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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한 곳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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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한 곳으로 가는 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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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11/15 518-523면

안전한 곳으로 가는 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요한 14:6.

1. 도피성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고대 「이스라엘」백성 가운데서 도피성의 마련이 종종 생명을 구원하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도피성의 목적은 불의(不意)의 살인자가 법적 피의 보수자에 의하여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불의의 살인자에게 보호와 안전을 주기 위함이었읍니다. 이러한 도시들은 범죄자들에게는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들의 마련은 율법의 다른 많은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예언적 모형이었으므로 (히브리 10:1),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든 인류의 영원한 유익을 위하여 마련하신 웅대한 구원의 마련을 상징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즉 인류를 피흘린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한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신 이유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2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가장 높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마련에 대한 커다란 진리를 알리게 하시고, 또한 그에게 진실한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을 틀림없는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고 끝없는 생명을 주기 위하여 그를 지상에 보내시어 희생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1:7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태 20:28.

3. 「이스라엘」 사람들과 외국인 거주자들이 그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알려 줍니까?

3 모형적 도피성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실체적 도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기초 위에 회개한 범죄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보호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언약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였읍니다. (히브리 9:15) 옛날의 실체 도피성에서는 「이스라엘」 사람이거나 외국인 거주자들이거나 다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 (민수 35:15) 그것은 실체적인 도피성이 영적 「이스라엘」 즉 천적 반열의 성원이 되어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제사장으로서 통치하고 봉사할 자들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대열에 서 있는 자들 모두 즉 『다른 양』에게도 강력한 보호를 제공할 것을 상징합니다.—요한 10:16.

4. (ㄱ) 구원의 마련에 있어서 무엇을 무시할 수 없읍니까? (ㄴ)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천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일합니까?

4 「이스라엘」에서 불의의 살인자들은 자기 나라를 떠나 외국으로 도망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아닌 「레위」인들에게 속한 도피성으로 도망하였읍니다. 「헤브론」성만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에게 속하여 있었읍니다. 이 사실은 구원의 마련이 여호와의 조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적 제사장 반열의 남은 자들이 오늘날 아직도 지상에 남아 있어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의 핵심을 이루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 근원의 마련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여호와의 증인 회중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읍니다. 사도 행전 2:47에는 『[여호와]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 말은 『구원받는 사람』들이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눈에 보이는 조직에 부가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로 연합된 믿음의 가족 안으로 함께 모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닉의 백성의 눈에 보이는 회중은 오늘날 구원의 마련과 관계가 있읍니다. 실로 그것은 그 마련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각 회중은 하나님의 백성의 적은 부분을 이루고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조직 밖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읍니다. 여호와의 영과 그의 천사들은 모두 생각과 목적과 활동에 있어서 연합을 이루려고 힘쓰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실체적인 도피성 내에서의 여호와의 보호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의하여 감독받는 영적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는 회중과는 중요한 관계가 있읍니다.—에베소 4:3-6; 마태 24:45-47.

실체적인 불의의 살인자

5. 불의의 살인자는 누구를 예표하였옵니까?

5 그러면 보호의 도시에 도피한 불의의 살인자는 실제로 누구를 상징합니까? 불의의 살인자는 자기들이 여호와의 관점으로 볼 때에 어느 면으로 피흘린 죄에 참여하였음을 의식하게 된 모든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성실한 사람들이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 곧 빛을 밝혀 주는 성서의 말씀을 배울 때에 이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고를 일으켜 생명을 잃게 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매년 수만명이 자동차 사고로 거리에서 생명을 잃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악의가 없었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세상 나라의 법에서는 그러한 경우에 형벌을 규정하고 있읍니다.

6.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피흘린 죄에 참여하였읍니까?

6 그러나 불의의 살인자의 의미가 현대에는 더 널리 적용되기 때문에 상술한 사건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시대는 인류 역사상 커다란 전쟁으로 유명한 시대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백만의 사람들은 본의는 아니면서도 억지로 유혈 사건에 참여하였읍니다. 1914년 이래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과 잔인한 사상 혁명으로 말미암아 수천만명이 생명을 잃었읍니다. 사실상 기원 1914년 후만 하더라도 피에 대한 인류의 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심해졌읍니다.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인간의 창조주, 생명의 신성함을 선언하신 분께서는 이 모든 것을 심히 불쾌하게 보셨을 것입니다.—히브리 1:13.

