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70 11/15 511-516면
  • 여호와의 종들은 다르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여호와의 종들은 다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여호와의 홍수 전 증인들은 달랐다
  • 족장들은 달랐다
  • 예언자들의 본들
  • 예수 그리스도의 본
  • 예수의 제자들 역시 달랐다
  •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도 달랐다
  • 악한 세상에 사는 “임시 거주자”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11
  • 언제 모든 인간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또다시 섬길것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7
  • 여호와께서는 믿음과 담대함에 대해 상 주신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 노아, 다니엘, 욥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으십시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18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11/15 511-516면

여호와의 종들은 다르다

“이 사물의 제도를 본받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2, 신세.

1, 2. (ㄱ)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마음의 어떠한 타락한 경향을 경계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생각과 길에 어떠한 차이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불완전한 마음의 경향 가운데 하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계없이 그들에게 인기를 얻고 동류로 취급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인류의 절대 다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행동과 비슷하게 되고자 하는 올무와 그들에게 응하거나 잠자코 따르는 올무에 속박되어 버렸읍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여 그분의 의로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순응시키려는 압력에 굽히거나 굴복하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이사야’ 시대에 타락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와 같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 9.

2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다는 말은 얼마나 큰 차이를 표현합니까! 실로 그것은 가장 심한 차이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표현입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이렇게 심한 차이가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그들이 공의를 행하는 것을 그쳤고, 친절을 사랑하는 것과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그쳤기 때문이었읍니다. (미가 6:8) 그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서 그들 주위에 있는 열방의 숭배와 그들의 도덕적 행실을 따랐던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그들 주위에 있는 열방을 따르고자 한 경향이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3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에 있어서 그들 주위에 있는 불경한 사람들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났읍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40일간 있었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 숭배를 채택하고 이방의 방탕한 짓을 행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7) 그리고 ‘여호수아’와 그 뒤에 생존한 연로자 및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읍니다. (사사 2:7-13) 그리고 사사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열방을 따라서 보이는 왕을 갖기를 고집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시기는 하셨지만,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셨읍니다.—사무엘 상 8:7, 20; 호세아 13:11.

4, 5. (ㄱ) 여호와의 종들은 왜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읍니까? (ㄴ)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대단히 적합하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충고를 하였읍니까?

4 여호와의 종들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었읍니까? ‘노아’ 홍수 후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에서 축출된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가 악한 자, ‘사단’ 마귀인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의 능력 아래에서 기만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것에 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어떤 종이 세상을 따른다는 것은 틀림없는 올무입니다!—고린도 후 4:4; 요한 1서 5:19.

5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로마 12:2에서 다음과 같은 아주 적합한 충고를 받습니다. “이 사물의 제도를 본받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신세) 이 ‘바울’의 말을 좀 더 의역한 성서 번역은 이러합니다. “더는 이 현존하는 세상의 본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신영어 성서) “이 세상 관습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중지하시오.” (‘시. 비. 윌리암’역 「신약」) “여러분은 이 세상의 관습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미국역) “여러분 주위에 있는 세상이 여러분을 그의 틀에 박아 넣지 못하게 하시오.”—현대 영어로 된 신약.

여호와의 홍수 전 증인들은 달랐다

6, 7. 여호와의 종들은 왜 다르게 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며, 누가 이 점에 있어서 첫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읍니까?

6 우리의 첫 조상이 ‘에덴’에서 축출된 때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세상 진로가 불경한 것이었기 때문에, 최초부터 모든 여호와의 종들은 눈에 띄게 달랐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뚜렷하게 달랐읍니다. 오늘날 옷의 ‘스타일’이나, 행실 혹은 숭배 형식에 있어서 그들 주위의 사람들과 아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여호와의 종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시초부터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어떠하였었는가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가운데서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7 우선,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첫 증인인 ‘아벨’이 있었읍니다. 우리는 ‘아벨’이 여호와의 순수한 숭배를 위하여 담대한 입장을 취하였을 때, 지상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거룩한 기록에 이름이 나와 있는 사람들로서 ‘아담’, ‘하와’ 및 ‘가인’이 있었으며, 그들이 악한 자, ‘사단’ 마귀의 영향과 지배 아래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확실히 ‘아벨’의 행로는 이상 세 사람의 행로와는 반대의 것이었읍니다. 그는 눈에 띄게 다르게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충성스러운 첫 증인이 되었으며, 첫 순교자가 되었읍니다.—창세 4:3-11; 히브리 11:4; 요한 1서 3:12.

8. 어떤 사실들이 ‘에녹’이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을 알려줍니까?

