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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믿음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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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믿음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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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12/1 540-545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믿음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히브리 11:6.

1. 어떠한 면으로 정상적 신생아는 모두 동일합니까?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없읍니다. 신생아는 모두 믿음이 없읍니다. 모든 신생아는 믿음이 없다는 면에서 동등할 뿐 아니라, 정상적이라면 후기에 믿음을 발전시킬 동일한 정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도 동등합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씨가 뿌려지고 그 다음 물과 양분과 손질이 주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믿음을 획득하고, 어떤 사람은 만년에 믿음을 획득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날 때와 마찬가지로 믿음없이 죽습니다.

2. 믿음과 보물은 어떠한 면으로 유사합니까?

2 어떤 면으로 보면 믿음은 보물에 비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믿음은 실로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유산이 아니라, 개개인이 일생을 통하여 축적하는 보물이며, 각자의 노력 여하에 비례하여 증가합니다. 그리고 다른 보물과 같이 잘 간수하거나 보관하지 못하면 곧 상실합니다.

3, 4. (ㄱ) 사전에 의하면 믿음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ㄴ) 당신은 어떤 권위를 믿음의 기초로 삼아야 합니까?

3 그러면 믿음을 어떻게 정의 혹은 묘사하면 좋겠읍니까? 모든 정상인이 동등한 획득력을 가지고 있는 이 정신적 특질, 배양해야만 할 이 실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큼 값진 이 보물, 상실할 수도 있는 이 거룩한 재산, 영원한 생명을 받을 사람 모두에게 요구되는 이 영적 마음 상태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4 사전에 의하면, 믿음이란 어떠한 신조를 자기 자신의 지식이나 추리나 경험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위에 의거해서 참이라고 정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믿음을 가진 아이는 처음에는 자기 부모와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믿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아이는 자기 부모와 선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님을 알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가 믿음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더 높은 권위를 추구하게 됩니다. 실로 누구든지 강력하고 견고한 믿음을 가지려면, 인간보다 더 높은 권위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5. (ㄱ) ‘바울’은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였읍니까? (ㄴ) 희랍어 ‘히포스타시스’가 어떻게 믿음을 적절히 묘사하는지 설명하십시오.

5 사도 ‘바울’은 믿음을 “바라는 사물의 보증된 기대[희랍어 ‘히포스타시스’]이며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실체의 명백한 증거[희랍어 ‘엘레그코스’]”라고 정의하였읍니다. (히브리 11:1, 신세) 여호와께서는 장차 이루어 주실 약속을 많이 하셨읍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랄지 모르나 그러한 표현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변덕스러운 바람에 불과할 경우가 있읍니다. 믿음은 기대 이상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것을 지지하고 옹호하고 보장할 정도로 보증된 기대입니다. 이것이 ‘히포스타시스’의 의미인데, 이 말은 고대 ‘파피루스’ 상업 거래문서에서 거래를 보증하는데 사용된 말입니다.

6. 믿음을 희랍어 ‘엘레그코스’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6 혹은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다면, 믿음이란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실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현재의 육안으로는 지구 전체가 낙원화된 증거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낙원 상태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장차 이루어질 것으로 약속된 지상 낙원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지지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엘레그코스’)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이것이 유치한 소원이나 혹은 가설과 철학에 근거한 꿈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쥐고 있는 증거는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그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박할 수 있읍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것을 밝혀 주고 확실하게 해 줍니다. 이것은 적대자의 압력과 회의론자의 반대심문을 견딜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믿음은 전복될 수 없으며 거짓으로 판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7. 한 주석가는 사도가 믿음을 정의한데 관하여 무엇이라고 논평하였읍니까?

7 히브리 11장 1절에 관하여 논평하면서, ‘마커스 도즈’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구체적으로 이 단어들(‘히포스타시스’와 ‘엘레그코스’)에 의하면 믿음이란 단순히 희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장래의 것에 대해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모든 실체를 부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사물의 실체를 절대적으로 확신시켜 주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어 준다.”—「해설자의 희랍어 성경」 4권, 352면.

8, 9. (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하여 어떻게 지도하십니까?

