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킴
1, 2. (ㄱ) 『말세』에 배우는 면에 있어서 어떠한 상태가 있을 것을 「바울」은 예언하였으며,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가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는 데 있어서 어떠한 다른 점들이 영향을 미칩니까?
『말세』 곧 고통하는 때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하여 기록하였읍니다. 그러한 배움은 아무 쓸데 없는 것이며 조금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도는 「골로새」 사람들에게 편지할 때에 자기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던 것입니다.—디모데 후 3:1, 7; 골로새 1:10.
2 왜 어떤 사람은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읍니까? 물론 이 문맥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곧 그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첫째로 두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들이 죄에 휘몰리고 그릇된 욕망에 쓸리기 때문에 그러한 이해를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하나님의 성령의 흐름을 방해받게 됩니다. (고린도 전 2:10-14) 그러나 우리가 지식을 쌓는 방법에 따라서 우리의 이해하는 정도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3. 우리 지식의 정확성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이 점을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읍니까?
3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고 생각한다고 합시다. 그는 필요한 재료를 모아 건축 장소에 쌓아 놓을 것입니다. 즉 벽돌, 「시멘트」, 창이나 문짝의 뼈대, 기와 등등을 쌓아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계획 즉 설계에 따라 재료들을 서로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서로 관계없는 물건들의 무더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식으로 지식을 쌓는 것같읍니다. 지식의 재료들을 심지어 성서적인 종교적인 지식까지도 아무 관계없는 잡동사니 사상처럼 자기들의 마음에 쌓아 놓기만 합니다. 대지 위에 실제 건축 사업을 시작하여야만 그 재료들이 칫수가 맞아 그 건축물에 적합한지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 속에 정확한 지식을 세워 나가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관련시키고, 복잡한 규격에 우리의 지식을 맞추어야만, 우리의 지식이 정확하고 조화되고 이해가 갈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지식이 부정확한가 모순되는가 혹은 거짓인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사실들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서로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이해는 그릇될 수 있으며, 결정을 잘못하거나 그릇된 결론에 이를 수 있읍니다.
올바른 본 위에 지식을 세워 나감
4. 어떻게 함으로써 우리의 지식을 진리의 올바른 본에 따라 세워 나갈 수 있읍니까?
4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기 위하여는 올바른 본에 따라 지식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물의 상호관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문제를 성서의 저자 여호와께서 세워 놓으신 진리의 원칙에 따라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서를 연구할 때,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본을 세워 나가도록 마음을 활동시켜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나타내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거대한 한 목적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그것의 올바른 위치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의 다른 것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알 필요가 있읍니다. 각 사건, 사상, 예언 혹은 교훈이나 충고의 요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목적 전체에 걸친 배경을 이해함으로만 그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읍니다. 실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말씀과 목적에 대한 이해가 증가할때에, 성경 안에 있는 각 사실 혹은 사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증가합니다.
5. 사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견해를 갖도록 노력하여야 합니까?
5 우리의 육안으로 물체를 보면, 그것은 높이, 깊이, 길이 및 넓이의 차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앞에 있는 물건들은 각각 전체의 풍경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체를 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것이 보이는 모양이 달라집니다. 기차가 몇 「미터」 떨어져서 지나가는 것을 지상에 있는 사람이 볼 때에는 크고, 웅장한 기계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중에 높이 날으는 비행기에서 보면, 동일한 기차도 조그마한 장난감처럼 보입니다. 비행기에서 볼 때와 같이 주위의 풍경을 넓게 보면, 기차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더 뚜렷이 볼 수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성서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는 사물을 단순히 인간의 입장에서,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제한되어 있는 인간들의 철학과 지혜의 눈만을 통하여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여호와께서 드높은 완전한 관점으로 사물을 실제 그대로 정확하게 보시는 것처럼 보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영적인 것들을 『그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에베소 3:18, 19.
6. 우리들의 지식을 정확하게 증가시키도록 어떠한 요소가 도움을 줄 것입니까?
