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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를 우리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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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를 우리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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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6/1 245-251면

성서를 우리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음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브리 12:13.

1.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한 상태 아래서 여호와께 의존하였으며, 그들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까?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집도 없고 토지도 없고 다른 민족과의 교류도 없이 광야를 방황하였읍니다. 사십년 동안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으로 지도받고 생계를 유지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기적으로 ‘만나’를 내려 주심으로 그들을 먹이셨읍니다. 심지어 중보자 ‘모세’를 통해 바위에서 마실 물이 나오게도 하셨읍니다. 이제, 60만이 넘는 장정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로 이루어진 이 하나님의 선민은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 맞은편 ‘모압’ 사막평원에 이르렀읍니다. 60세가 넘은 사람들은 대단히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은 건장하고 정력이 넘쳐흐르는 젊은 남녀들이었읍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마 절대다수는, 광야에서 출생하였읍니다. 그들은 천막 생활과 황량한 사막 밖에 몰랐읍니다. 그러나 ‘요단’ 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이었읍니다. 그 땅은 비옥하고 풍요한 땅이며, 젖과 꿀이 흐르고, 밀과 보리가 나고, 과목과 화초가 무성한 땅이며, 노래와 웃음이 흘러 나오는 땅이며, 평화의 땅이었읍니다.

2. 그들은 무엇을 경계해야 하였으며, ‘이스라엘’을 해하려던 ‘바락’의 계책은 왜 실패하였읍니까?

2 그러나 그들은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읍니다. 자기네들의 생활 방식이 방해받는 것보다는 ‘이스라엘’이 멸망되기를 원하는,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는 남녀노소들, 이 젊은 나라가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땅을 상속받는 것을 막으려고 가진 수단을 다 쓰는 적군들이 둘러싸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모압’ 왕 ‘바락’은 예언자 ‘발람’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백성을 저주하도록 하였읍니다. ‘발람’은 세번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려고 하였으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매번 ‘발람’의 혀를 조정하시어 저주가 축복이 되게 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 주셨읍니다.—민수 23:23.

3. (ㄱ) ‘발람’은 무적 ‘이스라엘’을 쳐부수기 위해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어떻게 신속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염병을 그치게 하셨읍니까?

3 결국 ‘발람’은 이 강력한 백성을 무찌르는 데는 한 가지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힘의 원천이신 여호와로부터 이탈하도록 그들을 유혹하였읍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스스로 자기 백성을 저주하도록 만들라고 ‘모압’ 왕에게 알려 주었읍니다. 그 방법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하는 여자들과 음행하게 만들어 우상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것이었읍니다. 성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수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따라서 ‘이스라엘’의 사사들은 거짓 신 ‘바알브올’에 부속된 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장로들이 회막문 입구에서 ‘이스라엘’의 빗나간 상태를 보고 울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한 족장의 아들인 ‘시므리’가 뻔뻔스럽게도 ‘모세’와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진영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신속하면서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여 손에 창을 들고, 그들 뒤를 따라 들어가 그 둘을 창으로 꿰뚫었읍니다.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었더라.” (민수 25:8, 9) 이만 사천명의 범법자들이 여호와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문턱까지 와 놓고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이기적 정욕에 몸을 내맡겼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그들의 생활의 지침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민족은 그 후 어떠한 시험을 받았읍니까?

4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읍니다. ‘바알브올’의 음탕한 성 숭배에 빠지지 않았던 한 사람은 그 후 다른 유혹에 넘어갔읍니다. 그도 이기적 정욕의 희생물이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탐욕과 금전욕 즉 물질주의라는 교묘한 함정에 빠졌읍니다. 그의 탐욕 때문에 그의 형제 ‘이스라엘’ 사람들 36명이 목숨을 잃었읍니다.

