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삼위일체의 제삼위인가 혹은 하나님의 활동력인가?
“오직 성령이 너희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 1:8.
1, 2. 주후 33년에 「예루살렘」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되었는가?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주후 33년 5월도 늦게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백만 이상의 「유대」인들은 오순절(五旬節)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곳은 여호와께 대한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 도시의 다락방에는 열한 사도와 기타 109명의 예수의 제자들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이복 형제들도 있었다.
2 「누가」는 이때의 관경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것이 저희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 2:2-4.
3. 하나님의 성령에 관한 일반 그리스도 교국의 견해는 어떠한가? 그리고 「유니타리안」의 견해는?
3 매우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리스도 교국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성령(聖靈)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일위에 속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되며 본질적으로나 영원성에 있어서 동등되다고한다. 성경 사전들과 종교적 백과사전들은 성령이 하나의 위를 가진 존재자일뿐 아니라 하나의 신격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다란 설명을 하고 있다. 다만 「유니타리안」 신조에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거기서는 성령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성령은 다만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향력이며 … 신도들의 마음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영적 생활의 근원이 된다.』—「아붓드」전 종교지식의 사전.
4. 하나님의 성령에 관하여 주후 380년에 어떠한 견해가 승리하게 되었는가?
4 오늘날 기독교국의 총활적 견해는 하나님의 성령을 신격으로 볼지 모르나 항상 그러하지 않다. 예로서 「네안데르」의 말을 빌리면 「맥클린톡」씨와 「스트롱」씨의 백과사전에는 그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삼위일체 신봉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가장 위대한 성경 역사가들의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주후 380년에 이 교리에 관하여 많은 교파들 중에서 가장 명확하지 않은 것이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 하나는 말하기를 우리의 신학자들의 얼마는 성령을 단순히 하나님의 역사의 한 형식으로 보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피조물의 하나로 보고 있으며 또 얼마는 하나님 자신으로 또 다른 이들은 성경 기록을 존중히 생각하여 볼때 어떤 의견을 받아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 문제에 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의 성령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기게 되는가?
5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문제에 관하여 애매한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 자신인가 혹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하나인가 혹은 하나님의 활동력의 한가지 형식인가를 밝혀주지 않고 있는가?
영물(靈物)들
6. 어떠한 「히브리」어와 「히랍」말을 「영」으로 번역하였으며 각각 그 뜻은 무엇인가?
6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에 관하여 기록한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영」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와 「히랍」어 원어의 뜻을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영」을 「히브리」말로는 「루아」라 하고 「히랍」말로는 「프네우마」라고 한다. 이 두가지 단어는 각각 「숨쉬다」 「불다」 혹은 「바람」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러가지로 번역되었다. 영어 뉴마틱(Pneumatic)이라는 말은 「히랍」어 「프네우마」라는 말에서 왔으며 「뉴마틱 타이어」라는 말은 바람이 팽팽하게 들어 있는 「다이야」를 말한다. 영문 「흠정역」과 「듀-웨이」역에는 성신(Holy Ghost)이라는 말이 90회 가령 나오는데 거기다 「꼬우스트」(Ghost)로 번역한 말은 고대 영어에서 나온 말이며 독일말 「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까이스트」(geist)라는 말에서 온것이다. 그런고로 현대 번역에는 성신(Holy Ghost)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7. 「영」이란 말이 성경에는 몇가지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우리는 어떠한 충고를 들어야하는가?
7 「영」이란 말은 성경에 일곱가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어떠한 위를 가진자와 가지지 않은자에게 사용되었다. 이 일곱가지 사용법을 모르면 「영」이란 제목에 대하여 혼란을 이르킬 것이다. 우리가 참된것을 이해하려면 「바울」의 충고에 귀를 기우릴 것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디모데 후 2:15.
8. 바람의 어떠한 두가지 특질이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된 영의 공통적 특질을 나타내는가?
