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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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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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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3월호 10-11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정신의 평화, 오늘날의 거칠은 세상에서 누가 이것을 얻을 수 있는가? ‘테러’주의자들은 종종 동료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피난민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전전한다. 핵 무기들은 풍부히 쌓여 전 인류를 파멸시킬 가능성 있는 파수병으로 세워져 있다. 물가고는 모아둔 돈을, 종종 평생 동안 모은 돈을 급속히 잠식해 들어 간다. 이 모든 일에 건강 문제와의 수많은 개인적인 “투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오는 깊은 슬픔, 그리고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흔한 수많은 걱정들이 추가된다. 그러므로 확실히 현대 사회에서 참다운 정신의 평화는 찾아 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안전과 바라는 정신의 평화를 찾아 어디로 향하는가? 흔히들 돈과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둔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마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리없이—거의 감지할 수 없게—해가 바뀜에 따라 그 물질의 가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부유한 사람이 값비싼 많은 의복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의장에 갖춘 의복을 과도히 소중히 여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네 날개 달린 곤충—특히 애벌레일 때—은 값비싼 의복을 쏠아 못쓰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 좀 벌레가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안전감과, 기대한 정신의 평화를 빼앗아 갈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좀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옷은 닳아지거나 도둑이 훔쳐갈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보물”

하나님의 예언자인 ‘이사야’는 그의 완고한 대적들에게 임할 최종 결과가 닳아진 옷 혹은 좀먹은 의복에 비교될 것임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같은 문맥에서 ‘이사야’는 안전과, 정신의 평화의 참다운 근원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이사야 50:7-9) 참으로, 물질은 단지 일시적인 가치만 지니는 반면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개인적인 관계는 변함이 없다. 바로 이것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가져 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므로 그 문제를 보다 소상히 다루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 12:32-34) 이 때 예수께서는 천국의 공동 상속자가 될 자기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로마 8:12-17) 그러나 밑에 깔려 있는 원칙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영적인 것이야말로 탁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소중한 “여호와와의 친밀함”

그러나 다른 모든 것보다도 고귀한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이다. 이 “보물”에 관해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시 25:14) 여호와의 백성으로, 여호와와 친밀한 개인적인 관계를 즐기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또 다른 경우에 ‘다윗’은 행복하게도 이렇게 외쳤다.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18.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승인을 받으려면 단순히 우리의 봉사가 형식적이고 기계적이어서는 안된다. 사실상, 어떤 사람이 올바른 동기도 없이 단순히 그리스도인 활동에 참여한다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한 젊은 부인은 자신을 여호와께 바치기 전에 ‘여호와의 증인’과의 교제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 부인은 이렇게 시인한다.

“·⁠·⁠· 나는 이 새로운 종교 신자들에게 이끌렸읍니다. 그들은 성서의 높은 도덕 표준을 지키는 것을 즐기는 행복하고 우정적인 사람들이었읍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겼읍니다. 나는 그들의 집회에도 참석하였고 성서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호별 방문 사업에도 참여하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정신에 심각한 의문이 있게 되었읍니다. 즉 종교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인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신자들과의 교제를 매우 즐겼고, 시어머니(‘증인’임)를 기쁘게 하기 원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나는 성서를 들고 집집을 방문하였지만,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읍니다. 나는 해오던 일을 중단하였읍니다.”

여러 달이 지남에 따라, 그 젊은 부인은 “종교가 의미하는 바는 여호와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 부인으로부터 성서적인 도움을 받았고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회중으로부터의 사랑에 찬 관심도 경험하였다.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 부인은 “여호와와의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산 희망을 발견하였다.” 그 젊은 부인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헌신의 표상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여호와의 백성과 함께 행복하게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하였다.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신의 평화와 진정한 안전감을 즐기고 있다. 인생의 갖가지 걱정거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 (시 100:2) 그러나 이제, 이 거친 세상에서 참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정신과 마음의 평화를 즐기는 이유를 더욱 깊이 조사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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