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새 계명을 온전히 지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1. 사도 「바울」의 주장에 의하여, 대속을 마련하시는 데 하나님께서는 무슨 사랑을 나타내셨읍니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크신 선물의 기초가 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원칙적인 사랑입니다. 로마서 5:7-10에서 「바울」이 주장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은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아까페]을 확증 하셨느니라 . . . 곧 우리가[벗이 아니라]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완전하고 죄많은 인류에게 그의 아들을 선물로서 주신 것은 좋아해서가 아니었읍니다. 좋아함을 느낄 만한 어떤 좋은 성품들을 인류가 가지고 있었읍니까? 그러나 그는 사랑 즉 원칙적인 사랑, 인류의 복지와 필요에 대하여 비이기적인 관심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는 가장 필요한 것을 마련하셨읍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의 대속의 희생입니다.
2, 3. (ㄱ) 마태복음 24:14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러한 원칙적인 사랑이 왜 필요합니까?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사랑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 어떻게 근대의 박애주의자들과 다르셨읍니까?
2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그리스도인 추종자가 되는 데 있어서 그러한 종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이 사물의 제도가 끝나기 전에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전파』되는 일이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기쁜 소식의 전파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태 24:9, 14.
3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194개의 나라와 섬들에서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있으며, 비이기적인 사랑으로써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그들이 도시들과 촌락들을 방문할 때 많은 가정에서 거절과 조롱을 당하지만, 그들의 시간과 정력을 사용하여 계속하여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것 외에 또 무엇이 있겠읍니까? 그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관심사에 호소하는 돈이나 음식이나 혹은 일과 같은 선물로써 사람들의 애정을 얻는 근대의 박애주의자들의 쉬운 길을 따르고 있지 않읍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두번의 기회에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원거리에서 온 군중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마련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을 습관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셨으며, 그의 추종자들이 『급식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청중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 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다음에 그는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진리를 말씀하셨읍니다. 그 결과, 『제자 중에 많이 물러 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읍니다. 그들은 없어질 떡을 사랑하였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읍니다.—요한 6:25-27, 60, 66.
4, 5. 예수께서 사랑에 관한 새 계명을 주셨을 때, 단순한 일반적인 이웃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4 그의 다른 제자들은 그의 봉사의 끝까지 그와 함께 머물렀읍니다. 마지막 날 밤에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13:34) 어떻게 이것을 『새 계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5 그 때보다 약 십오 세기 전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율법이 주어졌었습니다. (레위 19:18) 그들이 이 율법을 실천하는 데 비참하게도 실패했다는 것을 그 나라의 역사가 알려 주지만, 그래도 이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의 법전에 이 율법을 간직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이웃 사랑이란 확실히 새 계명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율법을 인용하신 것은 「유대」인 율법 전문가들이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하여 대답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너는 너의 온 마음과 너의 온 영혼과 너의 온 생각과 너의 온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니, 「너는 너의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야 한다.」』 (마가 12:29-31, 신세) 「이스라엘」과 맺은 율법의 언약이 성취되어 예수의 죽음과 새 계명의 설립에 이어서 제하여졌지만, 아직도 이 두 개의 큰 계명의 원칙은 새로 세워진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넘어 왔습니다. (로마 12:1, 2; 13:8-10; 야고보 2:8) 예수의 새 계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이 두 개의 계명이 무엇을 요구하였는가를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생각, 마음, 영혼 및 힘
6. 우리의 온 생각을 다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6 우리의 온 생각과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모든 것을 포함 하는 것입니까! (마가 12:30; 마태 22:37) 생각은 이지의 바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 생각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가 창조주와 그의 목적과 원칙에 관하여 배우고 그의 뜻과 일치하게 이 지식을 모든 생활에 적용하는 데 우리의 이지를 다 사용하는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의식이나 기억에 의하여 배운 기도와 찬송의 반복을 통한 의식적 생활에 의하여 결코 수행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이지 이상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거대하고 놀라운 우주를 웅장하고 다양성있게 만드시고 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형식적 표현을 그에 대한 참된 가치있는 사랑이라고 받아들이실 수 없을 것입니다. 온 생각을 다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받을 만하고 완전한 뜻을 증명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로마 12:2, 신세.
7. 하나님을 섬기며 그것에 근거하여 순종하는 의무를 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에 대한 참된 사랑을 실현하는 데 충분합니까? 그 이유는?
