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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부한 자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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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부한 자를 밝힌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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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7/15 325-331면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부한 자를 밝힌다

1. 왜 오늘날의 왕국 소식은 그렇게 강력합니까?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는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 소식은 초림(初臨)때에 전한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소식과 비교됩니다. 오늘날의 말씀은 좀 더 강력합니다. 이 소식은 실제로 설립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원 1914년 가을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왕 그리스도 예수를 지상의 보좌가 아니라 하늘의 「시온」산에 즉위시키셨읍니다.—마태 24:14; 4:17; 시 2:6; 히브리 12:22.

2. 누가복음 16:19-31의 비유를 우리 시대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2 초림 때의 왕국 소식은 검열과 심판 기간의 시작을 이루었읍니다. 그것은 심판의 본에 있어서 첫 가닥이었읍니다. 그 결과 예수의 비유 가운데 부자와 「나사로」로 묘사된 두 반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열과 심판의 근거가 되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좀 더 광범위하게 수행됩니다. 비유의 내용과 다른 관계 성귀들을 검토하여서 우리는 초림 때 그 예언이 처음 성취되던 때의 두 주인공을 식별할 수 있었읍니다. 동일한 과정을 거치면 오늘날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각자가 심판의 본과 그의 계획된 목적에 관련하여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현대의 『부자』 반열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읍니까?

3 우리는 현대의 『부자』 반열을 발견하기 위하여 먼 곳을 바라볼 필요가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과 지도자들은 예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심히 비슷한 점들을 지니고 있읍니다. 오늘날도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그 반열은 신성불가침이며 지위와 교육에 있어서 우월하다고 자처합니다. 이러한 점들은 그들의 옷차림과 여러 가지 칭호로 표시됩니다. 그들은 영향력과 탁월한 지위에 있어서, 종종 정치적 통치자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더러는 왕이나 독재자들 배후에 앉아서 실제적인 세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부유합니다. 이 사람들은 또한 국사(國事)에 있어서나 사회적 개인적 문제에서까지도 오로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는 면에 있어서 종교적으로 부유합니다. 그들의 회중에서 그들만이 보통 전도를 하고 예배를 사회하도록 임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그들이 고백을 듣고 죄를 사(赦)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자들은 심지어 어떤 사람을 성도(聖徒]로 지정하여 거룩하고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조금도 어김없이 현대 『부자』 반열은 스스로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려고 하며 매일 매일 호화롭게 즐기고 있읍니다.—누가 16:19.

4. 언제부터 현대의 『나사로』 반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4 우리는 또한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거지』 반열을 찾아 내기 위하여 먼 데를 볼 필요가 없읍니다. 초림 때에 이 겸손하고 비천한 자들의 반열이 선구자인 침례자 「요한」이 전도를 시작하자 마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기억하십시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1914년 왕국이 설립되기 전에 여호와의 대표자 앞에 나가서 그 길을 선포하는 예비적 사업이 수행되었읍니다. (말라기 3:1) 더 큰 규모로 성취되기 때문에 그 사업은 더 긴 기간인 약 40년간 진행되었읍니다. 그 사업은 즉시 영적 필요를 인식하는 자들을 발견해 냈읍니다. 그런데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적 양식을 위하여 더 이상 정통적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았읍니다. 그 때까지 그들은 「나사로」와 같이 헌데를 앓는 상태에서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지면 받아 먹고자 『부자의 대문에』 있었읍니다. (누가 16:20, 21)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이전의 부자처럼 평민들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엄정한 성서의 가르침보다는 그들의 전통과 신조를 더 좋아하였읍니다. 그들의 식탁은 진수 성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음식들은 깨끗치 못합니다.

때에 대한 올바른 견해

5.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으로 상징된 일들이 갑자기 성취될 것을 기대하여야 합니까?

5 그때에 비유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장면을 완전히 변화시킨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두 사람이 다 죽은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중요한 때에 대한 문제가 들어왔읍니다. 그것은 왕국의 기쁜 소식의 선포로 성취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릇된 인상을 받지는 마십시오. 그 결과로 일어나는 변화는 일제히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았읍니다. 초림 때에도 그렇게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예수의 전도 봉사를 예기하면서 그보다 약 육개월 전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준 어떤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말씀이 전파되었읍니다. 마찬가지로 1914년 이전에 하나님의 왕국에 중점을 둔 진리의 말씀은 어떤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 굶주린 영혼을 채웠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직자들을 화나게 하였고 고통을 주었읍니다. 그들은 즉시 그에 대한 반응을 보였읍니다. (자세한 내용을 위하여는 「하나님의 목적 아래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 참조) 그 초기 사업과 말씀 전파는 1914년 이후에 수행될 더 크고 더 명백히 나타난 본을 예상하고 한 것입니다. 대낮의 해처럼, 우리는 해가 높이 솟아서 강한 빛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밝혀 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읍니다. 그 이전에도 미리 새벽의 반가운 빛은 목전의 풍경을 점차적으로 명확하게 하여 줍니다.

