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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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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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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파64 7/1 243-245면

성실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숭배에 있어서 성실만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무엇인가 부가적인 것이 요구되는가?

성실은 하나의 덕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당신을 성실치 않다고 생각 한다면, 그것을 틀림없이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불성실은 위선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숭배하는 길에 있어서도 성실은 또한 하나의 덕입니다. 여기에서도, 당신은 틀림 없이 불성실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위선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특히 나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숭배에서 성실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숭배 방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그거야 숭배 방법은 어떠하든지, 숭배에 성실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믿지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방법 여하에 불구하고,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당신이 택하는 길이 성실하기만 하다면, 하나님께 가납되고 기쁨이 된다고 믿읍니까?

만일 잘못 두었다면 어떠한가?

성실이란 칭찬할 만하지만 만일 잘못된 데 두었다면 어떻겠읍니까? 신앙과 행로가 성실하기는 하지만, 잘못되기 때문에, 신앙과 행로의 결과가 기대한 바와 같지 않다면 어떻겠읍니까?

얼마 전에 「쌀리도마이드」라고 불리우는 약이 시장에 나왔읍니다. 그것은 하나의 진정제로 사용되었으며, 수면제로서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읍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깜짝 놀란 것은 이 약 때문에 출생되는 아기가 지독한 기형아가 된다는 것이 후에야 발견되었읍니다.

임신 초기에 이 약을 섭취한 어머니들은 기형적인 팔 다리나 혹은 사지 가운데 한 둘을 갖지 않은 자녀를 낳았읍니다. 어떤 때는 귀바퀴가 없었읍니다. 기형 현상은 또한 눈, 후두부 및 내장에서도 볼 수 있었읍니다. 재빠르게 이 약은 시장에서 제거되었읍니다. 정부는 이 약의 유포를 금지하였읍니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아기의 출생에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증명되었읍니다.

이 약은 온전한 성실함으로 소개되었읍니다. 잠자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난이었읍니다. 의사와 약제와 과학자의 모든 성실함은 보람없었읍니다. 이 새로운 약에 둔 그들의 확신은 잘못이었읍니다.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고 저주가 된다는 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성실만으로 만족할 결과를 낳기에 불충분하였읍니다.

또한 고용인이 그에게 임명된 일을 하지 않고, 그에게 위탁되지 않은 다른 일에 시간을 보냈다면, 어떻게 고용주에게 기쁨이 되겠읍니까? 그의 임명된 과업을 그가 수행하지 않은 것을 고용주가 기뻐하겠읍니까? 아닙니다. 고용주는 특별한 과업을 위하여 일군을 고용했으며 그 과업이 완수되기를 기대합니다. 일군이 그에게 임명된 일을 버리고 다른 일에 성실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 성실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 정기선 「타이타닉」호의 조선자들도 배가 실제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실히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1912년의 처녀 항해 도상 빙산에 부딛쳐, 재빨리 가라 앉았으며, 많은 생명을 상실하였읍니다. 그 배의 설계자는 틀림없이 파손을 견딜 배의 능력을 성실하게 믿었으나, 이 성실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읍니다.

성실해도 하나님께 불쾌함

가장 중요한 일인 하나님을 숭배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성실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숭배를 기뻐하신다고 보증하지 않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잘 하고 있다고 양심적으로 믿을지 모르지만, 자기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자기 기만은 역사상 누차 발생했읍니다. 그것은 심지어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바로 비참한 일과 고통과 죽음의 상태와 어떤 관계마저 있읍니다.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소급하여 약 6, 000년 전 「에덴」 동산에서, 여인 「하와」는 좋은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였읍니다. 누구인가 자기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그것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러자 「하와」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창세 3:5, 6.

「하와」는 그 나무가 먹기에 좋았다고 느낀 것도 느낀 것이지만, 그것을 먹는다면 심지어 그녀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까지 듣지 않았읍니까? 분명히 그녀는 이것을 성실하게 믿었읍니다. 심지어 얼마의 실과를 남편에게 먹으라고 주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정하신 바를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의 형벌이 선고되었읍니다.—창세 3:19.

왜요?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 부부가 죽음을 받기에 합당하였읍니까? 인간 첫 부부가 등한히 한 것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읍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 2:16, 17.

