에피큐리아’ 철학에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까?

4 당시의 상태에 대해 기술하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핵심으로 하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면서 ‘바울’은 많은 위험과 박해를 겪었으며,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맛보았읍니다. 만일 부활이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이 모든 것은 헛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에피큐리아’ 철학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처럼, ‘바울’과 ‘고린도’의 형제들도 쾌락에 몰두해도 그만이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15:30-32.

5. (ㄱ) 부활의 희망은 우리에게 얼마나 실질적이어야 합니까? (ㄴ) 왕국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데 현대의 어떠한 훌륭한 본들이 있읍니까?

5 그러나, 부활의 희망과 ‘메시야’ 왕국은 실질적인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연관되어 있읍니다.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희망으로 유지되었듯이 오늘날에도 그것으로 유지되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를 장식하는 훌륭한 본을 세운 수천명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성실이 “새 하늘”이나 “새 땅”으로의 이른 부활을 보증해 준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꿋꿋하게 직면하였읍니다. ‘가톨릭’교인인 ‘히틀러’의 강제 수용소에서 목베임이나 총살을 당하고, 혹은 굶주리거나 구타당하여 죽은 ‘증인’들은 수백명이나 됩니다. 보다 최근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부 사회주의 나라들 및 새로운 개발 도상국에서 위험과 박해를 겪어 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다가오는 왕국에 확신을 두었읍니다. “큰 환난”을 통하여 생존하든지, 혹은 부활을 통해 이르게 되든지 그것이 그들의 목표였읍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각자의 목표이기도 해야 합니다!—계시 21:1-4.

6. 감독자들에게 두려움없이 진력하도록 격려가 되는 어떠한 ‘아프리카’의 본이 있읍니까?

6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 나라는 여러 해 동안 내란으로 인해 크게 분열되어 있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중립을 지키는 면에 있어서,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중에도 계속 왕국을 전파한 면에서 특출하였읍니다. (요한 17:16) 여행하는 감독자들이 회중들을 세워주기 위하여 방문하는 일이 특히 위험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그 일을 하였읍니다. 때때로 이 충실한 형제들은 한 회중에서 다음 회중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붙들리는 일이 있었읍니다. 그들의 죄명은 그들이 그 지역에서 낯선 사람들로 첩자들이라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았읍니다. 한 순회 감독자는 살해되어 그의 시체는 그의 자전거 옆에 뉘어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다른 순회 감독자들은 두려움 없이 봉사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보다 평화로운 때가 도래하여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읍니다. 우리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거룩한 봉사”를 계속 행하는 데 그처럼 담대해야 할 것입니다!—누가 12:4-7; 로마 12:1, 2, 신세 참조.

7. ‘엘살바도르’의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희망을 굳게 지키는 일에서 어떠한 축복을 받았읍니까?

7 요즈음, ‘엘살바도르’가 그와 비슷한 난국에 처해 있읍니다. 그 나라 전역에서 내분이 일고 있읍니다. 이곳에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폭력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킵니다. 그런데도, 몇몇 ‘증인’들은 좌우로부터 집중 사격을 받아 살해되는 일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충실한 장로들은 계속 회중 및 격지 집단을 섬겨 이들을 강화시키고 격려하는 일을 하고 있읍니다. (이사야 32:1, 2, 비교) 어떤 장로들은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하는 경험도 하였지만, 그들은 생명이 계속적인 위험에 처할 때에도 가르치는 일과 양치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기로 굳게 결심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5:1-4) 회중들은 통금 시간 전에 집회를 가졌읍니다. 여호와께서는 1981년 중에 그들을 풍성하게 축복하시어 전도인이 22‘퍼센트’나 증가하였읍니다. 이들 8,242명의 왕국 전도인들은 봉사년도가 끝나갈 무렵에 새로운 관심자들과 13,948건의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었읍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담대하게 전진하는 사람들 모두를 얼마나 놀랍게 축복하십니까!

8, 9. (ㄱ) 부유한 나라에서 어떻게 미혹된 얼마의 사람들이 있었읍니까? (ㄴ)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며, 왜 그러합니까?

8 그러나, 보다 부하고 “안전”해 보이는 나라들에서는 미혹되어 영적으로 위험한 생활 방식 속으로 빠져들어간 얼마의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이들은 세상과 친하게 지내고 ‘에피큐리아’식으로 쾌락을 즐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조직내에 한 발을 들여 놓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마도 배교적인 사람들과의 나쁜 교제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정기적이고 열성적인 왕국 봉사의 특권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게 된 것일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 모두에게 이렇게 지적하였읍니다. “속지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 집회에 참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권적인 선한 행실이 완악한 세상의 쾌락 탐닉으로 바뀌기란 매우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새 질서에 대한 희망은 흐려지고 그와 함께 부활의 희망도 흐려집니다. ‘바울’ 당시에 그러한 일이 ‘후메내오’, ‘알렉산더’ 및 ‘빌레도’에게 일어났읍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러한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읍니다.—고린도 전 15:33; 디모데 전 1:18-20; 디모데 후 2:15-19.