6.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사실들을 더욱 알 수 있읍니까?

6 또 다른 것이 있읍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종교적 세력가들은 그때까지도 고급 생활과 우월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또한 거지와 같은 상태하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후에 위안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한 두 가지 반열이 있다는 사실은 검열 기간이 시작되었으며 아무 것도 그의 원칙을 변경시킬 수 없고 그의 성취를 중지 내지는 방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변경시키지는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도 그와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께서 1914년 이방인의 기간이 끝났을 때에 일단 하늘의 「시온」 산에 즉위하신 후에는 마땅히 발생되어야 할 과정들을 아무 것도 중지 혹은 지연시킬 수 없었읍니다.

7. 「바울」은 더 큰 「아브라함」을 어떻게 설명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호소하였읍니까?

7 「바울」은 『「시온」산 . . . 하늘의 「예루살렘」』에 있는 신권적 조직체를 묘사할 때에 『천만 천사와 . . . 장자들의 [그리스도인] 총회』에 대하여 언급한 다음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더 큰 「아브라함」,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말하였읍니다. (히브리 12:22, 23)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 반열과 『부자』 반열, 기타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주의 판단은 큰 바다』 곧 『큰 구렁』과 같고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의롭고 준엄한 판단입니다. (시 36:6; 누가 16:26) 그러나 그의 심판을 최종적으로 집행하시기 전에는 개개인은 마음을 변화시켜 한 반열을 버리고 다른 반열로 들어갈 수 있읍니다. 심지어 검열 기간에도 그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이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러한 의도하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현 사물의 제도 전체 곧 상징적 하늘과 땅이 진동하여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 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라].』—히브리 12:25-28.

8. 「바울」은 무슨 최종적인 말을 부가하였으며, 무슨 차이를 유의해야 합니까?

8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바울」은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부가하였읍니다.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비유 가운데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고통을 받는 불꽃의 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것은 고통은 주지만 죽이지는 않읍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생명체를 『불못 . . . 둘째 사망』에 멸망시키는 최종적인 심판의 집행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히브리 12:29; 계시 20:14.

9. 계시록 11:7-12은 때에 대하여 어떻게 더욱 빛을 던져 줍니까?

9 사실들을 살펴 보면 우리는 때에 대하여 올바로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1914년에 왕국이 탄생되기는 하였지만 1919년에 이르러서야 『나사로』 반열이 온전히 상태의 변화를 받았읍니다. (계시 12:5) 어떠한 일이 발생되었읍니까? 일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하나님이 묵인하신 가운데 하나님의 헌신한 종인 『나사로』 반열을 압박하고 무활동 상태로 몰아 넣었읍니다. 반열 전체로 볼 때에 그들은 종말을 당한 것같이 보였으며 상징적으로 그들의 시체는 큰 「바벨론」의 『큰 성길』에 버리웠읍니다. 원수들은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였읍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그들을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회복시켰읍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 . .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919년에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바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받게 되었고 그들의 원수인 『부자』 반열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는 데서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높임을 받았읍니다.—계시 11:7-12.

10. 1919년 이후에 두 가지 반열의 상태 변화가 어떻게 더 명확하여졌읍니까?

10 그 이후로 예언된 바와 같이 변화된 상태가 점점 더 분명해졌읍니다. 이전에는 울고 굶주리던 여호와의 참 종들이 왕국 진리로 풍족히 먹고 왕국 봉사로 부유하게 되어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를 할 수 있었읍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의를 선양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자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되었읍니다. 그들은 이제 『나사로』 반열이 커다란 번영을 즐기고 진실로 부유하게 되었으므로 『심령이 상』하여 통곡하게 되었읍니다. 『나사로』 반열은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와 통치하는 왕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현대의 『부자』 반열은 죽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증거라고는 조금도 없이 멀리 매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읍니다. 그들은 『나사로』 반열이 전하는 왕국 소식을 배척하였읍니다. 그들은 국제연맹이나 국제 연합과 같은 인간 정치 제도를 옹호하였읍니다. 이제 예수의 비유에서 설명된 바 『부자』 반열의 현대적인 호소를 살펴 보겠읍니다.—이사야 65:14; 누가 6:26; 16:15; 에베소 1:3.