8 그리고 다음으로 ‘에녹’이 있었읍니다. 그가 홍수 전 사물의 제도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그 이유는 ‘아담’의 손자 ‘에노스’ 시대에 이미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이 위선적으로 부르는 일이 있었던 사실로 보아 그 당시 땅에는 거짓 숭배가 심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창세 4:26) 또한 ‘에녹’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읍니다. (창세 5:22) 사실, ‘에녹’이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로 선포하게 하신 경고의 예언으로서도 명백히 증명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유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보라 주[여호와]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이러한 소식의 취지는 확실히 ‘에녹’이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가 다르다는 것을 담대하게 나타내지 않으면 안되었음을 알려 줍니다.—유다 14, 15.

9. ‘노아’와 그의 가족은 그들이 같은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였읍니까?

9 또한 영감받은 역사에 의하여, 우리는 ‘노아’와 그의 가족에 대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아벨’과 ‘에녹’ 시대에 있어서 이 두 사람만이 여호와의 참 숭배자였었는지에 관하여 독단적이 될 수 없읍니다. 예를 들면, ‘아벨’은 결혼했었을지도 모르며, 그의 아내도 그의 믿음에 참여하였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아’ 시대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였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알려 줍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총을 입었더라 ···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을 때에, ‘노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분명히 그 시대의 인류 세상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을 밝혀 줍니다. 예언된 홍수 기간에 ‘노아’ 자신과 가족의 거처가 되며, 선택된 짐승들의 거처가 될 곳간같은 건물을 ‘노아’와 그의 가족이 땅에서 짓고 있을 때에 그들은 얼마나 많은 조롱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겠읍니까! 사오십년간 이 일을 계속하는 데는 얼마나 큰 용기가 있어야 했겠읍니까! 그들은 그 당시 세상과 달라야 하지 않았겠읍니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읍니다!—창세 6:8, 9, 5.

족장들은 달랐다

10, 11.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은 그들이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0 다음으로 족장들 즉 ‘이스라엘’ 12지파의 가까운 가족의 머리들이 있었읍니다. 우선 ‘아브라함’이 있었읍니다. 그는 가진 이방 종교 습관 특히 달의 신이며, ‘우르’ 도시의 신인 ‘신’을 숭배하는 관습에 푹젖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참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 눈에 띄게 다른 사람임을 나타냈읍니다. 사실상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 ‘우르’는 ‘바벨론’ 사람의 숭배와 종교의 수도로서 ‘메카’나 ‘로마’에 해당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기라”고 명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더욱 더 눈에 띄게 다른 사람이 되었읍니다.—창세 12:1-3.

11 ‘아브라함’은 그가 ‘우르’를 떠나는 것을 ‘헛 것을 좇’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의 이웃과 친척들에게 얼마나 조롱을 받았겠읍니까? 그리고 ‘이삭’과 ‘야곱’ 역시 그러하였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모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읍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정착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읍니다. 만일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이 역시 이 사물의 제도에게 있어서나 이 제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국인이며 나그네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담대하게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과 다르게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히브리 11:8-15.

12. ‘요셉’은 어떠한 방법으로서 다르게 되는 면에 훌륭한 본이 되었으며, 그는 어떠한 보상을 받았읍니까?

12 그리고 족장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아들 ‘요셉’이 있읍니다. 그의 일생은 성서 안에서 참으로 빛나고 있읍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 여호와의 모든 참 숭배자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을 때에 그는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교 숭배자들의 행실과 숭배를 따라서 그 사물의 제도의 본을 따르기가 얼마나 수월하였겠읍니까! 그러나 그는 순결한 숭배와 경건한 원칙에 고착하여, 가장 강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성실을 고수한 현저한 본이 되었읍니다. 더욱이 그가 여호와께 대하여 성실을 지킴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계속 굳건하였읍니다. 그가 홀로 떨어져 있었을 때에, 그는 그의 전 사람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과 같이 “무슨 소용있나?” 하고 결론을 내리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숭배와 행실의 본을 좇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 사물의 제도의 본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계속하여 여호와께 충성을 지켰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그를 얼마나 많이 축복하셨읍니까!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자기 아버지의 가족과 아울러 ‘애굽’의 구조자가 되었읍니다.—창세 37:1-36; 39:1-45:28.

예언자들의 본들

13, 14. ‘모세’는 어떻게 여호와의 종들은 다르다는 것을 나타냈읍니까?

