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인식함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
1. 왜 지성있는 피조물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까?
이 우주에 지성을 가진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그들의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위대한 생명의 수여자이신 여호와로부터 끊임없이 혜택을 받습니다. 피조물은 생명없이 존재할 수 없읍니다.—창세 2:7; 시 36:9; 146:1-4.
2. 우리는 어떠한 것들을 보고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읍니까?
2 만약 전 우주가 여호와의 뜻과 일치조화되고, 또 그 일부가 여호와의 대적인 ‘사단’의 영향으로 인하여 부패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 아니 전 우주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즐거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 상태 아래서도 우리 인간 주위에 있는 창조물은 보기에 대단히 유쾌하고 아름답습니다. 군주나 세력가나 대부호들은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를 찾습니다. 그들은 물이 풍부하고 화목이 무성한 곳에 대저택이나 성을 짓습니다. 화려한 저택 근처에 아름답게 꾸민 정원을 만들어,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 되게 합니다. 이곳을 비추는 햇살은 식물의 성장과 결실만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안락감을 줍니다. 눈이나 비가 와서 땅을 적실 때는 실로 상쾌합니다. 정원에서 풍겨오는 방향은 싱싱하고 활력을 주며, 인체가 필요로 하는 산소를 듬뿍 가져다 줍니다. 식물은 맛있는 과일과 씨와 뿌리를 냅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의 음식물이 됩니다. 이 모든 사실은 지구상의 모든 상태가 처음부터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음을 증명합니다.—창세 1:31; 느헤미야 9:6; 시 104편.
3, 4. (ㄱ)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창조주를 어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인간이 달에서 살지 않고 이 지구에서 사는 몇가지 이유들을 들어 보십시오.
3 그런데, 흔히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에 사는 세력가나 대부호들이 창조주 여호와께 대하여 별로 혹은 전혀 인식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 인간들은 지구와 그 위의 인간, 아니 전 우주까지도 조물주께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흔히 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마 교만한 마음에서 혹은 남 앞에 잘난체 하려는 마음에서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다는 창조주의 말씀에 반대하는 사상을 내 놓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창조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이 다른 천체에 가서 영주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전개하였읍니다. 그러나 인간이 과학의 진보로 말미암아 우주를 탐색해 보고, 강력한 망원경으로 천체들을 더 밀접하게 관찰함에 따라 지구만이 창조주의 계획대로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사실이 더욱 더 뚜렷하게 밝혀지고 있읍니다.—시 115:16; 19:1-4; 이사야 40:26; 45:18.
4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못됩니다. 달 표면에는 분화구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외계로부터 날라들어온 소유성이나 다른 물체가 떨어져서 생긴 구멍들입니다. 그러한 물체들이 달 표면에 닿기 전에 태워버릴 대기층이 달에는 없읍니다. 또한 통신이나 언어나 경고에 필요한 음파를 전달해 줄 대기층도 없읍니다. 호흡할 공기도 없읍니다. 물도 없읍니다. 음식물도 없읍니다. 달의 낮은 길고 기온은 대단히 높아서 인간의 피가 부글부글 끓을 수 있는 온도로 섭씨 100도 이상이 됩니다. 그 반면 밤은 대단히 추워서 섭씨 영하 167도로 기온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낮에는 큰 바위나 산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밤이면 꽁꽁 얼어붙을듯한 추위를 견디어야 합니다. 실로 달의 기온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기온이 못됩니다.
5. (ㄱ) 만약 달이 살기에 부적합하다면, 다른 인근 혹성들은 어떠합니까? (ㄴ) 그러므로 지구상의 생각있는 사람들은 창조의 경이를 보고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5 인간들이 금성과 화성이라고 부르는 인근 혹성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함이 수차에 걸친 탐색의 결과로 밝혀졌읍니다.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까지의 우주탐색 결과로 얻은 지식을 가지고도 창조주께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읍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우리 인간에 대한 그분의 생각과 기이한 행적에 대한 인식도 높일 수 있읍니다. 경이로 가득 차 있고 복잡미묘한 창조 사업을 숙고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행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셀 수 조차 없음을 깨달을 수 있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께 대한 인식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만한 무슨 핑계라도 있읍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 1:20.