그것이 바로 그들이 무시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에서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읍니다. 그들은 그 명백한 명령을 범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길을 옆으로 밀어 버렸읍니다.

인간 역사상, 후일에 「바알」 신의 450명의 예언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한 「엘리야」와 함께 모였읍니다. 그들은 어린 숫송아지를 잡아 제단에 올려 놓았읍니다. 그리고 나서 「바알」 예언자들은 이 제물을 불사르도록 그들의 신에게 불을 요구하였읍니다. 그가 들어 주었읍니까? 기록은 말합니다.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이 예언자들은 「바알」이 그들에게 대답할 것을 성실하게 믿었읍니다. 그들은 절망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하였읍니다.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드릴 때까지 이를찌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열왕 상 18:25-29.

아무런 대답이 없었읍니다. 그들의 모든 성실과 열심은 완전히 헛된 것이었읍니다. 「바알」은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 아니었읍니다. 숭배에 있어서 그들의 성실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그 분께서 이미 이 제사장들이 했었던 습관을 정죄하셨기 때문이었읍니다. 성실하기는 하였지만, 타락된 형식의 숭배를 그 분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는 전 450명의 「바알」의 예언자들을 죽이도록 승인하셨읍니다. 이 「바알」 예언자들이 성실하였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읍니까? 그들은 그 분을 노하게 만들었읍니다. 왜요? 그들이 거짓 신들의 숭배에 관한 명백한 율법와 진술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애굽 20:3.

그렇습니다, 성실 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이 성실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거듭 불쾌함을 나타내셨읍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성실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째 요소는 그 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의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모른다면,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읍니다. 그것은 자동차 운전사의 면허를 원하는 사람과도 같읍니다. 자기가 사는 나라의 교통 법규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그가 거주하는 곳의 사람들의 법에 따라서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합시다. 그가 운전 관계 법규를 어긴다면, 상당한 벌금을 지불해야 하며 심지어 면허를 취소당하는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가 규칙을 준행하려면, 이것에 관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규칙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그가 성실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할지라도 즉시 범칙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관한 것을 우리는 그의 말씀인 성서에서 배웁니다. 인간 가족에게 대한 이 놀라운 통신 가운데서, 그 분께서는 당신이 누구시며, 그의 목적이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은 그의 율법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는 우리가 그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들을 범하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만듭니다.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며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명하시나니.』 (신명 7:9-11) 까닭에, 우리가 숭배하기 위하여 선택하는 방법에 있어서 성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숭배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세하신 방법에 고착하는 성실성입니다.

이것이 이치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시험해 봄으로써 알 수 있읍니다. 범죄, 비행, 무질서, 증오, 종족간의 긴장 및 도덕의 일반적 타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블순종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당신은 이 결과를 기쁘게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지 않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곳에는 화평, 조화, 사랑 및 높은 도덕이 정칙입니다. 이 상태는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의 헌신한 숭배자들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읍니다.

하지만, 심지어 헌신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그가 단순한 거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은 온 영혼을 다하여야 하며,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 확증은 아닙니다. 그들이 순종한다면 그 분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성실하다고 주장하며 다른 헌신한 그리스도인과 교제한다고 주장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놀림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됩니다. 그 분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수행하시며,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 분께서 일정한 방법으로 숭배하라고 인간들에게 명령하셨을 때, 인간들은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과 함께하는 성실은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성실만으로는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읍니다.

왜 기쁘시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민법을 어길때 벌을 받읍니다. 그 법을 순종함으로써 그는 법을 만든 사회의 유익을 즐기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 그는 벌을 받읍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즐기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데 대한 형벌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마지막 날 이 사물의 악한 제도의 끝 가까이에 살고 있으므로, 시편 필자의 진술은 의미심장함을 더해 줍니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시 37:38)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은 성실할지라도, 이 제도의 종말에 끊어져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하게 순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익은 무엇입니까? 시편 37:27은 약속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하나님께서 좋다고 간주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의 종말을 통하여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 곳에는 낙원 상태가 회복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참으로 『영영히 거』할 것이며, 이 아름다운 땅의 환희를 즐길 것입니다. 시편 37:29은 이 『영영히』란, 옳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오랜 기간인가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회복된 낙원 가운데 화평하고 완전한 생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그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 낙원의 생명이 그들의 의로운 모든 욕망을 채워 줄 것입니다. 까닭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시편 필자는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시 1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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