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젊은이의 미래는 무엇인가?
“너는 청년의 때[에] ···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 12:1.
1, 2. 1914년 이후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젊은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한 폭력 시대에 태어났읍니다. 폭력 시대는 군인과 민간인 천 삼백여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 파괴전이었던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시작되었읍니다. 그 대전의 무서운 유혈과 폭력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더욱 큰 충격적인 비인도적 행위의 문을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2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20년이 못되어 ‘나치’ 독일에는 극악한 정치범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그곳에서 수배만명의 수감자들이 조직적인 학살을 당하였읍니다. 그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폭발하여 제1차 세계 대전보다 더욱 큰 폭력과 무자비로 2천 2백만명의 생명을 빼앗아 갔읍니다. 이것은 활화산의 폭발처럼 주기적으로 발생하던 소규모적인 여러 전쟁의 뒤를 이어 일어났읍니다.
3. 세계 대전들이 인간에게 미친 도덕적 영향은 어떠한 것 같습니까?
3 인간이 동료 인간에게 나타낸 이러한 비인도성은 오늘날 이 폭력 시대에 태어난 어른들과 젊은이들에게 영속적이고도 해로운 영양을 끼친 것 같읍니다. 인간의 생명과 법과 질서와 선한 도덕에 대한 존경심은 크게 흔들렸읍니다. 요즈음 의무에 태만한 젊은이들이 파괴와 불법의 이성 없는 행위를 일삼는 것은 보통 있는 일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살인, 강도, 강간, 절도 및 기타 범죄들이 매년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는 것도 보통 있는 일입니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도시를 사실상 전쟁 마당으로 만드는 난동도 증가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오래 전에 성서에 예언된 대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지고 있는 사실들을 보고 있읍니다.—디모데 후 3:13.
4.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공포로 가득차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의 경향을 볼 때 미래는 공포에 가득차 있읍니다. 그들은 폭력과 불법의 성장에 정지가 없음을 알수 있읍니다. 그들은 또한 파멸적인 세계적 핵 전쟁의 계속적인 위협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읍니다. 예언된 대로 그들은 “땅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고 있읍니다.—누가 21:26.
5. 젊은이들이 그들의 미래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질문들은 무엇입니까?
5 그러면 오늘날 젊은이의 미래는 어떠할 것입니까? 계속 발생하고 있는 어느 전쟁에서 당할 난폭한 죽음이나 불구일 것입니까? 법과 질서가 완전히 파괴된 폭력적 사물의 제도에서 영위하는 불확실하고 공포에 찬 삶일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추산하는 것처럼 수억의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을 지구를 덮는 핵 전쟁의 전멸일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보다 더 좋은 세계적인 사물의 제도에서의 평화스럽고 안전한 미래일 것입니까?
6. 젊은이들이 그들의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왜 유익합니까?
6 인간은 미래를 내다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창조주께서는 내다 보실 수 있읍니다. 젊은이들은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므로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미래가 가능한 방법을 배울 수 있읍니다. 그 미래는 젊은이들이 꿈꾸는 것보다도 더 좋은 미래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미래에 관하여 논하기 전에 먼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현 죄많은 인간의 폭력적인 세계에 대하여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미래는 또한 오늘날의 수많은 젊은이의 미래이기도 할 것입니다.
‘노아’ 시대와 같음
7. 1914년 이후의 시대는 어느 때와 비교될 수 있으며, 그리고 어떤 면으로 같습니까?
7 1914년 이후의 시대는 인간 역사상 폭력과 불법으로 특징되었던 다른 하나의 시대와 비교될 수 있읍니다.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선한 도덕 표준을 무시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복지와 유익에는 관심이 전혀 없이 이기적 욕망 대로만 행하였읍니다. 성서를 열어서 창세기 6:5을 읽어 보십시오. 거기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하였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제 11절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 한지라.” 그것은 오늘날의 온 땅의 상태와 꼭 같습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대홍수 직전의 시대는 1914년 이후의 시대와 잘 비교됩니다.
8. 여호와께서는 그때 세상의 악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셨읍니까?
