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저자의 강력한 성품
“누가 [여호와]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린도 전 2:16, 신세.
1. 창조주의 성품에 관한 연구가 가장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개인의 성품을 말할 때 구별된 개인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 성질과 특성을 마음에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두 사람이 같은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족속의 성품에 관한 연구는 동기에 달려 있기는 하나 항상 재미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도움이 되지는 않읍니다. 그러나 창조주의 놀라운 성품에 관한 연구는 가장 재미 있고도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가장 큰 보상을 가져옵니다. 그것은 우리로 그가 일을 행하시는 방법을 이해하도록 도우며 그의 말씀인 성경에 자신을 표현하신 방법을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의 작품과 말씀을 연구 함으로써 그 훌륭한 성품을 더 온전히 파악하며 흠모함에 따라, 우리의 힘이 자라는 한 그의 형상에 있어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자신의 성품을 그의 성품과 밀접하게 일치시키기 위하여 따를 때, 그것은 우리에게 대한 그의 은총과 축복을 다짐하며, 그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행복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어떤 면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으며, 이 점은 인간의 성품에 어떻게 빛을 던져 줍니까?
2 이러한 이치적인 논리의 계통은 성서적인 지지를 가지고 있읍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 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까? 그리고는 그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하등 피조물을 『다스리라.』 하시지 않으셨읍니까? 인간 족속이 증가하여 큰 사회가 되어 함께 살며 동시에 이러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유지하기 위하여는 바로 여호와께 엿보이는 얼마간의 성질과 특징을 확실히 요하게 될 것입니다. 성품은 우리의 진정한 느낌과 갈망과 결심과 함께 이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그 능력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며 발전시키는가로 형성됩니다. 인간이 하나의 자그마한 유성의 작고 작은 알갱이기는 하지만 우주를 지배하시는 위대하신 창조주의 신기한 소규모 복사품으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은 무한한 불가사의의 한 원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창세 1:26-28.
3. (ㄱ) 우리가 창조주께 관하여 연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ㄴ) 이에 관하여 「요한」의 복음서는 어떠한 도움을 줍니까?
3 덧없으며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며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계시는 분의 성품을 연구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한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시지 않은 한 주제넘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가 이것을 행하신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의 아들을 땅에 보내시고 인간으로서 얼마간 우리 중에 살도록 하셨다는데 있읍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 점을 명백하게 합니다. 그는 예수의 인간 이전의 존재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때 그는 『말씀』으로 알려지셨읍니다. 따라서 그는 『한 하나님』 즉 대능한자라고 불리우셨으며 그것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리고 어떻게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가를 말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가 연구하는데 있어서, 그의 아버지와 그렇게도 밀접한 관계를 즐기신 분께 대한 이러한 서론보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땅에 오신 분보다 더 훌륭한 도움을 바랄 수는 없읍니다.—디모데 전 1:17; 시 103:19; 요한 1:1, 3, 14, 18, 신세.
4. 잠언 8:22-31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떠한 빛을 던져 줍니까?
4 이 행복한 관계는 또한 잠언 8:22-31 (신세)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읍니다. 땅의 창조를 위한 처음 준비를 묘사한 다음 하나님의 아들 즉 말씀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편수]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 . .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그 얼마나 매력적인 가족 생활의 그림입니까, 아버지는 특히 그의 아들을 기뻐하셨으며 다음으로 아들은 이제 그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돌보도록 주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기뻐하셨읍니다. 그러한 것들은 인간 족속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이분의 우정적인 관심을 다짐한다는 것은 참다운 격려가 아닐 수 없으며, 우리는 그와 더 온전히 사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5. (ㄱ) 예수의 성품을 어떻게 종합할 수 있겠으며, 우리가 「강력한」이란 단어와 「온유한』이란 단어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ㄴ) 예수 안에서 어떠한 훌륭한 대조를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표시됩니까?
