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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자신 하나님의 친구들임을 증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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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자신 하나님의 친구들임을 증명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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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6/1 212-217면

우리 자신 하나님의 친구들임을 증명함

“오 여호와여 누가 당신의 장막에 손이 될 것입니까? 누가 당신의 성산에 거할 것입니까? 허물 없이 행하며 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하는 자입니다.—시 15:1, 2, 신세.

1. 성경은 하나님의 신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며, 우리는 어떠한 요구조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만일 하나님의 친구가 아니라면 아무도 하나님의 신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손으로서 그곳에 영원히 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선한 사람들만을 그의 주위에 모으심으로 여호와의 장막에 손이 되기 위하여는 요구 조건들이 있읍니다. 이 요구 조건들이 무엇인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에 달함으로써만 성경이 다음에 말한 영원한 처소에서 축복된 영원한 생명의 실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계시 21:1, 3.

2. 하나님의 친구에 관하여 어떻게 거룩한 묘사를 하였읍니까?

2 시편 필자 「다윗」은 하나님의 친구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이 되기 위한 요구조건들을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읍니다. 『오 여호와여 누가 당신의 장막에 손이 될 것입니까? 누가 당신의 성산에 거할 것입니까? 허물이없이 행하며 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하는 자입니다. 그는 그의 혀로 비방하지 않았읍니다. 그의 벗에게 아무것도 악한 것을 행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의 친지에 비난을 가하지 않았읍니다. 그의 눈에 비열한 자를 누구라도 반드시 거절하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그는 존대합니다.』—시 15:1-4, 신세.

3. 여호와께서 그의 손이 될자들에 관 하여 주의를 하시는 것은 왜 올바른 일이며, 「다윗」 당시에 이 주의성은 어떻게 표시되었읍니까?

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장막에 어떠한 자들만을 손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라도 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지 않습니다. 많은 집 주인들은 잠시나마 악한 사람이 그들과 같이 머무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원칙이 하나님 여호와께도 적용됩니다. 그는 그의 장막에 아무나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악한 자는 아무도 어느 때나 당신과 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 5:4, 신세) 하나님의 장막과 관련하여 이것은 「다윗」 당시에 사실이었읍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오벳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기어 왔읍니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었읍니다. (사무엘 하 6:17) 이 장막에 들어가는 것은 지존자의 임재하신 곳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다윗」은 이 장막에서 어떤 섬길자들을 선택하였읍니다. 그들 특권을 받는자들 중에는 「아삽」이 있었읍니다. (역대 상 16:4-6) 허물이 없이 걸은 자들과 순결하고 정직한 자들만이 여호와의 성산의 그의 장막에 항상 참석할 수 있었읍니다.

4.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에 머무르기 위한 요구 조건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4 여호와께서는 그의 거룩한 임재하신 곳에 머무를 자들에 관하여 매우 조심하십니다. 「다윗」 당시에 여호와의 성산의 그의 장막에 손이 되기 위한 요구조건들이 엄하였다면 영원한 손 즉 여호와의 거룩한 가족의 한 성원으로서 그의 장막에 살기 위한 요구 조건들은 얼마나 더 엄하여야 하겠읍니까! 우리는 그것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으로 생각하여야 하며 「다윗」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미확정적인 기간 동안 당신의 장막의 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하나님의 친구들임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그의 친밀은 정직한 자들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와 호의를 영원히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의 보시기에 정직하게 되기 위한 요구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은 절대 필수적인 것입니다. (시 61:4; 잠언 3:32, 신세)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오 여호와여 누가 당신의 장막에 손이 될 것입니까? 누가 당신의 성산에 거할 것입니까?』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시편 필자가 대답한 바를 충분히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허물이 없이 행하며 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하는 자 입니다.』—시 15:1, 2, 신세.

허물 없이 걸어감

5. 「아담」은 허물 없이 걷는데 어떻게 실패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는 무엇을 상실하였읍니까?

5 하나님의 보시기에 허물 없이 걷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야 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신뢰를 증명하여야 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 낙원에서 하나님의 손이었읍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로 축복 받은 영원한 처소로써 낙원을 즐길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친구임을 증명하는데 실패하였읍니다. 「아담」이 천적인 아버지이시며 집 주인께 순종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의 낙원의 처소를 상실하였고 『하나님의 동산』에 손이 되기 위한 자격이 없게 되었읍니다. (에스겔 28:13) 「아담」은 허물 없이 걷는데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었읍니다.