8 이제 그 세상의 널리 퍼진 악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셨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세 6:13, 17) 그리고 그 일은 정확하게 그대로 되었읍니다. ‘노아’가 건조한 거대한 방주에서 안전을 얻지 못한 모든 인간들과 공기를 호흡하는 지면의 모든 생물들은 익사하였읍니다. (창세 7:17-23) 그러나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일곱명은 보존되었으며, 물이 삔 후 다시 생육을 시작하였읍니다.
9. ‘노아’ 시대에 있었던 일은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심장합니까?
9 사천여년 전에 발생하였던 이 역사적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께서 폭력을 일삼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는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셨는가를 알리는 하나의 예입니다. 현 죄많은 인간 세계도 그때보다 더 악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만큼은 악하지 않읍니까? 그렇다면 현 세상을 향해서도 창조주께서 분노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이치적이 아닙니까? 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참으심이 다하였던 것처럼 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참으심도 곧 끝나게 될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는 현 폭력적인 사물의 제도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읍니까?
10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실 일을 미리 경고하시면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계시 11:18)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의 세상에 대하여 행동을 취하셨을 때 그 일의 갑작스러움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경악에 사로잡혔읍니다. ‘노아’가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그들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 죄많은 인간 세상도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하는 사실에 주의하십시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로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 전 5:2, 3) 피해자가 기대하지 않을 때 도적이 침입하여 불시에 도적질해가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 대하여 목적하신 멸망이 불시에 사람들을 엄습할 것입니다.
11. 홍수 전 세상의 멸망은 왜 현 사물의 제도에 다가오는 멸망의 경고라고 생각할 수 있읍니까?
11 현 시대를 ‘노아’ 시대에 비기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누가 17:26, 27, 30) 사람들의 행실과 불충실, 부도덕, 폭력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냉담은 참으로 비슷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홍수 전 세상의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한 현 불순종하는 자들의 세상에 대한 사전 경고임을 알도록 할 생각이 없으셨다면 그러한 비교를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세상에 일어났던 일과 현 세상에 일어날 일을 날카롭게 비교함으로 그 사실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는 현 “하늘”과 “땅”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베드로 후 3:5-7.
12. (ㄱ) 1914년 이래 현 시대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읍니까? (ㄴ) 하나님의 목적과 명령을 무시하는 젊은이에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2 이러한 예언들과 기타 예언들은 1914년 이래 유례 없는 이 폭력의 시대를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 혹은 “마지막 날” 이라고 확정적으로 알려 줍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목적과 명령을 무시하는 오늘날의 젊은이의 미래가 매우 짧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을 무시하고 현 사물의 제도에 얽매여 있으면서 어떻게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생존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읍니까? 그들은 재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침몰하는 배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배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읍니다.
13-15. (ㄱ) 오늘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그것은 많은 젊은이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왜 변화가 필요합니까?
13 이 “마지막 날”은 현 악한 인간 세상의 행로에서 도망해서 당신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할 때입니다. 현 폭력과 불법, 부도덕, 정치적 상업적 부패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경의 세상을 버리고 깨끗함과 그리스도인의 순종의 길 그리고 여호와께 대한 충성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노아’와 그의 집안 식구들과 같이 우리가 오늘날 살아남을 수 있는 행로입니다.
14 이것은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개성과 사고의 변화를 가져와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감으로서는 더는 살아남을 것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음행이나 기타 형태의 도덕적 불결을 금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하나님께서 왜 보존하시겠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을 사랑한 홍수 전 세상의 사람들을 보존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 세상의 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치적이 아닙니다. 성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 4:19) 그러므로 개성의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15 방탕하며 부모에게 불경을 보이며 정당한 권위에 반역하며 정신을 혼미시키는 환각제의 복용을 포함한 쾌감을 추구하고, 무신론적인 성인들의 불경건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젊은이가 어떻게 죄많은 현 인간 세상의 종말을 살아남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그러한 젊은이는 홍수에 멸망된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까? 그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 전부는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만일 그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변화시키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않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보존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읍니다. (에베소 4:23, 24) 그러한 젊은이의 생명은 현 사물의 제도에 빨리 도래할 예언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전쟁”에서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계시 16:14.
