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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쟁 지역인 ‘키프로스’에서 “좋은 소식”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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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쟁 지역인 ‘키프로스’에서 “좋은 소식”을 듣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소제목
  • ‘키프로스’에서의 왕국 전파 활동
  • 가족의 반대를 극복함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8월호 8-9면

분쟁 지역인 ‘키프로스’에서 “좋은 소식”을 듣다

1974년 7월 정부를 전복시킨 ‘쿠데타’에 뒤이어 ‘터어키’ 군대가 ‘키프로스’를 침공하였다. 그때로부터 거의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나라의 북쪽 절반(나라의 약 40‘퍼센트’)은 아직도 ‘터어키’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및 ‘그리이스’로 도망하였다. 약 200,000명의 ‘그리이스’계 ‘키프로스’ 피난민들이 북 ‘키프로스’에서 남쪽 부분으로 이동해 왔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키프로스’의 남부 지역의 경제는 번창하고 있다. 새로운 주택, ‘호텔’ 그리고 사무소들이 우후 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물질주의에 삼키우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키프로스’에서의 왕국 전파 활동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누가 4:43) ‘키프로스’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좋은 소식을 이 분쟁 지역인 섬 주민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북쪽을 점령한 ‘터어키’ 군대가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금지하긴 하였지만 좋은 진전이 남쪽에서 성취되고 있다. 북 ‘키프로스’에서 약 300명의 ‘증인’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북쪽으로 이주한 ‘터어키’인들이 원래 소유했던 집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라가 분단되면서 ‘니코시아’ 시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지부 사무실이 남 ‘키프로스’와 북 ‘키프로스’의 경계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곳은 위험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건물에 있는 것들은 ‘리마솔’ 시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작은 집단의 ‘증인’들이 지부 건물로 들어가 ‘터어키’ 부대쪽으로 나 있는 창 덧문을 닫았다. 그 다음에 그들은 가구와 사무실 비품들을 모아서, 창문으로 내려 보내어 근처의 버려둔 집 울타리 넘어로 운반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그 물건들을 수송하기 위해 대기중인 차에 싣고 그 위험한 지역을 빠져 나왔다. 지부 건물 앞에 있는 도로는 가까이 있는 ‘터어키’ 부대의 표적이 되기 쉬웠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는 많은 ‘키프로스’인들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1980년에 왕국 전파 활동에 참여한 ‘증인’의 최고수는 1,008명으로서 전년도에 이 봉사를 수행한 왕국 전도인 962명보다 훌륭한 증가를 하였다. ‘리마솔’에 있는 낡은 ‘터어키’식 극장이 현재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 회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왕국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키프로스’에는 현재 12개의 회중이 있다.

가족의 반대를 극복함

진실한 그리스도교가 일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내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 10:35, 36) 현대에도 이 말씀이 이곳 ‘키프로스’에서 참됨이 증명되었다. 1975년에 처음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접촉하게 된 한 젊은 여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남편과 생활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저는 1975년 4월에 남편을 떠나 ‘리마솔’에 있는 친척과 함께 살기 위해 갔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는데 저는 곧 제가 성서에 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증인’들은 저와 정기적으로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어요. 동시에 저는 남편과의 불화가 심해져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와 졌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저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성서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왙취 타워’ 협회의 한 출판물을 읽어 보기로 마음을 먹었읍니다.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새벽 4시까지 계속 읽어서 그 책을 다 보았읍니다.”

그후 얼마 안되어 이 여인은 ‘여호와의 증인’의 순회 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회장에서 목격한 그리스도인 행실에 관하여 이 여인은 이렇게 외쳤다. “제가 낙원에 있는 줄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반대가 시작되었다. 이 여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어머니는 저를 때렸고, 남편 역시 반대하였어요. 그리고 다른 많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읍니다. 제가 ‘증인’이 된다면 자기들의 평판이 나빠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머니는 심지어 자살하겠다고까지 위협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여동생 하나가 성서에 관심을 보였고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시작하였어요. 이 일로 인해 다른 식구들이 우리 두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읍니다. 우리 서적들을 없애버렸고 우리의 연구를 사회하는 ‘증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어요.”

이 여인은 성서 연구로부터 배운 결과 별거했던 남편과 화해할 길을 찾았다. 가정을 차리고 이 여인과 두 자녀는 다시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여인의 성서 연구에 대한 반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 여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돌아왔을 때 여러 번 저는 남편이 문을 잠궈 놓은 것을 알았어요. 마침내 들어가도록 허락되었을 때 저와 자녀들에게는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래 참음을 나타내라고 권고한다. (로마 12:17, 18) 이 젊은 여인은 이 성경의 충고를 청종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여인은 다음에 지적한 바와 같은 보람있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3년간의 오랜 시일 끝에, 즉 1978년 4월에 저는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 때부터 저는 계속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읍니다. 남편은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지요. 우리는 이제 화목한 가족이 되었읍니다. 제 동생은 현재 침례를 받았고, 동생의 남편 역시 태도를 변화시켰어요. 그는 성서 연구에 관심을 나타내고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하고 있지요. 부모들 역시 변화하였읍니다. 이전에는 더 이상 저를 자기들의 딸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러한 결정을 어리석은 것으로 보시고 단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을 잃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저의 친척 모두가 이제 성서에 대해 배우기를 원하고 있읍니다.”

예수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생활을 틀잡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인상을 주게 된다. (마태 5:16) 한번은 한 변호사가 법정에서 자기 피고인이 더 이상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재판관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읍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수행하고 있는 성서 교육 사업을 계속 반대하고 있지만 성경의 진리에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발견되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일은 ‘여호와의 증인’들로 하여금 ‘키프로스’ 주민들에게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하게 하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8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터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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