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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의 진상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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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7/15 331면

‘뉴스’의 진상

범죄에 대한 공포심

● 미국은 점차적으로 공포에 싸인 “군사 진지”로 화하고 있다. 공포심이 “미국 사회의 모든 계층”에 편만해 있음을 1973년에 행한 ‘갤럽’ 여론 조사 결과는 알려 주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리고 외곽 지대에서는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 작년에, 강도, 강탈, 절도 피해를 입었거나, 재산을 파괴당하였다. 열 사람 중 네 사람은 자기 집 근처에서도 밤에 혼자 다니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을 극복하는 방법이 그 보복으로 폭력을 행사할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미국에서 범죄가 가장 심한 ‘디트로이트’ 시에는 약 500,000정의 권총이 있다고 추산되고 있다. 남자, 여자, 아이들을 합하여 세명 중 한명이 소지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다른 지방도 입장이 대동소이하다.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은 그러한 것을 원하는가? 당신이 주위 세상을 변경시킬 수는 없으나 그러한 입장을 대처해나아가는 방법은 변경시킬 수 있다. 참으로 안전한 방법은, ‘전쟁 무기를 쳐서 평화의 도구로 만들고 전쟁을 연습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왜냐 하면,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악행이 자행되면, 하나님께서 대신 보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이사야 2:2-4; 로마 12:17-19.

주위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생명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의 조언을 따르는 것과 죽어가는 인간을 본받는 것—어느 쪽이 더 이치적이겠는가?

과학의 공약

●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 수준을 과학이 개선해 주리라고 기대하여 왔다. 그러나 현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 공약한 “내일의 훌륭한 세계”가 또 하나의 시험관 속의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한 미국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가운데 그들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훌륭한 생활에 대한 널리 퍼져 있고 높아져가는 인간의 열망은 세계의 자원들을 짜내고 있다. 대도시들은 ‘정글’로 타락해 가고 있다. 사물은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집들이 온통 기구들로 가득차 있음을 본다. 그러나 공기와 물은 점점 더 오염되고 있음을 역시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평화에 대한 약속을 읽지만, 수백만 ‘달라’의 세금이 파괴를 위한 신종 “과학” 무기를 만드는 데 소비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들이 “기적의 농산물”에 관한 보도를 듣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수천명이 굶어 죽어 가고 있고, 도처에서 식품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구세주로 환호를 받던 과학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이상한가?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는가? 물론 과학의 업적에도 어느 정도 지혜를 요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라].” 현 상태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그러한 “지혜”는 영속적인 “훌륭한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것은 과학 세계가 배척한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요한다.—고린도 전 2:6-8; 3:19.

변모하는 고해 성사

●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해(告解)를 하는 일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고해자와 청취하는 사제 사이를 갈라놓은 휘장을 치워버릴 계획이다. 새로운 “고해 성사” 의식은 수명 혹은 여러 명이 한 사제와 대화를 나누는 “회의실”을 필요로 한다. 왜 이러한 변화를 하는가? 한 가지 이유는, 얼마 동안 고해 성사에 대한 인기가 증가하기는커녕, 하강하여 왔다. 현재의 운동이 그 의식에 대한 관심을 다시 살아나게 하리라고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왜 이 기본적인 ‘가톨릭’ 요구 조건에 대한 인기가 감퇴하였는가?

의심할 바 없이,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사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제들은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여 온 것으로 간주된다. 간음과 동성애를 묵과하는 그들의 자유주의 견해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제들은 혁명과 전쟁을 지지하여 왔으며, 일반적으로 참전자들의 무기를 축복하여 주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많은 ‘가톨릭’ 교도들이, 왜 내가 그러한 사람들에게 내 죄에 대한 용서를 빌러 가야 하는가 하고 추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고해 성사에 대한 이러한 변화는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많은 신도들의 신념을 더욱 산산조각이 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 기억나는 일만 해도, 숭배받던 “성자들”이 실각당하였으며, ‘미사’ 의식이 변경되었고, 금요일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계속 의아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무엇이 바뀌어질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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