16. 모든 젊은이가 다 하나님의 율법과 목적에 냉담합니까?
16 그러나 오늘날 모든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목적과 선한 율법에 냉담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전부가 세상 젊은이들의 뒤틀린 생각이나 불법적인 행위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청년의 때”에 그들의 창조주를 기억하는 얼마의 젊은이들이 있읍니다. (전도 12:1) 그들의 미래는 다릅니다.
훌륭한 미래를 가진 젊은이들
17. 오늘날 어떻게 얼마의 젊은이들은 다릅니까?
17 대홍수 전에 다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입각한 생활을 선택한 여덟 사람이 살았읍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폭력과 부도덕한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다수가 행하는 불법과 불경건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이들은 그들 나이 또래의 승인을 받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소수의 젊은 소년 소녀들입니다. 다른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간에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인도를 받고 있읍니다.
18. 여호와께서는 젊은이에게 어떤 선한 충고를 주시며, 그 결과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읍니까?
18 하나님의 지혜에 존경심을 갖고 있는 이들 젊은이들은 그의 기록된 말씀이 추천하는 지혜로운 충고를 듣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주의를 기우리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면] ···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언 2:1, 2, 5, 9.
19. (ㄱ) 그들은 왜 세상 사건에 당황하거나 세계 지도자들의 행위에 환멸을 느끼지 않습니까? (ㄴ) 그들은 무엇을 할 용기를 가지고 있읍니까?
19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유의하므로 세상 사건의 진전에 당황하지 않으며 현재와 같은 인간 지도자들의 실패에 환멸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건들이 현 시대를 “마지막 날”로 특징짓는 증거임을 인정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죄많은 현 폭력적인 인간 세상에 얽매인 자들의 불유쾌한 미래를 알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목적과 율법에 일치되는 다른 행로로 힘차게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기와 담을 쌓는 행로를 걸어야 하며 남이 욕을 하는 행로를 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베드로 전 4:4.
20. 하나님과 불화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행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음을 무엇이 명백히 해 줍니까?
20 다수와 함께 행동하고 또 그들의 승인을 얻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만일 ‘노아’의 세 아들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에 굳게 서는 대신 그렇게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그들의 미래는 홍수에서 그 낡은 사물의 제도와 함께 끝이 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를 회고해 볼 때 다수의 생각을 기쁘게 하는 것을 거절한 그들의 행동은 확실히 올바르지 않았읍니까?
21. (ㄱ) 젊은 사람들은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ㄴ) 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평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무엇이 더욱 중요합니까?
21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지 간에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에 굳게 섰음을 회고하며 즐거워할 수 있을 때도 멀지 않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은 그 당시 세대를 멸망시킨 홍수 후에 자기들이 살아났을 때 틀림없이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관하여 생각하거나 평할 불쾌한 일이나 심지어 그들이 당신에게 가할지도 모르는 일보다도 살아있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평하든 간에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로 행하여 그들이 사라진 후 오래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들이 지금 당신을 천한 개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전도 9:4.
22.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젊은이 앞에는 무슨 장래가 놓여 있읍니까?
22 현 낡은 사물의 제도가 지나갈 때 하나님의 승인을 얻은 젊은이들은 영원히 이 땅에서 계속해서 살 전망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장래입니까!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 1서 2:17.
23. 왜 영원한 생명의 미래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까?
23 아마 당신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인 영원한 미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같이 보일지 모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늙지 않거나 죽지 않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생명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아들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이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요한 3:16; 히브리 5:9) 나무의 수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큰 삼목(杉木) 중 어떤 것은 삼천년 이상이나 된 나무가 있으며, 그 나무는 아직도 싱싱합니다. 나무를 이렇게 장수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면 자기를 사랑하고 숭배하고 순종하며 섬기는 지성있는 피조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 이치적이 아니겠읍니까?
젊었을 때 창조주를 섬김
24, 25. (ㄱ) 젊은이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습니까? (ㄴ) 물질적인 것을 위하여 사는 것이 어리석음을 설명하십시오.