인간을 위한 거룩한 지침
6.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인간을 위하여 이러한 창조물 외에도 또 무엇을 사려깊이 마련해 주셨읍니까?
6 여호와의 기이한 창조 사업, 그 중에서도 특히 지구 및 지구상의 인간을 위한 그 모든 적절한 마련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많으심을 알 수 있읍니다. 사실 창조 그 자체가 창조주의 존재를 증언하며, 창조주께서 피조물에 대해 사려깊으심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인간 창조에 관해 생각하시고 인간에게 생각할 능력과 지성을 주시기로 계획하셨을 때 그분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지침을 필요로 함을 아셨읍니다. 우선 인간은 창조주에 관하여, 인간과 창조주와의 관계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에 관하여 알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과 원칙을 충분히 알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행동 규범을 알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첫 인간 ‘아담’은 교훈과 지식을 받았읍니다. ‘아담’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이며 창조주이신 분에 대한 인식을 더 높여야 하였읍니다.
7. 여호와께서 공급해 주신 무엇을 우리는 현재 사용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7 하나님께서 지상의 피조물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일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시작이었읍니다. 그 후 여러 세기를 걸쳐, 하나님께서는 사랑에서 우러나온 친절로서 하나의 독특한 책속에 율법과 원칙을 전부 다 기록시켜 놓으셨읍니다. 이 책은 오늘날 성서라고 불리웁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창조주와 그분의 인류에 대한 목적을 알 수 있읍니다. 또한 거룩한 것들에 관하여 배울 수 있읍니다. 성서는 거룩한 비밀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모든 선한 것들의 수여자를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가의 여부는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로 나타납니다. 인식이란 사물의 미점을 칭찬하고 감상할 만큼 충분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성서의 가치를 더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서를 소중한 보물로 인식하게 됩니다. 시편 필자와 같은 현명한 사람은 여호와께서 인간을 위한 지침으로서 기록된 말씀을 주신데 대해서, 그리고 여호와께서 보인 사랑과 친절의 표시에 대해 감사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8. 성서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점들을 말씀해 보십시오.
8 우리가 성서에서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 가운데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성서는 잘못한 사람들과 잘한 사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기록을 성서 안에 포함시키신 데는 선한 목적이 있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 전 10:11.
9. (ㄱ) ‘아담’은 어떠한 것들을 통해 여호와께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었읍니까? (ㄴ) 그러나 ‘아담’은 어떠한 길을 택하였읍니까?
9 하나님께서 첫 인간 남녀를 지상의 ‘에덴’ 동산에 살게 하신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생각하셨고 그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음을 볼 수 있읍니다. 동산은 대단히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읍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족을 전혀 느끼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는 현명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 많으신 분이며, 대단히 선한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으며, 그는 하나님의 마련에 순종하여야 하였읍니다. 창조주는 피조물에게 이렇게 해라 혹은 이렇게 하지 말라고 명할 권리를 당연히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렇게도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서 생활하였지만 여호와의 마련에 대해 인식을 높이려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너무나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환경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내는 태도와 흡사하였읍니다. ‘아담’은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타락하였고 종국에는 죽고 말았읍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거룩한 것들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아담’과 같이 될 것입니다.—창세 2:7-17; 5:5.
10. ‘노아’와 ‘아담’은 어떻게 대조를 이룹니까?
10 그 후 ‘노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을 때, 그는 그 명령의 가치를 인식하고 믿음을 표시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믿었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생활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대홍수를 생존할 수 있었읍니다. 이리하여 그는 첫 사람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첫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인식이 없었고, 그 결과로 목숨을 잃었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가운데 기록된 이러한 대조는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됩니다.—창세 6:9, 22; 7:5.
