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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기—하나님께서 화를 허락하신 이유를 알리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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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기—하나님께서 화를 허락하신 이유를 알리는 열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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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파76 11/1 502-504면

욥기—하나님께서 화를 허락하신 이유를 알리는 열쇠

「욥기」는 언제나 문학적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그리고 그 책이 ‘히브리’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에 커다란 손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므로, 「욥기」를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는 “‘욥’은 그의 친구의 조롱에서보다도 나의 번역판에서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탁월한 작품이 약 삼십오세기 전에 전원 환경에서 기록되었다는 것 자체는 이 거룩한 시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는 것을 증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욥기의 42장 가운데 39장이 시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욥기」의 아름다움은 인식하면서도 「욥기」의 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이 기록되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목적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욥기」의 아름다움을 크게 인식한다고 하는 허다한 사람들이 「욥기」는 단순히 전설에 근거한 비유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책의 역사성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욥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이치와 성경에 반대된다. 어떻게 그러한가? 왜냐 하면 ‘욥’은 에스겔 14:14, 20에서 역사상 명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다른 충실한 사람들과 함께 열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욥’이 결코 살지 않았었다면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열거될 것인가?

더 나아가, 제자 ‘야고보’는 인내의 본으로 다음과 같이 ‘욥’을 지적하였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야고보 5:11) 만일 ‘욥’이 실제로 살지 않았고 단순히 비유적인 인물이었다면 인내하고자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가 무슨 격려가 되겠는가? 그렇다. 저자는 상상력을 사용하여 모든 종류의 일을 인내하는 비유적인 인물을 만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인내의 시험을 당하는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욥’을 바라보고 격려를 받을 수 있으려면, 그는 실존 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욥기」가 기록된 목적이 무엇인가? 「욥기」는 왜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무죄한 사람들이 해를 입는 것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인류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욥기」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의 대적 ‘사단’ 마귀의 호언 즉 그가 모든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화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단’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숭배할 필요가 없으며 사람들이 그분께 순종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였다. ‘사단’은 만일 하나님께서 매우 의로운 사람인 ‘욥’을 자기가 다루게 한다면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게 할 수 있다고 호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시고 ‘사단’이 온갖 난관과 고통을 ‘욥’에게 가져오는 것을 허락하셨다. ‘욥’의 이름은 “적의의 대상”을 의미하며 그는 확실히 ‘사단’의 적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욥’을 하나님께 대항하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욥’은 여호와를 의로운 주권자로 그리고 경외하고 숭배하기에 합당한 분으로 옹호하였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욥기」를 누가, 언제 기록하였는가? 현대 비평가들은 「욥기」의 필자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 연대는 일러야 기원전 6세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욥기」가 그보다 훨씬 여러 세기 전에 기록되었으며 필자가 바로 ‘모세’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모세’의 기록의 운문과 산문이 「욥기」의 일부와 아주 비슷하다. ‘모세’가 「욥기」를 썼다는 것이 또한 초기 ‘히브리’ 및 그리스도인 학자들의 의견이다.

‘욥’은 언제 어디에서 살았는가? 그 기록은 온 땅에 그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 그가 살았다고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는 충실한 족장 ‘요셉’이 사망한 후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의 예언자로 일으킴을 받기 전 즉 기원전 17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살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오늘날 ‘아라비아’로 알려진 곳에 있는 ‘우스’ 땅에서 살았다.

「욥기」는 다섯 부분으로 뚜렷이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욥’의 비극의 이유. 둘째, ‘욥’과 그의 세 친구의 발언. 세째, 이전 네 사람의 말을 바로잡는 ‘엘리후’의 말. 네째,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선언. 다섯째, 결과.