7 마음은 비이기적 즉 애타적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고, 사람의 애정의 발전소이며, 양심과 도덕적 행실의 동기가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한 의무감이나 그를 기쁘시게 할 일을 수행해야 할 단순한 필요에서 그를 순종하고 섬기는 일을 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 그와 같은 표현은 그가 단지 한가지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이득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단지 삯을 받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과 매우 비슷할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단지 그가 그렇게 해야 하며, 그의 생명이 그렇게 행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며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사랑을 표시합니다. 강한 마음의 애정은 그의 천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도록 움직입니다.—요한 1서 5:3.
8. 어떻게 『우리의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8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지적 창조물로서의 당신의 생활이 그를 사랑한다는 당신의 말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확실히 단순한 안식일 숭배자나, 일주일에 하루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나 혹은 연중 단지 지정된 때에만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생활과 시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우리가 사는 동안 뜻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죽자 우리를 위한 시간은 끊어집니다. 적어도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서 부활을 통하여 다시 생명으로 일으키실 때까지는 그러합니다.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의 생활 전체는 그의 뜻을 수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회전합니다. 우리는 처음 반생을 우리 자신을 위하여 바치고 나머지 반생 즉 노년을 그에게 바치기 위하여 남겨 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입니다.—전도 12:1.
9, 10. (ㄱ) 우리가 『온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우리의 육체적 필수품이나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돌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ㄴ)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은 왜 그렇게도 충심으로부터의 표현입니까?
9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사용되는 우리의 온 힘은 그를 활기있게 섬기는 것을 의미하며,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실제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정을 돌보며, 심지어 때때로 휴계를 취하는 데 적절히 힘이 사용될 수도 있지만, 항상 우리의 주된 힘을 여호와 하나님께 첫째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이미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한 사도는 말하였읍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여호와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일을 그를 찬양하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의 선이 되도록 협조에 힘쓰는 것이 이치적이 아닙니까?—로마 12:1; 8:28.
10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한다고 성서가 말하는 이 사랑보다 충심으로부터의 표현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우리가 부분적으로 생각과 마음과 영혼과 힘을 그것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별도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것들 모두가 사랑이 진정한 것이 되게 하는 데 결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 전체를 포함하고 있으며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읍니다.
우리 자신과 같이 우리 이웃을 사랑함
11.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읍니까?
11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같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즉 우리 자신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것과 같이 남에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공급해 주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원하지도 않읍니다. 다른 사람들이 손발로써 우리를 시중든다면, 그 생명이란 대부분의 것을 빼앗긴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관대하며 선한 것을 나누는 것을 감사합니다. 단지 육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들 즉 격려적인 회화와 세워 주는 말들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해로부터 보호되고, 알지 못하는 위험을 경고받으며, 의심스러울 때 지도를 받고, 혼잡을 일으켰을 때 충고를 받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개인적 문제에 있어서 우리 자신이 마지막 결정 즉 판단을 내리는 권리를 우리로부터 빼앗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절취나 오용으로 인하여 우리의 재산권을 남이 간섭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더욱이 우리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 즉 결혼 배우자나 가족 성원이나 친구들 사이에 그러한 사람들이 이기심을 품고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이 모든 것들과 특권을 원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이웃이 그와 같은 일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이웃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여야 합니다. 마치 예수께서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읍니다.—마태 7:12.
새 계명
12, 13. (ㄱ) 예수의 사랑의 새 계명은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땅에서 선교 사업을 하시는 동안, 어떤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셨읍니까?
12 세기를 통하여 율법과 예언자들이 이웃의 복지를 위하여 일반적 염려를 베푸는 의미에서 이 이웃 사랑을 강조해 왔으므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엇인가 다른 것을 의미하였음에 틀림없읍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준 바,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읍니다. 그의 제자들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는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것을 알게 되었읍니다.—요한 13:34.
