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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0 11월호 26-28면
  •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얼마나 잘 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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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얼마나 잘 아시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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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파80 11월호 26-28면

시편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얼마나 잘 아시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을 참으로 잘 아신다. 부모나 자녀, 형제나 자매 혹은 절친한 벗들이라도 지존자만큼 우리를 잘 알 수는 없다. 그분은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신다. 개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의 정도가 시편 139편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자인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이 말씀에 의하면, 시편 필자 다윗에 대한 여호와의 지식은 철저한 관찰 혹은 조사를 통하여 얻은 것이었다. 지존자께서는 다윗이 쉬고 있든지 일어나 있든지 그의 일상 활동 전부를 알고 계셨다. 다윗이 행하는 어떠한 일도 여호와께 숨겨질 수 없었다. 전능자께서는, 비록 가장 높은 하늘에 거하시기 때문에 굉장히 멀리 떨어져 계시기는 하지만, 다윗의 생각까지도 알고 계셨다. 여호와께서 시편 필자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행실을 면밀히 관찰하셔서, 그것들이 무엇인가 즉, 그 진상을 감정하기 위해 감찰하신다는 말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최고의 주권자께서는 시편 필자의 “행위” 즉, 그의 인생 행로의 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다윗이 깨달은 바, 그가 하는 어떠한 말도 여호와께 숨겨질 수 없었다. ‘혀끝까지 나왔’다가 하지 못한 말이라 할지라도, 창조주께서는 아실 수 있다. 더우기 위선적인 말로 참다운 감정을 여호와로부터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유창한 말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능자는 속일 수 없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 일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우기 그는 자기를 지으신 분의 감시의 눈을 피해 그리고 손 즉, 통제를 피해 도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시편 필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분명 바로 그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당신의 손 내 위에 있사옵니다, 공동 번역].”—시 139:5.

자기에 대한 여호와의 지식이 매우 정통한 데 대해 시편 필자는 경외감에 사로잡히고 고무되어 이렇게 외쳤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6) 개개인들에 관한 하나님의 지식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측량할 수가 없다. 남녀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지식 가까이에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거리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종들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은 그들을 향해 활동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내가 주의 신[“영”, 신세]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낯, 신세]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7-10.

시편 필자가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낯과 병행하여 말하였다는 점에 유의하라. 하나님의 영 즉 그분의 활동력은 광활한 우주의 가장 먼 끝 부분까지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지존자의 낯을 피하여 즉, 그분의 감시를 피하여 도망할 수가 없다. 시편 필자 당시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봉우리가 종종 구름으로 가리우는 높은 산들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상징적으로 땅의 가장 낮은 부분인 음부에 그의 자리를 편다 할지라도 그는 여호와의 낯 즉 감시를 피하여 도망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새벽 날개를 치”a고 서쪽의 가장 먼 지방에 닿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손 즉 그의 통제와 지도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분의 영을 통하여 그를 인도하실 것이다.—비슷한 말이 나오는 신명 30:12, 13; 아모스 9:2, 3 비교.

흑암과 은신처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여호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흑암 즉 어두움으로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계속한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시 139:11, 12) 어떤 사람이 완전한 흑암으로 마치 삼키우거나 덮인 듯이, 흑암 속으로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는 그 사람은 대낮의 밝은 빛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점을 좀더 발전시켜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내 장부[신장, 신세]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뼈]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신체 부분들]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내 태아를, 신세]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그중 (신체의 뚜렷한 부분이) 하나도 있기 전에, 신세]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3-16.

흥미로운 것은 시편 필자가 신장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특별히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신체 깊숙이 있는 그 위치로 볼 때 신장은 가장 도달하기 힘든 기관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로 태의 내부 그리고 자라나는 태아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들여다 보실 수 있다. 자기가 태내에서 놀라운 방법으로 형성된 것을 숙고한 다윗은 감동되어 자기를 지으신 분을 찬양하였다. 태아가 마치 땅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것인 듯이 그것은 인간 시야에서 가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시편 필자는 자기 어머니의 태내를 가리켜 “땅의 깊은 곳”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 곳 태내에서의 뼈, 힘줄, 근육의 숨겨진 발육은 함께 아기가 지음을 받는 일에 비길 수 있다. 지존자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다.

놀랍게도, 다윗의 신체 여러 부분이 태내에서 뚜렷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외모를 이미 아셨다. 이것은 그 태아의 성장이, 어떤 책에 실려 있는 지시 사항들을 따르기라도 하는 듯이 정밀한 원본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하는가?

시편 필자는 아기의 발육이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에 대한 뛰어난 증거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인식은 이치적으로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생각들을 숙고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는 숙고한 바를 이렇게 기술하였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17, 18) 여호와의 생각은 너무너무 많기 때문에 다윗이 그 수를 세는 일을 하루의 시작부터 잠잘 때까지 계속한다 하더라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침에 깨어날 때에도 여전히 지존자와 함께 즉, 창조주의 생각들을 여전히 세고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웅대한 하나님이시므로, 악한 자는 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다윗은 그들에게 형벌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찌어다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시 139:19, 20) 그들이 피를 흘리고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을 돌린 죄의 기록 때문에 다윗은 이러한 악인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그의 이러한 말을 읽을 수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시 139:21, 22.

어느 모로든지 다윗은 그러한 악인들과 같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시험하시고 숨겨진 결점들을 들추어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 다음 그는 올바른 길로 지존자의 인도를 받고 싶어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시편 139편은 이렇게 끝맺는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24.

우리에게 시편 139편은 진정한 격려가 되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하늘의 우리 아버지의 시야를 피하여 도망할 수 없으므로 그분은 항상 필요한 때에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 주실 수 있다. 그분이 인간들을 자세히 아신다는 것은 그분이 아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 있다는 강력한 보증이 된다. 그들에 관한 모든 세부 지식들이 그분의 완전한 기억 속에 정확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인에 대한 여호와의 지식은 우리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하며 우리로 그분을 찬양하고 우리의 행실로 우리가 항상 그분의 감시하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각주]

a “새벽 날개”라는 말은 새벽 빛이 마치 날개를 가진 듯이 동쪽으로부터 서쪽의 가장 먼 지방까지 매우 급속히 퍼지는 것을 시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27면 삽화]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 ·⁠·⁠· 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28면 삽입 성구]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생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 138: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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