8 그러나 앞의 기사에서 풍부한 증거를 든 것처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후 3:2) 특히 역사의 전환기인 1914년 이래로 그러합니다. 그 일차적 원인은 성서의 마지막 책에서 말하였듯이 ‘사단’과 악귀들이 하늘로부터 이 땅 근처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 12:10-12)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여호와께서는 전 인류를 ‘사단’의 손아귀에 방치해 두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른 행로를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니다. 계시록 14장에 보면, ‘요한’이 자기 환상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9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시 14:6, 7.

10. 큰 무리는 이 천사의 선포에 호응하여 어떻게 그들의 믿음을 전시합니까?

10 계시록은 또한 이 복음 즉 기쁜 소식에 호응하여 “큰 무리”가 만국으로부터 나올 것도 확약합니다. 이들은 믿음없는 세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숭배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 .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계시 7:9, 10.

11, 12. 지난 50년간 믿음을 전시한 사람들의 증가는 무의미한 통계가 아니라 무엇을 의미합니까?

11 현 20세기의 역사를 살펴 보면, 특히 1919년 이후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이 선포된 이래로 여호와를 충실히 찬양하는 사람들의 수효가 여러 배로 증가하였읍니다. 이러한 기록적 증가는 다음의 도표가 잘 표시해 줄 것입니다.

1918 3,868

1928 23,988

1938 47,143

1948 230,532

1958 717,088

1968 1,155,826

12 이것은 생명없는 전자계산기로 집계한 무의미한 숫자가 아닙니다. 매달 평균 왕국 전도인들이 수천명 선에서 1968년의 일백만명 선으로 증가한 이면에는 감격과 행동으로 가득찬 역사적 내용이 있읍니다. 이 큰 무리에 속한 각자가 전시한 믿음과 결단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이 낡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고, 그들의 생명을 여호와께 헌신하였고, 그 다음 그 결과로 받는 폭행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왕국 소식을 전파하는 대열에 참가하였읍니다!

200,000명은 어디로 갔는가?

13. 그러나 어떠한 통계가 특히 우리에게 걱정이 됩니까?

13 이러한 괄목할만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실이 있읍니다. 지난 20년간의 봉사연도(1949년부터 1968년까지)에 왕국 전도인은 230,532명에서 1,155,826명으로 증가하여, 925,000명이 늘어났읍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기간에 여호와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새로 침례받은 사람들의 수는 1,262,187명이었읍니다. 침례받는 사람의 수와 전도인으로서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총수 사이에는 336,893명의 차이가 납니다. 매년 보고를 기준으로 하여 사망율을 넉넉잡아 매년 1%로 잡아본다면, 그 20년간 충실을 지키다가 죽은 전도인의 수는 137,000명 이상이 됩니다. (계시 2:10) 이렇게 생각해 보면, 소재를 알 수 없는 199,000명 이상의 사람, 즉 200,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봉사에 자기의 생명을 헌신할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가졌었으나, 중도에 믿음을 상실하고 전파사업을 중단하였읍니다.

14, 15. (ㄱ)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우려할만한 일이기는 하나, 왜 놀라운 일은 아닙니까? (ㄴ) 그러한 자들이 떠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러나 우리는 악귀의 영감을 받은 선전이 전세계적으로 풍미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의 믿음이 파괴되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디모데 전 4:1.

15 “믿음에서 떠”난다 함은 한번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악귀들의 영감받은 선전과 교설을 “좇”기 때문에, 즉 청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상사는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읍니다.

16. 예수의 비유가 알려 주듯이 사람들이 믿음을 상실하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해 보십시오.

16 첫째 ‘그룹’은 진리에 비교적 새로운 사람입니다. 이들은 별로 지식이 없으면서 성급하게 헌신을 하였다가, 나중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곧 떨어져 버립니다. 예수의 비유가 알려 주듯이 믿음의 씨를 새들이 먹어버렸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완강하여 뿌리를 박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떤 사람의 믿음은 최초의 뜨거운 반대가 맹타할 때 흔들립니다. 혹은 기만적 물질주의와 근심의 가시가 자라서 그들이 가진 조그만 믿음을 질식시켜 버릴지도 모릅니다.—마태 13:3-9, 18-23.

17. 둘째 집단은 무슨 이유로 믿음을 버렸읍니까?