6. 누가 『여호와의 친구』라고 불리웠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그러나 성경은 자신을 하나님의 친구로 증명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의 본들로써 풍부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친구로 증명한 사람들의 명단이 히브리서 11장에서 발견됩니다. 그 장에서는 「아브라함」을 말하였으며, 「야곱」은 그에 관하여 기록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그는 의로 여김을 받았다는 성경의 말씀은 성취되었고 그는 여호와의 친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야고보 2:23, 신세) 『여호와의 친구』라고 불리우는 특권이 그 얼마나 큰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도 여호와의 친구가 되기 위한 요구조건들에 달하고자 기뻐 행합니까? 우리가 단순히 원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하나님의 친구들임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우르」를 떠나라는 것과 후에는 「사라」가 그에게 난 독자인 그의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고자 계획하는데 있어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신뢰를 실지로 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읍니다. (히브리 11:8, 17, 18) 「아브라함」은 순종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신뢰를 증명하여 허물 없이 걸었으며 『그는 여호와의 친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7.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데 관한 올바른 평가는 무엇입니까?

7 어떠한 만족을 여호와의 친구가 되는 만족에 비할 수 있을까요? 소위 세상의 상업 기업의 성공을 하나님의 우정 얻는 것에 비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과 같은 행복과 만족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누가 12:21) 사람들은 상업계에 있어서 성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비상한 노력을 바칩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그의 보시기에 허물 없이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는 더 큰 노력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허물 없이 걸어감

8. (ㄱ) 항상 허물 없이 걸은 사람들의 어떠한 본들이 있읍니까? (ㄴ) 「다니엘」의 경우에서 표시된 바와 같이 허물 없이 걷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8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친구들로 증명한 사람들의 생애를 살필 때 우리는 그들이 허물 없이 항상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창세 5:23, 24; 6:9) 예언자 「다니엘」은 항상 허물 없이 걸었읍니다. 그의 생명이 위기에 처하여서도 그는 인간 지혜에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께 인도를 구하였읍니다. 사실 이것은 그가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것이 율법에 저촉되었을 때에도 「다니엘」은 그의 하나님과 친교하였읍니다. 그는 정규적으로 기도하였으며 그가 그의 가장 위대한 친구에게 항상 의뢰하고 있음을 표시하였읍니다. 「다니엘」은 여호와께 대한 충성 때문에 사자굴에 던지워졌으며 이교도의 왕 「다리오」까지도 「다니엘」이 항상 그의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다니엘 6:16, 20) 「다니엘」의 항상 허물 없이 걷는 것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크게 사랑하신 자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천사 「가부리엘」은 「다니엘」에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다니엘 9:23.

9. 허물 없이 걷기 위하여 중요한 하나의 요구 조건은 무엇입니까?

9 「에녹」이나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니엘」 같이 항상 허물 없이 걷기 위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잠언 3:5, 6에서 말한바와 같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충고를 자진하여 따르고자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의 친구가 결코 될 수 없읍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며 항상 곧은 길을 걷기 위하여 그의 거룩한 인도를 구하라는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사실 아무도 하나님께 참다운 헌신을 할 수 없읍니다.

10, 11. (ㄱ) 한 사람의 여호와를 마음으로부터 버리게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읍니까? (ㄴ) 하나님의 사람의 생명에 어떠한 위기의 순간들이 뛰어들었으며 그는 이들을 어떻게 맞이하였읍니까?

10 특히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모든 길에 있어서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특히 위기에 여호와를 마음으로부터 버리는 자들은 쉽사리 재난을 당할 수 있읍니다. 이것은 어떤 예언자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습니다. 열왕기 상 13장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이름은 모르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 때 제단과 그 위에 제물을 바친 우상숭배자들의 멸망에 관하여 현저한 예언을 하였읍니다. 악한 왕 「여로보암」은 격노하였읍니다. 그는 손을 내밀고 담대한 예언자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읍니다. 즉시 왕의 손은 뻣뻣하게 되었으며 말라버렸읍니다. 그리고 제단은 산산 조각 조각이 되었읍니다. 「여로보암」은 그의 손이 건전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줄것을 예언자에게 애원하였읍니다. 예언자는 동의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왕의 손은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그후 간교한 「여로보암」은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예언자를 왕의 식탁으로 초청하였읍니다. 이것은 예언자의 생명에 위기 일발의 순간이었읍니다. 그가 허물 없이 걸을 것입니까? 그는 걸었읍니다. 그는 여호와께 순종하였고 비록 왕이기는 하였으나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자이며 우상숭배자와의 어떠한 교제도 결정적으로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찌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라.』

11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계속 허물 없이 걷는다면 모든 것은 다 잘될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거의 연달아 위기 일발의 순간이 예언자의 생명에 뛰어들었읍니다. 그 도시에서 나와 가는 도중 하나님의 사람은 그곳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의 영접을 받았읍니다. 이 늙은 예언자는 그의 집에 그와 같이 가서 떡을 먹자고 하나님의 사람을 초청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노라.』고 대답 하였읍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 . . 이로라.』 이에 치근기 있는 늙은 예언자는 비록 그의 동기는 말하지 않았으나 거짓을 말하였읍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확실한 명령과는 반대로 그 하나님의 사람은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기 위하여 돌아갔읍니다. 이것은 재난의 결과로 인도하였읍니다.

