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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간 제27부—“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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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간 제27부—“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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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파61 4/1 137-140면

속간 제27부—“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예언한 다니엘 11장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그 나라는 네개의 희랍 제국으로 분활되어 「알렉산더」의 네 장군이 각각 다스리리라고 하였다. 이 장군들 계통에서 한 왕조가 나와 「예루살렘」의 북방에서 통치할 것이기 때문에 북방 왕이 될 것이며, 또 이 장군들에서 또 하나의 왕조가 나와서 「예루살렘」 남쪽에서 다스리게 되기 때문에 남방 왕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실루거스 · 니가도」 장군의 후손에서 나와 「시리아」에서 통치한 처음 왕이 『북방 왕』이 되고 이와 대립하여 남방 왕이 나왔는데 이는 「프돌레미 · 라기」 장군의 후손으로서 「애굽」에서 통치하는 왕조였다. 주전 187년에 「시리아」왕 「실루거스」 4세가 북방 왕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는 그 시대에 「애굽」의 왕 「프돌레미」 6세 「빌로메터」였다. 그는 당시 막 흥왕 하던 「이태리」 「로마」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48. 이 북방 왕은 어떻게 넘어지게 되어 없어졌으며 누가 그의 뒤를 이었는가?

48 북방 왕 「실루거스」 4세는 그의 아버지가 「마그네시아」에서 패배한 배상금의 일부로 「로마」에게 빚진 무거운 벌금을 지불할 돈이 필요하였다. 보화가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에 감추어져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오니아스」 3세는 당시 「유대」인의 대제사장이었다. 돈에 손을 대기 위하여 「실루거스」 4세는 그의 금고를 맡은 「헬리오도러스」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여호와의 성전을 약탈케하였다. 「헬리오도러스」는 자기 자신이 북방 왕으로서 「시리아」의 왕위에 오르고저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실루거스」 4세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페르가멈」의 왕들인 「유메네스」와 「아달러스」는 살인한 「헬리오도러스」를 억제하여 살해된 왕의 동생을 「시리아」왕 위에 앉혀 「안디오거스」 4세가 되게 하였다.

49. 지금 북방 왕은 어떠한 별명을 갖게 되었으며 번역하면 무슨 뜻이 되는가?

49 이 새로운 왕은 인질로서 「로마」에서 살았다. 그는 약 12년간(주전 175-163) 통치하였다. 그의 별명은 「에피바네스」였다. 이것은 「안디오거스」 4세의 약칭이며 그는 자기가 만든 은전에다 「데오스 · 에피바네스」라고 삭였던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나타남』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자신이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애굽」 사람들은 이 글자를 『나타난 하느님』 즉 동쪽 지평선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이 나타난 하느님이라고 번역하였다. 그처럼 「애굽」사람들은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를 승리적으로 나타난 신과 같이 생각하였던 것이다.

50.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능한자로 보이고저 하였는가?

50 그는 자기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보다 더 능한자로 보이고자 하였다. 그는「유다」 와 「예루살렘」을 희랍화 할려고 하였다. 그는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그의 직책에서 쫓아냈다. 그는 뇌물을 받고 대제사장의 동생을 그 높은 직책에 두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을 더욱더 희랍화할 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는 극단에 이르러 「유대」인의 종교 즉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근절할려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섬기는 신을 무시하고 그는 총독 「스룹바벨」이 세운성전을 없애고 거기다 「올림프스」 신 「제우스」 즉 「쥬피터」를 세웠다. 다시 낙성된 성전의 대제사장은 「예수」였으며 그는 자기 이름을 희랍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어 「야손」이라 하였다. 「실루기아」 기원으로 145년 「기슬렙」 15일 즉 주전 168년 12월에 여호와께 매일 번제를 드리는 성전 마당에 있는 여호와의 커다란 제단 꼭대기에다 이방신을 위하여 제단을 만들었다. 십일 후 즉 「기슬렙」 25일에 처음으로 이방신 제단에 희생을 드렸다. (마가베 상 1:54-59) 그 희생은 희랍의 「올림프스」a산에 있는「제우스」 신에게 드린 것이다.

51. 성전에 대한 모독은 결국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그리고 「마가베」 통치는 마침내 어떻게 끝났는가?

