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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부 혹한 지방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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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부 혹한 지방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 소제목
  • “모든 집을 방문해야 합니다”
  • 성서 진리를 배우고자 열망함
  • 몇가지 난관들
  • 반대자들이 하나님의 열성스런 종으로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7/15 317-319면

북부 혹한 지방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함

“오늘은 영하 34도이며 바람은 시속 16‘킬로미터’로 불고 있읍니다. 그러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사람의 피부에 미치는 영향은 영하 42도와 같습니다” 하고 먼 북부의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이 보고하였다. 그는 “오늘 아침에 호별 방문 전파는 하나의 도전이었읍니다” 하고 부언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의 이 전도인과 그와 같은 수십만의 다른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북부 혹한 지방에서도, 성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증인들은 고립된 곳의 주민들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71년에 여호와의 증인의 한 집단은 ‘캐나다’ ‘매니토바’ 도의 외딴 ‘인디안’ 마을을 찾아 갔다. 이 집단의 일원인 ‘도날드 앤더스’는 그곳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흔히 온도는 영하 40도로 내려갑니다. 살을 에어내는 바람이 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의 일부가 업니다. 때때로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실제로 공기가 결정체가 되고 짙어지며 그 결과 시계가 선명하지 않아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게 됩니다. 눈까풀, 코, 입에 서리가 맺히기도 합니다.

“그러한 호된 추위에서는 옷을 적절히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옷을 입어야 했읍니다. 흔히 우리 몸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우리의 눈과 입뿐이었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읍니다.”

“모든 집을 방문해야 합니다”

‘알래스카’의 한 여호와의 증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마 이 곳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가장 큰 도전은 영하의 기온이라기보다 부락 사이의 거리일 것입니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되는 부락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격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고자 노력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전도인은 “총림” 지대의 외로운 오두막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접촉하기 위하여 사용한 기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외로운 오두막집이 보이면 비행기에 탄 증인은 주민이 나타날 때까지 오두막집 위를 맴돌므로써 오두막집에 신호를 보냅니다. 다음에 그 집위를 지나갈 때 성서 서적의 견본과 기본적인 성서 진리를 설명하는 편지가 든 작은 꾸러미를 집주인을 위하여 떨굽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격리된 곳에서도 증인들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노르웨이’의 북부 지방에서 회중들을 방문하는 한 장로는 그 곳의 고립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어떠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가를 설명하였다. “[북극권에서 320여 ‘킬로미터’ 상부에 있는] ‘알타’ 회중은 벌판에 있는 ‘가르콜로볼드’에 있는 다섯 집에서 약간의 관심을 가졌음을 발견하였읍니다. 그곳에 가기 위하여 그들은 먼저 길이 끝나는 곳까지 85‘킬로미터’를 자동차로 가고 다음에 35‘킬로미터’를 ‘스노우 스쿠우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먼 곳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여러 장을 연구하고 여러 가지 질문들을 토론합니다.”

‘핀란드’의 먼 북부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전도인으로 일하는 ‘매티 티아이넨’은 그곳 증인들이 그 지역에 있는 고립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버스’에 자전거와 ‘스키’를 싣고 가서 격지 마을까지 10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하며 돌아오는 길에 전파 활동을 합니다.”

어떤 집은 겨울에 찾아갈 수 없었지만 여름에 돌아오기 위하여 그러한 집에 대한 주의깊은 기록을 해 두곤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쿠스타아 누르멜라’와 그의 가족을 발견한 것은, 겨울에는 통과할 수 없는 강 건너의 그러한 외딴 집에서였다. 이 조용한 농부는 즉시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되어 자기의 가족도 여호와를 섬기도록 훈련시켰다. ‘누르멜라’ 형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의 고립된 집을 빼놓지 않은 것에 대하여 대단히 다행하게 여기고 있다!

‘티아이넨’ 형제도 여호와의 증인이 그들의 고립된 집을 방문하였을 때 성서의 약속에 대하여 배운 여인인 ‘카이사 아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호’ 자매는 그 지역에서 모든 집을 방문하였읍니다. 때로는 그의 남편이 그에게 다른 마을로, 때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로 전도 여행을 가도록 허락하였읍니다. 여름에는 도보로 여행하였고 겨울에는 ‘스키’로 여행하였읍니다. 어떤 때에 이 자매는 하루에 20 내지 30‘킬로미터’를 ‘스키’로 여행하였읍니다. 며칠 여행하면 100‘킬로미터’까지 되기도 하였읍니다.”

그는 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집을 방문해야 합니다. 나의 남편과 나도 그러한 방법에 의하여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서 진리를 배우고자 열망함

북부 혹한 지방에 사는 많은 토착민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고자 열망한다. 그들은 낙원이 지상에 회복된다는 말에 좋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겸손한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흔히 간단한 말, 비유 및 그림이 필요하다.

1972년과 1973년 여름에 ‘퀴벡’ 주 ‘셉트 아일즈’의 두 전 시간 전도인인 ‘모리스 찰런드’와 ‘브라이스 스미스’는 그 지방의 북동쪽에 있는 스물 일곱개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곳의 주민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듣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는가? 그들은 이렇게 보고한다.