12. 하나님의 사람이 허물 없이 걷는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무슨 결과에 이르렀읍니까?

12 그들이 식탁에 앉아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거짓말 하는 늙은 예언자에게 임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니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번에 늙은 예언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참으로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귀를 타고 그의 길을 떠났읍니다.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라. 그 사자는 사람의 시체나 나귀를 삼키지 않고 양쪽을 지켜 서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일어난 사건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방문하셨다는 징조가 되었던 것입니다.—열왕 상 13:1-28.

13. 허물 없이 걷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을 했어야 합니까?

13 허물 없이 걷는데 실패할 때 얼마나 비참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구부러진 샛길로 걷는 것을 피할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즉 그는 걷는 방법에 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거짓을 말한 늙은 예언자가 어떤 천사가 이 명령을 병경하였다고 말하였다 하드라도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그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과 모순된 간접적인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을 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까?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여호와께로부터의 직접적인 명령에 불순종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사람은 행동을 더 취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명백하게 하여주실 것을 구했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그는 이 위기에 처하여 거룩한 인도를 여호와께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천사』로부터의 간접적인 소식에 명백히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사람은 구부러진 샛길로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전 가치있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물 없이 걷는데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외람된 행동을 피함

14. 허물 없이 걷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교훈을 배웁니까?

14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웁니까? 여호와의 보시기에 항상 허물 없이 걷기 위하여 늘 그의 인도를 구하시되 특히 생명의 위기와 환란기에 구하십시오. 우리 자신의 견해나 혹은 비록 하니님의 조직에서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지위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 하드라도, 어떤 그러한 다른 사람의 권면에 의하여 결코 외람되게 밀고 나가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인도를 구함으로써 협잡군들이나, 좋게 한다는 노릇이 자신들의 이해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그릇 인도되는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함으로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한 그러한 멸망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 허물 없이 곧은 길을 걷습니다.—열왕 상 13:21.

15. (ㄱ) 하나님의 종의 기도는 어떠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와 관련하여 왕 「사울」은 허물 없이 걷는데 어떻게 실패하였으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읍니까?

15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친구로 증명하는 것은 우리의 외람된 행동을 막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시편 필자의 한 기도와 같기를 빕니다. 『외람된 행동으로부터 당신의 종을 막으소서. 그들로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면 나는 완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많은 범죄에서 무죄한 자로 남을 것입니다.』 (시 19:13, 신세) 그리스도인은 왕 「사울」의 외람됨을 본받지 않도록 합시다. 「불레셋」과의 대전에서 왕 「사울」은 예언자 「사무엘」로 말미암아 미리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말고 「사무엘」이 도착할 때까지 「길갈」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사무엘」이 와서 제물을 바칠 때까지 백성들을 함께 있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자 「사울」은 구부러진 샛길로 외람되게도 밀고 나갔읍니다.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번제를 드렸』읍니다. 직후에 「사무엘」의 도착하였을 때에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운 태도와 「사무엘」이 연착에 언급하며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하고자 하였읍니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라고 「사울」은 인정하였읍니다.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자기 자신의 지혜에 의지하고 「사울」이 『부득이 하여』 외람되히 밀고 나갔읍니다. 허물 없이 걷는데 실패함으로써 「사울」은 그의 왕국과 여호와의 우정을 상실하였읍니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사무엘」은 선언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사무엘 상 13:8, 9, 12, 14.

16. (ㄱ) 하나님께서는 외람된 행동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막으시며 사도 「바울」은 허물 없이 걷고 있음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ㄴ) 의심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피하여야 합니까?

16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기도로써 외람된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막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연구할 수 있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따라서 걷기를 원하시는 원칙을 배울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의 지혜의 책과 의논하여야 합니다. 기도는 외람된 행동으로부터 우리를 막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써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데 있어서나 여호와께 유의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조직을 통하며 충고를 하심으로써 외람된 행동으로부터 또한 우리를 막으십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 문제에 관하여 논쟁이 일어났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외람되게 밀고 나가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그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결정이 무엇인가를 알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갔으며 거기에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의에서 그 문제를 살폈읍니다. 한 결론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성령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읍니다. 조직의 한 편지가 준비되었고 그리하여 이 권위있는 발표는 회중에 낭독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직의 권한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바울」은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15:1-31) 그러므로 비단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조직으로부터의 충고로써 외람된 행동으로부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막습니다. 생명의 위기에서 어느 길을 갈 것인지 의심이 있을 때에는 전적으로 인간 지혜에 의하여 앞으로 나가지 말도록 합시다. 즉 그러한 행동을 제어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그가 명백하게 하시는 것을 기다립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곧은 길로 전진하게 될 것이며 항상 허물 없이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를 실천하며 진리를 말함

17.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구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시며 사람이 자기의 벗을 대우 하는데 관하여 이것은 무엇을 포함합니까?