6 성서의 일부분을 연구할 때,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고, 사물의 영적 『차원』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요소 몇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고려해야 할 것은 (1) 성서의 한 가지 교리와 다른 가르침과의 관계, (2) 인접한 문맥과 고려하고 있는 특정한 귀절에 있어서의 위치, (3) 원문이 기록된 당시의 환경, (4) 세월의 흐름에 있어서의 그 사건의 시기 및 (5) 고려하고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목적의 커다란 윤곽에 어떻게 부합되며, 성서의 기본적인 주제를 어떻게 밝혀 주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7. 하나의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될 수 있읍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7 한 가지 교리를 다른 교리들과 관계시켜 생각지 않으면, 혼동된 생각을 갖게 되며,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혼란된 사상을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볼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많은 종교인들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죽으시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는 것과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것 등의 성서의 가르침을 인정합니다. (로마 6:23; 디모데 전 2:6; 고린도 전 15:42)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믿고 있읍니다. 이 사상은 인간 영혼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 곧 사람이 바로 영혼이며, 영혼은 죽는다는 것,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등과 조화가 안될 뿐만 아니라, (창세 2:7; 에스겔 18:4; 전도 9:5-10)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는 가르침은 위에 열거한 성서의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배치됩니다. 만일 영혼이 불멸이며, 죽음이 다른 생명으로 옮겨가는 통용문이라면,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무슨 목적으로 죽으셨읍니까? 만일 죄와 죽음으로부터가 아니라면 그가 인류를 무엇으로부터 대속한단 말입니까? 만일 사람의 영혼이 불멸이고 죽을 때에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사실상 예수의 희생이 필요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활을 필요로 하는 죽은 자가 없다면, 부활의 필요성이 어디 있겠읍니까?
8. 성서 교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합니까?
8 그런데 그 점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이치적이며 서로 모순되지 않읍니다. 사람은 산 영혼으로 창조되었읍니다. 그는 죄를 범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그가 가진 단 하나의 생명을 상실하였읍니다. 그는 이제 후손들에게 생명을 전해 줄 수 없고, 단지 죄와 사망을 전해 줄 수밖에 없었으며, 만일 예수의 대속 희생의 마련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죽음이 완전한 종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희생의 기초 위에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게 영원한 생명으로 구출할 수 있으시며, 죽은 자들에게는 부활을 통하여서만 이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간명하고 이치적입니까! 성서의 가르침의 올바른 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영혼의 불멸성과 같은 거짓 교리를 마음으로부터 배격하게 합니다.
문맥을 고려함
9. (ㄱ) 성서 표현의 온전한 뜻을 포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고린도 전서 3:17에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9 성서의 표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인접한 문맥만 볼 것이 아니라 기록 당시의 환경을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읍니다. 예로서 고린도 전서 3:17 (신세)의 『만일 하나님의 전을 멸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멸하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은 바로 여러분입니다.』라고 한 것을 고려해 봅시다. 이 귀절을 처음 언뜻 본 사람은 이 말이, 박해를 가하여 그리스도인의 회중과 그들의 활동을 파괴하려고 애쓰는 이 악한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결론을 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과 같은 마련인 회중에게 그러한 공격이 있을 것이며, 그런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맥에 의하면, 「바울」은 사람들을 추종하고 파벌을 조성함으로써 분열을 초래하여 회중의 연합을 멸할 위험이 있는 회중 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고린도 전 3:3, 4) 그리고 「바울」은 단순한 그리스도인 연합에 대한 별개의 논문을 쓴 것이 아니었읍니다. 우리가 더 광범위한 문맥을 살펴 보면, 「바울」의 이론의 온전한 뜻을 알게 되며, 「바울」이 그 글을 쓰도록 분명히 자극하였던 긴박감과 염려의 감정을 알아 차리게 됩니다.
10.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의 환경은 어떻게 우리의 이해를 넓히도록 돕습니까?
10 「바울」은 기원 50년 경에 「고린도」시를 방문하여 약 18개월을 머무는 동안 「고린도」 회중을 세우는 데 역할을 하였읍니다. (사도 18:1-11) 그는 거기에 있는 형제들에 대한 정이 두터웠읍니다. (고린도 전 4:14, 15) 이제 그가 처음 「고린도」를 방문한지 약 5년 후에, 「바울」은 거기 형제들 사이에 심한 분쟁이 있다는 괴로운 소식을 들었읍니다. 편지의 뒷 부분에서(7장 이후)는 그가 다른 문제에 대하여 편지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가 「에베소」에 있는 동안에 편지를 쓰도록 자극한 것은 이 분쟁의 소식이었읍니다. 그는 당연히 괴로워하였읍니다. 그는 자기가 처음에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형제들을 사랑하였읍니다. 그는 자기의 사업이 허사로 되거나 자기의 사랑하는 많은 형제들이 침해를 당하여 넘어지게 되지 않도록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간단하지만 온정있는 인사와 칭찬을 한 다음에 그는 즉시 요점으로 들어갔읍니다. 『내 형제들아 . . .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린도 전 1:11) 그들은 사람을 따르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사물을 육체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칙과 조화되게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이렇게 일하는 것은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상은 회중의 이익에 거슬러 일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주동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 즉 그 회중도 일부를 이루고 있던 그 전에 대하여 파괴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읍니까?