5 우리가 성서에서 예수께 관하여 읽어감에 따라 어떠한 인상을 받읍니까? 그는 강력하셨으나 온유하셨읍니다. 일반적인 표준으로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강력한 사람이라고 하면 강압적이고 패기 만만하며 그의 길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유린하며 참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하지만, 한편 온유한 사람이라면 조용하며, 매우 뚜렷한 의견을 가지지 못하며, 옳은 일을 편들기 보다는 화평을 위하여 쉽사리 양보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여러 가지 특성들은 적절하게 균형잡지 못하고 있으며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으나, 예수와 같은 완전한 사람은 그렇지 않읍니다. 그의 성품에 대한 최선의 관건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마 「다윗」이 예언적으로 한 그에 관한 말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히브리 1:9에 인용한 말입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시 45:7 참조) 예수께서는 의의 위대한 애호자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며, 비록 불완전 하기는 하지만 의를 좇고자 성실히 노력하는 자들에 대하여 깊고도 부드러운 사랑을 또한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그는 온유하시며 화평스러우시며 우정적이시며 매우 참으십니다. 동시에 그는 모든 불법에 대하여는 강한 증오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고의적으로 악한 길에 자신을 내맡겼다고 입증되는 자들도 포함됩니다. 그가 그 당시 『거룩하고 의로운 자』에게 대하여 살인적인 적의를 냉혹하게도 표시한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통렬한 의분을 나타내셨듯이, 마찬가지로 그는 오늘날의 동일한 반열에 대하여 자신을 표현하여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사도 3:14; 마태 7:23; 23:13-39) 예수의 성품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안에서 볼 수 있는 동일한 균형 잡힌 대조가 예수 안에서도 실증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들로 말미암아 표시된 것처럼, 사자의 맹렬함은 생기를 주는 이슬의 온유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히브리 13:8; 미가 5:7, 8.
6. 예수께서는 자신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표현하셨으며, 무엇을 기초로 그렇게 말씀하셨읍니까?
6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더 잘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친구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지 그의 원수들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자기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씀 하셨는가는 알아둘만 합니다. 그에 대한 그들의 인상은 어떠하였읍니까? 비록 그들의 『선생님』 혹은 『주』로 불리움을 받으시기는 하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드높이신다거나 그들을 벌벌 떨게 하시지 않으셨으며, 겁나게 하시지도 않으셨읍니다. (요한 13:13) 보다도 그는 그들을 그와 함께 밀접히 연합하게 만드셨으며 그가 계시는 데에서 편안하다고 느끼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의 태도와 말씀하시는 방법이 이에 이바지하였읍니다. 그들은 그가 계실 때 생기를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는 몸소 그 이유를 말씀하셨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 11:28, 29.
7.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는데 어떻게 돕습니까?
7 예수께서 자기 친구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친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은 강렬하고 견고한 성품이기는 하지만 온유한 기질로서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경의 문체가 되어 있읍니다. 과학적으로나 무엇으로나 온전히 정확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밀한 학술적인 용어로 기록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비평가라도 불평이나 걸려 넘어질 어떠한 원인도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 그것은 인간의 비유적인 표현과 예들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마음에 호소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8. 성품이 부여된 것으로 어떤 성서적 실예를 들 수 있으며 어떠한 유익이 있읍니까?
8 성경에 있어서의 이러한 흥미있는 증거 중의 하나는 성품을 그 자체가 사람이 아닌 사물에 비긴 방법에서 엿볼 수 있읍니다. 이것은 생기와 강력한 힘을 주기 위하여 사람들이 말 할 때에 흔히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일정한 식물이 어떤 종류의 땅을 좋아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마치 식물이 좋아하며 싫어하는 성품이라도 가진듯이 말합니다.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힘차고도 예를들어 설명하시는 방법으로 『나는 양의 문이라.』 보다도 더 강하게, 자기 손의 포도주 잔을 보시며, 『이것은 . . . 나의 피 . . . 니라(의미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성품에 비기시는 방법으로서 그는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 방법을 동일하게 사용 하였읍니다. 마치 그것이 강력하게 살아있는것 같이 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 얼마나 강하고도 그 얼마나 건전합니까!—요한 10:7; 마태 26:28; 신세; 요한 14:26; 히브리 4:12.
