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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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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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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5
파65 8/15 310-315면

사랑은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고린도 후 6:3, 4.

1. (ㄱ) 사랑이란 어떻게 정의되어 왔읍니까? (ㄴ) 그것은 왜 기를 만한 가치가 있읍니까?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원칙에 근거한 비이기적 관심사라고 정의되어 왔읍니다. 우리는 먼저 기사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천이 어떻게 개인적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도록 도와 주는가를 살펴 보았읍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할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 복리에 비 이기적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올바른 실천은 역시 다른 사람의 길에 놓여져 있는 장애물을 그들이 걸려 넘어지기 전에 제거하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게 해 주며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게 출생되었고 인간은 연약하고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며, 이것은 우리로 다른 사람들이 행한 일이나 말한 일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열매 중의 하나인 사랑은 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성품입니다. 그렇지 않읍니까?

2. (ㄱ)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ㄴ)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일이 왜 그렇게 심각한 일입니까?

2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모든 것들 보다도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필요가 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세계적 전도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선을 위한 영향이 되어 그들이 접촉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유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고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도 또한 이것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한다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6:3, 4)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거리끼게 한다는 일이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마태 18장에 있는 예수의 말씀이 명백하게 해 줍니다. 이 장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인 형제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만 취급하고 있읍니다.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태 18:6, 7.

걸려 넘어지지 말라

3. (ㄱ) 넘어진다는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두가지 면이 고려될 것입니까? (ㄴ) 어떠한 성품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넘어지는 일을 피하도록 도와 줄 것입니까?

3 물론 이 넘어진다는 문제에는 두가지 면이 있읍니다. 즉 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넘어진다는 것과 또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행한 일이나 말한 일로 인하여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처음에 그리스도인 사랑의 성품이 다른 사람의 인간적 제한과 다른 사람이 저지른 조그만 잘못의 용서의 필요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게 함으로써 이 점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주 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 시기를 기도하지 않읍니까? 예수께서는 이 표본적인 기도를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하여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6:12, 난외주, 14)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못할 수 있는 조그만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우리의 재능 여하에 달려 있읍니다. 이 점을 우리 머리에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마태 18:23-35(신세)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세밀한 비유를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4, 5. (ㄱ)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 주는 예수의 비유를 간단히 설명하십시오. (ㄴ) 그는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어떠한 점을 인식시켜 주고자 하셨읍니까?

4 이 비유는 사도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서론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아마 우리 독자들도 때때로 생활하는 가운데서 같은 질문을 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주여 나의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짓는 일과 내가 그를 용서하는 일을 몇번이나해야 합니까? 일곱번 까지입니까?』라고 물었읍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잘못한 우리의 형제를 일곱번까지 용서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그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일곱번뿐만 아니라 일흔 일곱번까지 하라.』 그리고 나서 그는 그의 말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종과 회계하고자 하는 한 왕의 비유를 드셨읍니다. 왕에게 10,000「달란트」 (약 25억원)의 빚을 진 한 종이 불려 왔읍니다. 그러나 종이 참음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자 왕은 다만 가엾게 생각할 뿐 아니라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읍니다. 그 거대한 빚을 탕감받은 종의 기쁨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떠하였읍니까? 그는 주인에게서 경험한 용서할 줄 아는 같은 정신을 나타내는 대신 그에게 100 「데나리온」 (약 5,000원)의 빚을 진 사람을 찾아가서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였읍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노하여 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을 그가 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도록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읍니다. 『나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가 만일 서로 너희 마음으로부터 그의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그와 같이 다루실 것이다.』

5 『25억원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어찌 5,000원의 빚을 갚으라고 그렇게 심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결론의 말씀의 뜻을 분명히 파악하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다 하드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대속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용서해 주신 빚에 비하면 5,000원의 가치밖에 되지 않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거대한 빚을 용서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에게 지은 조그만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는 대신 일흔 일곱번까지도 용서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7.

전통, 습관, 혹은 말로 인하여

6. 다른 사람들의 습관이나 전통이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까?

