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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아크’에서 영적 만족을 발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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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아크’에서 영적 만족을 발견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소제목
  • ‘여호와의 증인’의 초기 활동
  • 청소년들 가운데서의 관심
  • 학교내에서의 개방적인 태도
  • 여전히 믿음을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7월호 8-11면

‘덴마아크’에서 영적 만족을 발견함

‘덴마아크’는 ‘발트’ 해의 통로에 위치해 있다. 하나의 반도와 몇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면적이 약 43,000평방 ‘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5,000,000이다.

여러 세기 전에, 이 왕국의 세력은 현재의 국경 훨씬 넘어까지 미쳤다. 기원 8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바이킹’들이 뱃머리에 용을 새긴 배들을 타고 바다를 건너와 ‘덴마아크’ 서부의 광범위한 지역을 황폐시키고 정복하였다. 이 나라가 “그리스도교화”된 후에 북쪽, 동쪽 및 남쪽 지역들로 ‘덴마아크’의 군주 지배가 뻗어 났었던 때가 있다. 이러한 지역들 중 두 지역 즉 ‘페로오즈’ 제도와 ‘그리인란드’는 아직도 ‘덴마아크’의 왕권하에 있다.

양차 세계 대전의 영향에서 제외되지는 않았었지만 ‘덴마아크’는 100여년 동안 전쟁에 직접 말려들지는 않았다. 고도로 발달된 영농 덕택에 ‘덴마아크’는 ‘유럽’의 곡창 지대 중 하나이다. 생활 수준은 높고, ‘덴마아크’ 사람들은 사회 보장 제도로 인한 괄목할 만한 안전을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덴마아크’의 왕자 ‘햄릿’의 입을 빌어 “‘덴마아크’에는 무언가 썩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 말은 아직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재정상의 문제들을 실직과 수지 적자의 형태로 찾아볼 수 있으며, 혈전증과 암의 많은 사례들은 건강 문제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으로도, 그들이 받아들인 방종한 성도덕으로도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 통계에 의하면 ‘덴마아크’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다. 이 사실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참됨을 강조한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 12:15) 참으로 행복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려면 사람들은 영적인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디모데 전 6:6-8.

‘여호와의 증인’의 초기 활동

이러한 영적 필요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왙취 타워 협회’의 초대 회장 ‘C. T. 럿셀’이 1891년 ‘덴마아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그 나라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밭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환경도 왕국 소식을 전하기에 이상적이었다.

그보다 40여년 전인 1849년에, 그 나라는 그 전의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가 되었다. 그 때까지는 ‘복음주의 루터 주교회’가 침례교인 부모의 유아에게까지 강제로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입헌 군주제가 시작되면서 그 주교회가 국교가 되었고 성원이 되는 것은 자원적인 것이 되었다. 더우기 성서에 대한 상당한 무관심의 기간이 지난 후에 일부 종교 부흥 운동이 영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또한 19세기 중반에, 유명한 ‘덴마아크’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쉐렌키에르케고오르’는 매우 강력한 말로 교회를 공격하였다. 그는 교회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협착한 길’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흐려 놓았다고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교회가 그 길을 짓밟아 넓혀 놓아 아무나 그 길을 제멋대로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였다.—마태 7:13, 14.

그러므로 첫 “성경 연구생”인 어느 ‘덴마아크’계 미국인이 1894년에 ‘덴마아크’에 파견된 것은 한 가지 이상의 의미에서 적절한 일이었다. 1897년부터 「파수대」지의 몇몇 기사들이 「천년기 사자」라고 불리운 작은 정기 간행물에 발행되었다. 그리고 1900년 이래 「파수대」지가 ‘덴마아크’어로 발행되었다. 이 잡지는 많은 사람들의 영적 식욕을 자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쉐렌 키에르케고오르’의 말은 여전히 참되다.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는 비 적극적이다. 그 점은 외무성이 발행하는 「대니쉬 저어널」지에 실린 한 기사에서 볼 수 있다. 1978년 1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덴마아크’의 옛말처럼 교회에 앉아서 술집을 생각하는 것보다 차라리 술집에 앉아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덴마아크’ 사람들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93‘퍼센트’ 이상이 교인으로 머물러있지만 단지 2‘퍼센트’만이 매주 일요일에 교회에 나간다. 4‘퍼센트’는 한 달에 한번 내지 두번 교회에 나가는 한편, “성인의 51‘퍼센트’는 전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교회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들 가운데서의 관심

제2차 세계 대전에 뒤따른 번영이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세대의 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인 목표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핵무기 위협, 공해 및 실직이 많은 수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물질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들 청소년들은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아 구하고 있다.