11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그 회중과 더불어 이치를 따지고 그들이 옳은 견해를 갖고 어긋나게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 주고 있읍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고린도 전 3:5-7, 21) 그러므로 요점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지 않고, 올바른 판단력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사물을 잘못보고 비참한 결과에 이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때를 알아 냄
12. 왜 어떤 사건의 발생된 시대를 아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12 또한 세월의 흐름에 있어서 성서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때를 정할 수 있고 특히 성서에 있는 다른 사건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한 사건은 흔히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고, 어느 시대의 일반적인 상태는, 적어도 일부분은 이전의 사건들 때문에 생겨납니다.
13, 14. (ㄱ) 우리는 「히스기야」 통치의 때를 어떻게 마음에 정할 수 있읍니까? (ㄴ) 이 사실은 세월의 흐름 위에 어느 성서 인물의 연대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줍니까?
13 세월의 흐름 위에 사건의 발생된 때를 마음에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미 연대를 알고 있는 유명한 어떤 사건과 연관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유다」왕 「히스기야」에 대하여 읽는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독자들은 연대가 마음에 잘 떠오르지만, 다른 독자들은 이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연대를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들과 관련을 시킬 수 있겠는지 봅시다. 그가 「예루살렘」의 왕이었다는 것은, 독립국으로서의 「유다」가 「느부갓네살」이 지휘한 「바벨론」군에 의하여 멸망되어 종말을 당한 기원전 607년 이전 어느 때 통치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스기야」의 통치 때의 사건으로 마음에 쉽게 떠오르는 것은 열왕기 하 18장에 기록된 사건, 곧 「산헤립」의 지휘 하에 「앗수르」 사람들의 「유다」공격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하루 저녁에 「앗수르」군사 185,000명을 죽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 공격 때였읍니다. 어떻게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까지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읍니까? 그 앞의 열왕기 하 17장에서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에 대하여 말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기원전 740년에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틀림없이 그 사건이 바로 있은 이후 얼마 안되어 통치하였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실제로 기원전 745년부터 716년까지 통치하였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연대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위에 말한 사건들과의 관계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대강의 연대를 맞출 수 있읍니다. 실제로 정확한 시기를 알기 위하여는 언제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와 같은 믿을 만한 참고서를 참조할 수 있읍니다.—그 책 292-296면 참조.
14 부가적으로 만일 여호와께서 「앗수르」사람들의 조롱에 대답하기 위하여 사용하신 예언자가 「이사야」라는 것을 생각해 낸다면, 우리는 그의 연대도 쉽게 맞출 수 있읍니다. (열왕 하 19:20-34) 사실상 이것은 그의 오랜 예언 생활의 마지막 때인 것같읍니다. 또한 이러한 배경을 마음에 정하였다면, 우리가 「미가」의 책의 첫 귀절을 읽을 때에 그의 예언의 배경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 「모라셋」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그러므로 이치적으로 「미가」는 기원전 740년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되던 때 경에 살았던 「이사야」와 「히스기야」와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 그러한 성서 연구는 무엇으로 인도해 줍니까?
15 이러한 방법으로 즉 사상과 사건들을 서로 관련시켜 가면서 성서를 읽는 것은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해가 잘되기 때문에 점점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읍니다. 우리가 증가하는 지식의 재산을 진리의 본에 따라 함께 이어 맞추고, 창조주의 웅장한 목적에 대한 놀랍고 광대한 계시에 대하여 이해를 넓히는 것은 실로 흥미진진한 모험입니다. 이처럼 묵상하고 추리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의 통일성과 연합되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성서의 주제(主題)인 『왕국 씨』
16. (ㄱ)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입니까? (ㄴ) 왕국 씨에 대한 성서 주제의 발전을 간결하게 묘사하십시오.