24 상업적인 세상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젊은 힘과 예리한 정신을 바쳐 이기적인 유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영속적인 유익이 있읍니까?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맹렬히 추구하였던 물질적인 것은 홍수가 임했을 때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읍니다. 돈과 물질적인 소유를 추구하는 것보다 당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을 첫째로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직막 날”에 있어서 젊은이들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보다 창조주께 대한 봉사를 첫째로 둠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누가 12:15, 22, 23.
25 물질적인 소유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손되며 사용하면 없어지므로 사람에게 주는 유익도 시효가 있읍니다. 예를 들어 자기의 젊은 힘과 정력을 사업에 바쳐 결국 좋은 수입을 얻고 있는 한 젊은이를 고려해 보십시다. 그는 많은 금액의 은행 예금 통장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들의 안전도는 어떠합니까? 경제 위기는 그의 부동산의 가치를 헐값이 되게 할 수 있고 그 은행이 문을 닫게 되어 그에게 아무 것도 남지 않게 할 수 있읍니다. 심지어 정부가 보증한 저축예금이라 할지라도 극심한 금융 위기가 도래한 국가에서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또 한편으로는 치닫는 급속한 ‘인프레’가 당신의 저축의 가치를 먹어들어 갈 수 있읍니다. 마지막까지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찌라도 그가 일하고 수고한 모든 것을 남겨둔채 그는 졸지에 죽을 수 있읍니다. 그때 그의 모든 돈과 물질의 소유가 그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읍니까?—누가 12:16-21.
26.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왜 더 좋습니까?
26 젊은이는 창조주를 섬김으로써 그의 정력을 더 유익한 목적에 바칠 수 있읍니다. 그러면 그는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서 보존되기 위하여 필수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파손되지 않으며 죽을 때에도 유익이 끝나지 않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섬김으로써 홍수를 통하여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보물을 쌓았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승인과 축복과 보호의 보물입니다. 우리가 현 불순종하는 인간 세상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으므로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습니까?—마태 6:19, 20.
27, 28. 창조주를 섬기는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 젊은이들은 어떠하며, 그들의 미래는 그를 섬기지 않는 젊은이들의 것보다 왜 더 훌륭합니까?
27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인 전도봉사에 종사함으로써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성서적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고 있읍니다. (사도 20:20; 마태 28:19, 20; 히브리 13:15) 사람들의 마음을 창조주께 돌리며 그들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인도하는 행로를 걷게 해 주는 것은 선한 사업입니다.
28 비록 이들 젊은이들이 그들의 전도봉사로부터 물질적 유익을 받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영원히 계속하는 영적 유익을 받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고 있읍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 그를 섬기고 순종하는 이러한 젊은이들을 위하여 목적하신 미래는 창조주를 무시하는 젊은이들 앞에 놓여 있는 짧은 미래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쾌락과 물질적인 부와 개인적 명성을 추구하며 짧게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29, 30.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사물의 제도에서 살 것을 기대할 있읍니까?
29 창조주를 섬김으로써 다수의 젊은이들과 다르게 처신할 것을 선택한 이 젊은이들이 오늘날과 같은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불안전한 사물의 제도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현 폭력적인 제도와 그것에 계속 고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종말을 가져오실 때 새로운 질서가 대치될 것입니다. 살아남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의로운 통치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3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의 왕으로서 공평과 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땅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누릴 것입니다. (누가 2:14; 이사야 9:6, 7)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목적하신 것이며 그가 목적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실패되는 일이 없이 실현될 것입니다.—이사야 55:11.
젊은이를 위한 웅대한 특권
31. 하나님의 조직 안에 있는 봉사의 특권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며, 그 특권 중의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31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의 지적 조직 내에는 헌신한 젊은이들을 위한 웅대한 봉사의 특권들이 있읍니다. 이 특권들은 동료 인간들에게 유익이 되는 뜻있는 사업을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그 특권의 더 큰 중요성은 그들의 창조주에게 영예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권 중의 하나는 많은 시간을 바쳐 하나님의 목적을 선포하고 자유를 주는 그의 기록된 말씀의 진리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것을 ‘파이오니아’ 봉사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의 한 사람인 ‘바울’이 한 전도 사업에 비교할 수 있읍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그의 시간을 창조주를 섬기는 이 훌륭한 일에 바쳤읍니다.
