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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영과 말씀―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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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영과 말씀―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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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12/15 559-564면

하나님의 영과 말씀―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 6:63.

1. 무엇이 인간의 공기와 음식물을 위협하며, 이 땅에서의 생활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읍니까?

만일 당신이 잠에서 깨보니 사방이 유독한 연기로 가득차 있다면, 당신은 필사적으로 신선한 공기가 있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겠읍니까? 만일 당신의 음식에 유독한 물질이 있어서 당신의 신체를 약화시키고, 급기야는 죽게 될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몸에 영양분과 건강을 줄 음식으로 바꾸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과 우리가 마시는 물의 오염(汚染)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읍니다. 원자탄 폭발로 인한 방사성(放射性) 낙진(落塵)과 유해한 연기, 화공 약품으로 말미암아 공기와 음식물과 물이 오염되고 있읍니다. 식품 재배와 가공시, 흔히 자양분이 없어지고 독물과 부가물로 더럽혀집니다. 신선한 물의 공급원인 내와 못에 오물이나 쓰레기를 버린 결과, 그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병들고 죽게 됩니다. 이러한 위험에 부가해서 세계 도처에 음식물과 음료수가 대단히 부족합니다.

2. (ㄱ) 현재 오염되고 있는 실제적 공기보다도 더 유해한 『공기』는 무엇이며, 그 근원은 누구입니까? (ㄴ) 『세상의 영』의 지도를 받는 자들과 하나님의 영의 지도를 받는 자들의 결과를 대조하십시오.

2 그러나, 당신은 실제적 공기보다 더 유독하나 의식하기 어려운 『공기』가 더욱더 오염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또는 인류의 대다수가 그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음식물』과 『음료수』를 쉴사이 없이 섭취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영적인 의미로 말하면,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호흡하고 있는 『공기』 혹은 세상의 대기는 『세상의 영』인데, 여호와로부터 불결하다는 선고를 받은 바 있읍니다. (고린도 전 2:12; 계시 16:17-21) 현 세상에는 이러한 공통된 마음의 경향이 있읍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 파급되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태도와 견해를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하도록 만들며, 하나님의 영이 주는 영향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주는 교훈에 반대되는 분명한 행동 노선을 따르도록 만들고 있읍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온 세상은 악한 자』 즉 「사단」 마귀 『안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며,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으로 묘사되어있읍니다. (요한 1서 5:19; 고린도 후 4:4, 신세; 에베소 2:2) 마귀가 조성하고 있으며, 육체의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이 영의 치사력에 대해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를 받으려고 해야 하며, 생명을 주는 순수하고 의로운 길을 걸으려는 욕망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 8:5, 6.

3. 인류 대다수의 영적 음식물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3 대중의 정신적 양식이 될 영적 음식물은 대중이 호흡하는 『공기』보다 나은 편입니까? 임종 전에 있는 병든 세상의 신음 소리는 불길한 대답을 주고 있읍니다. 이 세상에서 증가 일로에 있는 폭력과 탐욕, 부도덕, 하나님께 대한 불경은 끔찍한 결과를 맺고 있읍니다. 그들은 순결한 음식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았읍니다. 영적 건강을 주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교시하는 그 말씀을 외면하고, 그 대신 철학과 이론, 윤리 강목, 계획, 이념, 심지어 이 낡은 제도의 종파가 주는 분열 세력으로 향하였읍니다. 오염된 음식물과 물이 신체를 병들게 하고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꼭 같이, 그러한 음식을 섭취한 결과 인류의 대다수는 너무나 병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살아 있으나 죽은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에베소 2:1; 디모데 전 5:6)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도다〕.』—예레미야 2:13; 이사야 1:4-6.

4. 이세상의 지혜와 대조되는 어떠한 형태의 식물을 인간은 정신의 양식으로서 필요로 합니까?

4 인간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양식이 될 진리에 기초한 단단한 식물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실 때 합당한 것을 강조하시어,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4:4) 인간의 마음이 올바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기초로서 진리가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7:17)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즉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는 길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진리의 책인 성서를 주의깊이 연구함으로써입니다. 『예수께서 가라 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 6:35; 야고보 3:13-18.