13 담대하게 다르게 행동하였고 그들 주위에 있는 불충실한 사람들의 본을 따르지 않은 허다한 다른 충성스러운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에는 ‘모세’ 시대로부터 ‘다니엘’과 그 후까지 이르는 사이에 생존하였던 ‘히브리’ 예언자들이 있었읍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바로’의 궁중에서 자란 ‘모세’는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쉽사리 따라 ‘히브리’ 교육과 종교를 잊어버리고,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됨으로써 얻게 된 만족, 명성 및 권력을 계속 누릴 수 있었읍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다”는 점과 “말과 행사가 능”하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는 얼마나 유리한 입장에 있었읍니까!—사도 7:22.

14 하지만, 그는 다르게 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이 세자(世子)가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음으로 전에 궁중에서 그를 알던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며 얼마나 당황하였겠읍니까? (히브리 11:25, 26) 이러한 행로를 취함으로써,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이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이전에 사용된 일이 없는 능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사용되었읍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게 담대히 행한 충성스러운 예언자들 가운데에 특히 ‘이사야’와 ‘예레미야’ 및 ‘에스겔’이 있었읍니다.—이사야 20:3; 예레미야 16:2; 7:16; 에스겔 4장과 5장.

15, 16.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그들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5 또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뚜렷한 본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먹어야 할 음식의 종류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바벨론’ 황실 제도에 따라 가기가 얼마나 용이하였겠읍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따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참 숭배자들로서 담대하게 눈에 띄게 다르게 행동하였읍니다. 그래서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라].” 그렇습니다. 그는 그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보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양심을 시험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거듭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였읍니다. 마침내 환관장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였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입장을 취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참으로 축복하셨읍니다. 그들은 진미(지방과 피 등이 들어 있지 않은)를 먹지 않고 단순한 채식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훈련받는 3년 기간 끝에 가서는 다른 모든 연습생보다 더 건강하고도 현명하다는 것이 드러났읍니다.—다니엘 1장.

16 또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세워놓은 신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한 일은 그들을 아주 눈에 띄게 즉 아주 다르게 만들지 않았읍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의 신상에 절하기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그의 앞으로 소환하였을 때에, 수천명의 높고 낮은 사람들의 시선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로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의 적들이 ‘다니엘’을 공직에서 쫓아내기 위하여 한 법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였을 때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려진 창문 앞에서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게 해야 할 필요는 없었읍니다. 그는 비밀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었읍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왕의 조서를 겉으로나마 따른다는 인상을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담대하게 다르게 행동한 것에 대하여 기적적인 구출과 영전을 하게 하심으로써 얼마나 크게 축복하셨읍니까!—다니엘 3장과 6장.

예수 그리스도의 본

17-19. 예수께서 다르게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음이 예수의 생애에서 어떠한 사실들을 보아 분명합니까?

17 여호와의 종들은 눈에 띄게 다르게 보일 만한 용기를 가질 필요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오심으로써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셨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들, 제사직과 침례자 ‘요한’의 예비적 사업의 혜택까지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 지도자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이었읍니까! 그리고 예수의 행로도 그들의 종교적 관습과 행실과는 얼마나 대조적이었읍니까! 예수의 숭배의 “새 포도주”와 전통적 ‘유대’주의의 “낡은 가죽 부대” 사이의 차이를 타협하거나 경시하시지 않고 예수께서는 담대하게 모든 사람들이 다른 점을 볼 수 있도록 하셨읍니다.—마태 9:14-17.

18 또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권위있게 가르치는 방법과 지상에 있는 평민들과 자유스럽게 어울리는 면으로써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나타내셨읍니다. (마태 7:29; 9:11)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가르치는 이유에 있어서도 현저하게 다르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사람의 비위나 맞추는 분이 아니었음이 명백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분이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그 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적들까지도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라고 불평하였지만 통치자나 피지배자들의 인기를 구하려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명백합니다. (요한 12:19) 그분은 담대히 “··· 하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5:27-48) 그리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와 같은 말씀도 하셨읍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그분께서 마치 듣는 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동요시키려고 하신 것 같이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귀만 즐겁게 하는 전파자가 아니셨읍니다!—요한 2:19; 6:53; 8:58.

19 심지어는 예수의 제자들까지도 종종 솔직함에 당황하여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줄 아시나이까?”라고 질문한 경우가 있었읍니다. 만일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통으로 헛되게 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인하여 걸림이 되었다면, 예수께서 그들을 위선자, 뱀, 독사의 자식, 다름아닌 마귀 ‘사단’의 자식이라고 통렬히 혹평하셨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떠하였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일 때문에 다르게 되는 것을 잠시도 주저하지 않으셨읍니다. 또한 예수께서 두번씩이나 탐심 많은 상인들을 아버지의 성전에서 내어쫓으실 때에 보이신 바와 같은 방법 때문에 다르게 되는 것도 주저 하지 않으셨읍니다.—마태 15:12; 23:13-39; 마가 11:15-18; 요한 2:13-17; 8:44.

