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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바른 전도인이 되도록 기초를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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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바른 전도인이 되도록 기초를 놓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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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6/15 269-273면

올바른 전도인이 되도록 기초를 놓음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라.”—마태 7:24.

1. 마태 7:24-27의 예수의 비유에 있는 “반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위에 무엇을 건축해야 합니까?

반석 곧 바위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이 명확한 대조를 사용하시어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듣고도 행치 않는 어리석은 자의 차이를 설명하셨읍니다. (마태 7:24-27) 그런데, 당신은 이 비유에서 “반석”은 단순히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의하셨읍니까? 오히려 그것은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기초 위에 앞 날의 희망과 전망을 건축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다가오는 새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야고보 2:26.

2. 이 비유에서 폭풍우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어떻게 해야만 자신의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것입니까?

2 폭풍우는 틀림없이 우리의 건축물을 위협합니다. 이 세상 지평선 위에 도사리고 있는 임박한 ‘아마겟돈’의 폭풍우 뿐 아니라, 지금 당장 개개인 건축자들의 일상 생활에서 야기되는 개인적 난관이나 위험이라는 폭풍우가 있읍니다. 이러한 폭풍우는 자기 건물의 기초 곧 순종의 길에 고착한다는 그 기초에 중대한 시험이 될 것입니다. 앞날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전망이 정말 강해서 이들 개인적 성격을 띈 폭풍우를 이겨나가고 드디어는 ‘아마겟돈’이라는 폭풍우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산산 조각이 나서 영적으로 파멸을 당하고 자신까지도 멸망할 것입니까? 어떻게 되느냐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전달된 진리가 그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가, 이러한 진리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인 다음 자기 생활에 적용시켰는가에 따라 좌우될 것입니다.—마태 13:18-23과 비교.

3. 그리스도교국 내에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상징적 ‘집’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날 당신의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수많은 ‘집’들이 상징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을 살펴 보십시오. 증가일로에 있는 현대의 압력, 사건과 재난의 홍수, 변화의 바람 등으로 생긴 폭풍우로 말미암아 수백만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파괴되어버렸읍니다. 그들은 과거 ‘유대’ 나라의 배도한 백성들과 같이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 하고 말할 수 밖에 없읍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20세기 후반에서 앞 날이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으로 가득 찬 것 같이 보입니다. (예레미야 8:15; 이사야 8:22)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그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4. (ㄱ) 현 상태를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지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근본적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4 물질주의, 부정직, 범죄, 부도덕, 심지어 동성애, 이 모든 사실은 자칭 그리스도인 ‘건축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체도 하지 않음을 증거해 주고 있읍니다. 악랄한 국가주의, 인종 분규, 불법한 행동 등을 보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국 교회의 교인이기는 해도 순종이라는 굳건한 기초 위에 집을 짓지 못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읍니다. 종교 조직 자체가 이 전반적인 몰락에 대하여 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조직들은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을 실행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아들이며, 임명된 대변자인 예수에 대한 확신마저 침식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확신 대신 흔들리고 불확실한 철학과 인간의 전통을 심어 주었읍니다. (에베소 4:14; 히브리 13:9) 그러나 모든 책임을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읍니다. 근본적 책임은 개개 종교인 자신들이 져야합니다. 그들은 적어도 자기 교회에서 성서로부터 예수의 말씀을 들었으며, 자기 가정에서 그 말씀을 읽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전혀 실천하지 않았읍니다.

5. 그리스도교국의 영적 붕괴와 크게 대조되는 과거와 현재의 예를 말씀하십시오.

5 그들의 상태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 당시의 상태와 크게 다릅니다. 그 당시의 교인들은 그리스도교의 원칙을 버리고 타협하느니보다는 기꺼이 투옥과 죽음을 택하였읍니다. (사도 4:18-21; 5:27-32, 40-42; 21:11-14) 그리고 그리스도교국의 상태는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교 조직 내에 나타나고 있는 상태와도 크게 다릅니다. 그 그리스도교 조직의 교인들은 전세계에서 볼 수 있으며, 200나라와 바다의 섬들에 살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알려진 이들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폭풍우를 겪고 있으며 그들의 그리스도인 ‘집’도 동일한 타격을 받아 왔읍니다. 그들은 많은 지방에서 심한 박해와 반대라는 형태로 부가적인 폭풍우까지도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베드로 전 2: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었읍니다. 어떻게 하여 이겨냈읍니까?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길, 그리스도의 본과 방법을 따르는 길에 완전히 고착함으로써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중심으로 자기들의 생활과 앞날의 희망을 세워나갔읍니다. (요한 4:32-34) 그들 모두가 기초를 튼튼히 유지하고 실패자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있었던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 전반적인 상태를 보면 놀랍게 견고하며,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내에서 볼 수 있는 비틀거리는 상태와는 크게 다릅니다. 그러한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다운 교육과 진정한 의사 표시의 필요성

6.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교인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6 오늘날 그리스도교국 교회의 교인이 되기 위하여는 어떠한 단계를 거쳐야 합니까? 대부분의 경우 사교 ‘클럽’이나 다른 조직에 가입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개개인에게 확신한다는 의사 표시가 거의 요구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식, 믿음, 확신, 사랑 및 올바른 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자기 표현이 별로 없읍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의 회중에게 편지할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 2:6, 7.