16 성서의 통일성과 연합되었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를 하나로 묶고 있는 커다란 주제를 명확하게 알아 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왕국 씨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입증한다는 주제입니다. 성서에서 이 주제에 대하여 직접 간접으로 말한 것이 하도 많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서에 기록된 많은 예언과 사건의 중요성을 포착하지 못하게 됩니다. 왕국 씨의 주제는 하나님의 기록에서 대단히 일찌기 은밀한 문구로 소개되었읍니다. (창세 3:1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에 그 씨가 지상에 인간으로, 그의 후손으로 출생될 것을 밝히셨고, 「다윗」에게는 그의 후손 가운데서 그로 더불어 영원한 왕국을 설립하실 자가 나오리라는 것을 언급하셨읍니다. 『인자(人子)』로서, 『마땅히 얻을 자』로서, 왕국을 받을 이 분에 대하여 많은 예언이 「히브리어 성경」에 나옵니다. (창세 22:15-18; 사무엘 하 7:12, 13; 다니엘 7:13, 14; 에스겔 21:25-27)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브라함」의 씨라고 밝히고 있으며,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씨로서 헤아림을 받을 자들이 또 있을 것과 그들이 예수와 함께 창세기 3:15의 성취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자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에 참여할 것을 밝혀 주고 있읍니다.—갈라디아 3:16, 29; 계시 12:7-12; 로마 16:20.
17. 이 주제를 염두에 두면 성서 사건들을 연구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됩니까?
17 이 전체적인 주제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 많은 성서 사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집니다. 「노아」 홍수는 한편으로는 악한 문명에 대한 적절한 심판 집행이면서도, 약속된 씨 곧 『인자』라고 하는 이가 현 사물의 제도의 완전한 끝 때에 악인들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예언적인 경고로 볼 수도 있읍니다. 전에 논의한 「앗수르」 사람들의 「유다」 공격은 실로 씨의 왕국이 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좌절시키려는 「다윗」의 집에 대한 공격이었읍니다. 그 결과는 역시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무엇이 닥쳐 올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읍니다.—마태 24:37, 39; 열왕 하 19:34-37.
18. 「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씨에 관한 성서 주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읍니까?
18 「바울」은 그가 주제에 대한 점진적인 계시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에 대하여 편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깨달은 것이란 이것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이해하도록 도와 주심을 말하고 있읍니다. 『영원부터 . . .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 . .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에베소 3:4-6, 9-11.
19.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왕국 씨에 대한 표현은 어떻게 여호와께서 성서의 저자이심을 보여 줍니까?
19 이것이 그 때까지 거룩한 비밀이었을 때에 「히브리」어 성서 필자들은 그것을 말하였으며, 당시에는 이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면서도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전체적으로 모순이 없이, 조화를 이루고 그리스도인 회중이 이 비밀을 이해할 때가 이르렀을 때에 그 많은 진술과 예언 중에 하나도 모순된 것이 없었읍니다. 씨에 대한 주제가 성서 전체를 통하여 내려오면서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일관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성서가 사실 단 한 분의 저자 여호와 하나님의 책이며, 만물의 창조주께서 참으로 영감을 주신 책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중에 하나입니다.
20. (ㄱ) 만일 우리가 성서에 대한 이해력을 증가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까? (ㄴ) 성서 지식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숭배하고 찬양하게 합니까?
20 성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해하여 그를 숭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영감으로 성서를 기록시키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하는 명령을 지키는 것은 그의 말씀인 성서에로 감으로써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의 『존귀와 위엄』 및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인식할 수 있으며, 우리는 충심으로 이러한 권고에 응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찌어다.』—역대 상 16:11, 12, 27, 29, 34, 35.
21.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성서를 연구하여야 합니까?
21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한 영감받은 잠언은 얼마나 참됩니까! (잠언 28:5) 그러므로 있는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영과 진리로 섬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그를 찾으며, 성서에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대단히 필요한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건전하게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성서를 연구하십시오. 당신이 여호와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내용이 헛되지 않고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께 대한 정확한 지식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에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하십시오.—골로새 1:10.
[253면 도표]
역사상 관련된 사건
기원전
745—‘히스기야’ 통치 시작
(‘이사야’와 ‘미가’는 이미 예언자로 봉사하고 있었음)
740—북쪽 왕국(사마리아) ‘앗수르’에게 망하다
732—‘산헤립’의 지휘 하에 ‘앗수르’인들 ‘유다’공격
716—‘히스기야’ 통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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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유다’ 왕국(예루살렘)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