9 누구이든지간에 이 늦은 시간에 여호와의 조직과 그 봉사를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하는 일로부터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현 세계 제도는 벼랑에서 흔들리고 있읍니다. “좋은 소식” 안에 서서 그것을 “굳게 지키”므로써만 우리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적절하게도 ‘바울’은 이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신세]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린도 전 15:1, 2, 34.

“견고하라”

10. (ㄱ) ‘바울’과 현대의 “종” 반열은 모두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우리의 1982년 연표어는 이것과 어떠한 관련이 있읍니까?

10 ‘바울’은 놀라운 부활의 희망에 대한 논증을 이러한 따뜻하고 호소력있는 문체로 결론짓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자기의 영적 형제들이 영적 목표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도 여호와의 다가오는 왕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세계의 수백만의 사람들의 영적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 “종”은 “큰 무리” 전원이 그 왕국의 지상 영역에서의 생명을 얻을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씻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그런 자격을 갖추어 “큰 환난”에서 상처 없이 나오게 됩니다. (마태 24:45-47; 계시 7:9, 14) 이러한 목표는 어떻게 도달될 수 있읍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열심히 참여함으로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의 1982년 연표어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린도 전 15:58.

11. “견고”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1 견고함의 특성은 여호와의 새질서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입니다. 견고하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확고하고 동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은 앞으로 있을 일들이지만, 우리의 성경 연구를 통하여 마치 현실인 것처럼 우리에게 실재적이 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를 의미합니다.—히브리 11:1, 신세.

12. 우리의 봉사가 동요되지 말아야 할 어떠한 이유들이 있읍니까?

12 우리는 ‘메시야’ 왕국이 1914년에 하늘에 설립되었으므로 매우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날”의 지상의 소란스러운 사건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왕국의 영광으로 “임재”하셨음을 알리는 “징조”를 보아왔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선교열을 가지고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서 전파함에 따라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문자 그대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좋은 소식”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을 보아 왔읍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사단’의 세상으로부터 오는 압력들은 증가하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의 “거룩한 봉사”, 즉 우리의 생명의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고귀한 봉사를 동요하게 할 이유가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마태 24:3-14, 신세; 25:31-34; 계시 7:15; 14:6, 7.

“흔들리지 말라”

13. 우리는 ‘욥’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13 ‘바울’은 우리에게 “흔들리지 말”라고도 훈계합니다. 이것은 견고함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의 성실이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실을 지키는 데 본이 되는 ‘욥’의 태도가 바로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자신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도 그러한 확신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우리가 여호와에 대해 ‘욥’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읍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 23:10-12) 만일 우리가 ‘욥’처럼 우리의 정기적인 집회들을 위해 계획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현대 적용에 대해 한층 더 계몽받기 위해 ‘왙취 타워 협회’의 출판물들을 깊이 연구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진리 안에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14. (ㄱ) 「파수대」지는 어떻게 점진적으로 진실한 사람들을 계몽시켜 왔으며, 어떠한 결과가 있었읍니까? (ㄴ) 그것은 어떠한 경고가 울려 퍼지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호응하였읍니까?

14 현재 100여년 동안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지는 예수의 대속, 부활의 희망 및 우리 하나님의 다가오는 왕국에 관한 진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왔읍니다. 이 간행물은 지면을 통하여 성서가 수백만의 진실한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 속에 살아 있게 하였읍니다. 이 간행물은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과 전체 거짓 종교 세계 제국, 즉 “큰 ‘바벨론’”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오류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왔읍니다. 이 간행물은 “큰 ‘바벨론’”의 거대한 영적 함락에 주의를 환기시켜 왔으며 천사의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명령이 울려 퍼지게 하였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 17:1, 5, 15, 18; 18:2, 4)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도록 도움을 받아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의 충성스런 지지자들이 됐읍니다.

15, 16. (ㄱ) 일부 사람들은 무엇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마태 복음 24:46의 “그 종”은 누구입니까? (ㄷ) 그 “종”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진리를 나누어주는 데 단 하나의 통로만을 사용하고 계셨음이 언제, 어떻게 명백해졌읍니까?

15 그러나, 왕국을 충성스럽게 지지하는 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짓 종교의 신앙과 방식으로 되돌아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읍니다. 이들은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일단의 기름부음받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마태 24:45-47.