7. 과거에나 지금이나 참 그리스도인들이 견고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교훈을 받”기 시작한 것은 침례받은 후가 아니라 받기 전이었읍니다. 또한 특히 기원 36년 이후, 그리스도인 침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신 대로 여호와의 뜻을 행하겠다는 완전한 헌신의 상징임을 성서는 알려 줍니다. (누가 9:23, 24)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은 방법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입니다. 그렇게 한 후에야 그들은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원으로 인정되었읍니다. (마태 28:19, 20) 물론 가르침은 침례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회중적 마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읍니다. (에베소 4:11-13) 예나 지금이나 참 그리스도인들이 견고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 주된 이유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가르쳐 그리스도의 교훈을 지키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8. “문답식 교육”(catechism)이라는 단어의 성서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8 사도 ‘바울’은 가르침에 대하여 크게 강조하였읍니다. 그는 그의 편지 가운데서 가르침이라는 말로 보편적인 희랍어 단어(‘디다스코’, 마태 28:20의 예수의 명령 가운데 들어 있는 단어)뿐 아니라, ‘카테케오’라는 특별한 단어도 사용하였읍니다. 그 단어에서 ‘문답식 교육’을 의미하는 영어로 ‘카테키즘’(catechism)이라는 단어가 나왔읍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특별한 희랍어 단어를 “그리스도교 교육 전문 용어”라고 하였읍니다. 그것의 문자적 의미는 “울리다” 즉 구두 교육(口頭教育)을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6:6에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구두로 가르침을 받는 자[희랍어, ‘카테코우메노스’, “문답식으로 배우는 초보자”라는 뜻의 영어 “catechumen”의 어원]는 구두로 그렇게 가르치는 자[‘카테코운티’]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십시오.” (신세) 그러므로 그러한 구두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배우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울렸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도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사도 18:25.

9, 10. (ㄱ) 그리스도교국에서 가장 큰 종교 조직은 참된 의미의 “문답식 교육”을 계속 지켜왔읍니까? (ㄴ) ‘프로테스탄트’ 조직은 어떠하였읍니까?

9 이것이 참다운 “문답식 교육”이었읍니다. 그것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순종이라는 확실한 기초 위에 집을 짓도록 해 주었읍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사도들이 죽은 후에는 그러한 세심한 교육이 사실상 계속되지 않았읍니다. 배도가 일어났읍니다. 그러므로 그 후 수세기가 지난 다음의 상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교회(‘가톨릭’ 교회를 의미)가 확립되고 교인들의 증가가 이교인의 개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출생과 자녀들의 세례로 이루어짐에 따라 문답식 교육이라는 사상은 세례의 준비가 아니라 세례받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방법으로 전향되어 버렸다 . . . 중세기에 이교인들 가운데서 선교할 때 개종자들을 즉시 세례 주는 것이 상례로 되었고 고대의 문답식 교육은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로마’ 교회 내에서는 종교 개혁 때까지는 세례받은 자녀들의 문답식 교육에도 커다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신앙 고백이 문답식 교육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10 종교학자들에 의하여 “현대 문답식 교육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루터’는 ‘프로테스탄트’ 개혁 당시, 그러한 교육은 “단순히 책을 암송하는 것을 듣는 것만 포함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고 생도들의 마음에 적용하는 것도 포함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독일, 영국 기타 지역에서, “문답식 교육은 단지 견진(영세가 아님, 이미 영세는 받았음)을 준비하는 형식적인 단계로 전락”하였읍니다. ‘프로테스탄트’ 조직에서 교리 문답의 목적은 배우는 자의 마음에 있는 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사상이 아니고 자기네가 원하는 교리를 주입하는 것이었읍니다. 배우는 자가 “교리 문답의 문장을 암송”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을 기억했다가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의식으로 되어버렸읍니다. 배우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과 정신 내에 있는 진정한 생각, 감정 등을 표현할 여지는 거의 없게 되어 버렸읍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어린애들에게 중점을 두었읍니다.—‘맥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성서, 신학 및 교회 문학 사전」, 2권 148-154면.

11. 전 항의 방법과 여호와의 증인들의 방법과 대조하십시오.

