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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교황이 설교한 취지를 실천에 옮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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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교황이 설교한 취지를 실천에 옮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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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80 4월호 31-34면

교회는 교황이 설교한 취지를 실천에 옮길 것인가?

아일랜드의 가톨릭교인들은 약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희생시킨 10년간의 폭력을 중지하라는 교황의 호소에 어떻게 응했는가?

그들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아일랜드의 평화를 위하여 30여 회에 걸쳐 호소를 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거절했다! 가톨릭 아일랜드 공화국 군은 대답했다. “우리는 바로 무력만이 아일랜드에 존재하는 영국의 악행을 제거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가톨릭교인들은 다수인 프로테스탄트교인들로부터 압제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가톨릭교인들은 교황의 호소를 거절하면서, 정의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폭력도 불사할 수 있다는 그들 교회의 교리를 인용한다.a 아일랜드의 가톨릭교인들은 이른바 “정당한 전쟁”을 행한 선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가톨릭 교회와 전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국제 연합에서 행한 그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톨릭 교회는 지구상 어디에 있든지 평화의 소식을 선포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위해 교육을 베풉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가톨릭 역사가 E. I. 왓킨은 이렇게 썼다.

“부득불 고통스럽게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거짓 교화나 거짓 충성을 위하여 주교들이 자국 정부가 수행한 모든 전쟁을 계속하여 지지해 왔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무시해 버릴 수 없다. 나는 사실 어느 국가의 교직 정체가 어떤 전쟁을 부당하다고 비난한 단 한 번의 경우도 알고 있지 못하다. ·⁠·⁠· 가톨릭 주교들은, 공적인 이론이 어떠하든지 간에, 전시에는 ‘내 나라가 항상 옳다’는 상례를 최대한으로 추종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다른 경우를 들자면, 그들은, 교전국간의 국가주의가 관계될 때에는, 언제나 가이사의 대변자로서 말해 온 것이다.”—차알레스 S. 톰프슨 저 「도덕과 미사일」 57, 58면.

그렇다. 많은 아일랜드 가톨릭교인들은 지난날 가톨릭교인들이 행해 온 투쟁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싸우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교황은 그들에게 ‘폭력의 길을 버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나 지방 아일랜드 가톨릭 교직 정체는 참으로 아일랜드에서의 싸움을 비난해 왔는가? 그들은 살인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톨릭교인들을 파문해 왔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직도 가톨릭교인으로서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 테러범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하게, 교황은, 제2차 세계 대전중,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과 같은 가톨릭 지도자들이나 군에 가입한 수백만의 교인들을 파문하기를 거절했다. 독일의 가톨릭 교회가 나찌의 전쟁 수행을 축복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것은 본지에 실린 재판된 신문 보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독일의 거의 모든 가톨릭교인들이 나찌 전쟁 수행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가톨릭 학자이며 교육자인 고르돈 잔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히틀러의 전쟁 봉사에 관한 영적인 인도와 지도를 위해 종교 권위자들을 바라본 독일의 가톨릭은 사실상 나찌 통치자에게서 얻을 수 있었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그들에게서 얻었다.”

그런데도 교황은 국제 연합에서 “더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결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연설했다. 그 자체는 아름다운 말이며, 성서에서 인용된 말이다! (이사야 2:4) 교인들이 계속하여 종교 지도자들의 승인과 축복 가운데 자국의 전쟁을 지지해 온 이 마당에 그 교회 지도자가 그러한 말을 하다니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국제 연합에서 감명 깊은 탄원으로 모든 국민은 “어떤 정치 체제나 조직하에서도 그들의 완전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교황이 세상의 정치 국가들에게 촉구한 행로를 지지해 왔는가?

아르헨티나와 같은 가톨릭 지배국에서 비가톨릭교인들을 계속하여 박해하는 것을 보면,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상, 1960년대에 추기경 아리바 이 카스트로는 이렇게 단언했다. “우리는 오로지 가톨릭 교회만이 복음을 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톨릭 국가 내에서의 개종은 나쁜 일이며 억제되어야 한다.” 그 당시 교황 바오로 6세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고위 성직자였던 추기경 오타비아니도 본질적으로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1965년 3월 호 「가톨릭 세계」지는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상의 관용에 관한 그의 견해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진리와 과오와 같은 것은 권리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권리가 인정되고 과오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권리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를 토대로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교회가 충분히 강할 때, 국가가 교회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여 여타 종교 집단의 활동을 제지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교회 그 자체가 열세일 때에는, 자유 국가에 의해 보장된 자유를 주장하거나, 아니면 인권의 이름으로 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체제의 압제에 대하여 항의할 것이다.”