‘욥’이 받은 시험

「욥기」의 서두에서는 ‘욥’의 흠없고 의로운 행로, 그의 가족과 그가 누린 커다란 물질적 번영에 대하여 알려준다. 다음에, ‘사단’이 여호와의 어전에서 하나님의 충실한 아들들 사이에 나타나는 하늘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의 정직한 행로를 지적하시면서 이전에 쟁점이 제기되었음을 암시한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사단에게 ‘너는 나를 경외하고 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지상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 종 ‘욥’은 어떠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사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요? 확실히 ‘욥’은 당신을 섬기고 있읍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에게 번영을 주었어요.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등 이런 식으로요!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에 대한 그의 진실을 알게 될테니까요!’ 여호와께서는 이 도전을 받아들이시고 ‘욥’에게서 ‘사단’이 그의 자녀를 포함한 모든 소유를 강탈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욥’은 그가 누리는 물질적 번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의를 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다시 한번 하늘에 나타났으며, ‘욥’의 확고한 행로를 고려하라는 말을 듣고 만일 ‘욥’ 자신이 고통을 받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등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의 머리에서 발까지 극히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게 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제 그의 아내까지도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욥’은 아내를 책망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욥’과 그의 세 친구의 말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욥’에게 임한 재앙의 소식을 듣고 그를 위안하러 온다. 그들은 ‘욥’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아 칠일간 앉아서 침묵을 지킨다. ‘욥’은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말로 침묵을 깨뜨린다. 대답으로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욥’이 마땅히 받을 것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욥’이 대답하며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다음에 ‘빌닷’과 ‘소발’이 같은 식의 주장을 하며 매번 ‘욥’은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한다. 다음에 두번째 토론이 있고 부분적인 삼차 토론이 있다. 그릇되게 ‘욥’을 도우려고 한 그의 세 친구는 사실 그의 원수가 되며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그의 고통을 증가시켜 준다!

그는 토론이 진행될수록 오류가 심해지는 그들의 가혹한 말을 반복적으로 비난한다.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 없는 의원이니라.” “네가 무엇에 격동되어 이같이 대답하는고?”—욥 6:25; 13:4; 16:3.

끝까지 ‘욥’은 하나님께 대한 성실과 믿음을 고수한다. 사실, 재삼재사 그는 대답 가운데서 친구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말한다.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욥 10:2) ‘욥’의 말은 부활의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셨겠나이다.” (욥 14:13-15) ‘욥’은 그의 마지막 말(26장에서 31장까지)에서 자기의 무죄를 주장한다.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성실, 신세]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욥 27:5)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심오한 지혜를 지적하며, 그의 명성이 크고 그분의 생각이 매우 높고 자기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매우 낮은 곳에 떨어졌으며 다시 그는 의로운 행로를 걷는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에게 임한 일에 합당한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엘리후’와 여호와께서 ‘욥’에게 대답하시다

이 모든 말을 들은 ‘엘리후’는 자기가 비교적 연소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못한다. 왜냐 하면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욥’의 세 친구는 ‘욥’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처럼 보이게 하였”기 때문이다. (욥 32:3, 신영성) ‘엘리후’는 이렇게 변론하였다. “‘욥’이여. 내 말을 들으[라.] ···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라.”] (욥 33:1, 6) 그는 여호와의 공의와 길 및 인간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할 필요성을 논증한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 필요성을 강조하고, 여호와의 행사가 균형잡혀 있음을 설명하며 결론으로 창조주의 무한한 위대성을 찬양한다.

‘엘리후’가 말을 마칠 때에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폭풍 가운데 말씀하신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욥 38:1-4) 다음에 여호와께서 인간의 창조주의 영원성, 그 분 자신의 위대성, 별이 총총한 광대한 하늘로부터 하마와 악어와 같은 강력한 현 세계의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조물에 나타난 그분의 능력과 지혜에 비할 때의 인간의 미미함과 덧없음을 지적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말을 들은 후에 ‘욥’은 자기가 온전한 지식없이 경솔하게 말하였음을 인정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한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다시 말씀하시며, 이번에는 ‘욥’의 세 친구를 책망하신다. 그 분은 그들에게 희생을 드리라고 요구하시며 ‘욥’에게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도록 지시하신다. 그 후에 ‘욥’은 일곱 아들과 아름다운 세 딸을 축복으로 받으며 이전보다 두배의 가축을 받는다. ‘욥’은 140년을 더 살고 “늙고 기한이 차서 죽”는다.—욥 42:1-17.

참으로 「욥기」는 하나님께서 화를 허락하신 이유, 그분이 의로운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신 이유를 밝혀 준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는 ‘사단’의 거짓 주장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화를 허락하셨다.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과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숭배의 진실성을 입증하고 자신들이 성실을 유지하는 사람들임을 증명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당신은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인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충실한 종들에게 제공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실을 유지하신 가장 위대한 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 것이다.—요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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