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이다
1. (ㄱ) 예수께서는 생활 필수품을 어떻게 보셨으며, 무엇을 강조하셨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것을 위하여 여유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이 세상 어디에 살든지 잠간 멈춰 자문해 보십시오. 이 생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필수적인 것이 몇가지가 되는가? 아마 당신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여 당신의 마음 가운데서 그것들을 낱낱이 세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잠간 멈추어서 깊이 생각하고 재평가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세가지가 있다고 말하지 않겠읍니까? 즉 의식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태 6:25)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 하나님께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생활을 올바로 영위해 나간다면, 우리의 천직인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찬미를 드릴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영을 위하여 여유를 만들고 타락된 육적 경향을 피한다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데 필수적인 생활의 길 을 따를 수 있읍니다. (로마 7:18, 19, 22, 23) 전 인류의 생존이 의심스러운 이러한 위기 일발의 시대에 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있겠읍니까?
2. (ㄱ) 어떠한 질문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헌신을 정의하고, 그 중요성을 표시하십시오.
2 그러므로, 현실에 있어서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육적으로 우리가 계속 살아있기 위하여 필수적인 세가지에 한가지를 더 부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의 소망과 포부와 목표를 주의깊이 음미한다는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가 나에게 원하시며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그에게 합당한 것을 내가 어떻게 드릴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이치적인 대답은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헌신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헌신이란 한 사람이 남김없이 무조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행하겠다는 엄숙한 결정으로써 자신을 따로 두는 행동입니다. 그의 뜻은 성경에 설명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명백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는 그의 은총과 승인을 얻을 것으로 거의 기대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무수한 산에 있는 짐승을 소유하시므로 우리가 그에게 바칠 수 있는 물질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단지 영적인 선물만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을 명백하게 지적하셨읍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 4:23, 24; 시 50:10.
3. 헌신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은총받은 관계를 맺게 합니까? 그 가치를 설명하십시오.
3 사실상, 헌신 즉 영적 관계는 생명을 얻을 모든 자들에게 요구되어 있읍니다. 누가 14:27 (신세)에서 이 점을 어떻게 말하였는가 유의하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실로 놀라운 일을 해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우리가 그와 더불어 높이 은총받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 관계는 마치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도 같은 밀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자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임하게 될 축복으로 좀 상상해 보십시오! 이러한 전망과 거룩한 뜻을 행하는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물질의 가치가 아니라 영적인 가치에 가장 높은 약조금을 걸지 않겠읍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이 공포에 가득 차 있으며 물질적인 세상에서도 기쁨과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주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당신은 누가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헌신해서 천적인 아버지와의 은총받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위치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할지도 모르겠읍니다.
4.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읍니까? 믿음은 어떠한 구실을 합니까?
4 건축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 관계도 굳은 기반 위에 건설 되어야 합니다. 그 기초란 정확한 지식과 믿음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에 기초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이끌려 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 점을 의미하신게 아닙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6) 『믿음』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이 지성적인 이해와 인식이란 도대체 얼마나 중대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히브리 11:6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관한 충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인도를 받은 호소는 있을 수 없읍니다. 오히려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난 그의 뜻에 기초하고 있읍니다.
5. 오늘날의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뜻은 무엇입니까?
5 그런데, 오늘날 여호와의 은총을 얻은 모든 자들에게 대한 그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은 에베소 5:15-17(신세)에서 그것을 나타내 주고 있읍니다. 『너희의 걷는 길이 어리석은 자 같지 않고 지혜로운 자 같은가 항상 엄히 살피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절호한 시간을 사라. 왜냐 하면 지금은 악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자가 되지 말고 가서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가 지각하도록 하라.』 현재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라는 악한 때임을 부정할 수 있읍니까? (누가 21:26)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관하여는 정말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왜냐 하면, 이치적인 그리스도인의 행로란 우리의 영적인 면을 증가시키고 우리의 생활을 결국에는 그의 승인과 축복을 받게 될 본에 따라 틀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여호와의 모든 친절을 위하여 그에게 우리의 감사를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읍니까?
6 우리가 성경을 연구함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가득차게 되며 어쩔 수 없는 욕망에 감동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무수한 친절의 표현에 대하여 우리의 감사를 알려드리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만일, 주저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이 느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뼈에 사묻힌 훨훨타는 불과 같아서 담고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하였읍니다. (예레미야 20:9) 그리하여, 이 기쁜 소식에 참예하며 여호와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에게 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은 이 문제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7. 지식을 갖는 일에 더해서 헌신과 침례를 받을 자격을 구비하기 위하여 몹시도 필수적인 것은 또 무엇입니까?
7 그러나, 침례에 대한 첫째 요구 조건인 성서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손 치드라도, 이에 따라 행하기 전에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점에 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너희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찌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찌어다.』 (이사야 52:11) 그렇다면, 누구나 그리스도인 헌신과 침례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떠나 깨끗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 세상은 악한 자의 힘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5:19, 신세) 그들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도덕적 표준과 일치하는데 어떤 조절이 요구되든지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새로 성경 진리를 알게 되었는데 세상의 부정한 습관을 벗어버린다거나 이성과 생활하는 방법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 그는 아직 침례를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결혼 관계도 정당한 것이라야 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 6:9-11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유의하십시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 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라 하였지 있다 라고 하지 않은 점에 유의 하십시오. 바로 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인용한바는 대단히 중요한 그리스도인 헌신과 침례를 받기에 자격을 구비하려면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는 예리한 정의를 마련합니다.