다시금, 교황의 말을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교를 탄압한 가톨릭 교회 자체의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말이 허황된 소리로 들릴 뿐 아니라 오히려 위선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은 종교의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그의 열망에 있어서 진지할지 모른다. 제2차 바티칸 회의에서, 그가 폴랜드 크라쿠프의 주교 카롤 보이티우였을 때, 그는 교회가 요구하는 종교의 자유가, 만일 다른 사람에게는 그 자유가 부여되지 않을 때 그 자유를 주장할 수 없다고 논박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황이 설교한 이러한 것들을 실천에 옮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줌

미국 방문 기간중 교황이 두드러지게 호소한 것은 물질주의를 거절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국제 연합에서 연설을 마친 지 몇 시간 뒤에, 그는 뉴우요오크 양키 스타디움에 모인 약 80,000명의 군중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단순한 생활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부유한 나라들이 자기들의 생활 표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류 전체에게 소용되는 에너지와 원료 자원을 막대하게 소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복 차림으로 아름다운 리무진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상당히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그러한 말이 어떤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1970년 필리핀 주교 회의의 총무였던 주교 마리아노 가비오라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의 생각을 넓혀 주었다. “주교들[교황을 포함시킬 수 있다.]이 정부의 부정 이득과 부패를 비난할 때나 부의 오용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숯이 검정 나무란다고 말하는 경우가 아닌지 의아해 한다.”

표면상에 나타난 가톨릭 교회의 부는 많은 가톨릭교인들에게 근심이 되어 왔다. 캐나다의 「더 프로빈스」지는 1967년 9월 2일자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사 로버어트 아돌프스의 견해를 이렇게 보고했다.

“신부 아돌프스는 교회가 생존하려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모든 ‘왕자 같은 화려함’을 없애 버리고 겸손하게 종의 입장을 택해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

“그는 교황, 그리고 추기경과 주교들이 ‘왕실을 생각나게 하는’ 정교한 예복과 관, 그리고 기타 의상 장식품들을 더는 착복하지 말고 신자의 발을 씻어 주는 종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정도로, 허영과 화려한 인상을 풍기지 않으려고 시도해 온 것은 분명하다. 선배 요한 바오로 1세와 같이, 그는 관중을 대할 때 사용하는 화려한 교황 보좌의 사용을 거절해 왔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1971년에, 볼리비아 가톨릭 교회의 머리인, 추기경 클레멘트는 교회가 여러 세기에 걸쳐 축적해 온 보물을 모두 풀어서 주택, 학교, 도로 및 공장을 세우는 데 그 돈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참으로 가난해야만 교회는 권위와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러한 제안을 따를 것인가? 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교황이 부유한 국가들에게 행하도록 충고한, 그러한 일이 실천에 옮겨질 것인가? 지금까지의 추세는 그렇지 않았으나, 앞으로 그럴 것인지의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교황이 설교한 것을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서가 가르치는 것을 실천에 옮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사실상, 국제 연합에서 교황이 제공한 소식에는 새로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교황 바오로 6세가 14년 전에 국제 연합에서 한 다음과 같은 연설과 다를 바 없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국제 연합을 연합과 평화의 마지막 희망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영예와 희망의 찬사와 더불어 우리 자신의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끊임없이 여러 형태의 인간 정부를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후원해 왔다. 따라서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국제 연합을 지지해 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문해 보자.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을 것인가?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연합과 평화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로마 제국에게 찬사를 돌린 기록을 읽어 본 일이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가르침의 주제는 인간이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하나님의 왕국이었다. 성서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140회 이상 하나님의 왕국을 언급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이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통치자인 “평화의 왕”에 의한 실제적인 정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야 9:6, 신세) 성서가 가르치는 그 왕국 정부는 “[국제 연합을 포함하여 인간에게 기원을 둔]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다.]”—다니엘 2:44; 마태 6:9, 10.

하나님의 왕국은 땅에 대한 새로운 통치권이 될 것이다. 그것을 성서에서는 “새 하늘” 즉 새로운 천적 통치라고 부른다. 그것은 “새 땅” 즉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따르는 사람들의 새로운 사회를 다스릴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그의[하나님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베드로 후 3:13.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국제 연합에서 연설할 때, 그들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세계 정부에 관한 성서의 소식을 가르칠 얼마나 훌륭한 기회를 가졌었는가? 그것은 분명히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기대하여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교황은 참된 희망의 선구자가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이름과 목적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신 본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 노래로 유명한 요한 바오로 2세가 찬송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고, 심지어 뉴우요오크 할렘에 모인 군중에게 “할렐루야, 이는 우리의 노래”를 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할렐루야”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의미가 “야[여호와]를 찬양하라”임을 알고 있는가?b

교황은 할렐루야 노래의 취지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알리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 또한 따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누가 4:43; 요한 17:6.

[각주]

a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국민의 발전” 제31부

b 「웹스터의 새 대학생용 사전」

[32면 삽화]

(하단 신문 표제, 좌로부터)

[뉴우요오크 타임즈, 1939년 9월 25일자, 후판 6면]:

교회가 불러모은 독일 군인들

[뉴우요오크 포우스트, 1940년 8월 27일자, 최종판 15면]:

찬양받는 나찌군. 독일 가톨릭 주교들이 충성

[뉴우요오크 타임즈, 1941년 12월 7일자, 후판 33면]:

독일을 위한 ‘전쟁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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