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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5 7/15 333-336면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유익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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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유익을 가져온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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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7/15 333-336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유익을 가져온다

오늘날 207개의 나라와 바다의 섬들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참 하나님 여호와에 관해서 배우고 있으며,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그분의 표준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감사하여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부자나 빈자, 법을 잘 지키는 시민, 이전의 범죄자들, 매우 종교적인 사람은 물론 종교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 사실상,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 있다.—디모데 전 2:4.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그것은 유익을 가져오는가? 우리는 그렇다고 기대한다. 왜냐 하면, 성서는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는 것에 관해 말하기 때문이다. (말라기 3:18) 우리는 오늘날 그러한 분별을 볼 수 있는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그들의 생활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취해야 할 조정이 특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때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다. 최근의 경험들 얼마를 고려해 보자.

심한 의기소침을 극복함

심각한 병은 사람들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정신분열증으로 심하게 고통을 받았던 ‘엘살바도르’의 한 여인의 경험을 들어보자.

“나는 산같은 한적한 장소를 찾곤 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대하지 않으려고 자주 하루 종일 침실에서 나오지 않곤 했다. 혼자 있을 때 나는 자포자기하여 땅바닥에 몸을 던져 마구 구르곤 했다. 가족들이 나를 여러 개인병원과 종합병원과 전문의들에게 데리고 갔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개도 나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고 느꼈다.

“그러자 어느날 아침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나와 이야기를 히자고 청했다. 나는 동의는 했지만 마음이 몹시 불안하여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곧 이 여인은 정규적인 성서 연구를 할 것을 승락했다. 그 여자는 “그러나 증인들이 연구를 사회하기 위하여 도착할 때마다 그들을 대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의 심장은 급히 고동을 쳤다. 나는 심지어 연구를 중지할까도 생각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중지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내가 진리를 배우고 있다고 깨닫자 나는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 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왕국회관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지만 처음엔 대단히 어려웠다. 때로는 앞문까지 왔다가도 돌아서서 집으로 가곤 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나에게 인사하는 사람을 쳐다 보기 위해 고개도 못들었다. 그러나 기도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스런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 나는 신권 전도 학교 학생으로서 전 회중 앞에서 일어서서 간단한 성서 연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호와께 내 생명을 헌신했으며 지금 나의 인생에 그렇게나 축복이 된 성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집집으로 호별 방문 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나의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끼친 강력한 효과를 보고 자기들도 성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청해 달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가 우리 집을 방문해서 성서 진리를 토론할 만큼 충분한 사랑을 가졌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서 위축되어 떨어져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는 데 즐겁고 활동적이다. 모든 감사를 여호와께 돌린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에서 지도가 결핍하며 이것은 흔히 침울한 가족 문제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순응하여 그분께 의존하는 것이 여기서도 역시 도움이 되는가? 미국의 한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생활에서의 상태는 대단히 위험해졌었다. 나는 결혼상의 문제로 말미암아 혼란에 빠져 있었고 정신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나의 남편과 나는 이혼의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나는 ‘가톨릭’ 사제로부터 충고를 구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도울 수 없노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나 의기가 꺾여서 그에게서 나오자마자 차를 나무에 충돌시켜버리고 싶었지만 나의 아기가 바로 내 옆 좌석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자, 이 여인의 침울한 상태에 변화를 가져온 어떤 일이 발생했다. 그 여자는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나의 남동생이 ‘캘리포나아’에서 장거리 전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성서를 연구하는 중이라는 것과 성서는 회복된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새로운 제도가 곧 온다는 것을 예언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그 여자는 자기 남동생이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어 그의 남동생을 만나 보게 되었다. 그 여자는 이전의 마약 사용자였던 그가 갖게 된 평화와 만족감을 보고 또 거기 참석한 다른 사람들의 우의와 성실함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직도 자기 남동생이 새로 발견한 종교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여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를 실로 확신시킨 것은 결혼 주례사였다. 나는 그 전도인이 바로 성서로부터 읽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연설은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언급했다. (에베소 5:22) 나는 내 결혼식에서는 왜 그것을 말해 주지 않았을까 의아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내가 배운 것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내 아내로 또 아이들의 어머니로 안정된 걸 보게 되어 행복하오. 왕국회관에서 그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든지 간에 계속 다니시오.’ 이 모든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드린다.”