11 이 점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대조해 보십시요.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예수와 예수의 사도들의 전도 활동에 대한 성서 기록과 기타 성서 원칙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가정에 찾아가서 전도하다가 새로 관심 가진 사람들(일반적으로 성인들)을 찾아냅니다. (사도 20:20) 이들 관심 가진 사람들에게 무료 가정 성서 공부를 제공합니다. 때로는 전 가족이 이에 참여합니다. 일 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의 공부에서는 성서의 기본 교리를 다루며, 성서 공부 교과서에 기재되어 있는 질문으로 공부가 진행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해와 믿는 바에 근거해서 대답하도록 격려를 받으며, 부가적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읍니다. (로마 10:10) 공부 전체를 통하여 증인 사회자는 생명의 원천인 여호와 하나님께 주의를 돌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는 것이 중요함을 의식하고 있읍니다. (요한 17:3; 고린도 전 3:11) 사회자는 연구생으로 하여금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이 그의 생활의 일부가 되게 하고 사실상 그의 생활을 그 확실한 틀 위에 세워나아가도록 열심히 돕습니다.

12. 어떠한 면으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다 건축 사업을 합니까?

12 그러므로 합동 건축 사업이 진행됩니다. 여호와의 증인인 사회자는 배우는 사람을, 내구성 있고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세워 주기를 원합니다. 그 재료는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참된 지혜, 믿음, 확신, 성서 원칙에 고착하는 정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참되고 의로운 것 특히 하나님의 왕국에 고착하며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입니다. 그는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여 자기와 함께 연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회의적인 정신의 악영향을 포함한 불같은 시험도 견딜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고린도 전 3:10-15; 유다 22, 23) 연구생도 역시 건축 사업을 진행합니다. 지식만으로는 앞날의 희망과 전망을 세울 수 있는 확실한 기초가 되지 않읍니다. 행함으로, 곧 그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견고한 기초 곧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위에 건축할 수 있읍니다. 다른 방법은 없읍니다.—빌립보 1:27-30; 2:12, 13.

13. 새 사람, 곧 새로운 성품을 입도록 어떻게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읍니까?

13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단순히 성서의 기본 교리만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함을 알고 있읍니다. (에베소 4:23, 24) 그러므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하는 증인들은 사람들이 성서 원칙들을 일상 생활의 지침으로 삼도록 도와 줍니다. 그것은 연구생이 어떤 교과서로부터 어떤 점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러한 점들에 대한 성서적 이유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정해진 원칙들을 일상 생활의 유일하고 확실한 지침으로 인정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야만, 오직 그렇게 해야만 연구생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시 119:105; 잠언 3:5, 6.

14. 연구생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인식을 넣어 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읍니까?

14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의 성질, 그의 주의 주장,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일 그리고 장차 하려는 계획 등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연구 도중에 연구를 사회하는 전도인은 연구생의 마음에 하나님의 웅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넣어 주려고 합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이 연구생도 과거의 충실한 어느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기쁘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 하리라.” (이사야 25:9)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구생의 정신에 만이 아니라 그의 마음 곧 동기의 바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잠언 4:23)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읍니까? 적절한 점을 다룰 때에 잠깐 멈추어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주의를 돌리고, 관련된 사실 혹은 인용된 성귀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 지혜, 공의 및 능력을 뚜렷이 나타내는가 하는 점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하면, 만일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올바르다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도 역시 여호와께 대한 깊은 충성심을 느끼게 될 것이며, 모든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서기를 원할 것입니다.—이사야 12:3, 4.

15, 16. 현재 올바른 종류의 전도인이 되도록 기초를 놓는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왜 그렇게 긴급합니까?

15 오늘날 이 일이 얼마나 잘 수행되고 있읍니까? 거기에 어떠한 문제들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세계 상태가 악화 일로에 있고 전세계적으로 영적 상태가 쇠퇴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교육 사업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파괴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의 수는 대폭적으로 감소되었고 수백만인이 간직하고 있던 희망과 전망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왜냐 하면 그들이 반석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반석에다 희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은 올바른 때 곧 예수께서 지시하신 때에 도망하므로써 파멸을 면하였읍니다. (누가 21:20-22)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겟돈’의 파괴력은 훨씬 더 규모가 큰 모래와 같은 기초 위에 건축을 하고, 자기 혹은 불완전한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나 논리에 인도를 받는 사람들에게 재난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았기 때문에 자기 목전에서 희망과 전망이 깨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 1:7-10) 그러나 사람들의 한 “큰 무리”는 그 폭풍우를 고스란히 통과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는 자들인 만큼 하나님께서 만드실 새로운 질서에 살아 남아서 생명을 즐길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들의 희망이 실현되고 영원한 만족과 기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감격할 것입니다.—잠언 1:24-33; 계시 7:9, 10, 14.

16 지금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다른 사람들의 귀와 정신과 마음에 울리게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가르치는 방법을 깊이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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