7. (ㄱ) 어떻게 하여 심한 피흘린 죄가 거짓 종교에 있게 되었읍니까? (ㄴ) 요한 계시록 17:5, 6은 이 점을 어떻게 묘사하였읍니까?

7 전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피를 그처럼 조직적으로 대량으로 흘리는 일을 축복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그리스도교와도 일치한 행동이라고 믿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자기네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릇된 일을 한 사람들이 많읍니다.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수많은 교회와 종교 단체들이 조직적인 피흘림을 지지한 사실은 한 가지 사실 즉 전 세계의 거짓 종교에 막중한 피흘린 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이 피흘린 죄는 지난 몇 십년 동안에만 지은 것이 아니라 과거 여러 세기 동안에도 축적되었읍니다. 여러 가지 종교 전쟁, 종교 지도자들이 사수하고 지시한 전쟁, 십자군 전쟁, 소위 이단 심문, 그리스도의 이전과 이후에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박해 등으로 말미암아 피는 실로 강물처럼 흘러갔읍니다. 요한 계시록 17장에 이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은 『큰 바벨론』이라고 불리우는 부도덕한 여자로 상징 묘사되었읍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계시 17:5, 6.

8. 교회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였읍니까?

8 교회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얼마나 곡해하고 전쟁을 정당화하였는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 「프로테스탄트」 일요 신문에 게재된 다음과 같은 말에도 잘 나타나 있읍니다. 『우리 군사들은 단순히 고향과 가정 그리고 왕과 조국을 위한 투사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봉사에서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집행자들로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 군인들은 자기들이 실제로 훨씬 더 높은 봉사와 직책을 맡고 있으며, 자기들이 하나님의 임무를 돌보고 있으며, 그러므로 전쟁을 유리하게 종결짓기 위하여 놀랍게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 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을지어다! 또한 이 전쟁은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일보 전진이다.』(「교회, 전쟁 및 군복무」, 월터 디그나트 저, 51면)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은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종교 제도 위에 쌓인 피흘린 죄에 적절하게 적용됩니다! 그 예언자는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다고 말하였읍니다. (예레미야 2:34) 그러나 피흘린 죄는 이교 종교 조직에도 있읍니다.

실체적인 피의 보수자

9. (ㄱ) 피흘린 죄에 대하여 언제 형벌이 임할 것입니까? (ㄴ) 실체적인 피의 보수자는 누구입니까?

9 피흘린 죄가 그처럼 심한 곳에는 반드시 형벌이 임하게 되며 벌을 피할 수 없읍니다. 그 형벌은 반드시 급히, 그렇습니다, 우리 세대 내에 임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벌에 대하여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6:21)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법적 피의 보수자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부과하였읍니다. 그러면 실체의 성취에 있어서는 누가 피의 보수자인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의 보수자입니다. 요한 계시록 19장에는 그가 흰 말을 타고 나와 의의 전쟁을 하는 것이 묘사되었읍니다. 하늘의 군대들이 그를 따릅니다. 약 19세기 전에 예수께서는 지상에 완전한 인간으로 탄생하셨으며, 그러기 때문에 그는 종종 자신을 『인자』(人子)라고 칭하셨읍니다. (마태 28:18; 25:31) 이로 말미암아 그는, 말하자면, 인류의 가까운 친척이 되셨으며, 그러므로 실체적인 피의 보수자 자격이 있읍니다.

10. 특히 어느 때부터 도피성의 모형은 적용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기원 1914년에 이 인간 사회의 질서에 『마지막 때』가 도래하였으며, 특히 그때부터 도피성의 모형이 적용되는 시기가 되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이 세대 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신 강력한 피의 보수자로서 활동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흘린 죄가 있는 이 사회를 완전히 종결지우실 것입니다. (다니엘 2:44) 피의 보수자와 거룩한 천사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군대는 보호하여 주는 도피성으로 시간 내에 도망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이 다가오는 재변을 막을 것이라곤 도무지 아무 것도 없었읍니다. 아무 나라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들은 피할 수 있읍니다.—잠언 1:24-33.