11. 하나님께서는 사랑에서 우러나온 친절을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표시하셨읍니까?
11 ‘노아’ 시대로부터 여러 해 후,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에 대해 인식을 보인 한 탁월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러나온 친절의 증거를 여러 가지 면으로 받았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훌륭한 선물의 한 가지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약속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세 22:17, 18) 이 약속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특별한 분이 나올 것입니다. 그 분은 천하 만민이 축복을 받도록 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언약을 주실 때, 맹세로 보증하셨기 때문에 이 언약은 변경될 수 없었읍니다. 이 언약은 거룩하였읍니다.
12. ‘야곱’과 ‘에서’의 기록은 거룩한 것을 인식하는 유익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2 그러면 ‘아브라함’의 손자들은 이 거룩한 약속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였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에서 나온 친절로써 ‘야곱’과 ‘에서’에 대한 기록을 보존해 주셨읍니다. 우리는 그 기록을 보고, 거룩한 것을 인식하는 것의 유익점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이 쌍둥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창세 25:27-34) 똑같은 부모에게서 난 쌍둥이가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읍니까! ‘야곱’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장자권을 인식하였으나, ‘에서’는 그러한 거룩한 것들을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에돔’족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 민족은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읍니다. 그는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고 거룩한 것들을 경시하는 자들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와 같이,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신 것들에 대해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축복을 받습니다.—창세 27:27-29; 히브리 12:16.
숭배의 가치를 인식함
13. ‘엘리’는 어떠한 축복을 가졌었으며, 그는 어떠한 점에서 잘못하였읍니까?
13 거룩한 역사서는 그 후대에 관하여도 알려 줍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하나의 민족을 이루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들어 갔읍니다. 그 때 사사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렸읍니다. ‘엘리’는 사사 중의 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대제사장이기도 하였읍니다. 그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및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관해 지식과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었읍니다. ‘레위’ 지파는 여호와의 숭배의 장막에서 봉사할 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엘리’의 아들들은 거룩한 봉사를 드릴 큰 특권을 상속받았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의 아들들은 장막 숭배의 거룩함에 대해 인식을 나타내지 않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였읍니다. 비록 ‘엘리’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시행하지 않았고 자기 아들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징계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아들들은 악행을 계속하였읍니다. ‘엘리’는 부모로서의 올바른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자녀들을 지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불행과 재난을 당하였읍니다. 거룩한 기록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들었더라]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사무엘 상 2:22, 27, 29, 30, 34.
14. ‘엘리’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를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를 당하였읍니까?
14 이 말씀은 그 후에 성취되었읍니다. ‘불레셋’족이 ‘이스라엘’ 백성과 전쟁하였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스라엘’ 진영으로 가져오면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약궤를 가져왔읍니다. 그래서 ‘엘리’의 두 아들도 언약궤를 가지고 따라왔읍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이스라엘’과 ‘엘리’ 집안에 축복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불레셋’족에게 패배를 당하여, 30,000명이 전사하였읍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 상 4:11) 이 때는 ‘이스라엘’에게 번영의 때가 아니었읍니다.
15. ‘다윗’은 어느 정도로 인식이 깊은 사람이었읍니까?
15 ‘다윗’은 순결한 숭배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율법의 가치를 인식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제사직과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속하였으며 여호와를 위한 투사였읍니다. 그는 여호와를 적극적으로 숭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였고, 한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며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 19:1, 7-11.
16. ‘다윗’은 거룩한 숭배를 어떻게 존중히 여겼읍니까?