예수의 침례
8. (ㄱ) 헌신과 침례 사이의 관계를 표시하십시오. (ㄴ) 예수의 침례는 어떻게 어떤 새로운 것이었읍니까?
8 이제, 그리스도인의 헌신이 무엇이며 여호와의 승인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헌신이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알았는데, 우리는 또한 정확한 지식과 믿음이 작용하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인 정확한 지식이라는 부분은 헌신과 침례 사이의 관계와도 같읍니다. 사실상 침례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개인적 헌신의 공개적 표상입니다. 그리스도인 헌신과 침례의 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세워 놓셨읍니다. 실제로, 그의 침례는 어떤 새로운 것이었읍니다. (히브리 7:26) 예수의 침례에 앞서 선지자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주신 율법에 대한 죄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죄를 회개하는 「유대」인에게 침례를 베풀고 있었읍니다. (마태 3:1-11; 사도 19:4) 예수께서는 그러한 회개하는 죄인은 아니셨읍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거룩하시고 순결하시며 더럽혀지지 않은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지 못하게 막으려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 「요한」의 이의를 극복하셨읍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태 3:14, 15, 신세)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께 복종하여 침례를 베풀었읍니다.
9. 예수의 침례를 살핌으로써 납득하게 된 몇가지 흥겹고 가치있는 점들을 말씀하십시오.
9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 예수의 침례를 살핌으로써 얼마간의 재미 있고도 가치있는 점들을 납득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첫째로, 이때 그가 몇살이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말하여 이점을 확증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누가 3:23)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때 유아가 아니었읍니다. 그는 성장한 사람이었었고 거룩한 뜻을 행하는데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더 나아가서 그가 물 속에 완전히 잠기셨음에 유의하십시오. 기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마태 3:16, 신세) 이것은 물을 뿌리는 예식이 아니었고 오히려 완전한 침례였던 것입니다. 「요한」이 요한 3:23의 성귀에서 세워 놓은 것은 바로 그러한 습관이었읍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좀더 나아가서, 침례는 권한을 받은 침례를 주는 대표자 「요한」 침례자에 의하여 수행되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시자 그에게는 변화가 있었읍니다. 더는 목수의 생활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보다도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법률이 명령하는 것 이상가는 방법으로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몸과 온갖 것을 스스로 헌신하셨다는 것을 물의 침례로써 표상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 의해서 물밑으로 매장되셨을 때 지적인 생활에 있어서의 과거 입장에 대하여 그는 상징적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의 뜻은 죽은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하여 약술된 거룩한 뜻 즉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순응하였읍니다.—요한 4:34, 신세; 5:30; 누가 22:42.
10.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침례가 어떻게 비슷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씀하십시오.
10 사실상,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침례는 같은 의의를 가지고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본을 마련하셨읍니다. 침례가 유효한 것이 되려면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치 예수께서 헌신에 관하여 이성과 자유의사로 결정하셨을 때 침례를 받으셨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점은 유아 침례가 비성서적이라고 제거합니다. (로마 10:9, 10) 더 나아가서, 지금 침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깨끗하고 존귀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침례 이전에 어떤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결한 것을 어떻게 깨끗하고 순결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바칠 수 있겠읍니까? 침례는 헌신하는체 해가지고 완성될 수 없읍니다. 게다가 침례를 베푸는 사람은 마치 「요한」과 같이 여호와의 헌신한 종이어야 합니다. 천국이 건설된 오늘날에 있어서 다른 누가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읍니까? 누구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으며, 누구의 손에 그의 왕국의 관심사를 말기셨읍니까? 여호와의 증인들 뿐입니다. 따라서, 침례는 여호와의 신 세계 사회의 헌신한 남성 대표자가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적절한 일일 것입니다.—이사야 43:10; 마태 24:14, 45-47.
11. 침례는 깨끗이하는 의식입니까? 당신이 왜 그렇게 대답하는지 설명하십시오.
11 「요한」 침례자에 의해 수행된 침례가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수행된 것이 아니라 옛 「유대」인들의 율법 언약을 범한 죄에 대한 회개의 상징이었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예수의 경우에서 그가 무죄하셨다는 것은 확실한 일입니다. (베드로 전 2:22) 오늘날 마찬가지로, 참 그리스도인 침례는 이미 속에서 일어난 일 즉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완전하고 온 마음을 다한 헌신의 표면상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죄를 없애는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개가 침례에 선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사도 26:20에서 지적한 바와 같읍니다. 『먼저 「다메색」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그러므로, 침례란 물로 죄를 씻어버리는 의식이 아니라 헌신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 회개와 숭배가 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따르기 위하여는 헌신의 서약을 충실하게 성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2. 침례의 심각성을 실증하고, 침례에 관하여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 생각하는가를 대강 말씀하십시오.