6 당신은 때때로 어떠한 사람의 독특한 습관이라든지 전통 혹은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특성으로 인하여 노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읍니까? 어떤 나라에서는 식사 때에 술을 마시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아마 어떤 손님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또는 그와 반대로 식사 때에 술을 마시는 것을 금하는 가족이 있어서 술을 마시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너무 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이 비성경적 전통이나 습관이 아닌 이상 당신을 지나치게 고민하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가지 중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노여움을 느끼거나 그로 인하여 넘어지는 일이 있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제일 세기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같읍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은 아무 것이나 다 먹고, 어떤 사람은 채소만 먹고, 어떤 사람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 . .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 .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 14:5, 6, 17) 그러므로 이러한 먹는 습관 같은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그런것이 당신을 넘어지게 하거나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을 방해하게 하지 마십시오.

7. (ㄱ) 어떻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을 넘어지게 합니까? (ㄴ) 어디에 잘못된 점이 있읍니까?

7 아마 당신은 어떤 개인이 가령 오락이나 직장 문제 혹은 옷차림에 있어서 잘못된 길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그것이 당신을 넘어지게 할 만큼 당신을 괴롭힐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읍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잘못된 길이라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조직을 통하여 그것을 고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불평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한 경우 어떤 장성되지 않은 사람은 『그가 회중과 연합하는 한 나는 집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전도 봉사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할지 모릅니다. 물론 그러한 태도는 잘못이며 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도 않읍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걷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조직을 버릴 이유가 되지 않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상 「사단」의 도모를 섬기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약하여져서 넘어지게 하여 마침내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8. 「베드로」는 어떻게 그가 들은 것으로 인하여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8 사도 「베드로」의 본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길입니까! 한번 「가버나움」에서 예수께서 큰 무리의 사람들에게 전도하신 일이 있는데 예수께서는 그의 연설 가운데서 그의 몸을 생명을 주는 떡으로 비유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것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말하며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읍니다. 그들이 단순히 말씀하신 것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넘어지게 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읍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하였읍니다. (요한 6:53-69) 「베드로」도 예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에게 지혜와 생명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러므로 같은 경우를 당한다 하드라도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마십시오. (잠언 24:19) 그리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9. 그리스도인이 쉽게 노여워하지 않도록 하는 데 어떠한 성귀가 도움이 됩니까?

9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매우 민감하여서 노여움을 느끼기가 매우 쉽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발끝을 밟힌다」라는 말과 같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께서 세워 놓으신본을 따르는 새 사람을 입어 온유함과 절제력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민감하여 사소한 일로 노하거나 불끈 화내거나 감정을 상하는 일을 용납할 여지가 없읍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 . .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야고보 5:9, 10) 우리가 이전 기사에서 토론한 바와 같이 당신이 행동을 취해야 할 만한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면 당신의 형제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실제적이든 상상적인 것이든 그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읍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대속의 희생을 통하여 나타내신 바와 같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기억하십시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17:9; 19:11; 전도 7:9.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게 함

10, 11. (ㄱ)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어떻게 반성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까? (ㄴ)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넘어지게 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10 이제 넘어지는 문제에 있어서 다른 면 즉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인가를 고려해 보십시다.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24) 위에서 이미 토론한 것들 즉 그리스도인이 보고 지나치거나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할 바로 그러한 것들을 그가 행한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피함으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게 할 수 있겠읍니까?—고린도 전 10:32.

11 여기에서 자신을 주의깊이 반성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당신은 스스로 이러한 질문들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인 형제 특히 새로운 사람이나 장성하지 않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만한 이상한 습관이나 버릇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로 그리스도의 원칙을 타협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직업에 있어서나 오락, 취미 혹은 사교적 소일 거리에 있어서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나의 행위나 나의 하는 일 혹은 말이 장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일으키게 하여 그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된 일은 없는가? 만일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라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아마 「텔리비젼」에서 어떠한 「프로그램」을 보거나 좀 풍기를 문란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어떠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아무도 말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생각하는 대신 그것이 건설적이냐를 생각합니다. 내가 그러한 영화를 구경하기 위하여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영적으로 약한 사람이 보았다면 그의 양심이 손상을 받지 않을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린도 전 10:23, 31-33; 로마 14:21; 15:1, 2.