5. (ㄱ) 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은총을 거두셨으며, 그 사실은 어떻게 밝혀졌읍니까? (ㄴ) 행악자는 어떠한 벌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 그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기적으로 ‘여리고’ 성을 해방시킨 후였읍니다. 이제 그들은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하였읍니다.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열세한 적군을 쉽사리 무찌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단지 3천명의 군인만 보냈읍니다. 그러나 ‘아이’군이 역공격을 감행하여 ‘이스라엘’군은 궤주하였고, ‘이스라엘’ 사람 36명이 전사하였읍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여호와 앞에 엎드려 이 재난의 원인을 규명해 주십사고 간절하게 빌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읍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행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지시대로 백성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뽑아 본 결과, ‘아간’이 여호와 앞에 범죄한 자라는 것이 밝혀졌읍니다. 준엄하게 심문하자, ‘아간’은 ‘여리고’ 성에서 얻은 전리품 가운데 얼마를 훔쳐 자기 것으로 하였음을 시인하였읍니다. 원래 그 전리품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봉사를 위해 성별하신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아간’은 유죄언도를 받고, 그를 용서해 줄 것을 탄원하였을 것이 분명한 그의 전가족과 함께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였읍니다.—여호수아 7:1-25.

방심한 자에게 경고함

6. (ㄱ)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압’ 평원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과 비교해서 어떠한 면으로 유사한 입장에 처해있읍니까? (ㄴ) 무엇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까?

6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의로 다스려질 새 질서의 문턱에 서 있읍니다. ‘사단’의 세상이 이 사람들에 대해 퍼부운 온갖 저주는 여호와에 의해서 축복으로 변하였읍니다. 그러나 현 악한 제도는 ‘발람’과 ‘모압’ 족속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성숭배를 하도록 유인하며, 거짓말과 속이는 일과 도적질같은 비도덕적인 짓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읍니다. 기록에 의하면, 매년 수천명이 하나님의 조직으로부터 제명처분을 당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의로운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며, 그들이 성서를 그들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소수만이 회개하여 악행을 시정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새로운 제도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며, 놀라운 축복들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읍니까?

7. (ㄱ) ‘야고보’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어떠한 두 가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으며, 각 방향으로 이끄는 힘은 각각 무엇입니까?

7 ‘시므리’와 ‘아간’은 고의적으로 범죄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행동이 여호와의 명백한 계명에 위배되는 것임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에 한번도 그런 욕망을 품어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여 목숨을 잃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고의적 범죄는 나쁜 생각이 점점 자라난 결과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 1:14, 15) 그 두 사람은 모두 ‘모세’의 중보로 주어진 하나님의 법 아래 있었으며, 그 법을 범하면 제재를 받게끔 되어 있었읍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으며, 이 법의 제재력은 우리로 의로운 일을 하도록 움직이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로마 6:18, 19; 7:6; 갈라디아 5:16-18) 그러나 그리스도인 회중 및 하나님의 영에 의해 임명받은 회중 감독자들 위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동일한 영입니다. (사도 20:28)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움직임을 받는다면,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조직을 통해 그분의 영이 우리의 생활을 지도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언제 나쁜 욕망이 우리를 ‘시므리’와 ‘아간’이 빠졌던 동일한 함정으로 빠뜨리게 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모를 이유가 없으며, 우리는 그러한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의 지도를 받기 원하는가, 혹은 실제로는 우리의 욕망을 따르기를 더 좋아하며 방종의 결과로 오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8. 회중 내의 종들은 어떻게 보호하는 자들의 역할을 하며, 왜 그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읍니까?

