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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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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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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파56 11/1 215-220면

일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라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도서 3:13.

1.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할것을 선택하셨으며 그 일을 함으로써 어떻게 그 마음을 기쁘게 하시는가?

여호와는 온 우주에서 최고지상자(最高至上者)가 되신다. 그분 위에 머리가 될자는 없다. 그는 아무에게도 명령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으신다. 그는 이것이든 혹은 저것이든 기타 어떠한 일이든 자기가 기뻐하시는 바를 행할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계시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행복한 하나님으로 불리우신다. 그가 행복하게 하는방법으로 선택하신 것은 일하는 것이다. 그는 일함으로 피곤을 느끼시지 않는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않으시며』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여섯째 창조일(創造日) 끝에 회복을 위하여 휴식(休息) 하셨다는 견해는 있을수 없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는 모든일을 쉬신 것이 아니라 다만 이 특수한 창조 사업만을 중지 혹은 쉬신 것이 었으며 그 사업의 완성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완전한 표준까지 가장 아름답게 사업을 완수함으로 휴식을 느끼시고 만족하셨던 것이다. 이 완성된 훌륭한 사업을 보시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께 즐거운 것이며 만족한 것이며, 휴식을 느끼게하는 것이었다.—이사야 40:28; 출애굽 31:17.

2. 예수께서 선택한 것은 무엇이며, 무슨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2 여호와께서 안식일 혹은 창조주간(創造週間)의 제7일중에도 일을 계속하고 계심을 예수의 말씀이 증명하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말씀은 또한 예수께서도 일하고 계심을 증명하여 준다. 예수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마끼신 일을 하고 계신다. 그는 마음껏 그리고 자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며 여호와의 뜻을 행함에 기쁨을 표시 하셨다. 그는 그것이 영양분이 되고 만족하게 하고 새롭게 하여 주는 양식과 같이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이상이 었다. 한 실례(實例)로써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식사를 재촉하였을 때에 그는 이와 같이 대답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일이 끝 났을때에 완수의 기쁨은 그에게 휴식을 느끼게 하며 아무런 피곤도 느끼지 않으시고 만족하게 하고 유쾌하게 하였던 것이다.—요한 5:17; 4:34.

3. 인간은 어떻게 일하도록 마련되었는가? 그리고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어떠한 일이 맡겨 졌는가?

3 인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형상 또는 모양 즉 지혜와 능력과 정의와 사랑의 성품(性品)과 같이 창조되었다. 인간은 그의 지혜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수 있으며 능력으로 그들을 실현시킬수 있으며, 의(義)로 그의 노동의 열매를 아름답게 이용할수 있었으며 사랑의 성품으로서 의를 초월하여 관대하고 무사적(無私的)으로 해결할수 있었다. 인간은 좋은 일을 할수 있게 지음을 받았으며 또한 할 일이 주워 졌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경작하고 그것을 다스리게』 하셨던 것이다. 남자와 그의 아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를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에 나는 것들과 땅에 기는 모든 생물들로 복종케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지구 위에 식물(植物)과 동물들이 최초의 인간 남녀의 감독아래 놓여있으며, 그들의 자손들이 번식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되어 있을때 그들은 얼마나 놀라운 사업의 특권이 주워져 있었는가!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맡기신일을 완전히 수행할수 있는 정신적인 또는 육체적인 재능을 부여 받았는가!—창세기 2:15, 신세.

4. 여호와께서는 왜 사람에게 일을 하도록 하셨는가? 그리고 지금 어떠한 발견이 이 사실을 입증하는가?

4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일을하지 않으시며 인간에게 일을 하도록 하시지 않었다. 그는 인간의 선(善)을 위하여 이일을 하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하도록 마련되었으며 그의 재능으로 이일을 함으로 행복을 느끼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알 맞는일을 맡기셨다는 것은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일은 그의 생활을 충족시킬 것이며, 두통거리나 혹은 재미 없는 일을 제하여 버리고 또 심심하지 않게하여 그에게 유용한 존재로서의 만족한 느낌을 갖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품이 무활동으로 말미암아 억제되거나 혹은 꺾이거나 침체되기 커녕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께서 맡기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정당한 길을 발견할수 있었다. 근대 과학적 연구는 인간이 일을 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성서적 진리와 일치되고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몸을 가진 성년들의 대부분은 직장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퇴직(退職)은 행복보다도 실증을 더욱 자주 가져온다. 더욱이 연구자들은 퇴직이 게으른 사람들로 실증을 나게 만들며 생존의 의욕을 잃게하고 사실상 그들의 생명의 길이를 단축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오락(娛樂)은 일하는 것보다도 퇴직한 사람들의 생활을 만족하게 못한다. 정상적인 일로부터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기분전환 또는 휴양을 위하여 쉰다면은 그들이 전 시간을 계속하였을 때 실증을 느끼게된다. 또한 오락은 어떠한 논설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 요구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의하여 사람은 그가 유용한 목적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것을 느끼지 않으면 않된다.』 좋은 일로부터 퇴직한다는 것은 축복보다도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일을 맡기셨을때 그는 사람의 선을 위하여 행동하신 것이었다.

5. 인간의 노동의 열매에 관한 여호와의 뜻은 무엇인가?