17 둘째 ‘그룹’은 소위 신생아들이 아니라, 5년이나 10년이나 혹은 20년 이상의 활동적 봉사 기록을 지닌 온전히 진리에 장성된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났읍니다. 어떤 이들은 부도덕한 행실로 제명처분 당하였고, 어떤 이들은 고압적이고 교만하게 되어 “악한 종” 반열 혹은 “불법의 사람” 반열에 가담하였읍니다. 그들은 주와 주의 조직에 반항하고, 그들의 형제들을 치기 시작하였읍니다.—고린도 전 5:1, 11-13; 마태 24:45-51; 데살로니가 후 2:3, 4.

18. 여호와께서는 배약하는 자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18 떨어져 나간 이유야 여하하든지 간에 여호와께서는 일단 서약을 한 다음 배약하는 자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배약을 일년 만에 하든지 이십년만에 하든지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엄숙한 서약을 한 다음에 배반하는 것보다는 헌신의 서약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 . .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 . .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 . . 하나님을 경외할찌니라.” (민수 30:1, 2; 전도 5:4-7)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 32에서 이 문제를 일층 강조하여 누구든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고의적으로 배반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경고하였읍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은 중단하는 자가 아니라, 헌신의 서약을 고수하려는 결단력과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과 결단력을 구축하는 방법

19. 믿음은 무엇 위에 구축해야 합니까?

19 우선 당신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구원에 관한 교리적 지식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에 부가하여 당신은 또 다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즉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진리에서 이탈하도록 만드는 올무와 함정에 관한 지식도 가져야 합니다.

20. 우리의 대적은 누구이며,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방위할 수 있읍니까?

20 당신의 대적은 마귀이며, 마귀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전멸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하나의 강력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온 세상은 마귀의 세력 아래 들어 있읍니다. 그는 이 사물의 제도의 신입니다. (요한 1서 5:19; 고린도 후 4:4; 요한 14:30; 에베소 2:2)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하고 ‘베드로’는 경고합니다. 그 어떤 “자”는 당신과 같은 어떤 사람이며, 여호와께 헌신한 어떤 사람이며, 여호와와 관계를 가진 어떤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다음 절에서 말한 바에 유의하십시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베드로 전 5:8, 9) 그러므로 당신은 마귀와 악귀들을 대적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중단하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200,000명이 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마귀와 그의 세상 조직이 여하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진 당신의 충실한 형제들이 백만명 이상 있읍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 1서 5:4.

21. 고대의 경우와 같이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합니까?

21 당신의 대적이 사용하는 전술도 알아 두십시오. 마귀와 악귀들이 주의 헌신한 백성을 믿음에서 이탈시키는데 사용하는 주된 전술의 하나는 그들의 정욕을 자극하여 부도덕한 행실을 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한 때 24,000명의 ‘이스라엘’인이 음행으로 인하여 하루에 죽임을 당한 사실을 상기해 보십시오. (민수 25:9) 그러므로 현대에도 방종, 음행, 간음으로 인하여 수천명이 믿음에서 떠나갔읍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였읍니다. “참 속담[잠언 26:11]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베드로 후 2:22.

22. 성경의 어떠한 충고를 따를 때, 많은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읍니까?

22 마귀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전술은 물질주의입니다. 200,000명 중 많은 수는 물질주의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갔읍니다. 만약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읍니까!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 전 6:8-10.

23. 우리는 믿음을 위한 싸움에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읍니까?

23 그렇습니다, 당신은 ‘유다’가 말한 것처럼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은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유다 3) 당신 자신의 힘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당신의 대적은 주로 초인간적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 . .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에베소 6:10-16.

24. 어떠한 교제를 피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4 이 점도 기억해 두십시오. 즉 나쁜 교제는 당신의 믿음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24,000명의 ‘이스라엘’인이 부도덕한 행실을 하여 죽게된 첫 단계는 나쁜 교제였읍니다. 우리도 나쁜 교제를 가진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읍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은 죽었다”는 무리와 교제한다면, 당신의 믿음이 그들처럼 곧 죽어버릴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들과 함께 영원히 끊어짐을 당할 것입니다.

25.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교제는 왜 좋은 교제입니까?

25 한편 좋은 교제는 당신의 믿음을 보강시켜 줄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에서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과 함께 성서를 연구하는 것은 믿음을 강화시켜 줍니다. 왕국 회관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은 믿음을 강화시켜 줍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집회 장소에서 당신은 성서의 견실한 진리에 기초한 강연을 듣고 믿음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교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마지막 때”에 ‘바울’이 충고한 것처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여야 합니다. (히브리 10:25) ‘유다’가 천거한 것처럼 “거룩한 믿음 위에” 당신 자신을 세워 나가는 것은 최상의 방법입니다.—유다 20.