“많은 부락민들은 단지 한번 소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호별 방문을 하는 우리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마침내 긴 행렬을 이루었읍니다. 한 집에서는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나는 나의 가방에서 서적을 꺼내려고 허리를 구부리기가 어려웠읍니다. 왕국 소식을 듣기 위하여 그 집에 적어도 설흔명은 모였었을 것입니다.”

‘알래스카’ 주 ‘샥톨릭’의 작은 마을에서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은 한 연로한 ‘에스키모’인을 만났는데, 그는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기 잡이를 하는 자기 아내와 손자에게 가기 위하여 자기의 눈 썰매를 타고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방문의 목적을 알고 아들을 대신 보내며 “내가 뿌리치고 가기에는 너무 중요하군요. 들어와서 이야기하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조금 후에 그의 아내가 돌아왔고 그도 역시 성서의 위안을 주는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 형제가 떠나려고 일어서자 그들은 문으로 달려와서 “제발 가지 마세요. 한꺼번에 다 듣고 싶군요!” 하고 말하였다.

어떤 때에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을 일으키는 데 단지 한 번의 여호와의 증인의 방문으로 족하다. 1972년에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사실」 책을 ‘노르웨이’의 북부에 있는 한 젊은 악단 단장에게 전하였다. 이 사람은 그 책을 읽은 후에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왙취 타워 협회’의 그 지방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는 ‘보데’에 사는 장로의 주소를 받아가지고 반나절을 여행하여 그를 찾아갔으며 더 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때 그는 그 대화를 다시 듣기 위하여 녹음기를 사용하였는데 그 대화는 여러 시간 계속 되었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자기의 악단을 해체하고 교회에서 탈퇴하였으며 정당에서 나왔다. 진리를 처음 들은지 수개월 후인 1972년 6월에 이 청년은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침례를 받았다.

몇가지 난관들

북부 혹한 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토착민들은 우정적이고 성서 진리를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는 약간 난관도 있다. 우선 토착민들은 매우 수줍어서 진정한 관심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그 결과 그들은 이웃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게 될 것이 부끄러워서 생활을 변화시키기를 꺼리는 예가 많다.

종교적 편견도 또한 난관이 될 수 있다. 북부 ‘핀란드’의 한 교직자는 신문에 “여호와주의자들은 ‘푸다스자비’에서 골치덩어리”라고 기술하였다. 그는 또한 그들이 공산주의 가르침을 전한다고 거짓 비난을 하였다. 그 지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두 사람은 이러한 반대 때문에 영구적인 숙소를 정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또 다른 경우에 한 사업가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가 소유하고 있는 가옥에서 집회를 보는 것을 허락”한다는 이유로 세차례 공개적인 경고를 받았고 마침내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들어왔다”고 ‘왙취 타워 협회’의 ‘핀란드’ 지부에서 온 최근의 편지는 설명하였다.

반대자들이 하나님의 열성스런 종으로

그러나 반대가 있는 곳에서도 “좋은 소식”은 반응을 보이는 마음에 이르고 있다. 사실 이전의 반대자들 중에는 현재 여호와의 열성스런 증인이 된 경우도 일부 있다. 예를 들면, 동부 ‘퀴벡’에서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은 한 젊은 기혼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처음에 적의를 나타내고, 증인들이 ‘그의 종교를 팔’려고 한다고 비난하였다. 예수께서도 몸소 “마을로 두루 다니”셨다는 것을 설명하였을 때,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한권 받았다. (누가 8:1, 새번역; 13:22) 그는 하루 밤에 그것을 읽고, 그 지방 ‘가톨릭’ 사제와 만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일이 있게 되었다.

“사제는 매우 공손하였읍니다. 나는 대화를 삼위일체를 포함하여 이 청년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목으로 이끌었읍니다. 사제는 성서에 계속 동의하였고 많은 질문을 하였읍니다. 그 청년은 참다못해 사제에게 자신을 변호하라고 말하였읍니다. ‘나 자신을 변호하라고? 나도 자네처럼 진리를 찾고 있는 중이네’ 하고 그는 대답하였읍니다.

“이튿날 ‘미사’에서 이 사제는 성서를 배우고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여호와의 증인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읍니다. 몇달 뒤에 나는 그 청년이 마음깊이 성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이웃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자진하여 호별 방문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읍니다. 나는 사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우리와 대화를 나눈 직후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우에 여호와의 증인은 남부 ‘캐나다’에서 자기 집을 떠나 ‘인디안’들 사이에서 진정한 형제애와 행복을 찾기 위하여 북쪽으로 이사 온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는 「파수대」에서 “인류를 연합시키는 좋은 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이 지식은 그에게 매우 깊은 감명을 주어 그는 가정 성서 연구를 요청하였다. 몇달 후에 그는 침례를 받았고 그 직후에 이 이전의 반대자는 “좋은 소식”의 전 시간 전파자가 되었다. 그는 성서 진리를 배우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느꼈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찾고 있던 것 모두—연합, 평화, 모든 인종간의 참다운 그리스도인 사랑 및 불공평이 없는 세상을 보는 희망—를 여호와의 말씀과 지적 조직에서 발견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좋은 소식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서, 심지어 주민이 산재해 있는 북부 혹한 지방에서도 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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