8 회중내의 감독자들과 봉사 보조자들은 사람으로 된 선물로서, 그리스도께서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을 교육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에베소 4:8, 11, 12, 신세 참조)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장성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조건에 관한 경험과 단련을 통해 그 요구 조건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보호 아래 있는 회중과 회중 성원의 상태에 대해 항상 깨어 살피며, 중한 영적 병의 원인이 되거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생명을 잃게 만들 영적 약함의 증상을 재빨리 알아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깊이 염려하고, 그들이 회개해야 함을 알기(히브리 13:17) 때문에, 그들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한 훈계를 청종할 책임을 의식하고 있읍니다. (갈라디아 6:1, 2)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빗나가면 큰일이다

9. 우리는 충고를 받았을 때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야 하며,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9 만일 어떤 형제가 그러한 증상을 관찰하고 주의를 줄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조직 내에 마련해 주신 이 마련에 감사하는 태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충고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따라서 그 충고를 그 분의 지침으로 기꺼이 따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충고를 듣고 화를 내거나 악행을 고집하고 변명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태도야말로 그 충고가 실로 적기에 주어졌으며 비행을 지적해 줄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러한 태도야말로 우리를 성경에 입각한 신권적 견해에 일치시켜 주는 하나님의 영보다 그릇된 행동을 하라는 세상의 유혹을 더 중시할 만큼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충고를 듣고 화내는 사람은 이미 위험한 정도로까지 빗나갔으며, 혹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겠읍니까? 그러한 사람이 더욱 더 빗나가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미혹을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 육체로부터 썩음을 거둘 것이나, 영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6:7, 8, 신세.

10. 왜 우리는 여호와의 요구 조건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것이 큰일이라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까? 실제에 있어서 더 간단한 길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그러므로 빗나간다는 것은 조금만 빗나간다 하더라도 큰일입니다. 그 위험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빗나감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빗나감이란 올바른 길로부터 이탈함, 구부러짐, 돌아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리 조금만 빗나갔다 하더라도, 그것이 계속되면 그 간격은 점점 넓어집니다. 빗나간 사람이 되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걸어온 갈짓자 모양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면, 얼마나 힘들게 걸어왔는가를 알 수 있읍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더 간단한 일이겠읍니까!—히브리 12:13.

11.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떠한 보호책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까?

11 ‘사단’의 사물의 제도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읍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 영향력이 얼마만하며 어느 방법으로 오는지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순진하게 보이나 나중에는 큰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물들 가능성이 있읍니다. 이러한 견해나 행동을 취할 때,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성경의 표준으로부터 빗나가거나 성경의 원칙을 범하게 될 가능성이 있읍니다. 그러나 본인은 표준이나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일시적으로 마음의 경계를 풀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의식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수가 있읍니다. 그 사정이야 여하하든지 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회중 내의 종들로 대표된 그분의 조직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항상 살피고 계시며, 우리가 잘못하면 그것을 눈여겨 보시고 주의를 주시는 데 대해 진실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12. (ㄱ) 회중의 종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그들은 어떠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한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시정해 줍니까?

12 회중의 종들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표면에 나타난 태도라든가 경향을 통해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의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마 집회에 빠지거나 신권 전도 학교 임명을 거절하는 경향일지 모릅니다. 혹은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려 하고, 대화에서 영적인 요소가 감소되고, 옷을 입는데 지나치게 유행을 따르려는 경향일지 모릅니다. 하여튼 종들은 그 사람의 영적 복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를 보기 때문에 염려합니다. 그러나 그 영향이 일개인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에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염려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세계···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4:9) 이 말은 우리가 하는 행동을 회중 밖의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잘못된 길을 계속 걷다가 범죄를 하면, 회중 전체가 수치를 당합니다. 또한 꼭 범죄를 해야지만 조직에 수치를 당한다는 법도 없읍니다. 사실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부터도 조직이 수치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공립학교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사실을 잘 알려 줍니다. “전에는 여호와의 증인 어린이들을 칭찬하였읍니다. 그들은 항상 예의바르고 용모가 단정하였읍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떤 증인 어린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읍니다. 의상과 머리 모양 하며, 그들이 행동하는 바는 다른 아이들과 꼭 같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회중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일은 통례라기보다는 예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지만, 그러한 말을 듣게끔 되었다는 그 자체가 실로 염려할 문제이며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 회중 내의 종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시정해 주어서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3. (ㄱ)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우리도 상대하면 더 많은 사람을 진리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디가 잘못되었으며, ‘고린도’ 회중의 경우는 이 점을 어떻게 잘 예시해 줍니까? (ㄴ) 의상면에 있어서 세상 친구들과 다르게 보이기를 두려워한다면 어떠한 위험성이 있읍니까?