진실로 “새로운 성품”

성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 4:22-24) ‘키프러스’ 섬의 ‘안소니’의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예시한다.

“나는 ‘파마구스타’ 지역의 한 촌락에서 태어났다. 종교적인 부모들에 의해 자라났지만 열 일곱살 때 쯤에는 나는 총을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들에서 세 사람이 나한테로 다가와서 해를 가하려고 했다. 나는 그중 한 사람의 다리를 쏘았고 나머지는 도망쳤다. 이것이 나의 여러 차례의 감옥 생활 중 첫 번째가 되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개선되질 못했다. 왜냐 하면, 내가 출감했을 때는 수면제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에겐 돈 같은건 걱정이 없었다. 옛 도시에서 나를 위해 매춘부 노릇을 하는 두 여자 친구들로부터 넉넉한 수입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그 지역의 양쪽 끝에 있게 하였다. 내가 한 여자의 집에 자주 있는 것을 다른 한 여자가 보게 될까바 두려워서였다. 그외에도 나는 다른 창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갈을 치는 갱단에 속해 있었고 흔히 그 도시에 의심받지 않는 방문객을 습격하여 강도짓을 하곤 했다. 나는 항상 싸움 거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날 두 친구와 나는 한 경찰관 경사를 너무 심하게 때려 눕혀서 그는 병원에서 며칠이나 치료를 해야 했었다.”

그러자 1958년에 이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러한가?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해에 한 선교인이 우리 자전거 가게에 와서 나에게 성서와 모든 인류가 형제로써 함께 힘차고 건강하게 살 새로운 제도의 희망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으로 그 소리에 이끌렸다! 나는 그러한 새 질서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성서 연구를 시작했고 곧 이 마음 유쾌한 일들을 가져오실 이 놀라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그 때는 1960년이었다.” 성서를 그의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이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14년 후에 그리스도인 회중 안의 그의 한 동료는 이렇게 썼다.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원칙에 그렇게나 열심이고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안소니’가 그러한 과거 생활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놀라운 힘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 안정제를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남

오늘날 수면제 중독이 인류를 재앙에 걸리게 하고 있다. 이것은 ‘히피들’이나 반항적인 젊은이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쓰는 사람에게도 자주 발생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욕망이 그러한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케 되도록 도울 수 있는가?

미국의 한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대단히 어려서까지도 내 건강은 한번도 좋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심한 신경 질환이 있어서 의사의 지시 아래 어떤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그 약을 전부 만 8년간을 복용했다. 그러나 그때 그 여자는 얼마의 성서에 기초한 보고를 읽었는데 그것이 그 여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참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자기의 형주를 지’고, 필요하다면 죽음의 경지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포함한 것이었다. (누가 9:23, 24; 요한 12:25) 만약 안정제의 복용으로부터의 ‘탈피 현상’의 고통을 견디지 않으려 한다면 이 여인은 진실로 그렇게 하고자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여자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 복용을 중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심한 탈피 증세를 경험했다. 나는 몇 날이고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앉았을 수도 누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나는 ‘히스테리’적으로 울곤 했으며 내 몸은 가눌 수 없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의사와 사랑하는 남편과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나는 이 수면제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때때로 우울한 기분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외양이나 행동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한다. 압박감이 일어나면 이제는 약을 집어드는 대신 그것을 견디어 낸다. 나에게 가장 강력한 힘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과 기도로써 강한 유대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나는 이런 형태의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중지하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을 쓴다. 단 하나의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성서 원칙에 자극된 힘에 근거한 의지력이다.”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성서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르는 것을 포함한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라].” (데살로니가 전 3:12) 그리스도인들이 “피차간에” 사랑을 나타내는 한가지 중요한 방법이 히브리 10:24, 25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서로 돌아 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이 성서적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의 ‘체발리에’ 가족은 동료 그리스도인과 함께 주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정규적으로 48‘킬로미터’를 여행하며 매달 가족 수입의 25‘퍼센트’를 소비한다. 이 지출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체발리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비록 이것이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박탈하는 것을 뜻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이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받으실 만하시며 이보다 훨씬 더 그러하시다. 그리고 집회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리스도인 회중 밖의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어떠한가? 예수께서는 “천국의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심으로써 이 일을 하셨다. (마태 4:23; 10:5-7; 24:14) 이 일은 오늘날 전세계적인 규모로 달성하고 있다. 예로서 북부 ‘멕시코’의 산간 지역인 ‘듀랑고’로부터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전도인의 보고를 들어 보라.