51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힘으로써 「유대」인들은 주전 167년에 「마가베」의 지휘밑에 봉기하였다.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는 그들에 대항하여 어려운 전쟁을 하였으나 여호와께 비하여 그들의 신이 무능하다는 것이 들어났다. 주전 165년에 즉 성전을 더럽힌 바로 그날에 지휘자인 「유다 · 마가베」는 그 성전을 여호와께 또 바쳤다. 그리하여 수전절(修殿節) 명절(하누가)이 생기게 되었다. (요한 10:22) 매일 드리는 희생 혹은 번제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주전 161년에 「마가베」자손들은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 이것이 기록에 남는 그들의 처음 동맹이었다. 그러나 주전 104년에 비로서 「마가베」자손들이 왕국을 세우고 「아리스도불루스」 1세는 왕의 칭호를 받았다. 여러 해 동안 고난이 있었다. 드디어 「로마」가 와서 간섭하게 되었다. 「로마」의 「그내우스 · 봄베이」장군은 「로마」의 도로 편입된 「시리아」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을 삼개월 포위한 끝에 주전 63년 한 여름에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성소와 심지어는 지성소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히르가누스」2세를 지명하여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되게 하였다. 「로마」 의회는 주전 40년에 「헤롯 · 이두메안」을「유대아」의 왕으로 임명하였다. 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마가베」 통치를 끝내고 왕이 된 것은 주전 37년이 었다.

52. 「유대」교와 「가톨릭」성경 해석자들은 다니엘 11장 끝절까지를 어떻게 적용시키고 있는가? 그러나 누구와 그리고 어떠한 예언으로서 북방 왕이 그 때부터 변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여 주는가?

52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의 성경 해석 자들은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를 북방 왕으로서 다니엘 11장에 마지막 귀절 (45절)까지에 나머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19절과 20절에 있는 『북방 왕』의 정체는 「시리아」의 「실루거스」 왕조로부터 「로마」로 옮기고 있다. 그때 「로마」는 중동 문제를 장악하고 세계적 강국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똑같은 사람이 북방 왕으로서 다니엘 11:45까지 계속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엘 11장을 인용하여 그 정체가 바뀌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바로 20세기인 오늘날까지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세상 끝』에 관한 놀라운 예언을 하시고 다니엘 11장 31절을 인용하셨다. 이 예언은 「안디오거스」 4세가 주전 163년에 죽은지 195년이 지난 주후 33년에 말씀하신 것이다.

53. 예수께서는 다니엘 11:31이 언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는가? 그러므로 이제 북방 왕의 나라와 왕은 누가 되었는가?

53 예수께서는 질문한 사도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 . .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태 24:15-21) 예수께서는 다니엘 11:31이 썩 뒤로 소급하여 「시리아」의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에게 이루어지지 않고 자기 보다 앞날에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다니엘 11:31이 역사적으로 성취된 북방 왕은 「시리아」나 「실루기드」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11:19 이하는 북방 왕의 나라와 왕에 대하여 변동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은 그 변동이 다음 귀절인 다니엘 11:20절에서 있은 것을 알려준다. 「로마」가 이제 그 왕이 될것이다.

54. 「안디오기스」 4세 「에피바네스」는 어떻게 「로마」의 권력 밑에 굴복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시리아」는 어떻게 「로마」의 한 도가 되었는가? 이것은 북방 왕에 어떠한 변동을 가져왔는가?

54 「안디오거스」 4세 「에피바네스」 이전부터 「로마」는 벌써 중동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고 「시리아」를 쥐고 있었다. 심지어 소위 하느님이 나타난 자라고 불리운자도 「로마」의 지배력에 굴복하였다. 「안디오거스」 4세는 「애굽」과 싸워 이겼다. 그는 스스로 「애굽」 왕위에 앉았다. 「로마」의 함대는 「가이우스 · 폴필리우스 래나스」 대사를 싣고 왔는데 그는 「안디오거스」 4세가 「애굽」의 왕권을 포기하고 「애굽」에서 손을 떼라는 「로마」 의회의 명령을 가지고 왔다. 「시리아」왕은 그대로 하였다. 그러나 「퀼레-시리아」 「팔레스티나」 그리고 「뵈니기아」를 계속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성전을 약탈한 자로서 주전 163년에 「바사」에서 죽었다. 그 뒤에도 「시리아」에는 「실루기드」왕조의 독립한 왕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주전 65년에 「로마」장군 대 「봄베이」는 마지막 왕인 「안디오거스」 8세 「아시아디쿠스」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고 주전 64년에 「시리아」는 「로마」의 한 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가 결정적으로 북방 왕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북방 왕 앞에 「예루살렘」은 주전 63년에 굴복하였다. 남방 왕인 「애굽」왕은 그것을 방지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하였다.

55. 「프돌레미」 왕조는 얼마나 계속되었으며 「애굽」은 어떻게 되었는가?

55 「애굽」에 있어서 「프돌레미」왕조는 남방 왕으로서 그의 자리를 더 유지하였다. 주전 31년에 「엑튬」의 결전이 벌어졌다. 그때 이 전쟁에서 「애굽」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애인인 「로마」사람 「안토니오」의 함대를 버려 그를 패배케하였다. 「율리어스」「가이사」의 종손인 승리자 「오크타비우스」는 「애굽」정복을 위하여 떠났다. 주전 30년에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고 「애굽」은 「로마」의 도가 되어 새로운 북방 왕에 굴복하게 되었다.