13 혹자는 우리가 현대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진보적”으로 보이고 “현대적”으로 보이고 소위 그들이 하는 대로 우리도 상대해 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전제하에 추리한 생각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 주지는 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이 조직이 인기가 있고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여호와의 조직과 연합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의를 사랑하고 원칙에 입각한 생활을 할 용의가 있는 개개인을 원하십니다. 그 한 가지 예를 초기 ‘고린도’ 회중에서 볼 수 있었읍니다. 회중 내의 어떤 이들은 좋지 않은 면으로라도 이름이 나면 회중이 유명해지리라고 생각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이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고린도 전 5:1, 2, 6, 7) ‘바울’은 이 회중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즉각적이고도 과감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를 제명처분시키고 그러한 악행을 묵인한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로 잡아 줌으로써 그렇게 하였읍니다. 죄가 누룩같이 전 회중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의상이나 습관이나 방식에 부응하려는 잘못된 경향은 사고력과 신권적 견해를 더럽힐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의상면에 있어서 세상 친구들과 다르게 보이기를 두려워 한다면, 그 동일한 다른 이유로 다른 부면에 있어서도 타협할 가능성이 얼마나 많이 있겠읍니까? 또한 문제를 처리하는데도 세상의 생각을 채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많이 있겠읍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읍니다. 그 대신 우리는 이 세상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 5:16-18) ‘야고보’가 시사한 바와 같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미리 적신호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잘못된 욕망이 갑자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보통의 경우, 동기와 기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서를 우리의 생활지침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 두가지를 우리 생활에서 가능한한 완전히 배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나쁜 교제는 위험하다

14. 나쁜 교제는 어떠한 면으로 부도덕에 빠져들어갈 모든 요소를 조장하며, 이 사실을 어떠한 예가 잘 알려 줍니까?

14 나쁜 교제는 나쁜 전염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도덕에 빠질 모든 요소를 조장합니다. 원칙을 약화시켜서 잘못된 성품을 갖도록 만듭니다. 게다가 잘못을 행할 기회는 항상 있기 때문에, 무지의 결과로 혹은 조롱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어리석은 짓에 휘말려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동시에 집단 중의 한 사람이 범죄를 하면, 그 집단 전체가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읍니다. 일례를 들자면, 한 젊은 형제가 전도 봉사를 대단히 잘하였는데, 동시에 성서 원칙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학교 친구들과 계속 어울려 다녔읍니다. 하루는 그들이 장난으로 수송차에서 ‘소다’수를 몇 병 훔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그들은 순전히 악의없이 도적질을 하였지만 운전수는 그것을 보고, 애들을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쫓아왔읍니다. 그러자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 한 아이가 단도를 꺼내서 운전수의 복부를 찔렀읍니다. 운전수는 절명하였읍니다. 그 깡패단에 어울려 다니던 그 젊은 전도인은 회중으로부터 제명처분을 당하였고 현재 감화원에 들어가 있읍니다. ‘아간’도 전민족에게 재난을 끼쳤고, 결국에는 자기 목숨을 잃었읍니다. 그를 그들 가운데서 제거하기 전에는 그 나라는 무죄하지 못하였읍니다.—여호수아 7:20-25.

15. (ㄱ) ‘디나’는 어떠한 실수를 저질렀으며, ‘디나’가 당한 결과는 우리에게 어떻게 경고가 됩니까? (ㄴ) ‘요셉’은 어떻게 정반대로 행동하였으며, 그 일은 우리에게 어떻게 본이 됩니까?