8 그러면 성경 필자들은 왜 「루아」 또는 「프네우마」라는 말을 일곱가지 다른 뜻으로 사용하였으며 위를 가진자나 위를 가지지 않은자에게 마찬 가지로 사용하였는가? 왜냐하면 이 일곱가지 뜻은 두가지 공통된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특질과 힘의 특질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 쪽배가 돛을 달고 떠나는 것을 볼때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돛이 바람을 담북 않고 그 바람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을 알수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영」의 뜻을 강조하여 『애굽인은 사람이오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하였다.—이사야 31:3.
9-11. (ㄱ) 『영』이란 말을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시키는 것이 왜 적절한가? (ㄴ) 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는 것이? (ㄷ) 또 선한 천사와 악신에게 사용하는 것이 왜 적절한가?
9 그러므로 이 「영」이라는 말이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 자신에게 사용될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와 그의 능력을 본자는 없기 때문이다. (출애굽 6:3; 33:2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여호와는 영이시다』라고 말씀 하셨으며 「바울」도 『여호와는 영이시니』라고 말한것이다.—요한 4:24; 고린도 후 3:17, 신세.
10 성경은 또 예수 그리스도를 영이라고 하였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혼이 되었다 함과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다. 여기 마지막 「아담」은 예수를 말한 것이다. 또 그의 부활에 관하여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 하였다. 지금 예수는 『가까히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기 때문에 『대능한 신』이라든가 혹은 「영」이란 말을 그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고린도 전 15:45; 베드로 전 3:18; 디모데 전 6:16; 이사야 9:6.
11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도 『영』이라고 한다. 히브리 1:7, 14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을 영으로 만드신다』고 말하였으며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삼으신다고 하였다. 성경은 이러한 선한 천사들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늘 말하고 있다. (열왕기 하 6:16, 17; 이사야 37:36) 악신들도 영들이라고 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붙어있는 악령들을 한마디 말로서 쫓아내셨다. 또 「바울」은 「사단」을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였다. (마태 8:16; 에베소 2:2) 다니엘 10:13, 20을 보면 이 악신들 중에는 매우 강력한 자가 있어 하나님의 천사 하나를 21일 동안이나 못가게 막았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영』은 또 위(位)가 아닌 것으로 사용됨
12-15. (ㄱ) 생명력을 표시하기 위하여 『영』으로 표현한 이유와 성구를 들라. (ㄴ) 또 정신 상태와 (ㄷ) 영감받은 발언을 『영』으로 표현한 이유와 성구를 들라.
12 『영』이 위(位)가 아닌것으로 사용된 하나의 예로서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영 또는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서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생명의 기운에 관하여 창세기 7:22은 『코로 생명의 영을 호흡하는 것은 다』 홍수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하였다. (로더함역) 신세계역은 그것을 『생명의 기운의 호흡이 살아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고 번역하였다. 사도 「요한」은 그의 환상중에서 본것을 기록하여 그들이 죽은지 삼일 반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영』이 그들속에 들어가 그들이 발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계시록 11:11, 신세) 사람이 죽으면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ru’ahh 요 nesph’esh 즉 영혼이 아님)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전도 12:7) 이 생명의 힘은 보이지 않는것이 확실하나 힘이 있다. 그러므로 「영」으로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과학자들은 이 생명력 즉 『생명의 원리』를 알려고 연구하고 있으나 여호와께서는 그 비밀을 그의 지혜속에 간직하고 계시다.—시편 36:9.
13 『영』이란 말 즉 「루아」 혹은 「푸네우마」가 성경에 또 다른 뜻으로 사용한 것은 그것을 정신 상태로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물론 위가 아니다. 성경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오 오만한 마음(영, 미표 개역)은 너머짐의 압잡이니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영, 미표 개역)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았는자보다 나으니라』고 기록 하였다. 정신 상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람이 성이 나서 얼굴을 붉힐때나 즐거워 할때 그 표정으로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영」이란 말을 그러한 뜻으로 사용하셨다. 『유혹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서 기도하라 영은 원하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 상태에 『영』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적절한 용법이다.—마태 26:41, 신세.
14 『영』이라는 말을 위가 아닌 것에 적용시킨 또 하나의 예는 『영감받은 말』이다. 하나님의 영감받은 예언은 영감받은 말 혹은 발언(發言)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을 『영』의 말이라고 하는것은 적절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영감받은 말이(영, 난외주)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라고 말하였다.—디모데 전 4:1, 신세.