12. 새로운 사람에 대한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12 어떤 사람은 아마 『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에 장성하지 않은 사람만이 내가 한 일로 말미암아 넘어지게 된다』고 논박하고자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성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장성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책임 아래 놓여져 있읍니다. 그는 그들이 넘어지기를 원치 않고 영원한 구원을 받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고려를 베풀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에 바로 그 점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읍니까? 그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이기적 관심사인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마치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고린도 전 13:1, 2) 같은 편지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였고 어떠한 지체가, 예를 들면 눈이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같이 보인다 하여 이것은 눈이 다른 지체에게, 가령 작은 발가락에게 너는 필요치 않다고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발가락이 조그맣다 하드라도 그들의 맡은 바 기능이 있고 몸 전체를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데 크게 돕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람이나 약한 사람 즉 장성하지 않은 회중의 성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관심이나 영예를 필요로 하거나 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바울」은 『몸에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준다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2:19-25) 그러므로 회중의 약한 성원들에게 장성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고려를 베풀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13. (ㄱ) 넘어지게 하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혀를 보호하는 것이 왜 그렇게 필수적입니까? (ㄴ) 말을 『소금으로 고루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3 이 점에 있어서 또한 혀를 올바로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왜냐 하면 혀는 쉽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혀는 마땅히 하나님의 기록된 목적의 정확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북돋아 주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성서 필자인 「야고보」는 혀를 말의 입의 재갈과, 큰 배의 조그만키 그리고 큰 산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그만 불꽃으로 비유하여 조그만 지체지만 선을 위하여든지 혹은 악을 위해서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하였읍니다. 당신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 조그만 지체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도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명성을 손상시키기 쉬운 말질의 경향을 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동시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너희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 . .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우리는 충고를 받고 있읍니다. (에베소 5:3, 4) 노엽게 하기 쉬운 말을 하는 대신 당신의 말이 북돋아 주는 것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올바른 일을 격려하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히브리 10:24)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로새 4:6) 소금으로 고르게 한다는 것은 음탕하다거나 도발적이거나 음란한 것과 비슷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맛좋고 구미를 돋구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방부제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이기적 관심사로써 지원되고 감동된 당신의 말이 또한 당신에게 듣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로 살아 넘어 갈 수 있는 길이 되게 하십시오.

14. 어떻게 행동하는 문제들이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수 있읍니까?

14 그리스도인은 또한 그의 행위가 그의 건전하고 건설적인 말과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펴야 합니다. 그는 예수 당시에 있었던 「유대」인의 「바리새」인과 같은 의심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3) 과도히 마시는 일이나 의문시되는 곳에서의 올바르지 않은 교제나 오락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넘어지게 할 수 있읍니다. 춤추는 일에 있어서도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는 성서가 말하지 않읍니다. 그렇다고 하지만 부당하게 관능적인 춤을 추는 일은 오락의 범위를 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기를 원치 않는 그리스도인이 빠지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교제를 여호와의 신세계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만 제한시키고 휴식을 느끼게 하는 건설적인 오락을 갖고자 함으로 그는 사도 「바울」이 로마 14:19에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자고 제안한 길을 따르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 감독자들은 또한 어떻게 회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읍니까?

15 오늘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회중 집회에 참석하여야 하고, 전도 봉사에 참여하여야 하며, 매일 생활에 있어서 일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외에도 개인 성서 연구와 성서 낭독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도움을 베풀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서는 안됩니다. 회중적 마련에 있어서 감독자와 같이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회중의 한 성원이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그것을 무시해 버리거나 그의 문제가 사소한 것이라든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치워 버리는 일은 약한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감독자는 항상 그에게 문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의 말을 기쁨으로 듣고 도움을 베풀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임명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5:2) 그가 치도록 맡겨진 양같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도록 그를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로마 15:1, 2.

16. 오늘날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유익을 가져 올 것입니까?

16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같이 오늘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전시』되어 있으며, 『세상에게,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 거리가 되』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4:9, 신세) 그러므로 모두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말과 그들의 일상 생활을 살펴서 다른 사람들 앞에 넘어지게 하는 돌을 놓는 일이 없도록 신중히 걸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인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그로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사랑은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한 말로 인하여 넘어지는 일이 없게 합니다. 끊임없이 날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전도 봉사에서 이 가장 중요한 사랑의 율법을 실천하도록 요구되어 있읍니다. 그들은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고자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고린도 후 6:3, 4) 그들은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규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그들의 생활에 그 원칙을 적용시키는 것과 증인들의 여호와의 신세계 사회와 계속적으로 연합하는 것과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성경이 요구하는 빛으로 자신들을 살펴봄으로 더욱 그들 자신을 그들의 주이시며 모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본과 일치하게 되고자 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계속 서로 돕고 격려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받느니라.』—로마 14:13, 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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