9. (ㄱ) 성경의 기록된 방법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게 됩니까? (ㄴ) 비평가들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잘못이라는 것이 입증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ㄷ) 무엇이 올바른 태도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가져옵니까?
9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인간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말하자면, 그것은 두 가지가 다 그의 성품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말씀에 역행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심하게 할 수 있으며, 만일 그 예리하며 살아 있는 검을 잘못 다룬다면 우리 자신과 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 저자로 말미암아 결정된 방법에 따라 기록된 성경의 유익을 깨닫게 됩니다. 그 말씀은 그의 성품을 반영하며 우리에게 그를 더 가까이 가져오며, 그에 관하여 더 잘 인식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표현하시는 방법을 비평가들에게 맞추기 위하여 적응하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통 남녀들인 우리들까지도 비록 많은 경우에서는 기독교국의 교리에 젖어 양육되었지만 교리가 성서로부터 우리에게 설명되었을 때 진리에 대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였읍니다. 비평가들도 만일 그들 자신의 지혜에 너무 취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눈을 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우리는 정말 계속하여 겸손함과 가르치기 쉬운 성품과 「영적 필요성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에베소 4:30; 고린도 전 3:19; 마태 5:3; 신세; 요한 17:17) 그러면, 우리는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께 의하여 임명된 분 즉 살아계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항상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따라 가르치셨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가지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계시 19:13; 고린도 전 2:12, 16.
성경을 더 잘 이해하여야 할 두 가지 이유
10. (ㄱ) 참 종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기독교국이 이 점에 있어서 거짓이라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었읍니까? (ㄴ) 오늘날 참 종교는 어떻게 표현 됩니까?
10 성경과 그의 저자를 옳게 이해하며 인식하는 것이 좋은 두 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첫째로, 그것은 참 종교의 정확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참 종교는 행동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수동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국이 교회에서 보통 성경을 읽어주며, 꺼먼 옷을 입고 고대 영어를 사용하는 그러한 일정한 방법으로써 주는 인상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품질 보증표는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의 모든 행실과 전도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인도자로 하여 그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때, 그 당시나 혹은 오순절 이후에도 좋은 평을 얻지 못하였읍니다. 그 성원들의 선한 행실과 절제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힘찬 소식과 증거로써 바쁜 사명을 받았으며 힘을 받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하였읍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더 합니다. 설립된 왕국 소식은 이 사물의 제도에 종말이 오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전파』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듣는 귀를 가진 자들은 다만 보통 성경에 표현되어 있듯이 『내 백성아, 거기(바벨론)서 나와』 정도의 탄원하는 호소로 듣지 않읍니다. 그보다도 그들은 긴급성의 충격을 받으며 긴급한 명령을 받고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 신 세계 역에서 정확하게 표현되었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달아나라』! 듣는 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기독교국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조직인 「시온」으로 도망함으로써 행동을 취합니다. 그 조직에 있는 자들인 천적 소망을 가진 참다운 교회의 충성스러운 남은자들은 예수와 같이 『희락의 기름』인 여호와의 영으로써 축복을 받읍니다. 당신은 그들과의 교제가 『새로운 성품을 입』는 데와 참 종교에 활동적으로 참예하여 즐기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며 자극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사도 1:18; 마태 24:14, 신세; 계시 18:4, 신세; 이사야 61:3; 에베소 4:24, 신세.
11. 계시록 1-3장은 오늘날의 우리를 위하여 어떻게 특별한 도움을 마련합니까?