15 마귀와 그의 종졸들도 영감받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예언적이 아니다. 공산주의의 연속적인 선전도 『영감받은 말』의 일종이다. 여호와의 왕국에 대항하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현세상의 선전을 『세 더러운 영감받은 발언』 또는 『세 더러운 영』으로 상징하고 있으며 이 비유적인 개구리들은 만국 백성들을 모아 「아마겟돈」으로 달리게 하고 있다. (계시록 16:13, 14, 16) 사도 「요한」은 거짓 영감받은 말에 속지 않을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여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영감받은 말[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감받은 말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 「요한」이 거짓 선지자의 『영』이라고 말한 것은 그 악한 영들이 발언한 것이며 악령 자체를 말한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들은 영적 피조물을 시험할수 없다. 옳고 그른것을 판단할수 있는것은 영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에 의하여서만 할수있다. 그러한 생각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인간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힘은 크다. 그러므로 이것을 『영들』이라고 하는것은 타당한 일이다.—요한 1서 4:1, 신세.
16, 17. (ㄱ) 성령에 관하여 「아다나시아」 신조는 어떻게 말하고있으며 그 교리를 얼마나 중대시 하고있는가? (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어떠한가?
16 『영』의 마지막 일곱째 뜻은 『성령』이다.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성령』이라는 말을 대문자(大文字)로 써서 그 앞에다 정관사 (The)를 붙여서 위를 나타내고 있다. 「아다나시아」 신조에 의하면 삼위일체에 관하여 오늘날 알려지고 있는 것과 똑 같은것을 가르친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봉자들이 믿고있는것은 「성령」 혹은 「성신」이 삼위일체의 일부분이며 창조되지않은 전능하고 이해할수 없는 하나의 신격(神格)을 가진자로서 하나의 주(主)가되며 신이되며 『영광과 위엄과 영원성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한다. 어떤 교직자는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것을 부인하며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은것을 부인하며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된것을 부인하여도 그러한 사람을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삼위일체를 부인만 하면 곧 이단으로 취급한다. 「로마 카톨릭」 백과사전에는 이 교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인 종교의 중심교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말이다.』
성령은 하나의 위도 아니요 하나의 신도 아니다
17 만일 「아다나시아」 신조에서 주장한바와 같이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다면 또 카톨릭 백과사전이 주장한 바와같이 만일 삼위일체가 그리스도인 종교의 중심교리라면 우리는 이 사실이 성경 여러곳에 분명히 기록되여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것인가? 특히 삼위일체 교리가 나타난 모든 진리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교리이며 또 우리의 구원이 그것을 받아드리는데 있다면 더욱 성경에 잘 기록되여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삼위일체를 분명히 설명해 주지않을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교리가 거짓되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성경은 성령에 관하여 올바른 것을 더욱더 이해시켜준다.
18. 성령이 하나님과 동등될수 없다는것을 어떠한 성경 구절이 명시하여 주는가?
18 성경에서 성령이 이차적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될수 있겠는가? 「다니엘」과 「스데반」과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타나 있는것은 보았으나 성령이 나타난 것은 한번도 못보았다. 만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광과 능력에 있어서 동등되다면 왜 나타나지 않었겠는가? 그 신조는 우리가 성령이 하나님과 동등되다는것을 믿지않으면 우리가 멸망되리라고 할지모르나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는길을 말씀하실때에 성령에 관하여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이니이다.』—요한 17:3.
19. 성령으로 침례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성령이 하나의 위를 가진이가 아니라는것을 명시하여 주는가?
19 성경은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다는것을 가르처 주기 커녕 성령이 위를 가지고 있지않다는것을 명시하여준다. 침례 「요한」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물로서 침례 받은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리라고 하였다. 침례라는것은 물속에 잠기는것 물속에 들어가는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요한」이 행한바와 같이 어떤 사람을 물속에 잠그므로서 그에게 침례를 줄수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속에 넣으므로 침례를 주어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른 위로 침례를 줄수 있는가? 물과 불은 위(位)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령도 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뿐아니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한 위가 어떻게 오순절때에 「베드로」가 전파한 후에 성령이 수천명 위에 부어진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수 있는가를 상상할수 있는가?—마태 3:11; 사도 2:17, 38, 41.