현대 『부자』 반열의 호소

11. 우리는 누가 복음 16:24에 있는 부자의 호소가 우리 시대에 성취되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읍니까?

11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 종교 지도자들의 주장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두 가지 경우 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말보다 사실을 더 뚜렷이 증명합니다. 그들은 『나사로』 반열의 활발한 사업과 말씀 전파를 감소시키고 무효로 만들며 심지어 가능한 곳에서는 사업을 금지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강구합니다. 「아, 「나사로」를 보내어 이 불 꽃 중에서 물 한 방울로 내 혀를 시원하게 하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부드러운 칭찬하는 말이 나오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받는 위치를 떠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떻게 하여서라도 그들을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떼어 놓을 수만 있다면!—누가 16:24.

12. 「아브라함」의 대답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부자』 반열의 호소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읍니까?

12 부자의 호소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단순히 사실만을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아무 것도 그들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읍니다.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하는 어조를 부드럽게 만들고 증인들의 입장을 변화시키려던 노력은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허사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종 「예레미야」에게 하신 바와 같이 오늘날 『나사로』 반열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주십니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 . .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1:7, 19.

13. 예수께서는 큰 구렁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비유가 더 광범위하게 적용됨을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13 비유 가운데서 「아브라함」이 다음에 『큰 구렁』에 주의를 환기시킨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기의 말을 부자와 「나사로」에게만 국한시켜 그 두 사람 중 아무도 그 큰 구렁을 건너가지 못한다고 하였읍니까? 그는 양편 다 많은 사람이 있는 것으로 말하였읍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 16:26.

14. 현대적인 성취에서 부자와 「나사로」로 상징된 사람들 외에 어떠한 반열들이 보입니까?

14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자기의 비유가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도록 하셨읍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성취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 부자에게 형제가 다섯명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의미상으로 보면 그들도 동일한 고통의 장소로 갈 자들입니다. 「나사로」의 편에 있는 자들이라고는 궁색한 거지를 부자의 대문에 옮겨다 주는 친절을 베푼 자들과 동정심을 나타내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아 준 개들뿐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거기서 우리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읍니다. 그들은 「나사로」가 궁할 때에 그를 위하여 수고를 하였읍니다. 그 부자는 아무 것도 안했읍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비유에서 자기의 영적 형제들 (『나사로』 반열)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라도 그들이 궁할 때에 선행을 베풀어 준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기꺼이 봉사한 이들은 『부자』 반열의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요 단순한 개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예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이 양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은 『적은 무리』인 합동 후사들을 제외한 그의 『다른 양』을 말합니다.) (요한 10:16; 누가 12:32) 반면에 아무런 도움도 베풀기를 거절한 자들을 예수께서는 염소로 비유하셨읍니다. 그 염소들은 최종적인 심판 즉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소멸의] 불』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양과 같은 자들은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초대를 받읍니다. 심지어 지금도 「요한」이 본 환상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들은 『성전』 반열인 『나사로』 반열과 밀접히 연합하여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즐기고 있읍니다. 이들 연합한 자들은 『어린 양이 . . .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시』기 때문에 진정으로 부유하게 됩니다.—마태 25:31-46; 계시 7:15-17.

재차 행한 호소가 또 거절되다

15. 「나사로」로 하여금 부자인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게 해 달라는 호소를 생각해 볼 때에 어떠한 입장을 볼 수 있읍니까?

15 고통스러운 수치와 치욕을 견딘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만일 잘 아는 사람들 곧 자신의 가족이 관련되어 다 함께 공개적으로 폭로되는 수치를 당한다면 훨씬 더 괴로울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과 지도자들은 예수 당시의 「유대」교 교직자들과 비슷한 입장에 처하여 있읍니다. 그들은 『나사로』 반열을 조종하여 크신 「아브라함」에게 전적 봉사를 드리는 지위에서 멀리 보내고자 합니다. 그들은 사명을 받아 보내질 수 있읍니까? 비유에서 말한대로 부자의 다섯 형제가 거하는 집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철저한 『증거』를 할 수 있게 오랜 시간을 거하도록 할 수 있읍니까? (누가 16:27, 28)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교국의 지지자들에게 친절히 접근하여 그들에게 증거 곧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식의 증거를 할 것입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환영을 받을 것이며 그들은 거기에 머물러 부자의 아버지 곧 그리스도교국의 아버지이며 『이 세상 신』인 「사단」 마귀의 집의 식구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16. 「아브라함」의 대답은 현재 어떠한 방법으로 확대 성취되고 있읍니까?