15 그리스도인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으로서 자진해서 음행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간 당할 위험성이 있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디나’는 그렇게 될 가능성을 무시하고 ‘가나안’ 처녀들과 어울려 다녔읍니다. 음탕한 ‘하몰’의 아들이 그를 보고 그를 범하였읍니다. 만약 ‘디나’가 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과 교제하지 않았었더라면, 그러한 수욕은 당하지 않았었을 것입니다. (창세 34:1, 2) 현대에도 동일한 사전 주의를 해야 합니다. 현명한 길은 부도덕한 의상을 입지 않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나 으슥한 곳이나 위험한 동네에 혼자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보호자와 함께 다니고 동시에 여호와께 헌신하지 않고 의로운 원칙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다니는 일을 피하십시오. ‘디나’의 오빠인 ‘요셉’은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에 지혜로운 길을 택하였읍니다. 그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여러 차례 유혹하였을 때,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올바른 길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부터 벗어나기를 완강히 거절하였읍니다. 그는 종의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러한 유혹을 받을 기회를 피하려고 노력하였고, 마침내 이 뻔뻔스러운 여자가 강제적으로 불의의 관계를 맺으려고 강요하자, 그는 그 여자의 손에 잡힌 외투를 벗어던지고 그 여자의 방으로부터 뛰쳐 나갔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범하여 그분을 불쾌하게 하기보다는 그 여자가 복수하기 위해 내릴 어떠한 형벌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읍니다. ‘요셉’이 확고하게 행동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참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읍니다.—창세 39:7-23.

16. (ㄱ) 세상의 표준을 완전히 벗어버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위험성이 있읍니까? (ㄴ) ‘아간’과 ‘고린도’ 회중과 ‘디나’의 경우는 이 사실을 어떻게 예시합니까? (ㄷ) 여호와께서는 무슨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하시며, 전체로서의 회중은 이 면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16 만약 우리가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는 진정한 욕망을 가지고 그분을 성심껏 사랑한다면,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 가운데 성서 원칙을 올바로 적용하여 해결치 못할 문제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책임감에 대해 무관심하고 세상의 표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얼마 후 이러한 사고방식에 깊이 물들어서, 결국에는 재난을 반드시 당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면에 있어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간’은 물질주의자였고 잘못된 욕망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하였고, 그 결과 전 회중이 더럽혀졌고,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36명의 동료 ‘이스라엘’인들까지 죽임을 당하게 하였읍니다. ‘고린도’ 회중 내의 어떤 이들은 이웃의 악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나쁜 면으로라도 이름만 나면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근친상간을 묵인하기까지 하였읍니다. ‘바울’이 그 회중을 강력하게 징계하고, 성서 원칙을 사용하고 행악자들을 제명처분 시킨 연후에야 그 회중의 영은 구원받았읍니다. ‘디나’는 불신자들과 교제해도 무사하겠지 하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정조를 빼앗겼고, 그로 인하여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의 오빠, ‘요셉’은 타향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있었으나 원칙을 타협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의로운 요구 조건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고 보호하심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리 안에 있는 가족의 한 성원이든 혹은 혼자만 진리 안에 있든 별 차이가 없읍니다. 우리 모두는 공통된 문제에 처해 있읍니다. 그들은 회중에 속해 있읍니다. 임명된 종들을 통한 회중은 그들에게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해결책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성서에서 알려 주고 있읍니다. 시편 필자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오 내 길에 빛”이라고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시 119:105)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서가 광야와 같은 사단의 사물의 제도에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인도할 것이며, 현대 ‘바알브올’을 숭배하는 부도덕한 남녀들 가운데서와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읍니다. 또한 성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해 줄 것이며, 우리를 무사히 그리고 흠없이 임박한 의롭고 새로운 질서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읍니다. 단 우리가 성서를 우리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합니다.

[247면 삽화]

그리스도인들이 ‘아간’이 저지른 바와 같은 부도덕한 범죄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는 성서를 그들의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아간’은 탐욕 때문에 동료 ‘이스라엘’ 백성 36명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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