예수의 제자들 역시 달랐다

20, 21. 예수의 사도들과 초기 제자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달랐읍니까?

20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본을 따랐으며, 같은 방법으로 같은 하나님을 숭배하였음으로, 그들도 예수와 같이 그들의 동료 ‘유대’인들과는 달랐다는 귀결에 이르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가 오랫 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는 이상한 소식과 그들의 전도 방법은 그들을 뚜렷이 다르게 만들었읍니다. 그들의 적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를 입증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음을 보고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고 놀랐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예수의 제자들을 본래 배운 것이 없는 어부들과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 사도가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임을 알았읍니다.”—사도 4:13, 새번역.

21 우리는 예수의 초기 제자들과 사도들 중에서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사도 ‘바울’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읍니다. 그는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베냐민’ 지파에 태어났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에 있어서는 [엄한, 열광적인] ‘바리새’파 사람이었”읍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는 이전의 모든 친구들과 참으로 달라졌읍니다. ‘바울’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 일군들을 “천하를 어지럽게 한 이 사람들”이라고 고소하였읍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의 변명을 하였을 때, ‘베스도’가 “‘바울’아, 네가 미쳤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라고 외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바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물의 제도를 따르지 않도록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확실히 자기가 가르친바 대로 살았읍니다.—빌립보 3:5, 6, 새번역; 사도 17:6; 26:24, 새번역; 로마 12:2.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도 달랐다

22-25. (ㄱ)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종교에 있어서 현저하게 달랐읍니까? (ㄴ) ‘가이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떠하였읍니까? (ㄷ) 도덕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하였읍니까? (ㄹ) 서로 사랑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하였읍니까?

22 사도들이 죽어 잠자게 된 직후 즉 “사람들이 잠잘 때”에 비록 원수 ‘사단’ 마귀가 와서 곡식 밭에 가라지를 뿌리기는 하였지만, 곡식 밭은 즉각적으로 가라지 밭이 되지는 않았읍니다. (마태 13:25) 그러므로 초기 교회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초기 여러 세기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주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다른 점은 최소 네 가지 독특한 점에 있어서 현저하였읍니다. 한 가지는 그들이 종교 문제에 있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달랐읍니다. 그들의 신앙과 숭배 형식만이 독특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만이 참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되다고 주장한 점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하였읍니다. 한 교회 역사가는 그 점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의 하나님을 ‘이시스’나 ‘미드라스’나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범주에다 둘 수는 없었다”고 표현하였읍니다. ‘로마’ 황제들은 여러 가지 다른 종교들을 관용하였지만 “‘로마’의 신들과 다른 모든 종교의 신들을 다 같이 거짓이라고 가르치며, 모든 인류를 그 신앙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종교에 대하여는 관용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23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그 사물의 제도의 다른 부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현저하게 달랐읍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정부에서 공직을 갖는 일과 ‘가이사’ 군대에 복무하는 일을 거절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물질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더이상 물질적 부가 그들이 얻고자 노력하는 목표가 아니고 전파하는 활동을 촉진시키는데 사용되는 수단에 불과하였읍니다.

24 동일하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도덕면에 있어서 현저하게 달랐읍니다. 그 당시 ‘로마’와 희랍 문명에는 온갖 부도덕한 방식이 만연해 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숭배의식에 성적부도덕이 한 몫을 차지하였으며 동성애와 같은 성적 도착이 유행하였읍니다. 역사가들은 이 점에 있어서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달랐는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흠없는 생활, 비난할바 없는 도덕, 훌륭한 시민의 신분과 그리스도인다운 우아함에 대한 증거가 있다.”

25 끝으로 이들 초기 그리스인들은 서로 비이기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면에 있어서 현저하게 달랐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생활하였읍니다.—요한 13:34, 35.

26. ‘아벨’로부터 사도 시대 이후까지의 여호와의 종들에게 있어서 무슨 사실이 현저하였으며, 우리 시대는 어떠합니까?

26 영감받은 기록과 다른 기록은 똑같이 여호와의 종들이 ‘아벨’의 시대로부터 사도 시대 이후 초기 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들 주위에 살던 사람들과 현저하게 달랐다는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입증해 줍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는 어떠합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렇습니다. 다음 기사가 그 점을 잘 알려 줄 것입니다.

[514면 삽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담대하게 다르게 행동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