20, 21. 하나님의 성령이 뚜렷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실은 어떻게 성령이 위가 아니라는 좋은 증거가 되는가?
20 성령이 한 위(位)가 아니라는 것은 성령이 뚜렷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않다는 사실로도 알수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뚜렷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홀로 그분만 『하나님』이시며 『참된 하나님』이시며 그분만 홀로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다른 신들로부터 뚜렷이 구별되여 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도 한분 뿐이며 『독생자』 『처음난자』 말씀 곧 「로고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
21 그러나 성령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기타 모든 충성스러운 천사들은 모다 성령들이다. 성령이 하나의 위를 가진 「성령」인가? 만일 그렇다면 영과 거룩한 면에서 여호와나 그리스도보다 어떻게 더 높은가? 『여호와의 영』 『하나님의 영』 『나의 영』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같이 사용된 것이 백번 이상이나 된다. 성령이 소유격으로 사용된 것은 성령이 따로 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보다도 하나의 활동력이라는 것을 더욱 증명하여 준다.—사사기 3:10; 마태 3:16; 사도 2:18; 빌립보 1:19.
22. 성령의 위치에 관한 질문은 하나님의 성령이 위를 가지고 있다는데 대하여 어떻게 반증하여 주는가?
22 다음에 이상한 점은 그의 위치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것을 말하며 그곳에 궁전이 있는 것을 알리고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아버지 앞에서 즐겼으며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지상에 내려왔었다. 특히 인간이 되었을 때 땅에 계셨다가 하늘로 다시 돌아가셨다. 그러나 성령이 위의 존재자라면 전에는 어디 있었으며 지금은 어디 있는가? 그는 「요단」강에 있던 예수께 내려왔다가 또 올라갔다가 오순절때 다시 내려왔는가? 그는 지금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는가? 혹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따라 다니는가?
23. 성경 번역자들은 성령에 관한 올바른 뜻을 어떻게 흐리게하였는가?
23 성령에 관한 올바른 뜻은 성경 번역자들의 편견에 의하여 흐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성령이라는 말을 대문자로 표시하고있다. 그러나 그 대문자는 성령이 위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를 서로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성령이라는 말 앞에다 정관사를 사용한데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다. 성경필자들이 정관사를 부치지 않은 곳에 수 백곳에다 정관사를 붙여서 번역하였다. 성령에다 정관사를 붙이지 않은것을 번역자들은 경건치 못하게 생각하였으나 성경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정관사가붙은 『성령 안에서』라 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였다. 또 「베드로」는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종들은 정관사가 붙은 『성령에 의하여』라 하지않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고 하였다.—로마 14:17; 베드로 후 1:21.
성령—하나님의 활동력
24. 하나님의 성령이란 무엇인가?
24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도 아니오 삼위일체의 일부분도 아니오 동등되지도 않으며 하나의 위도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향력』인가?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사용하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하는 범위는 그것에만 제한되어 있지않고 훨씬 더 큰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활동력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 가운데있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기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 기운을 발휘하신다. 그러므로 초기 『교부』들이 성령을 『하나님의 역사의 한 형식』이라고 부른것도 마땅한 일이다. 그 힘은 보이지않으며 힘이 강대하므로 그것을 「루아」 또는 「프네우마」 즉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힘이나 번개나 폭풍우와 같이 맹목적이며 절제없는 힘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항상 그의 조종밑에 있다. 그러므로 마치 전파탐지기의 광선과 비교할수있다.
25. 과거에 하나님의 성령은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25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그의 성령 즉 그의 활동력을 통하여 만든것이다. 물론 요한 1:3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일을 행하실때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행하셨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나니라』고 하였다. (욥 33:4; 또한 창세기 1:2; 시편 104:30 참조) 이 활동력은 고대 충신자들에게 임하였다. 즉 「기드온」 「입다」 「삼손」등에 임하여 능력을 줌으로 그들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기적을 행한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아암았』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사도 「바울」도 옛적에 그리스도인들이 여러가지 징조와 이적을 행한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명백히 말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영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시며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라고 하였으며 「베드로」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것임이니라』고 하였다.—마태 12:28; 사무엘 하 23:2; 베드로 후 1:21.