17 여호와의 친구들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의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시 15:2, 신세) 그리스도인의 개인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로운 표준과 일치하여야 합니다. 즉 그의 행동은 거룩하여야 합니다.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1:15, 16) 여호와께서 거룩하심으로 그는 악한 자들 및 그들의 동료 인간들과 그리스도인 벗들을 불의하게 대우하는 자들을 손으로 그의 장막에 데려오시지 않으십니다. 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사람은 자기의 친구를 부정하게 대우하거나 그들을 속일 수 없으며, 그의 혀로써 그들을 비방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악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는 아무도 어느 때나 당신과 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만한 자가 당신의 목전에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해로운 일을 실천하는 모든 자를 미워하십니다. 당신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피흘리며 속이는 자를 여호와께서는 미워하십니다.』—시 5:4-6, 신세.

18. (ㄱ) 불의한 작은 행동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꾸는데 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18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의한 습관으로 더럽히는 자라도 누구나 손으로서 그의 장막에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하나님의 친구의 다음 묘사에 주의하십시요. 『그의 벗에게 아무것도 악한 것을 행하지 않았읍니다.』 (시 15:3, 신세) 이것은 적은 일들과 동시에 큰 일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16:10) 예컨대 그리스도인이 그의 벗으로부터 돈 꾸고 갚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금액이나 포함된 내역이 크지 않다고 하여 하나님께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악인은 꾸고 갑지 않는다.』 (시 37:21, 신세) 많은 사람들이 꾼것을 갚는것이 힘드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의를 실천』하고 있다면 비록 한번에 모다 갚지 못하드라도 그리고 시간이 상당히 경과할지라도 그들은 꾼 것을 갚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갚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19. (ㄱ) 「자기의 마음에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하십시오. (ㄴ) 우리의 우정을 증명하는데 관하여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과 어떠한 관련이 있읍니까?

19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한다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다른 요구 조건입니다. (시 15:2, 신세) 자기의 마음에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직합니다. 만일 그가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한다면 그는 그의 입으로도 진리를 말할 것입니다. 그는 거짓을 피할 뿐만 아니라 진리 즉 하나님의 진리의 전도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라고 요구하시는 진리는 그의 말씀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포함합니다. 특히 그 진리는 하나님의 왕국 전파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행하면 무엇이라고요? 『곧 나의 친구라.』 (요한 15:14) 그리고 주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 『마지막 때』에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왕국과 이의 설립에 관한 진리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에 모든 거민들에게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종말이 올 것이다.』라고 예수께서는 예언하셨던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20. 왕국의 진리를 말하는데서 어떠한 결과가 오며,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의무가 놓여있읍니까?

20 그렇다면 왕국 진리를 말하는 이 위대한 사업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각자가 참여하기를 원하여야 할 그 무엇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로써 한때 하나님의 원수였던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그의 친구들이 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원수들을 그의 친구로 개종시키는 것, 이것은 모든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거대한 특권이며 의무입니다. 이것을 행하기 위하여 그는 진리의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마음에 진리를 말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의 혀로써 진리를 말할 것이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진리로써 하나님의 원수들을 그의 친구로 도리키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린도 후 5:20.

21. 신 세계를 가까운 장래에 두고 우리의 행동은 어떠하여야 할 것이며, 어떠한 축복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까?

21 의의 신 세계는 가까운 장래에 있읍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장막』이 인류와 같이 있을 세계입니다. 『오 여호와여 누가 당신의 장막에 손이 될 것입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하나님의 왕국 진리를 그들에게 말하는데 있어서 근면하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다 같이 진리로 가득찬 마음으로부터 말합시다. 시종 모든 사람들을 다루는데 의를 실천합시다. 그리고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니엘」 같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거룩한 인도를 항상 구하며 우리가 하나님과 항상 허물 없이 걸을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합니다. 이 세상의 종말을 일관하여 영광스러운 신 세계까지 우리 자신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친구들임을 증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시편 필자와 같이 높아져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미확정 기간 동안 당신의 장막에 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될 것이며 여호와의 장막에 영원히 거할 특권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61:4,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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