5.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식물은 무엇을 하도록 도울 것입니까?

5 「바울」은 「메시야」인 예수에 관한 깊은 것들을 이해하는데 느린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 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자들이니라.』 (히브리 5:11, 14) 그는 계속 경고하였읍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로새 2:8; 시 119:104, 105.

6.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무슨 마련들을 해놓으셨습니까?

6 우리가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살려면, 『세상의 영』을 호흡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며,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함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 지혜의 껍질을 먹기를 중단해야 하며, 오염된 물인 인간의 사상을 마시기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 반면, 우리는 영적 식물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한 지식과 진리를 마셔야 합니다. 이것은 생(生)과 사(死)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생명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도록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련인 영과 말씀은 이에 대한 두 가지 확실한 담보 물입니다.—베드로 후 3:9; 에스겔 33:11; 요한 7:37-39.

7. (ㄱ)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기적으로 이해시키십니까? (ㄴ) 예언자들과 성서 필사자들에게 역사한 하나님의 영을 어떻게 볼것입니까?

7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이 마련들로부터 최대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여시어 이해력을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하신 적이 한번도 없읍니다. 우리는 마치 감추인 보화를 찾는 것처럼 지식과 이해력을 탐구해야 합니다. (잠언 2:1-9) 만일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강요하시지는 않읍니다. 숭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즉 전적으로 자진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서 필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스스로 하나님을 섬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자기네들의 이지력을 사용해야 하였읍니다. 흔히 그들은 영감으로 받은 것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다니엘 12:8, 9; 베드로 전 1:10-12) 악귀들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여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로잡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도 시대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표시로서 『성령』 즉 영을 받지 않읍니다. 사도들과 및 그들과 밀접히 교제하였던 사람들이 죽은 후,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이적이나 기적을 행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읍니다.—고린도 전 12:8-13; 베드로 후 1:19-21.

8. (ㄱ) 성령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이적은 행하지 않지만, 오늘날까지 어떻게 역사해 왔습니까? (ㄴ)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이해하도록 어떻게 돕습니까?

8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적(異蹟)은 성령의 역사의 일면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전 12:4-6)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요한 6:63; 15:26, 27) 기원 33년 오순절이래, 여호와의 성령은 계속 『보헤사』, 「생각나게 하는 자」, 「가르치는 자」, 「증거하는 자」의 역할을 하였읍니다. (요한 16:7-16; 14:25, 26; 마가 13:11) 성령은 성서의 마지막 필자인 「요한」에게 영감을 주어 성서 경전을 끝맺은 후, 주로 여호와의 참된 종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점진적으로 이해시키고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증거하여 전파하도록 도움으로써 상기 역할들을 수행하여 왔읍니다. 부가적인 계시는 필요없었으며, 이미 기록된 것들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읍니다.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린도 전 2:10, 12, 13.

9. 우리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건전한 말의 본」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읍니까?

9 그러므로 그 과정은 사고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영을 호흡하기를 중단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과 말씀과 일치 조화되는 우리 내부의 새로운 영 혹은 영향력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역사합니다. 서로 반대될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배울 수 있도록 그의 말씀 가운데 마련하셨다면, 그와 반대되는 방향이나 혹은 다른 방향을 제시하시지 않읍니다. 오히려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성서에 있는 영적 말씀들을 마음 속에 명확히 간직함으로써 영적 사물에 대한 이해력을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관련된 부분들을 종합하여 영적 이해력을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였읍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디모데 후 1:13, 14; 에베소 3:14-19.

10.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합니까?

10 성서의 지면 그 자체는 표지가 좋든 나쁘든 간에 「잉크」로 인쇄한 종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이 영감받은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할 때, 강력한 힘이 발생하기 때문에 분별력을 가진 독자가 하나님의 영을 흡수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넣은 힘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뚜렷한 역사의 하나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할 때 결과를 산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 (히브리 4:12) 하나님의 말씀은 그만큼 침투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행동의 동기에 주의를 돌립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피조물 즉 하나의 영혼으로 보이는 외양과 우리가 마음에 있어서, 태도에 있어서, 영에 있어서의 양태를 구분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활가운데 그것이 역사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상과 불순한 동기, 이기적 욕망을 저항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의를 행하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예레미야 17:9, 10.