13 예수의 제자들이 그 후에 이해한 것과 같이, 그는 그들과 함께 생활한 고향을 떠났읍니다. 즉 그의 아버지, 그의 형제들, 그의 가장 가까운 벗들, 가장 따뜻하게 대해 주는 친구들, 그의 모든 재산과 특권을 버렸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늘의 영역에 버려 두시고, 선교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오셨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영체 생명을 버리시고 보통 마굿간에서 인간으로 탄생되셨읍니다. (요한 1:14; 누가 2:7) 그것은 실로 큰 변화였 읍니다. 오늘날의 가장 발전적이고 번영한 나라를 떠나서 땅의 가장 미개적이고 가장 적빈한 나라로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변화였읍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이 거기에서 그친 것은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 비교하여 모든 면에 있어서 죄없고 더 우월하시고 완전하신 사람이셨지만, 불완전하고, 죄 많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곤 하셨읍니다. 그의 생활의 처음 삼십년 동안이 『정상적인 것』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른지 모르지만, 마지막 삼년 반 동안의 생활이란 그럴 수가 없읍니다. 그는 그 동안 그의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 오셨읍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독특한 방법으로 그들을 사 랑하셨읍니다. 「팔레스타인」의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그는 지치지 않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위하여 그의 힘을 쏟으셨읍니다. 공중 앞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을 때는, 그의 제자들을 훈련하셨읍니다. 때로는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먹을 겨를도 없』으셨지만, 그렇게 하셨읍니다.—마가 6:31.
14. 예수께서 자기 희생까지 하셨지만, 금욕주의 생활을 선언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14 금욕주의자셨읍니까? 천만에요. 그는 여러 차례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셨으며, 연회 초대까지 받아들이셨읍니다. 적어도 한번은 결혼식 초대를 받아들이셨으며, 틀림없이 그 자신 이를 즐기셨읍니다. 그는 그에게 베풀어진 호의에 대하여 감사하셨읍니다. 그의 친구 「나사로」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을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약50불 값어치나 되는 값비싼 기름을 그의 다리에 부었읍니다. 「유다」가 분노하여, 그 기름을 팔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랑스런 관심을 표시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읍니다. (요한 12:1-8) 그러나 그의 봉사에서 표현된 비이기적 사랑이 다른 사람들이 사랑으로써 응하도록 자극하든 안하든, 예수 자신의 사랑은 감소되지 않고 계속되었읍니다.
15. (ㄱ)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랑의 필요성을 어떻게 강조하셨읍니까? (ㄴ) 새 계명은 그들이 누구를 사랑하며 무엇에 근거할 것을 요구하였읍니까?
15 그렇다면,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날 밤에 사랑 즉 진정한 원칙적 사랑에 관하여 그러한 강조를 두신 것을 궁금히 여깁니까? 삼십회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며, 세번이나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반복하셨읍니다. (요한 13:34; 15:12, 17)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었겠읍니까? 그의 계명이 그들이 「그들의 이웃을 그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읍니까? 그들은 그렇게 했어야 했으며,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새 계명은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여야 했으며, 그리스도인 제자들로서 그들 사이에서 사랑을 가졌어야 했읍니다. 예수께서 사랑스런 제자들 즉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그를 사랑했던 제자들인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사랑을 가졌어야 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아까페]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 15:13, 14)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았읍니다.
16.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의 친구들에게 최상의 사랑을 보여 주셨읍니까? (ㄴ) 그때 그의 제자들이 무슨 말씀을 기억했어야 하였읍니까?
16 그들 중 하나가 단지 멀리서 보았을른지 모르지만, 우리는 단지 그것을 상상할 따름입니다. 그것이란 예수의 손을 겹쳐 큰 못을 박아 살을 뚫고 나무에 그를 못박는 일이었읍니다. 다른 큰 못이 그의 발을 뚫고 있을 때에 그의 붉은 피는 그의 손을 물들이고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형주는 그 전체 무게가 이 두 못에 늘어질 때까지 수직으로 버려 두었읍니다. 따라서 그의 다리는 잔인하게 불어 뜨려지지 않았으며 여섯 시간 후에 그는 죽었읍니다. 그의 제자들 모두가 그것을 보지 않았을지라도 곧 그것을 본 사람들로부터 들었을 것입었읍니다. (요한 19:25-27) 그들이 그를 부끄럽게 여겼읍니까? 그들이 이 사람을 따랐으며, 그의 가르침을 믿었고,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통치할 자로서 선택된 자라는 것을 부인하고자 했읍니까? 「베드로」는 적어도 이 일에 대한 예고를 감정적으로 반대하자 예수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을 기억했을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말씀 하셨읍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 .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마가 8:34-38.
17, 18. (ㄱ) 예수께서는 그의 죽음에 의하여 무슨 사랑스런 목적을 성취하셨읍니까? (ㄴ) 우리는 무슨 훌륭한 관계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읍니까?