26-28.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영적 아들을 위하여 어떠한 역사를 하여왔는가?
26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을 출생시키는 것은 또한 그의 성령 즉 활동력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일 먼저 출생하신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은 모양으로 예수께 임하였다. 그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기의 영적 아들로 인정하셨다. (마태 3:16, 17)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추종자에 관하여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였고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마음의 경향)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라고 하였다.—로마 8:14, 16.
27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은 기름부음을 받으며 여호와께로 부터 전도의 임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실 때에 이사야 61:1, 2을 낭독하여 자기에게 적용시키셨다. 『여호와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전도의 임명을 주기위하여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붇는 일이 오순절때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임하였다. 그것은 「요엘」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베드르」는 그것을 인정하여 「요엘」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이 갈아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 저희가 예언할것이오?』—누가 4:18; 사도 2:16-18.
28 하나님의 성령은 또 그의 종들을 도와서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한다. 사실상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수 없다. 과거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성경의 역사적 내용은 잘 알고 있었으나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입증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 하였다.—고린도 전 2:9, 10.
반대에 대한 고려
29. (ㄱ) 성령이 하나님의 활동력이라는데 대하여 어떠한 반대가 있는가? (ㄴ) 어떤 『교부들』은 성령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믿었는가?
29 그러나 이점에 대하여 삼위일체의 충실한 신봉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성경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의 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초기 교부(敎父)들은 성령이 하나의 신의 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었는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떨어질 자들이 있으리라고 경고 하였으며 「바울」과 기타 사람들도 그시대에 벌써 배교하는 일이 있다고 하지 않었는가? 그러므로 초기의 『교부』들이 잘못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언제나 위라고 말하지 않었다. 순교자 「져스팀」은 『성령은 신의 역사의 한가지 영향 즉 형식』a 이라고 믿었다. 또 카톨릭 백과사전에 의하면 「히폴리터스」는 『「콘스탄틴」 시대 전에 「로마」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신학자이며 가장 책을 많이 쓴 사람』이다. 그는 기록하기를 『결정적으로 성령에다 아무 위를 돌리지 않는다』b고 하였다. 먼저 4항에서 설명한바와같이 주후 4세기와 그이전과는 성령의 본체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 중에서 『「가이사리아」의 「바실」은 (4세기 끝의 신학자) 교회에서 성령의 신격(神格)을 가르칠려고 하였으나 다만 점차적으로 그것을 소개할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이 고상한 교리에 대하여 강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 교리의 역사, 네안데르.
30-32. 하나님의 성령을 인칭 대명사로 표시한것이 왜 성령이 위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증명하지 못하는가?
30 그러므로 성령에 대한 삼위일체 신봉자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하여 초기 교회 역사를 내놓는것은 허사다. 또 성령을 가끔 인칭대명사로 표시한 사실도 성령이 위를 가지고 있다든가 또한 하나의 피조물이라는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보혜사 조력자 혹은 위안자 『진리의 영』을 보내 겠다고 하였다. 여기 사용된 「히랍」어 「파라클레토스」는 남성(男性)명사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의 활동을 설명할때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약속된 보혜사는 오순절때 임하였다.—요한 15:26.
31 또 한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말하실때 비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신것을 많이 발견할수 있다. 만일 성령이 삼위일체의 셋째 위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되고 본질에 있어서 동위라면 비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것은 가장 불경(不敬)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것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것을 믿지도 못하고 아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아나니 그것은 너희와 함께 머무르며 또 너희 속에 머무르겠음이라.』 (요한 14:17, 신세, 로더함, 미국현대역, 다이아글롯) 이것을 인칭 대명사로 번역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희랍」말 원어는 비인칭 대명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것은 종교적 편견이 번역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그와 비슷한 것이 로마 8:26에 있는데 어떤 번역자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고 번역하였고 (미표개역, 두웨이) 또 다른 이들은 『그자체』라고 번역하였다. (신세, 미 현대역, 로더함, 다이아글롯)
32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우주조직과 그리스도인의 회중을 가끔 여인으로 상징하고 있는 사실을 비추어 보아 성령을 가끔 인격화 한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이 삼위일체의 한 위를 가진 분이며 신조에 있는바와 같이 영광과 존귀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동등된다면 성경에 성령을 『그것』으로 표시할수있다고 믿을수 있겠는가?