새로운 영을 위해 일함

1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정신을 어떻게 사용하도록 목적하셨읍니까?

11 여호와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인간 에게 추리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기능은 은혜로운 선물이었읍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은 주어진 자극에 따라 미리 예정된 생각 혹은 결과만을 산출할 수 있는 인쇄 회로(印刷回路)가 아니었읍니다. 또한 하늘로부터 일거일동을 통제받는 「로봇트」도 아니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생활하는 가운데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알아 둘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을 점진적으로 가르치실 것이었읍니다. 선과 악을 경험(혹은 시행착오법)을 통하여 배우도록 하지 않으셨읍니다. 감관을 통하여 지각하고 연합시켜서 지식을 양식화(樣式化)할 것이었읍니다. 이 지식은 그 순간에 사용될 수도 있고, 혹은 장래에 사용하기 위해서 기억 속에 저장해 둘 수도 있었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이해력을 가지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해 나가는 데 좌우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창조주로부터 배워 굉장히 많은 지식을 축적할 것이었읍니다.—잠언 3:1-7.

12 (ㄱ) 여호와께서는 인간들이 자극을 받을 원인으로서 정신과 마음 내에 무엇을 창조하셨읍니까? (ㄴ) 이 정신적 힘의 잠세에 있어서 인간은 하등 동물과 어떻게 다릅니까?

12 정신 작용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출생하는 때부터 그 사람의 행동 동기가 되는 정신적 힘이 존재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성서는 이 정신적 경향 혹은 원동력을 인간의 영(「루아」, 「히브리」어, 「프네우마」, 희랍어)으로 말하고 있읍니다. (잠언 25:28; 고린도 전 2:11) 이 힘은 욕망, 요구, 열망, 및 신체 내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서 발생하며, 그러한 것들을 양성하는 결과로 강화됩니다. 하등 동물들도 영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하등 동물이 가진 정신적 힘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충동하기 때문에 인간과 다릅니다. 따라서 하등 동물은 여러 세기 전의 조상들과 대동소이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이 정신적 경향은 추리된 행로에 따라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는 잠세(港勢)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할 능력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 도덕 행위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소유한 자유는 유한한 것이며, 한계가 있읍니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유익합니다. 왜냐 하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는 해로운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창조주는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는 합리적 한계를 설정하셨읍니다.—요한 1서 5:3; 베드로 전 2:16.

13. 자기의 『영』과 관련하여 의지의 역할을 논하십시오.

13 이 충동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 개인의 의지(意志)입니다. 이 의지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행동 작용입니다. 의지는 고정되고 지속적인 의도와 목적을 암시합니다. 지식을 취하고 지식을 상호 연결시켜서 이해력을 갖는 방법 여하는 의지와 크게 관련을 가집니다. 우리의 행동 배후에는 동기를 유발하는 정신적 힘이 있으며, 이러한 힘을 통제하는 의지는 우리의 행동 종류를 결정짓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의지력이라도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악한 행동의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 대로 선한 일을 행할 이유로서 우리의 의지를 강화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의 원동력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지도할 것입니다.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 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에서 건져내리라.』—잠언 2:10-12; 다니엘 11:3; 고린도 전 7:37.

14. (ㄱ) 죄 때문에 인간의 마음의 경향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읍니까? (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새로운 영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읍니까?

14 최초의 인간 부모는 올바른 지식을 계속 취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을 수행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계속 강화시키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릇된 동기가 자라게 함으로써 자기 결정의 행로를 따를 충동을 받았읍니다. (야고보 1:14, 15; 고린도 후 11:3) 그들은 죄를 지었읍니다. 우리는 그 유전을 받아서 동일한 경향을 가지고 있읍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세 8:21)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읍니다. 그는 자신의 죄많은 행로를 개탄하면서 자책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읍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마소서.』 (시 51:5, 10, 11) 우리는 이 새로운 영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에 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판단력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성실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흔히 넘어지고 잘못된 길로 미혹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에베소 4:22-24.