16 「시온의 파수대」의 일부 벗들이 그 잡지가 바로 “그 종”이라고 최초로 말한 것은 1895년이었읍니다. (마태 24:46) 적들은 그러한 벗들의 이러한 견해에 폭력적인 반대를 일으켰읍니다. 그래서 「파수대」(영) 1909년 10월 1일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의 벗들은 이 성귀가 이 복음 시대의 끝에 주께서 진리의 보급을 위해 여러 통로가 아니라 단 하나의 통로만을 사용하실 것임을 알려 준다고 단언합니다. ·⁠·⁠· 이들은 자기들이 모두 현재의 진리의 지식을 ‘왙취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출판물들로부터 직접, 혹은 이 통로를 통하여 계몽된 사람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동료 종’들로서 협회의 일에 협조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고 있읍니다.”

17. (ㄱ) 일부 사람들은 이전에, 그리고 현재 어떻게 진리를 불신하려고 들었읍니까? (ㄴ) “종”과의 우리의 연합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왜 행복한 일입니까?

17 그 다음, 이들 진리의 적들에 관해 「파수대」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보석은 각자 스스로 ‘발굴’해야 하며 협회의 출판물들은 그저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불과하므로 이제는 거기서 진보해야 하며, 따라서 결국에는 그 가르침들이 막후로 멀리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계몽받은 사람들에게 말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을 딴 쪽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이들 불충성스러운 ‘동료 종’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협회를 숭배할 위험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협회를 배척하거나 등을 돌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성서 연구는 하되, 협회 출판물들은 배척하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72년 전에 기록된 내용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여호와께서 단 하나의 통로를 사용하여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오신 진리를 불신하려드는 사람들이 얼마간 있읍니다. 진리의 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밝아짐에 따라, 주의 ‘충성된 종’과의 우리의 연합이 ‘흔들리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골로새 1:21-23.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18. (ㄱ)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이며, 「잠언」은 이 점을 어떻게 알려줍니까? (ㄴ)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할 어떠한 부면들이 있읍니까?

18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읍니다. 영적인 게으름은 의심이 생기게 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치명적일 수 있읍니다. 잠언 19:15이 이렇게 알려 주는 바와 같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영적인 게으름이 지속적일 때의 결과는 영적인 굶주림과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집에서 정기적으로 (반응이 좋지 않은 구역에서 일지라도) 전파하는 일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공식 증거를 하는 일에, 양같은 사람들을 재방문하고 그들에게 협회 출판물로 정기적인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일에 부지런하도록 합시다. 우리 가운데는 우리 주 예수의 이러한 일에 “파이오니아”, 즉 전 시간 왕국 선포자들로서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믿음의 ‘파이오니아’, 즉 “개척자”이십니다.—히브리 12:2, 「모팻역」; 이사야 6:8-10.

19. 우리 모두는 어떠한 정신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한편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일에서 더 큰 몫을 담당하게 될 수 있읍니까?

19 우리가 ‘파이오니아’로 등록되어 있든지 않든지, 우리 모두는 우리의 “거룩한 봉사”를 즐겁게, 참다운 ‘파이오니아’ 정신으로 수행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보조 ‘파이오니아’”를 하게 될 것이며, 이 봉사에서 얻는 즐거움으로 힘을 얻어 얼마가 정규 ‘파이오니아’가 된다면, “주의 일에” 우리가 기여하는 몫은 참으로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로마 12:1, 2, 신세.

20. (ㄱ)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는 특권을 받고 있읍니까? (ㄴ)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까? (ㄷ) 마지막으로 ‘바울’의 어떠한 말을 우리 자신도 하기를 원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러한 주 예수의 일은 또한 “여호와의 일”이기도 합니다. (고린도 전 16:10, 신세; 요한 5:17)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우리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 주 예수 그리스도 및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고린도 전 3:9; 마태 25:31-33; 28:19, 20, 신세)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해서 새 질서에 이르게 되든 “큰 환난”을 생존해서 이르게 되든, 우리는 충실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5:57(새번역)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웅대한 축복으로 인도하는, 죽음에 대한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올바로 인식하는가?

◼ 우리가 항상 부활의 희망을 온전히 지각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

◼ 부활의 희망이 매일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어떠한 격려가 되고 있는지.

◼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나 배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은 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 틀림없는지.

◼ 견고함의 특성이 여호와의 새 질서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기 위해 왜 필수적인지.

◼ 70여년 전에 「파수대」가 “유일한 통로”에 대해 말한 것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 ‘파이오니아’든지 아니든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보호의 역할을 하는지.

[18면 삽화]

담대한 감독자들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면서” 봉사한다

[19면 삽화]

집회 참석과 야외 봉사의 좋은 습관은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열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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