12 침례는 심각한 단계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쁜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는 이지와 그 의의에 대한 적적한 인식을 가지고 밟지 않으면 안됩니다. 헌신의 서약을 한 다음에 이것을 수행하지 못한 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전도 5:4, 5) 한편, 서약하지 않는다는 것과 흡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저한다는 것도 죽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흡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겠다고 주장하면서 침례받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람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침례가 아니라 지식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낡은 세상이 얼마 안가서 그 온갖 정욕과 함께 지나가버릴 것이라는 점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지금 신 세계를 위하여 살기 시작하여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만큼 알고 있다면, 침례를 받을만큼 알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면 지체할 이유가 무엇입니까?—요한 1서 2:15-17.
13. (ㄱ) 침례에 관하여 합리화하는 일은 왜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까? (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어떠한 보증을 가지고 있읍니까?
13 자기가 아직까지 왜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가에 관하여는 말을 만들어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읍니다. 『내가 어떻게 헌신의 서약에 따라 생활할 수 있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뭐야? 곤난한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충실을 지킬 수 있을까? 아마 더 많은 지식을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는게 기회가 더 좋을 가봐.』 이것이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합리화의 정의가 아닐까요?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이해 대신에 자신의 이해에 의뢰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의 표준을 따를 것입니까? 혹은 하나님의 표준을 따를 것입니까?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어떤 미심적은 데가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당신의 최선의 영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장성된 그리스도인의 도움과 조언을 얻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 아니겠읍니까? 여호와께서 빌립보 4:13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다짐을 기억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 헌신과 침례를 받을 자격이 있다면, 늦출 이유가 무엇이며 질질 끌 이유는 무엇이겠읍니까?
살핀 다음 침례
14. (ㄱ) 아버지 (ㄴ) 아들 (ㄷ)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명하십시오.
14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8:19, 20)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은 어버이가 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이름이 홀로 여호와이신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의 지상권과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시 83:18) 우리는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의 주권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의 왕국을 사랑하고 그 관심사를 섬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가 11:2) 다음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수여하신 높은 권한과 지위를 인식한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그 아들이 속가이시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의 희생 없이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없읍니다. 그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읍니까! (이사야 55:4; 요한 4:42) 마지막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영을 여호와의 활동하는 힘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동일한 힘이야말로 옛 사람들이 성경을 틀림없이 기록하도록 인도하였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성공적으로 맛서도록 밀어 주었으며 오늘날 지상의 여호와의 신권 조직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베드로 후 1:21; 요한 6:63; 요한 1서 5:6.
15. 침례의 가치있는 면에 관하여 몇가지 말씀하십시오.
15 한 사람의 침례란 과거의 생활 행로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원자가 물에 잠긴 채 있다면 정말 그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실상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을 때,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침례를 받는 날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침례는 헌신의 공개적 고백으로뿐 아니라 임명된 전도인이 되었다는 표식으로 이바지합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이중으로 축복을 받았읍니다. 침례 일자는 기록해 두어야 하며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으로 말한다면, 그 날은 지존자의 봉사에 당신이 임명된 일자입니다.
16-19. (ㄱ) 침례 지원자는 어떠한 중요한 질문을 받읍니까? (ㄴ) 침례에 대한 자격을 무엇이 표시하여 줍니까? (ㄷ) 이때, 무엇에 관하여 명백한 전망을 가지는 것이 좋읍니까? (ㄹ) 침례가 궁국의 목표입니까?
16 하지만, 지원자가 침례를 받기 이전에 두가지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적절하고 적합한 일입니다. 그래야 그 때에 그들과 함께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지원자 자신의 입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과 침례를 받기 위한 자격을 구비하는데 요구된 단계를 밟았다는 것을 들은 증인들이 될 수 있읍니다. 확신을 가지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각 질문이 있은 다음에 『예』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들은 크게 그리고 일치하여, 즉 모두가 똑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17 첫 질문은 이러합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당신 자신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당신은 이 구원이 그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시인합니까?
18 둘째 질문은 이러합니다. 당신은 이상과 같은 토대로써 하나님을 믿으며 구원을 위한 그의 준비를 믿으며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의 인도로써 해명되는 성경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대로 이제부터 그의 뜻을 행하기로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합니까?
19 이러한 두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모든 사람은 침례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그 대회에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받은 분은 그 일자를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날은 정말 그의 생애에 있어 판가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이제부터 앞으로 봉사에서의 책임과 특권에 관한 명백한 전망을 갖는 다는 것은 아주 건전한 일입니다. 침례란 궁국의 목표가 아니고 몹시 은총받은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0. 어떠한 질문을 더 토론할 것입니까?
20 아주 필수적인 단계인 침례에 이어, 여호와와 그의 조직과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대한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입니까? 어떻게 자기의 헌신의 서약을 충실하게 그리고 기쁘게 수행할 수 있읍니까? 어떻게 자기의 영적 마음을 품는 일을 증가시키고 생활하는데 요하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감소시킬 수 있읍니까? 한층 크게 장성해서 오늘날의 위기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성실 중에서 견디며 걸으려면, 어떤 단계들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 기사로 미루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