15. 선한 마음과 올바른 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5 만일 한 사람이 올바른 영을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일하며, 가질 결심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충실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 선한 영을 가지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의 영을 강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읍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태 26:41) 우리의 영은 촉진제를 가질 필요, 즉 너무나 강력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뻗기 때문에 그릇된 길로 가려는 육체의 욕망이나 최저 저항선을 따르려는 욕망을 분쇄할 의향을 가질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혹에 넘어가거나 『마귀로 틈을 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베소 4:27) 우리의 정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깨어 있고 살아 있고 열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유신의 제한과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9:26, 27; 로마 6:12-14.

16. (ㄱ) 새롭게 된 우리의 마음에 대해 방해 공작을 계속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육체의 욕망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 기적을 행하시어 불완전성과 죄를 짓는 경향을 우리 몸에서 제거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것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건한 행동에 전념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매일 매일 의식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밥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 .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 7:21-25)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써 육체의 욕망을 누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요구 조건들을 달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 4:7) 하나님께서 영을 주시는 목적은 기적적으로 문제를 제거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그 문제를 견디고 그 문제로 단련받고 그 문제로 성실을 증명하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디모데 후 1:7; 누가 11:13.

17. (ㄱ)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잊어 버려서는 안됩니까? (ㄴ) 왜 우리는 때때로 시험을 끝까지 받습니까?

17 우리는 우리의 시험이 항상 「욥」의 시험과 같이 우주 주권 문제를 포함한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극단으로 흘러서 시험하에서 우리가 충실을 지켜도 여호와의 이름 입증에는 하등의 공헌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필요한 보호를 하시지 않고,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양육받고 성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시지 않았다면, 마귀와 악귀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무자비하게 멸망시킬 행동을 취하였을 것입니다. 마귀는 누차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그들의 성실과 의로움을 문제 삼았고, 흔히 우리가 유혹받고 학대받고 위협받고 간섭받도록 획책하여 왔읍니다. 어떤 문제들은 대단히 명백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각자가 시험 아래서 성실과 충성을 유지할 것인가를 결정짓기가 매우 아슬 아슬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읍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무분별하게 기적적으로 구원하신다면, 마귀는 여호와를 조롱하고 그 문제를 질질 끌고 나갈 것입니다. 「위험한 순간에 여호와가 그 자를 구원해 주었다. 만일 여호와가 그 자를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는 내 시험에 넘어가 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라고 할것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는 문제를 혼미하게 만들 뿐입니다.—잠언 27:11; 계시 7:1-4, 9-17.

18. 여호와로부터 구제받는 데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18 그 반면, 그 시험 혹은 시련이 도를 지나치거나, 혹은 더이상 그 문제와 관련 없는데도 계속 가한다면 여호와께서 자비롭게 간섭하시어 어떠한 작용으로서 구제할 이유가 섭니다. 여호와께서는 지상의 성도들을 위해 공복으로 일하는 천사들이나 혹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읍니다. 각자는 이 특별한 도움을 깨닫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구제되었음을 느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시험이 소기의 목적을 달하면, 중단을 명령하실 수 있으며 탈출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읍니다. 혹은 경우에 따라 죽기까지 충성을 지킴으로써만 그 문제가 해결될 때는 끝까지 계속하도록 허용 하실 수 있읍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 10:12, 13; 고린도 후 4:7-12.

19. 여호와께서 『심령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주의깊이 행해야 합니까?

19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 후 4:16) 우리가 새롭게 하고 보호하기를 원하는 것은 『속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내할 때 우리는 여호와께서 『심령을 감찰』하심을 기억합니다. (잠언 16:2) 그는 우리가 이 세상의 영과 이 세상의 지혜가 우리를 움직이게끔 하는지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밀접히 고착하고 그의 영에 순응하는지를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 .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 .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 4:30; 5:17, 18; 갈라디아 5:16-26.

20. 여호와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그의 영과 말씀을 주셨읍니까? 다음 기사에서는 무엇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까?

20 만일 우리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질서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여호와께서 생명을 위해 준비하신 모든 마련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 기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우리에게 필수적인 보조물로서 그것이 없어서는 안됨을 살펴 보았읍니다.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세번째 마련이 있는데, 계속되는 기사에서 그 마련 역시 여호와께서 생명을 추구하는 그의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사랑스러운 마련임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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