『동맹한 왕도』 패하다

56. 누가 「로마」의 처음 황제가 되었으며 그에 관하여 다니엘 11:20은 어떻게 말하였는가?

56 권세 다툼에서 「오크타비우스」가 승리하여 그는 지금 「로마」 의회의 유일한 통치자로 나타나 「로마」의 처음 황제가 되었다. 그는『왕』(렉스)이라는 칭호와 독재자라는 말을 더는 쓰지 않았다. 주전 27년에 「로마」의 명령에 따라 「아구스도」라는 칭호를 받았다. 희랍 사람들은 이것을 「세바스도스」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뜻은 『높이움을 받은자』다. (사도 25:21, 25) 그가 「실루기드」왕조를 대신하여 북방 왕의 자리에서 행할 것을 여호와의 천사가 예언 하였으며 남방 왕과 북방 왕 사이에 있을 싸움에 관하여 긴 예언을 하였다. 『그 위를 이을자가 토색하는 자로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 (다니엘 11:20) 「아우구스트」 「가이사」의 『나라의 아름다운 곳』 중에는 「다니엘」의 백성의 『영화스러운 땅』도 포함되어 있었다.—다니엘 11:16.

57. 이 『토색하는 자』는 언제 『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두루 다니게 하였으며, 이에 관하여 「누가」는 어떠한 기록을 제공하여 주는가?

57 『토색하는 자』가 나타난 것은 주전 2년이었다. 그리스도인 역사가인 「누가」는 이 특별한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래뇨」가 「수리아」(시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들아오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나사렛」동리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리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맡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 2:1-7.

58. 「구레뇨」는 언제 「시리아」의 총독이 었는가? 그리고 등록을 시킨 것은 왜 「아구스도」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이며 또 「다니엘」의 예언 가운데 알릴만한 가치있는 것이었는가?

58 「로마」 의회의 의원 「피 · 술피기오 구레뇨」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시리아」에 두번 있었다. 첫번은 「예루살렘」에다 성전을 재건한 「헤롯」대왕이 죽었을 때쯤 된다. 이 때 통치한 기간은 「로마」건국 750-753년 까지며 그해는 주전 4-1년b에 해당한다. 그때 국세조사 즉 등록을 하게 한 것은 인구의 수효만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금을 부과하고 군대 복무를 위하여 징병을 실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특별한 인구조사는 「아구스도」 「가이사」가 북방 왕으로 통치하는 동안에 행한 가장 큰 행사의 하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나사렛」의 목수와 그의 아내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게되었으며 거기서 예수께서 출생됨으로 미가 5:2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마태 2:1-11) 여호와의 천사가 이처럼 중요한 것을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서 보여준 것은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며 즉 에언적 북방 왕이 다섯째 세계 강국인 「시리아」왕들로부터 여섯째 세계 강국인 「로마」로 변동한 것을 우리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59. 그는 북방 왕으로서 어떻게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멸망되었으며 또 『몇 날이 못되』어 멸망되었는가?

59 「아구스도」 「가이사」는 황제의 호위병을 세웠다. 후에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호위병을 더 늘렸다. 그는 주후 14년 8월 19일 그가 45년째 통치하는 해에 죽었다. 이것은 그가 호적하는 중요한 일을 행한지 『몇 날이 못되』었던 것이다. 이 호적할 때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왕의 후사로서 「다윗」의 동네에서 탄생되었다. 「아구스도」는 극장에서의 한 배우와도 같이 잘 다스렸으며 「로마」의 신들 중에 편입되어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성전과 제단을 세웠다.

60, 61. (ㄱ) 이러설 『비천한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는 「아구스도」 「가이사」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 (ㄴ) 어떻게 『나라의 위를』 그에게 주고저 하지 않았는가?