16 ‘다윗’은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표현한 사상과 일치하게 생활하였읍니다. ‘다윗’은 안락한 궁전에 살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임시로 보관하고 있는 곳에 가서 그 언약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읍니다. 거룩한 숭배는 대단히 중요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여호와의 숭배의 중심지로서 성전을 짓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그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지 않겠으며, 그 대신 그의 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윗’은 이러한 말씀을 듣고 열이 식지 않았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집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숭배의 이익을 선양하기 위해 힘닿는데까지 노력하여, 성전 건축 준비를 하였읍니다. ‘다윗’은 약 370억원에 해당하는 금과 기타 보석들을 모았읍니다. 그는 영감에 의해 받은 성전 건축 설계 내용을 아들 ‘솔로몬’에게 알려 주었읍니다. 그 설계는 대단히 완전하였기 때문에, 성전만이 아니라 창고, 마당, 등대, 기구 등 세부점까지도 망라하고 있었읍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역대 상 28장에서 볼 수 있읍니다. ‘다윗’이 거룩한 것들에 대해 올바른 마음씨를 가졌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성서 기록은 그가 분명히 부활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17. ‘솔로몬’ 시대의 역사는 올바른 숭배와 번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17 성전 건축은 ‘솔로몬’ 왕의 지휘 하에 완공을 보았고, 그와 더불어 ‘이스라엘’ 전국에 평화와 번영이 도래하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전 봉헌식 때 이 새로운 숭배의 중심지를 수락하셨음을 보이는 증거로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보내사 제물을 불태웠고 그 후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게 그의 가족과 그의 나라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규례와 판결에 대해 인식을 나타내고, 그 법령을 준수하고 순결한 숭배를 계속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년에 가서 여호와의 숭배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 나라는 재난을 당하여 두 개의 왕국으로 갈라졌읍니다.—역대 하 7장; 열왕 상 11장.
18. ‘솔로몬’의 사후, ‘이스라엘’과 ‘유다’의 대다수의 왕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읍니까?
18 성서에 나오는 열왕기와 역대기는 ‘솔로몬’ 사후의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통치자들은 여호와와 순결한 숭배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백성들은 많은 곤난을 당하였읍니다. ‘아하스’ 왕은 여호와의 집의 문을 닫고 거짓 숭배를 도입하기까지 하였읍니다.—역대 하 28:24, 25.
19. ‘히스기야’ 치세시, ‘예루살렘’ 거민들은 왜 축복을 받았읍니까?
19 그러나 여호와를 인식한 통치자들이 얼마간 있었읍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히스기야’ 왕이었읍니다. 그는 성전 문을 다시 열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다시 조직하고, 여호와의 율법에 의거하여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도록 하였읍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전국에 사자들을 파견하여 여호와의 지시에 순응하고 유월절을 축하하러 오라고 초대하였읍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 외에도 거룩한 것들에 대한 인식을 많이 나타냈으며,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을 크게 축복하심으로써 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시하셨읍니다. (역대 하 31:10) 적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겠다고 위협하였을 때, ‘히스기야’는 기도의 가치를 인식하고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께 도와달라고 간구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응답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존하셨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온 적군들을 치셨읍니다.—열왕 하 19:15, 35.
20. 왜 ‘시드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은 구출받지 못하였읍니까?
20 그러나 ‘시드기야’ 왕 시대에는 그러한 구원이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여호와께 대한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성전에서 순결한 숭배를 계속 드리는가를 감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백성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을 받았읍니다. 제사장들과 백성은 하나님께 불충하였고, 여호와의 집을 더렵혔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성전 봉헌식 후에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는 성전과 성이 멸망되도록 내버려 두셨읍니다.—역대 하 36:11-21.
21. 우리는 우리가 여호와를 인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21 그러므로 여호와께 대한 거룩한 숭배의 특권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숭배하고 그 분의 율법을 순종할 때, 우리는 여호와를 인식하고 있음을 표시할 수 있읍니다. 성서는 생명과 번영이 우리가 나타내는 인식에 달려 있음을 밝혀 줍니다.
[226면 삽화]
‘야곱’은 여호와와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대해 인식을 가졌으나, ‘에서’는 거룩한 것에 대해 인식이 없었고, 한 그릇의 죽을 받고 장자권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