안전한 곳으로 도망함

11. 사람들은 피의 보수자에게 잡히는 일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읍니까?

11 그러나 개개인들이 어떻게 다가오는 피의 보수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읍니까? 그 대답은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안전한 곳으로 도망함으로써」 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하는 일은 실로 가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그 나라 전역에 거의 비슷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도피성이 여섯개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안전한 장소로 가는 길은 도망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별로 멀지 않았읍니다. 이 안전한 장소는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있었읍니다. 이 예언적 모형의 성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진정으로 안전한 곳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읍니다. 구원은 그들이 다달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읍니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별로 멀지 않습니다. 보호의 도시인 하나님의 구원의 마련은 가깝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가는 데는 얼마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전으로 가는 길은 봄날의 즐거운 산보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든 일, 싸움 곧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의미합니다.—디모데 전 6:12.

12. 피흘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취하여야 할 행동에 대하여 누구의 행로가 훌륭한 본이 됩니까?

12 이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훌륭한 본이 됩니다. 그도 역시 「유대」교 종교 제도에 지워져 있던 피흘린 죄에 참여하였읍니다. 그 때에는 그는 「사울」이라고 불리웠읍니다. 그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일을 승인하였읍니다. 그러한 예로 「스데반」의 죽음에 관하여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사도 8:1) 그러나 이 후에 「사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읍니다. 그 후로 그는 믿음을 위하여 놀랍게 선한 싸움을 싸웠읍니다! 그는 자기의 구원을 확실케 하기 위하여 힘써 이 목표를 향해 달렸읍니다! 그는 전도하였고,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고, 갖가지 난관을 겪은 다음 결국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예와 다른 사람들의 예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는 진정한 노력이 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고린도 후 11:23-27; 디모데 후 4:6-8.

안전한 곳으로 가는 길

13. (ㄱ) 이러한 도망을 하는 데는 어떠한 요구조건들이 있읍니까? (ㄴ) 실제로 믿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3 안전한 곳으로 도망하는 일의 기초는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행하였고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있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시 51:3-5)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들은 회개할 것이며, 또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성서와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믿음이 자라갑니다. (사도 3:19; 히브리 11:6; 사도 16:31) 그러나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도 이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부족합니다. 성서에 의거한 믿음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과 활동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11:1) 그것은 실제로 자신을 여호와께 바치고, 그리스도의 추종자, 제자 즉 성서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통속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믿음과 참되고 깊은 성서적 의미에 있어서의 믿음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읍니까?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12) 안전한 곳 즉 실체적인 생명을 구하는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협착한 길과 동일한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태 7:14.

14.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협착한 길을 간다는 것은 우리가 동시에 멸망에 이르는 크고 넓은 길을 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서 분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로마 12:2) 참 그리스도인들은 피흘린 죄에 관계되는 어떠한 활동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건에 대하여 중립을 지킬 것입니다. (요한 18:36)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세상 특히 이 세상 종교 제도에는 어마어마한 피흘린 죄가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제도 내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그의 일부가 되며 따라서 이들 제도에 집단적으로 지워진 피흘린 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피흘린 죄가 있는 「유대」교에서 분리된 바와 같이 오늘날의 정직한 사람들은 큰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든 거짓 종교와 관계를 끊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 제도에 내리는 파괴적인 심판을 받고 싶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성서는 명확히 말하고 있읍니다. 『내 백성아, 기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시 18:4, 5.

15.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큰 「바벨론」의 일부임이 어떻게 인정되었읍니까?

15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큰 「바벨론」의 일부임은 그 조직 내의 저명한 인사들까지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전의 「에큐메니칼」 이사회 총무였던 「비세르트 후프트」 박사는 교회가 처하여 있는 입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에 행한 그의 연설에 대하여 어느 종교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읍니다. 『「비세르트 후프트」 박사는 [종교] 통합 과정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장애로서 교회의 「바벨론」적 포로 상태를 언급하였다. 모든 교회는 세속적인 세력과 어느 정도의 연합을 하고 있는데, 국가와 백성들과만이 아니라 인종과 문화와 민족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1964년 9월 30일자 Schweiz. evang. pressedienst.