33. 기타 어떠한 논증으로서 성령이 삼위일체의 한 위라는것을 지지할려고 하는가?
33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것이다. 즉 위를 가지지 않은 영이 어떻게 말하며 가르치며 금지하며 임명할수 있는가? 또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에 성령이 말하는것 같이 서로 교대로 말하며 또 「아나니아」가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또 성령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은 하나님과 성령이 하나이며 성령이 삼위일체의 한 위를 차지하고 있다는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성령의 역사를 비유로 설명함
34. 어떠한 면에서 성령은 전기와 비교해 볼수 있는가?
34 먼저 질문을 고려 하는 마당에 있어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것이 이해하기 쉬울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 예수께서도 가끔 예를 들어서 설명하셨다. 성령은 바람과 비교하여 볼수있다. 또 어떠한 면으로 볼때 그것은 전기와 비교해 볼수 있다. 영은 광채 역활을 하며 통신을 하며 위대한 일을 수행할수 있는 강력한 힘을 나타낼수 있다. 우리는 「밧데리」가 충전되여 있는지 없는지를 눈으로 보고 알수없는 바와 마찬가지로 어떤사람이 성령의 충만하여 있는지 없는지를 눈으로 볼수 없다. 또 어떤나라에서 범인들을 사형시킬때 전기를 사용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서 악인을 사형시킨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였다.—사도 5:1-11.
35. 성령의 가르침과 금지하는것을 어떠한 예로서 설명할수 있는가?
35 또 하나의 예를 사용할것 같으면 오늘날 경찰이나 군대에서 지휘자들이 일선과 연락할때에 「라디오」를 사용한다. 그 지휘자들은 통신을 보내여 그들을 지휘하며 명령하며 금지한다. 그때에 일선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때에 이 모든일을 「라디오」가 했다고 할수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씀(로고스)과 성령을 통하여 그의 종들에게 말하며 지시하며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것으로 하니 영적일은 영적 말로 분별 하나니라.』—고린도 전 2:13.
36.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 즉 활동력이 감독자들을 임명한다고 할수 있는가?
36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회중의 감독자들을 임명 할때에도 그러하다. 성령은 인간을 사용하여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라고 하였고 또 그가 「디도」를 「그래데」에 남겨둔 것은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감독자들을 세우기 위함이였다.」 그리하여 「디도」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지혜와 권위로서 임명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임명은 성령이 행하였다고 할수있다.—사도 20:28; 디도 1:5.
37. 어떠한 비유와 성경 구절이 하나님의 성령이 신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가?
37 또 과거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의 종들에게 그의 지식을 보내주신것은 한 나라의 원수의 성명서를 「라디오」로 방송 하는것에 비교해 볼수있다. 그때에 「라디오」가 말했다고도 할수있으며 「아나운사」가 말했다고도 할수있으며 또 그 나라의 원수가 말하였다고도 할수있다. 그러한 말은 흔히 사용되는 말이며 아무런 혼란도 이르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또 다른곳에서 성령이 말했다고 하여 삼위일체의 신봉자들은 하나님과 성령이 각각 한 하나님c의 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위곡된 생각은 삼위일체론자의 입장을 더욱 위태롭게 할따름이다. 성경의 설명은 단순하고 쉬우며 결코 오묘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상에 있는 그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성령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것이다.—베드로 후 1:21.
38. 「아나니아」가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것이 어떻게 성령에 대하여 거짓말 한다고 할수 있는가?
38 이러한 비유는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한말의 경우에 적용된다. 그때 「베드로」는 성령을 통하여 「아나니아」가 「베드로」에게 대해서 거짓말 한것은 성령에 대하여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었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베드로」에게 거짓말한것은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거짓말한 것이 되었다.—사도 5:1-11.
[각주]
a *「람손」 저서 「3세기 초의 교회」.
b *「아이빗」
c *카톨릭 백과사전 7권 4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