종교 고등학교에서 6개월 과정을 수료했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한 젊은이의 경우를 들어보자. 18세 때 그는 다른 곳 즉 ‘힌두’교, 신비술, 점성술, 영매술, 정신 과학 요법술 및 마약에서 자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였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모든 것들로 인하여 나에게 신의 개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그는 마약 중독에 빠져 점차 자기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정도로까지 악귀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된 자신의 탐구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하는 종교들 즉 오순절교, 사도교, 침례교, 그리스도교, 청년회들 및 ‘여호와의 증인’에게 가 보았읍니다. 나는 계속 질문해 보고, 상반되는 대답을 얻고, 이상하게 여기고, 기도해 보고 성경을 조사해 보았읍니다.”

22세가 되어 그 젊은이는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 진리가 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일년반 동안 중독되어 있던 마약 습관을 끊는 데 성공하였다. 부모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증인’으로 침례를 받았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열심히 전하고 있다. 그는 영적 만족을 발견한 것이다.

학교내에서의 개방적인 태도

‘덴마아크’의 학교들 내에서도 사회의 표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자라고 있다. 이러한 일은, 기꺼이 다른 근원에서 해답을 찾아보려는,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교사들이 수업중에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지식을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실 방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방문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약 60내지 70차례 학교들을 방문한 한 젊은 부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소개의 말을 하고나서, 우리 믿음의 몇가지 기본적인 점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왕국과 다가오는 지상 낙원에 관한 우리의 전파 활동, 창조에 대한 믿음, 성서에 대한 우리의 견해, 이웃 사랑의 계명과 그것과 중립 문제와의 관계, 증인의 역사 및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과 비교한 우리 조직의 형태 등을 설명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반 학생들로부터의 질문에 답변하는 데 보냅니다. 최근에 우리는 학생들의 관심있는 문제들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2, 3년 전에 학급에서 주로 토론되는 것은 사회 문제와 증인의 정치적인 중립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 도덕, 혹은 순수한 성경적인 성질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읍니다.” 그 증인 부부가 40명의 학생과 한 나절의 수업 시간을 보낸 후에 그 교사는 학생들이 그토록 깊은 주의를 기울였고 그토록 적합한 질문을 한 것에 다소 놀라워하였고 자랑스러워하였다.

여전히 믿음을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덴마아크’에는, 아마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감정이 고조되어온 분야가 하나 있다. 그것은 수혈에 관하여 ‘여호와의 증인’이 취한 입장과 관련이 있다. 그 문제는 1975년 3월에 한 젊은 부부가 세살된 아들을 ‘코펜하겐’에 있는 아동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의사가 부모의 요청과는 달리 수혈을 행하기 위하여 부모에게서 보호자로서의 법적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틀림없이 경찰이 자기들을 추적할 것임을 알고 그 부모는 동료 신자들 집에 피신해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피를 사용하지 않고 기꺼이 그 어린 아이를 치료해 줄 의사를 찾으려고 하였다. 국립 경찰이 급습하여 샅샅이 뒤지고 국경을 통제하는 등 수색 작업을 폈다. 그와 함께 “자녀 살해자들” “광신자들” 및 “몰인정한 부모”와 같은 표제를 들고 나선 신문들의 정식 박해 운동이 있게 되었다. 심지어 폭탄의 위협과 노골적인 폭력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2명의 교직자와 한 의회 의원이 당국이 ‘여호와의 증인’에게 단호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편, 그 부모는 기꺼이 그들의 믿음을 존경하고 대용 치유법을 사용할 의사를 한 사람 찾았다. 현재 그 소년은 살아있으며 건강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최근에 ‘덴마아크’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회에 사용하는 시설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 증인들은 경기장 건물들을 사용하여 연(年) 2회의 순회 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자체 대회 회관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게 되었다.

1979년 3월 17일에 있었던 첫 대회 회관 봉헌식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자진적인 헌금과 자진 봉사에 의해 건축된 이 회관은 ‘유틀란트’와 ‘휘넨’이라고 부르는 지방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동부 지방의 ‘셀란’ 섬과 수도 ‘코펜하겐’을 위해서도 비슷한 회관을 짓기 위한 계획이 잘 진척되고 있다. 두번째 대회 회관과 관련하여 ‘왙취 타워 협회’의 새롭고 훨씬 더 큰 지부 사무실을 세울 계획이다.

‘C. T. 럿셀’이 ‘덴마아크’를 방문한지 거의 90년이 지나는 동안에, 정확한 성서 지식을 얻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업은 때때로의 급속한 성장과 안정기가 거듭되면서 꾸준히 진전되어 왔다. 아마 여러 해 동안 성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 ‘가톨릭’ 교회를 제외하고는, ‘여호와의 증인’이 ‘덴마아크’에서 국교 다음으로 가장 큰 종교 단체다. ‘덴마아크’처럼 증인의 인구대 비율이 387대 1인 나라는 극히 적다.

오늘날 영적 양식을 분배하는 사업의 주요 부분은 많은 활동적인 ‘증인’들을 가르치고 강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훨씬 더 큰 증거를 수행할 태세를 계속 갖추고 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때까지 그들은 ‘덴마아크’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영적 만족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8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덴마아크’ ‘코펜하겐’ ‘스웨덴’

[10면 삽화]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실 방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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