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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유지시켜 준 희망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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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파79 10월호 27-29면

나를 유지시켜 준 희망

나는 1950년 10월, 매년 선천적인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수백명 중의 하나로 태어났다. 내 오른쪽 다리에 경골이 없었다. 경골이란 발목과 무릎 사이에 있는 주된 뼈이다. 이 뼈가 없으면 사람이 서지도 걷지도 못한다.

당시, 나의 아버지가 군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걷게 해 줄지도 모르는 혁명적인 수술에 희망을 걸고 몹시 흥분하였다. 그 수술은 1953년 ‘워싱턴’ 시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시행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없는 경골 대신 동물의 뼈를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물론 1950년대 초에는 이식 수술이 단지 시험 단계에 있었다. 이 물질에 대한 거부 반응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결과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의 신체는 그 이식된 뼈를 거부했고 오른쪽 다리는 탈저증을 일으켰다. 내 생명이 위독했기 때문에 그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세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래가 암담해진 것이다.

생명을 유지시켜 준 희망

우리 작은 가족은 함께 협조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나의 수술 직후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겠다고 위협하실 정도로 몹시 반대하였다. 그러나 한 ‘여호와의 증인’이 어머니에게 성서로부터 불타는 지옥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자 어머니는 곧 성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성서 지식에서 신속히 발전하였고 얼마 후 하나님을 섬기기로 자신의 헌신을 침례로 상징하였다. 이내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매우 활동적으로 전하였다. 반면에 아버지는 아직도 망서리다가 어머니가 잘 발전하는 것을 보시고 아버지도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다.

약점을 가진 사람은 자기 연민의 올무에 빠질 수 있다. 다행히도 나의 부모들은 이 점을 잘 깨닫고 교훈의 기초로서 성경을 사용하여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길러 줄 수 있었다. 그 희망은 내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완전한 건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전망인가!

나는 문자적으로 먹고 자고 하나님의 새질서를 상상하곤 했다. 그 희망은 나의 부모나 어떤 사람이 나를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낸 부질없는 망상이 아니다. 그것은 성서의 하나님의 약속에 굳건한 근거를 둔 희망이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라고 기록하였다.—베드로 후 3:13.

어려서부터 나는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을 굳게 신뢰하게 되었다. 영감받은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3, 4) 그러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성귀는 이사야 35:6이다. 그 귀절은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라고 지적한다. 밤에 나는 들국화와 푸른 풀로 덮힌 벌판을 수십리나 힘들이지 않고 뛰어다니는 꿈을 꾸었다.

초기의 발전

다섯살이 되었을 때 나는 새로 개발된 ‘부트’라는 의족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잡지와 성서 출판물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여섯살이 되었을 때 나는 성서 주제에 따라 몇가지 성귀를 사용하여 온전한 호별 방문 연설을 할 수 있었다. 다음 해에 나는 신권 학교 학생으로서 연단에서 처음 연설을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파이오니아’를 하였고 아버지는 ‘워싱턴’ 시에 있는 우리 회중에서 신권 학교를 사회하였다. 그 때 왕국 선포자가 더 크게 필요한 ‘메릴랜드’ ‘게이더스버어그’에서 봉사하라는 초대를 우리는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임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우리는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였다.

‘게이더스버어그’ 회중은 아주 작았다. 사실상 우리는 한 ‘여호와의 증인’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거기에는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몇명의 흑인 벗들이 있었다. 따라서 모든 인종에 속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었다. 여호와의 축복으로 그 회중은 성장하고 번성하였다. 1961년에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 나는 물침례로 여호와께 나의 헌신을 상징하였다.

이 동안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가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인권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행진과 시위 폭동이 있었다. “블랙 파워”와 “부숴라, 부숴”가 그 당시의 구호로 보였다. 그런 사태 속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호와의 말씀에 계속 고착하였고 우리 자녀들이 변화되는 세계 상태에 대하여 합당한 견해를 가지도록 하였다. 그렇다. 현재 어떤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고 ‘버스’ 앞자리에 탈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영속적인 평화와 자유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을 우리는 하나님의 새질서에 두고 있다.

성인으로 자라감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나의 외모와 신체적인 결함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때때로 그 때문에 몹시 낙심하였다. 나는 인기있는 것을 원하였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인정 받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강함은 여호와로부터 오는 것이며, 세상의 인기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요구 조건이 아님을 인식하도록 도움을 받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일이 항상 있을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친구들로서 나의 신분과 외모 때문에 나를 용납할 수 없다면 그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사실 나는 여호와의 백성 중에서 진정한 벗을 발견하였다. 이 벗들은 나에게 야구, 축구 그리고 수영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수영에서 탁월하였으며, 가족과 내 자신도 놀랐지만 나는 체육 특기자에게 수여하는 신체 적격자 대통령 상을 수상한 우리 학교 17명의 학생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육체의 연습은 [단지] 약간의 유익이 있”다. (디모데 전 4:8) 나는 내 육체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행하기를 원하였다. 이치적인 해답은 ‘파이오니아’ 봉사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여름이 되면 ‘파이오니아’를 하였고 전 시간 전파 활동과 ‘뉴우요오크’ ‘여호와의 증인’ 본부인 ‘벧엘’에서 봉사하는 것을 나의 목표로 세웠다.

올바른 선택

벌써 졸업할 때가 되었다. 우등생이고 신체적 결함을 지난 나에게 직업 부흥국에서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의를 하였다. 그 장학금을 받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그것을 응락하라는 압력이 컸다.

아버지와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이전에 받은 훈련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에 관하여 더 깊이 생각할수록 나는 특별 활동을 위해 더 나은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활동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 전 4:16) 그래서 나는 ‘파이오니아’를 신청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활동에 전 시간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었다.

‘파이오니아’로서 계속 남아 있기 위하여 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간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동안 행하였던 일을 단지 몇가지만 들어 보면, 칠하는 일, 설겆이, ‘바아텐더’, 요리사, 수위, 소작인, 벽돌직공의 조수, 사환 등이다. 심지어 나는 한 다리만 가지고 도랑파는 고역을 치루기도 하였다. 나의 가족은 그에 관해 지금도 웃는다.

나는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에서 봉사하는 동안 여러 가지 감동적인 경험을 하였다. 한 사람은 성결교회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옥불을 강력하게 믿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후 그와 그의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그가 ‘아나폴리스’ 남부 회중에서 장로로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파이오니아’들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봉사의 특권을 받아들이도록 진심으로 권한다.

여러 해가 흘렀고 나는 이제 내 자신의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풍부한 축복을 주셨고 나를 사용하셨다. 나는 현재 ‘워싱턴’ 시에서 장로로 일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계단이나 층계를 올라가거나, 먼거리를 걷거나 장시간 서 있는 것이 조금 어려워졌다. 나는 여호와께 힘과 인도를 달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하튼 그 마지막 재방문, 그 마지막 시간의 봉사 혹은 그 다음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항상 충분히 유지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훌륭한 부모들을 가지고 내 생애에서 유일한 참 하나님의 인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축복이었다! 20년 이상의 활동적인 봉사 기간 중에 나는 항상 여호와께서 공급하시는 기도와 힘에 의지해 왔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새질서에서 수십리나 힘들이지 않고 뛰어다니는 꿈이 아직도 살아 있고 밝게 빛나고 있다. 그것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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