16. 왜 도망하는 일을 지체하여서는 안됩니까?

16 생명을 사랑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피흘린 죄가 있는 세상과, 즉 그 세상의 정치, 사회, 종교 등 어느 부분과든지 지체하지 않고 분리할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 피의 보수자가 형 집행을 시작하기 전, 지금이 도망하여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늦기 전에 도망하여야 할 필요를 강조하면서 실체적인 피의 보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태 24:20, 21) 큰 「바벨론」의 멸망과 이어서 올 「아마겟돈」 전쟁이 이르러 성공적으로 도망할 수 없을 때가 이를 것입니다.—계시 16:14–17:18 .

『도피성』에 머물러 있음

17. 오늘날의 도피성에 있어서 대제사장은 누구입니까?

17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도피성으로 피신한 불의의 살인자는 그가 거기로 도망할 때에 재직 중이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 머물러 있어야 하였읍니다. 대제사장이 죽은 다음에는 자기가 이전에 살던 곳으로 마음대로 돌아갈 수 있었읍니다. 그때부터는 피의 보수자가 그를 해할 권리가 없었읍니다. 예언적 모형의 성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의 기능도 수행하십니다. 히브리서 3:1에 기록된 바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한 것과 같이 그는 대제사장이십니다.

18.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ㄱ) 하늘 반열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며, (ㄴ) 「아마겟돈」 생존자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8 그러므로 흥미있는 도피성에 대한 그림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피의 보수자의 기능과 대제사장의 기능, 두 가지를 수행하십니다. 그의 죽음은 보호의 도시에 있는 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실체적인 도피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실제로 두개의 반열 『「이스라엘」사람들』 과 『외국인 거주자』 다시 말하면, 하늘 왕국의 반열과 지상에서 살 반열이 그 도시로 도피하기 때문에 그것은 다음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늘 반열의 성원들 즉 영적 「이스라엘」이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지상의 행로를 마치고 하늘의 영적 부활로 보상을 받을 때에 그들에게 대하여는 대제사장이 『죽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그들을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을 마치십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그들 자신들도 불멸성으로 부활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과 제사장으로서 통치할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속죄의 봉사가 필요 없읍니다. (계시 20:6) 「아마겟돈」 생존자들에 관하여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천년 통치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지상에서 인간 완전성에 이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한 대제사장 일을 마칠 것입니다. 도피성의 그림에 관한 용어를 빌린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죽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속죄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이 봉사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히 의에 대한 그들의 완전한 헌신을 증명할 것입니다.—고린도 전 15:24-28; 로마 8:33; 6:7.

19. 우리에게 어떠한 경고가 주어졌읍니까?

19 그러나 만일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도피성에 도망하였던 사람이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그 도시를 떠난다면 더 이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죽음의 위험 즉 법적 피의 보수자에 의하여 처형당할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련이 요구하는 한 우리가 실체적인 도피성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만일 우리가 틀림없이 영원한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인도하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조직과 관련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스런 마련 내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 노출시키는 사기적인 자유를 얼마 동안 즐기기 위하여 강력한 보호의 도피성을 버리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도피성에 머물러 있으면 약간의 제약을 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지 행하고 무슨 말이든지 할 완전한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대속주이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옳고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행할 온전한 자유가 있읍니다.

20. 제자 「야고보」는 우리에게 무슨 충고를 하였읍니까?

20 그러므로 옛날 「모세」의 율법에 있는 도피성의 마련은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긴급성을 알려 줍니다. 거기에는 심각한 교훈이 들어 있읍니다. 그것은 피흘린 죄가 있는 이십 세기의 인간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적절한 교훈입니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이 이 세상의 집단적인 피흘린 죄와 이 악한 사물의 제도에 대한 다가오는 하나님의 형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요구 조건이 무엇인가를 읽고 들은 후에 그것을 자기의 생활에 즉시 그리고 부지런히 적용시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읍니다.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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