32. ‘파이오니아’들은 어떻게 그들 자신의 경비를 충당하며, 그들은 어떻게 “추천장”을 쌓고 있읍니까?
32 ‘바울’이 자신의 경비를 지출하기 위하여 부업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 ‘파이오니아’들도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사도 18:3; 20:34) 이들 전 시간 여호와의 종들은 세속적 부업을 가짐으로써 한 달에 실제로 최소한 100시간을 하나님의 목적을 사람들의 가정에서 가르치며 전도하는데 바칠 수 있게 합니다. 젊은 ‘파이오니아’들에 의한 이 비이기적 사업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승인을 받도록 도우며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 후에 올 놀라운 미래로 인도하는 길을 따르도록 돕고 있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이들 젊은이들은 그들의 선한 사업의 증거인 “추천장” 즉 산 편지들을 쌓고 있읍니다.—고린후 3:1-3, 새번역.
33. 젊은 ‘파이오니아’들이 가진 부가적인 봉사의 특권에 대한 전망은 무엇입니까?
33 ‘파이오니아’ 봉사에 들어선 젊은이들에게는 외국에서의 선교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 「길르앗 왙취타워 성서학교」에 갈 수 있는 웅대한 전망이 있읍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봉사의 특권입니다. 그들은 초가집이든 궁전같은 집이든 바로 사람들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자유를 주는 진리를 가르칠 수 있기 위하여 그 사람들의 언어를 배울 것입니다. 이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젊은이들 가운데 얼마는 결국 ‘왙취 타워 협회’의 여행하는 대표자로서 특별한 분야에 사용되거나 혹은 어떤 나라 전체의 전도사업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게 될 수도 있읍니다.
34. ‘왙취 타워 협회’ 지부 중 하나에서 창조주을 섬길 욕망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특권이 기다리고 있읍니까?
34 또 다른 젊은이들에게는 ‘왙취 타워 협회’의 구십개 이상의 지부 중 한 곳에서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특권이 있읍니다. 이들 지부 중의 얼마는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데 사용되는 인쇄물을 출판하기 위한 인쇄 시설을 구비하고 있읍니다. 특히 이들 지부들은 하나님의 봉사에 그들의 젊음의 정력을 바치기를 원하는 헌신한 젊은 남녀들이 선용할 수 있게 되어 있읍니다. ‘뉴욕 부루클린’에 있는 ‘왙취 타워 협회’ 본부와 농장에는 약 1,400명의 헌신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있으며 그들 중의 약 900명이 삼십세 전의 젊은이들로서 성서와 성서 보조물들을 생산하는 일이나 이 거대한 시설의 운영을 위하여 그들의 전 시간을 바치고 있읍니다. 그들은 저녁과 주말을 역시 그리스도인 전도봉사에 사용하고 있읍니다. 현 폭력적인 사물의 제도의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젊은이들이 창조주를 섬기는 일은 얼마나 훌륭한 행로입니까?
35. 젊은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하도록 격려를 받고 있읍니까?
35 당신이 만일 젊은이라면 왜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거나 빨리 지나가 버릴 현 사물의 제도에서 부와 지위를 얻으려고 당신의 생명을 낭비하겠읍니까? 왜 나쁜 것만 추구하여 생명을 홍수에서 끊긴 ‘노아’ 시대의 젊은이들과 같이 되겠읍니까? 1914년 이후 현 시대를 특징 짓는 “마지막 날”에 관한 증거를 고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기록된 말씀에 두신 지혜로운 충고에 유의하고 그가 하시는 일과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일에 당신의 믿음을 두십시오. 당신의 창조주를 섬기고 그가 순종하는 인간을 위하여 목적하신 놀라운 미래를 즐기십시오.
[274면 삽화]
그리스도인 전도봉사에 종사함으로써 “보물을 하늘에” 쌓아 미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