17 예수께서는 그의 죽음에 의하여 땅에 오신 근본 목적을 성취하셨읍니다. 즉 그의 아버지의 사랑스런 이름을 입증하는 것이었읍니다. (요한 17:6; 18:37) 그는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대속을 마련하셨습니다 .대속은 예수께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 15:14) 그는 하늘의 새로운 수도 정부의 보좌에서 왕으로서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추종자들을 위하여 섬길 수 있는 권리를 얻으셨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 4:5.
18 예수께서는 부활하신지 사십일 후에, 다시 하늘의 영역으로 올라가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삼십 삼년 반 동안 행하여 온 이 선교 임명을 결코 잊으시지 않으셨읍니다. 오늘날 그는 설립된 그의 왕국에서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그의 제자 임을 증명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그의 사랑과 애정과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즐길 수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마태 25:31-40; 요한 15:7-10.
19. (ㄱ) 전세계를 통하여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 무슨 성품이 표시되어 왔으며, 그것은 왜 특이한 일입니까? (ㄴ) 왜 참된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 생활이 아니라고 보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였읍니까?
19 예수의 충실한 제자들은 새 계명을 온전히 지켰읍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도 또한 성실하게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들의 국내 및 국제대회는 그들을 공중앞에 나타냈으며, 그들의 호별 활동은 전 지구를 통하여 수백만의 가족 성원들과 접하게 만들었읍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그들의 강한 사랑과 상호 간의 사랑이 많은 나라의 신문, 「라디오」, 「뉴스」 영화를 통하여 해설되었읍니다. 국제적 알력과 국내적 파당과 인종 차별도 그들의 사랑의 띠를 파괴할 수가 없었읍니다. 핍박과 모욕도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지 못했읍니다. (고린도 전 13:6, 7) 그들이 정규적으로 매주 세 차례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그들의 자유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말과 저녁에 성서의 교훈을 주는 사업에 바치고 있는 생활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오늘날의 세상이 『정상적』 세상이 아니며, 『정상적』 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성서의 예언의 틀림없는 성취가 이 시대를 땅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뜻있는 때라는 것을 표시하며, 이것은 참된 사랑이 무시하지 않을 요인들을 제공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아마겟돈」이 우리 앞에서 바라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수백만 아니 수십업 이상의 생명이 곧 신속한 결정적 종말을 보게 되고 그들의 한 때의 주인들이 더는 우리의 사랑이 미치지 않은 곳에 가게 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마태 24:34-42.
20. (ㄱ) 그러한 『정상적』 생활에 관하여, 사랑의 새 계명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ㄴ) 진정한 사랑을 지금 배워서 발전시키는 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20 우리 각자는 어떠합니까? 우리 각자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 있읍니까? 우리들이 우리의 형제들을 도우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의에 사랑을 나타낸 관심가진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 생활을 희생하고 심지어 위험을 무릅쓰거나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여 우리 자신을 기꺼이 바치고 있읍니까? 어떤 여호와의 증인들은 매일 단지 그 일만을 행하고 있으며, 철의 장막 배후나 기타 어느 곳에서나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겠읍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3:16) 우리는 참된 사랑을 지금 배워야 합니다. 장래의 시련과 유혹적인 상태와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옳은 일을 즉시 하게 만들 것이며, 견디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고, 감상적이 되게 하고, 원칙 및 다른 사람들의 참된 생명의 관심사에 눈멀게 하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명확하게 무엇이 수행해야 할 사랑스런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야고보 1:12; 요한 1서 4:17, 18.
21. 하나님의 새질서가 가까와 옴으로써 참된 사랑은 우리에게 무슨 전망을 보증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행하도록 자극합니까?
21 하나님의 새 질서는 가까왔읍니다. 그 새 질서에서 땅의 백성은 사랑에 의하여 현재의 질서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이 해 놓은 것보다 천배나 더 달성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을 문자적인 낙원으로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열매로 가득찬 영적 낙원으로 만들 것입니다.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량과 믿음과 온유함과 자제입니다. 당신의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는 충심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의 사랑을 정확한 지식과 온전한 분별력과 더불어 더욱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더욱 중요한 것을 알아 그리스도의 날까지 흠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없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는 의로운 열매로 가득차게 하시기를』 바랍니다.—빌립보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