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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우스’의 진상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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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8/1 356면

‘뉴우스’의 진상

통곡의 벽

● 통곡의 벽이라고 알려진 ‘예루살렘’ 성전 지구의 서쪽 벽은 오늘날 ‘유대’교 신봉자들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성전 광장 지구에는 두개의 회교 사원이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은 회교 지배권에 속해 있다.) 지금 그 통곡의 벽에 대해서 ‘이스라엘’에서는 굉장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쟁점은? 그 벽의 묵직한 돌들 사이의 금간 틈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를 베어 버릴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에 관해서이다.

잡초를 뽑기를 원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은 뿌리가 돌을 많이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잡초가 성벽에 위험하다는 것이고, 그 반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말은, 잡초는 성전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스라엘’로 회복에의 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잡초를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잡초 전쟁’에서 두 탁월한 경쟁자 ‘에쉬케나즈’(‘유럽’인) 사회의 최고 ‘랍비’와 ‘세파디’(북‘아프리카’인) 사회의 최고 ‘랍비’에 관해 ‘뉴우요오크’ 「타임즈」지의 한 특파원은 다음과 같은 급보를 실었다. “그 두 사람은 시기심 많게도 경쟁적이고 무슨 일이건 동의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제 1세기에 ‘나사렛’ 예수는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 죄를 짓는다고 말씀하셨었다. (마태 23:24) 그 지도자들은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길 거절하였고 그는 그 결과로써 오게 될 하나님의 선고와 심판을 예고하셨었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성벽의 잡초에 대하여는 논쟁을 벌이면서도 성전의 멸망과 다시는 그것이 복구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한 하나님의 소식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다.

새들과 아기들에 관해서

● 고대 ‘이스라엘’의 배교자들은 “여호와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답변하셨다. (에스겔 18:25) 우리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이상한 견해를 가지고 있고 판단하는 이상한 표준을 가지고 있다.

한 예로서, 최근에 한 유력한 ‘뉴우요오크’의 신문은 수백만 마리의 찌르레기 새를 계획적으로 죽인 데 항거하는 논설을 실었다. 이 새는 미국 남부의 두개 주의 어떤 일정한 지역에 서식하는데, 관리들은 이 새들이 사람과 가축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 논설은 “수백만마리가 죽은 또 죽어가는 새들의 참상이 군대와 시당국에게 이 끔찍스러운 계획을 재고하도록 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 문제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평가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똑같은 ‘페이지’ 그 논설란 바로 위에 낙태 수술 중 살아있는 인간 태아를 죽임으로 기소된 ‘매사추세츠’ 주의 한 의사의 최근 살인 유죄 판결에 관한 그들의 다른 또 하나의 견해를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 논설은 그 판결이 “오도되었”고 “거의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기사는 배심원들이 인간 생명의 시작이 언제부터인가를 결정하는 그들의 자격에 의문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 태아의 사진이 “아기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수천 수만의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이 살 기회를 박탈당하는 “참상”이 이 논설가들에게는 그 새들의 죽음만큼 영향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누가 12:6, 7과 비교하라.

굶주림의 근원은 무엇인가?

● 세계적인 식량 부족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부족’이 근본적으로 식량 분배와 사용의 세계적 제도에 있는 것이지 지구가 현재의 인구나 심지어 훨씬 더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그래서 「하퍼스」지(1975년 2월호)의 한 기사는 “배고픔의 근원”은 바짝 탄 밭이나 굶주린 사람들의 사진에는 찍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왜냐 하면, 그 근원은 “겉으로는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 실상은 대부분의 인류를 계속적인 굶주림을 당하게 하는 탐욕적인 상업제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류의 형편이 절망적이라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은 우리 눈으로(사진으로써) 볼 수 있게 할지 모르나 악은 어느 곳에나 있다. 즉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지지할 수 없는 불공평과 끝없는 곤궁을 생산해 내는 경제 기계 ···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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