“이 나라의 이 지역에서의 우리 형제들의 봉사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요한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해 높고 낮은 산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단지 여덟이나 열 가족 밖에 안 사는 구역에 다달으기 위하여 네 시간 이상을 울퉁불퉁한 바위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외딴 사람들에게 접촉하기 위해 정규적인 노력이 기울여진다. 때로 형제들이 담요 한 장과 먹을 것만 가지고 산간 지역에서 한 두 주일을 머무른다. 이들 벽지에 사는 사람들까지 ‘좋은 소식’을 듣고 있고 또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사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성서는 반복해서 창조주를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예레미야 10:10; 23:36) 이와 일치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히브리 4:12) 그러나 왜 성서는 다른 저술집과 달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활을 더 낫게 변화하도록 움직이게 하는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성서의 고상한 원칙은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감응력 있는 마음의 금선을 튕긴다. (디모데 후 3:16) 때로는 성서 진리에 조금만 접하고도 전혀 새로운 인생 행로를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르헨티나’의 젊은 여자 ‘도라’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 여자는 비록 안락하고 적당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었지만 ‘도라’의 영적 필요는 채워지지 않았다. 평화와 정의를 찾기 위해서 그 여자는 ‘공산주의 청년 운동’과 ‘세계 친 평화 위원회’에 4년간 가담했었다. 그러자 어느 날 ‘도라’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서」(신약)를 읽기 시작했다. 예수의 말씀의 지혜에 깊이 감동된 그 여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서서 기도했으며 성서를 연구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의 도움을 구하였다. ‘아르헨티나’로부터의 한 보고는 말하기를 “오늘날 그 여자는 자기를 진정한 평화와 즐거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성서가 훌륭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우하는 방법과 그들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알도록 도우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성서는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로 인생의 목적을 알도록 도우며 인류 역사가 그렇게나 소란했던 이유와 장래에 관한 확실한 희망을 알도록 도와 준다. 성서의 영감받은 희망의 소식이 얼마나 신속히 불시의 죽음으로 한꺼번에 남편과 딸을 잃은 ‘터어키’의 한 여자를 도울 수 있었는지의 예를 보라.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병들어 점점 약하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똑바로 일어나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어느 날 한 식품점에서 그 여자는 한 여호와의 증인이 하나님과 성서가 지닌 위로와 희망[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희망을 포함하여 (사도 24:15)]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무심코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즉시 증인에게 자기의 주소를 알려 주고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여인이 진리에 대한 지식이 발전해 가고 영적 힘을 얻게 되자 그의 신체적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 그 여자는 다시 한번 똑바로 걸을 수 있으며 그의 밝은 얼굴 표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로부터 얻은 희망을 반영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최근 수년 동안에 전세계를 통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만족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당신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직접 알고 싶지 않은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의 가정에서나 다른 편리한 장소에서 무료 성서 연구를 기쁘게 사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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