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종종 정직한 사람들이 이 낡은 사물의 제도에서 벗어나도록 여호와께서 도우신 방법을 보면 놀랍다. 여기 ‘이탈리아’ 국경 부근 ‘스위스’ 두메 산골에 사는 한 젊은이의 경험담이 그것을 알려 준다.
그의 이야기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은 곤경을 겪었다. 나는 일찌기 어렸을 때 이런 처지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어머니는 ‘가톨릭’교의 전통에 얽매여 있었으며,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만일 내가 신자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연옥이나 지옥에 넣으신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자녀들에게 사랑을 보이시는 하나님께 가고 싶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종교적인 가르침도 그분을 가혹하고 냉정하며, 무정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분으로 설명하였다. 분명히 나는 이러한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분은 사제들을 위한 하나님일 뿐이었다. 나는 차츰차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19살 때 나는 몹씨 아프게 되었고 나의 병은 2년 이상을 끌었다. 내 마음 속의 공허와 아직도 만족한 대답을 얻지 못한 숱한 ‘의문들’은 나의 정신적인 균형을 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초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최면술과 자기 암시를 연구하였다. 나는 간단한 방법으로 황홀 상태에 이를 수 있었으며, 몇번은 심지어 장래를 내다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가 진정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기 최면을 사용했을 때 나는 몹시 실망하였다. 나는 ‘요가’와 흔들리는 추로 비슷한 시험을 하였다.
“그러던 1973년 나는 처음으로 ‘여호와의 증인’들과 접촉하였으며 「파수대」를 예약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소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동안 나는 예약으로 도착한 처음 몇권을 읽었지만 내용은 까맣게 잊어 버렸다.
“한편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은 「공산당 선언」과 「모택동 회고록」 그리고 진화론에 관한 여러 가지 서적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매술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도, 진화론의 이론으로부터도 내가 찾고 있던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나의 방에서 나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생활을 회고해 보기로 하였다. 모든 부정적인 경험들을 돌이켜 보고 있는 동안 지난 날의 불안과 악몽같은 일들이 나의 마음에 아련히 떠올랐다. 해결책을 찾는 일에 자신이 무능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죽고만 싶었다. 내가 중대한 전환점에 다달은 것이 분명했다. 나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떠올라, 나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 당신은 틀림없이 존재하시며, 당신은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읍니다. 진리를 찾게 도와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며칠 후 한 젊은 남자와 부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리고는 그들에게 ‘가톨릭’교와 성서에 관한 많은 질문을 하였다. 더 많은 방문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 두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성서에 관한 지식과 그들의 우정은 나를 몹시 놀라게 하였다. 나는 이 방문이 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성서로 설명해 주는 모든 진술을 비교해 보기로 하였다. 만일 ‘여호와의 증인’들이 정말로 내가 갈망하던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열렬히 추구하던 진리를 내게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내 인생을 그와 일치하게 이끌어가고 싶었다. 나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시간을 좀 더 많이 내기 위해서 얼마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 입시 준비를 중지하였다.
“내 생활 방식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게 된 후 나에게는 말못할 정신적인 고통이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 속에 어떤 불가사의한 저항을 겪었으며,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자 나의 두려움은 증가되었다. 나는 정신적 감정적인 압력을 좀 덜어 볼까 하여 인근 숲속으로 도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번민하게 하는 악몽들이 되살아 왔고 그 악몽들이 너무 실제적이고 무서워서 나는 내 살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쥐어 뜯을 정도였다. 정신착란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는 기도를 하였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커다란 안도감이 나를 덮었고 불쾌하고 몸서리나는 환각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이제 자신이 처하였던 상황의 의미—영매술적인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이 사물의 제도의 통치자인 ‘사단’은 그의 무기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서 연구를 하러온 그 증인은 내가 갖고 있는 영매술과 관련된 것을 전부 없애 버리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그렇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과 정신적 압력이 즉시 중지되지 않았지만 수주 후에는 견딜 만하였다.
“나는 이제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비록 왕복 12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였지만 나는 매주 ‘여호와의 증인’들과 모인다. 나는 여호와와, 땅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을 배워 알게 되어 매우 행복하다.”
이 젊은이는 지금은 침례받은 ‘여호와의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