11 계시록의 처음 몇 장에서 우리는 여호와와 그의 말씀에 대한 참다운 평가를 하고자 하는 두번째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를 도와 우리의 성품을, 말씀 및 그 저자와 일치시키도록 본을 세우는 세밀한 지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명백한 통찰력과 의를 사랑하며 불법을 미워하도록 더 예리한 자극을 줍니다. 예수께서는 이 마지막 때의 세상 상태와 결과적으로 오는 그의 추종자들 위에 임할 환란과 시험을 예견하셨읍니다. 그는 따라서 「요한」에게 일곱 회중의 하나 하나를 위한 소식을 주셨읍니다. 이 소식은 「요한」 당시에 지방적으로 적절하였지만, 그 참다운 의미와 힘은 이 『주의 날』에 사는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회중들을 위한 것입니다. (계시 1:10) 주로 천적인 소망(왜냐 하면 그 중의 모든 약속은 천적인 것이기 때문에)을 가진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진 경고와 충고와 연결되었으며 묘사된 여러 가지 상태는 하나님의 왕국의 지적 소망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헌신한 종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12. (ㄱ)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말씀에서 어떤 특별한 필요성이 강조 되었읍니까? (ㄴ) 새로운 성품은 무엇을 포함합니까?
12 약속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말씀마다 있는 같은 호소에 유의하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또한 집단적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직면하지 않으면 안될 상태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은 말씀의 끝마다 『이기는 그에게』 라는 말로 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인내』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말씀 중에 몇번 나옵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도 같이 나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와 『굳게 잡아.』 굳게 잡으며 인내하며 이기려면 결정적으로 강한 성품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외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고정된 결심이 있지 않으면 안되며, 그것은 여호와께 대한 깊은 인식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하며, 그를 위하여 살며 그의 뜻을 행하겠다는 온 마음을 다한 결의가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항상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데 기쁨을 가지셨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완전한 본을 세우셨으며,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다는 것도 의미하며 「바울」은 이렇게 거듭 말하였읍니다. 『너희 자신을 새로운 성품으로 옷입히라. 그것은 정확한 지식을 통하여 그것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부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들어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 .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강한 의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권세를 부릴 여지가 없읍니다. 이것은 올바른 동기를 갖는 문제 입니다.—계시 2:7, 10, 13, 19; 3:11; 로마 8:29; 골로새 3:10-14, 신세.
13. (ㄱ) 우리가 경건한 성품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읍니까? (ㄴ) 이 면에 있어서 「바울」은 어떻게 좋은 예가 됩니까?
13 우리가 경건한 성품을 이룩하는 여러 가지 성질과 특성의 적절한 균형과 훌륭한 대조를 인식할 수 있으며 얻을 수 있으려면 다만 성서의 정확한 지식을 통하여서 뿐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좋은 실례로서 이바지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는 확실히 강력하였으나 진리에 대하여 소경이었으며, 균형이 잡혀있지 않았으며, 자신이 말하듯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읍니다. 그의 눈이 열린 후로 여생 동안 그는 여전히 강력하였으나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는 아름답게 균형을 잡고 있었읍니다. 이것은 그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한 편지로서 나타납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영혼)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참! 정말 차이가 있읍니다. 이제 그는 비 이기적이며 사랑하는 헌신의 영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디모데 전 1:13; 데살로니가 전 2:7, 8, 신세.
14.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의 형상에 띠라 어떻게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읍니까?
14 당신의 이전 성질이야 어떠하든 실망할 필요는 없읍니다. 아버지다우신 창조주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형상을 따라 . . .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형상을 따라 『새로운 성품』을 당신 안에 창조하실 수 있으십니다. 어떻게? 『심령으로 새롭게』 하는 힘인 하나님의 영 즉 변화시키는 영향력과 기록된 말씀의 영향력을 통하여. 전 성경이 유일하고 거룩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확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은 그 저자이신 여호와의 장엄한 성품을 더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성품]을 입』도록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창세 1:26; 에베소 4:2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