60 그 천사의 예언은 「아구스도」의 후계자 하나님의 독생자의 지적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을 말하였다. 『또 그 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을 입어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다니엘 11:21, 22) 그 신비적인 『비천한 사람』은 「리비아」의 아들인 「디베리오」 「가이사」였다. 「리비아」는 「아구스도」황제의 셋째 아내가 되었다. 그리하여 「디베리오」는 자연히 황제의 이붓 아들이 되었다. 「아구스도」 「가이사」는 「디베리오」가 그의 후계자가 될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의 이붓 아들의 성품이 나쁜것을 싫어 했던 것이다. 마침내 「디베리오」에게 『나라의 위』를 주게 된 것은 그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구스도」는 그의 모든 소망이 실패되자 할수 없이 「디베리오」를 황제의 후계자로 받아 드리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61 「아구스도」 황제는 아들이 없었다. 그의 누이에게 「마르셀로」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조카도 죽었다. 그의 딸에게 「가이오」와 「루기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아구스도」는 그들을 그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죽고 말았다. 그는 「디베리오」의 동생인 이붓 아들 「드루소」를 사랑하였는데 그도 일찍 주전 9년 9월 14일에 죽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디베리오」 뿐이었다. 그는 유능한 장군이 었으며 「로마」 제국의 군대에서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한 유능한 장군이었다. 그런데 「아구스도」황제의 위대한 장군 「아그립바」는 주전 12년에 51세로 죽었다. 이것을 본 「디베리오」의 어머니 「리비아」는 억지로 왕을 꼬여 죽은 「아그립바」 자리에 자기 아들 「디베리오」를 세우게 하였다. 그러나 「아그립바」 자리에 두기 위하여 「디베리오」는 황제의 사위가 되어야 하였다. 그래서 「디베리오」가 크게 슬퍼한 것은 「아그립바」 장군의 딸인 「아그립비나」대신 황제의 딸 「율리아」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주후 4년에 「아구스도」 황제는 「디베리오」와 「아그립바 · 보스두모」를 양자로 삼았다. 9년 후 특별법에 의하여 「디베리오」는 「아구스도」 황제와 더불어 섭정(攝政)권을 갖게 되었다. 다음 해인 주후 14년 8월 19일에 「아구스도」가 죽게되어 「디베리오」가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것은 「아구스도」 「가이사」가 원하지 않는 자리에 어떻게 『비천한 사람』이 나라를 얻게 되었는가를 알려 준다.

62. 「디베리오」 「가이사」는 어떻게 『궤휼로 나라들을 얻』었는가?

62 새로운 북방 왕 「디베리오」가 어떻게 궤휼한 일을 하였는가에 관하여 백과 사전 「브리다니까」 26권 916면 (11판)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디베리오」를 주로 그가 주권을 잡고 있을 때에 반역을 꾀한다는 구실로 고소하는 일이 처음으로 유행되었으며 밀고자들의 증오할만한 족속들은 법의 살해에 의한 유익을 첫째로 얻도록 허락되었던 통치로 기억하고 있다. . . . 그러나 「디베리오」 통치의 국가 재판의 역사는 의회의 궤휼로 말미암아 법의 남용이 처음에 시작되었으며 . . . 그의 통치 말엽에 와서 그는 일종의 경멸적인 무관심으로써 그가 공포와 유혈의 영향 아래 그가 발전시킨데까지 그것을 묵인하였음을 결정적으로 알려주고 있다.』c

63. 『넘치는 물같은 군대』가 그때에 어떻게 『그에게 넘침을 입어 패』하였는가?

63 「디베리오」가 북방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조카 「게르마니고」 「가이사」는 「라인」강 지역에 있는 「로마」 군대의 사령관이었다. 「디베리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위험한 폭동이 이 군대들 가운데 일어났다. 그러나 「게르마니고」는 볼만한 군단이 「로마」로 진군하는 것을 막았다. 주후 15년에 「게르마니고」는 그의 군대를 인솔하여 독일의 영웅 「아르미뇨」(헤르만)에 대항하여 그를 도망치게 하고 그의 아내 「두스넬다」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를 패배시켰다. 드디어 대외 정책 즉 「로마」의 국경지방에 관한 정책이 화평하게 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약간의 예외를 빼고서 「로마」의 군대들이 국경에서 할 일이라고는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서로 파괴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d 이처럼 『넘치는 물같은 군대』를 막아내어 『그에게 넘침을 입어 패』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각주]

a 「요세퍼스」 저 「유대인의 고대풍습」 12권 5장 4항 참조, 그리고 마가베 하 6:2 참조.

b 참조 Zumpt’s commentat epigraph, 86-104 De Syria romana provincia 97, 98 「맘센」 Res gestae divi Augusti 또한 「케논에이 · 크렘폰」 저서 불어 성경번역에 신약 사전 1939년 판 358면 「원너 켈러」저의 「역사로서의 성경」 1956년판 326, 327면(「론돈」판) 343, 344면 「뉴욕」 판) 대조 이상의 저자들이 말하는바 「안디옥」과 「시리아」에서 발견된 「로마」의 비문 같은 것을 보면 「구레뇨」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사투르니누」가 지방 총독이 었을때 「아구스도」 황제의 사절이었다고 하였고 또 「구레뇨」가 당시 「시리아」에다 정부의 자리와 군사 본부를 어떻게 세웠는가를 알려주고있다.

c 또한 「제임스 화이트」저 『기독교18세기』(1884년) 18, 19면과 C · T 럿셀(1891년)저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30면 1, 2항 참조.

d 백과사전 「부리다니까」 제 26권 915면 2, 3항.

[138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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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베」 시대의 「팔레스티인」 (주전 16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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