16 그렇게 될 수가 있읍니까?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라고 한 「아브라함」의 대답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누가 16:29) 오늘날은 이 「히브리어 성경」에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이 부가되어 있읍니다. 『나사로』 반열과 그의 동료들 즉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은 현재 성서 전체를 사용하여 큰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 「바벨론」의 피흘린 죄, 세상과의 벗됨, 그의 거짓 교리,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치, 그의 다가오는 멸망 등을 말해 주고 있읍니다.—계시 17:5, 6; 18:2, 3, 21.

17. (ㄱ) 『부자』 반열은 철저한 『증거』에 의하여 어떠한 영향을 받읍니까? (ㄴ) 그들은 무슨 표적을 요구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이 확장된 『증거』는 그리스도교국 지도자들이나 그들의 지지자들을 기쁘게 하는 그러한 종류의 증거가 아닙니다. 그 부자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말하였을 때에 그는 실제로 「모세」와 선지자들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는 반대를 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사실과 얼마나 잘 부합됩니까! 종교 지도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 자체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읍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칼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성서의 말씀입니다. (고린도 후 10:4; 에베소 6:17) 단지 그것만 없었으면! 그것이 아니면 대신 무엇입니까? 표적을 원할 것입니다! 아주 강력해서 이성도 믿음도 필요없는 표적입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하고 부자는 호소하였읍니다. (누가 16:30) 『부자』 반열은 자기들의 지지자들에게 회개가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간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는 일이 필요 없게 될 방법, 즉 계속하여 『기록되었으되』라는 말로 「모세」와 선지자들과 나머지 성경을 참조하는 일을 필요없게 만들 방법을 원합니다.—계시 16:1; 마태 4:4, 7, 10.

18. 오늘날의 상태를 보면 「아브라함」의 마지막 말은 어떠한 면으로 합당합니까?

18 심판의 본을 회피하거나 변경하는 법은 없읍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누가 16:31) 그것이 「아브라함」의 마지막 말이었읍니다. 「유대」교 교직자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게는 꼭 그대로 이루어졌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읍니다. 초기에 그러한 바와 같이 오늘날도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의 지지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그들은 듣도록 혹은 설득을 당하도록 강제당하지는 않읍니다. 그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눈을 감아 버릴 수도 있읍니다. 그들은 반대하거나 박해할 수는 있지만 더 큰 「아브라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증인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읍니다. 사도들 시대에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났으나] . . .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읍니다. (사도 8:1, 4) 오늘날도 증인들이 지하로 몰려갈 수는 있으나 그래도 그들은 전도합니다.

19. 지금은 모든 종교가들에게 무슨 더 큰 책임이 놓여 있읍니까?

19 『죽은 자에게서』 살아난 자가 있기 때문에 종교가들의 책임은 사실상 크게 증가되었읍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사흘만에 다시 살리[시고] . . .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다고 「베드로」는 말하였읍니다. (사도 10:40, 42)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도 철저한 증거가 행하여졌으며, 마찬가지로 오늘날은 부활되신 분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과 재판장이 되신 이래 더욱 증거하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1919년에 『나사로』 반열도 상징적으로 죽은 자로부터 살아났읍니다. 「요나」가 큰 고기의 배에서 구원을 받은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실도 부자와 그의 형제들 가족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하였읍니다.

참으로 부유하게 되는 방법을 배움

20. 부자에 대한 「야고보」의 말과 예수의 비유와 비교하여 볼 때에 어떠한 유사점을 볼 수 있읍니까?

20 성서 필자 「야고보」는 합당하게도 우리가 논의하는 주제를 요약하였는데, 그는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고통]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고운 베옷과 자색 옷]은 좀 먹었으며 . . .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죽은 후에 영원한 고초를 받는 것이 아님]』 그리고 심판의 본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하였읍니다.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 . .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여호와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여호와]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고보 5:1-3, 9-11, 신세.

21. 「욥」의 희곡은 「나사로」의 희곡과 어떻게 비교됩니까?