26, 27. (ㄱ) 믿음은 확신 이상의 것입니까? (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된 왕국을 믿는다는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읍니까?

26 믿음은 단순한 확신 이상의 것입니다. “귀신들도 믿고” 떨지만 그들에게는 참 믿음이 없읍니다. (야고보 2:19) 우리의 믿음을 전시하는 데는 믿음에 일치한 활동이 필요합니다. 행함은 일종의 활동인데,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합니다. (고린도 후 5:7) 단순히 보고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처럼 암야를 방황할 것입니다.

27 성서 필자 ‘야고보’는 우리가 우리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증명한다고 말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이 무가치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야고보 2:18-26) 만약 우리가 여호와의 약속된 왕국을 믿는다면, 우리는 왕국에 관하여 증거하고, 이 왕국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쳐줌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여호와께서는 돌이라도 명하여 소리치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 19:40) 우리가 돌과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면, 돌은 생명을 얻어 찬양과 전파를 하는 전도인이 될 것이고, 우리는 마음과 정신이 돌과 같이 굳어 있기 때문에 마침내는 돌처럼 생명없는 물질이 될 것입니다!

믿음과 더불어 결단력을 가지라!

28. 결단력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 성품인지 설명하십시오.

28 특정 행동을 취하도록 결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결단력의 한 가지 정의입니다. 결단력은 또한 단호함, 자신의 추구를 방해하거나 중단시키려는 시도와 반대를 끝까지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웹스터 국제 사전 3판」 참조)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쁘게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결단력이 없는 사람, 우유부단하고 지조가 없는 사람, 바람이 불 때마다 요동하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구름과 같이 정함이 없는 사람을 성경은 비난합니다. (에베소 4:14; 야고보 1:8; 4:8) 신념과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반대를 당하면 전진하는 대신 후퇴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브리 10:39.

29, 30. 왕국을 위한 경주에 참여하는 자는 왜 모두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까?

29 만약 당신의 믿음을 계속 강화시키려고 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진리를 가졌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여하한 사태가 닥친다 하더라도 충실히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대로 하려는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강력한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조만간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분명히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결론짓습니다.—고린도 전 9:24-26.

30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하여는 결단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승리자는 처음에는 선두를 달리다가 중도에 기권하는 자가 아닙니다. 승리자는 경주를 끝까지 하겠다는 결단력을 가진 자입니다. 빠른 자라고 항상 경주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솔로몬’ 왕은 논평하였읍니다. (전도 9:11)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중단하는 자가 아님]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 24:13.

31. 우리는 왜 우리의 믿음이 극한점까지 시험받을 것을 확실히 예측할 수 있읍니까?

31 우리는 현 세상 상태를 무시할 수는 없읍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현재의 위험과 압력이 큰 것으로 볼 때, 장차 더 커질 것을 예측할 수 있읍니다. 이 죽어가는 마귀의 제도가 임종을 거두기까지 우리의 믿음은 극한점까지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당신도 고통을 많이 당할지 모릅니다.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 . .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1:6, 7.

32. 그러나 우리는 왜 지지부진하거나 기권해서는 안됩니까?

32 어떤 사람들은 마귀와 악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두려워하거나 기권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행동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비겁자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결코 살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계시 21:8) 현명한 길은 온전한 믿음과 결단력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에 난폭한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여호와를 굳게 의지하고 그분께 확신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이 있읍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시 2:10.

33. 여호와께 충실한 자들은 현재와 미래에 어떠한 보상을 받습니까?

33 믿음, 그것도 행함에 의하여 증명된 강력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단호한 결단력, 이것이야말로 여호와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27:11) 이렇게 할 때, 이 위대한 상 주시는 이는 충실한 자들에게 풍부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여러 가지 웅대한 특권을 받게 됩니다. 그들의 즐거움의 잔은 넘쳐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더 영광스러운 상이 놓여 있읍니다. 최고의 상인 영원한 생명은 영원히 그들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갈라디아 3:11; 로마 1:17.

[545면 삽화]

경주자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결단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성품이 없으면 조만간 경주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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