21 이 「야고보」의 말은 심판의 본의 밝은 면을 보여 줍니다. 「나사로」처럼 「욥」은 상당한 기간 모든 것을 박탈당하였으며 개가 「나사로」의 헌데를 핥은 바와 같이 자기의 종기를 긁었읍니다. (욥 2:8) 「욥」도 역시 은혜를 베풀 것으로 기대했던 세명의 종교적 친구로부터 대우를 받았읍니다. 「욥」이 그들에게서 받은 위안과 도움은 「나사로」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도움과 위안을 받은 정도였읍니다. 그러자 여호와로부터 심판과 검열의 때가 이르러 각자를 자기에게 합당한 위치로 보냈읍니다. 그것은 누가 진정으로 부한가를 드러냈읍니다. 건강이 회복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이 표면적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욥」은 이전에 소유하였던 재물의 두배로 축복을 받았읍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사로』 반열에 모여서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인도되는 『다른 양』의 『큰 무리』와 같이 훌륭한 열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을 갖게 되었읍니다.—욥 42:10-17; 계시 7:9; 요한 10:16.

22. 우리는 진정으로 부하게 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며 무엇을 피하여야 합니까?

22 우리들 개개인은 진실로 부하게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읍니다. 설사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방식의 변경을 요한다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을』 수 있읍니다. 우리는 「악하고 불의한 자」의 길을 피할 수 있읍니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부자는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읍니다. 그는 끝까지 교만하였고 이기적이었으며 항상 「나사로」를 자기 명령이나 수행할 거지로 여겼읍니다. 그러나 「아브라 함」은 단 한 가지 『모세』와 선지자들 곧 성서를 권고함으로써 그의 호소를 반박하셨읍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본은 아주 분명하여졌으며, 우리에게 널리 용서하실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방법을 보여 줍니다.—이사야 55:6, 7.

23. 이 점에 있어서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23 예수께서는 역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낸 말씀에서 어떻게 대조에 의하여 참 재물을 인식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셨읍니다. 기본적으로 『나사로』 반열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동일한 원칙이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그 회중은 참 재물과 거짓 재물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미지근하였으며,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뽐내었읍니다. 그들은 독선적이었으며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읍니다. 그러나 참 영적 가치로 판단하여 보건대, 그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으며, 배척당하고 입에서 토함을 당할 위험에 처하여 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치료 방법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참으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계시 3:14-18.

24. 「내게서 사라」는 예수의 말씀은 어떠한 조건을 행하라는 뜻입니까?

24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게서 사」고 내 값을 지불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본을 보여 주신 바와 같이 여호와께 우리 자신을 바치라고 권하십니다. 자신이 그의 훈련과 징계를 받는다면 「불로 연단된 금」보다도 훨씬 더 가치있는 믿음을 얻을 것입니다. 의를 구하되 자신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으로 자랑할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옷으로 하십시오. 그것은 바로 어린 양의 희생의 은혜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온유를 구하되 배우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며, 계속 눈을 비비고 하나님의 말씀에 저장된 진리에 눈을 뜨도록 진정한 노력을 함으로써 온유를 구하십시오.—베드로 전 1:7; 계시 7:14; 스바냐 2:3.

25.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무슨 훌륭한 격려를 주셨읍니까?

25 이러한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가장 마음을 끄는 약속을 하셨읍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 3:20) 만일 원하신다면 여러분도 위와 같은 직접적인 호소에 응하여 참으로 부하게 되어 그의 은총을 받는 밀접한 관계를 즐길 수 있으며 『한 목자 아래 있는 한 무리』에 들어갈 수 있읍니다.

26. 어디에 근거를 둔 무슨 행동이 지금 긴급히 요구됩니까?

26 만일 당신이 큰 「바벨론」에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호소에 속히 응하여 자신을 여호와께 바쳐 여호와의 백성이 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도망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계시 18:4)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일치한 행동으로 나타난 산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소홀히 여길 만한 핑계는 없읍니다. 구렁과 같은 분계선이 분명히 그어져 있읍니다. 『빛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 심판의 기초가 되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의 생애에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되셨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빛으로 오기를 꺼려하였으며, 어둠에 속한 악한 일을 더 좋아하였읍니다. 그들은 믿음을 실천하기를 거절합니다. 예수께서는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의 저주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직접 택한 것입니다.—요한 1:9; 3:18-20.

27. 어떠한 길을 걷고 어떠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즐거운 대조를 즐길 수 있읍니까?

27 그러한 사람들과는 달리 빛으로 와서 그에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시고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요한 3:21)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 큰 성이 멸망될 때에나 「아마겟돈」에서 생명과 사망의 쓰라린 대조를 맛보지 않고 지금부터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와 보호를 받을 수 있읍니다. 그러한 유리한 입장에서 당신은 지금 인생이 끝없이 재미있고 가치있게 보이는 행복한 대조를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영원히 살 놀라운 전망이 있으며 또한 창조주 자신이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신 즐거운 대조의 약속이 있읍니다.—계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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