5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그의 노동의 열매를 빼았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였다. 전에 그는 하나님의 이 원칙을 더욱 길게 설명한 일이 있었다. 『누가 포도를 심고, 그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소들까지도 그들의 노동의 삯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원래 소에만 관한 것인가? 만일 여호와께서 일하는 짐승의 이익을 위하여 보호하신다면 일하는 사람의 복리를 위하여 얼마나 더 옹호하실 것인가! 바울은 이곳에서 소에 대한 하나님의 사고(思考)의 원칙을 무효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힘있는 수사학적(修辭學的)글로서 인간과 소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었다. 만일 인간에 대한 원리가 소에게 적용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비교할 여지 없이 강력히 적용될 것이며 특히 여호와의 봉사를 위하여 일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영적(靈的)인 것을 뿌리는 사람들에게 적용될것은 확실하다.—디모데 후 2:6; 고린도 전 9:7, 11, 신세.

6, 7. 신명기 20:1, 5, 6은 사람이 그의 일의 열매를 즐기게 되어있음을 어떻게 명시하고 있는가?

6 바울이 인용한 소에 대한 율법은 신명기 25장 4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같은 서적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람과 그들의 노동의 결과를 즐길수 있는 그들의 권리와 자신을 직접적으로 관계시켰다. 본 보기는 중요한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광야의 여행을 막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드러가기 위하여 모압 평야에 머물렀었다. 이 땅은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정복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입국은 전쟁을 이르키게 하였을 것이며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수가 적음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이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라.』 신권전쟁(神權戰爭)의 긴급성과 싸울수 있는 모든 성인(成人)의 징집(徴集)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병역의무(兵役義務)의 면제에 주의하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자가 있느냐. 그로 집에 도라가게 하라 이는 그가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가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자가 있느냐 그로 집에 도라가게 하라 이는 그가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신명기 20:1, 5, 6, 신세.

7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그의 노동의 열매를 즐길수 있도록 하신다. 즉 그의 일이 선한 열매를 즐길수 있는 보수도 없이 헛되히 되게 하시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모든 성인(成人)이 절실히 요구되는 비상전시(非常戰時)에 있어서도 적용되었다. 그는 그의 일을 즐길수 있는 만족을 갖도록하고 그가 자기의 집에서 생을 즐길수 있게 될것인가 아닌가 혹은 다른 사람이 그 집에서 살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을 품고 일선(一線)으로 가게 하지 않았다. 건축자는 바로 그 노동의 열매를 즐길 수 있는 제일인자(第一人者)인 것이었다. 그러면 그 후에 그는 전쟁의 부름에 응할수 있으며 그가 지은 집에서 결코 생을 즐길수 없지나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걱정함이 없이 통일된 정신으로 싸울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 기쁨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포도원을 재배한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었다. 그는 싸움에 나가기 전에 그 열매를 먹게되어 있었다. 이것은 수년간의 면제를 의미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율법은 첫 3년간에 맺어진 열매는 먹지못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4년째의 열매는 여호와께 바치게 되어있고 다섯해가 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그열매를 먹는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제는 재배자(栽培者)가 소산을 거둘때까지 시행되었다.—레위 19:23-25.

8. 휴가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는가?

8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 위하여서는 일하여야 한다. 우리가 마음과 신체의 변화 즉 혼동된 신경을 정리하고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휴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모세의 율법에 안식일(安息日)의 규정은 한 기간의 근면한 일이 끝난후 그와같은 휴양의 변화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었다. 제한된 기간의 휴가는 건강 회복을 위하여 비할바 없이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정신적 또는 신경적 정력이 즐거운 휴가로 말미암아 회복된 후에는 우리는 휴식이 필요치 않게 된다. 휴가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활동을 위하여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우리는 일하러 나갈수 있게 되었다. 이점을 무시하고 휴가를 계속하는것은 두통과 불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태만의 혼란한 위험성을 받아드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하러 돌아가기를 원한다. 우리는 가치 있는 봉사로 부터오는 기쁨과 만족을 잃어 버리기를 원치않기때문이다.

9. 오늘날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는 것을 무엇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9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일함으로 기쁨을 얻고 그의 대가를 즐길것을 원하신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알았도다.』 (전도 3:12, 1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있다. 그러나 수고 함으로 큰 기쁨을 즐기는 사람은 적다. 매우 적은 사람들은 그들의 노동의 보수를 만족하고 많은 사람들은 돈을 그들의 노력의 목표로 삼고있다. 이는 물질주의 시대이다. 훌륭한 사업의 자랑이 탐욕의 침해로 말미암아 먹혀 버렸을때 예술적 진보를 위한 열심은 상업적 이익의 우상앞에 경배한다. 돈을사랑하는 것이 일을 사랑하는 것에 대치된다면 그것은 사업의 질과 예술적 진보를 퇴화시키는 것이다. 돈은 지배한다. 그리고 질이 낮은 사람은 질이 낮은 생산을 위하여 노력을 지불한다. 그들은 더욱 물질주의를 사랑할 것이며 정신적인 것을 멸시 할 것이다. 그들은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대신 돈을 모음으로써 그것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열망과 신경과 정신적 분렬은 그들의 방법의 실패를 웨친다. 지난 여러 세기동안 사람들은 침침한 곳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음악을 지었고 또 막연한 가운데서 그들의 생명을 마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수고에 대하여 만족한상을 받았다. 그러한 명예심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학에서 미술 또는 음악에 있어서 인증된 걸작(傑作)을 내게 하였다. 오늘날 돈 벌이하는 사람들은 서기관(書記官)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사람들앞에 나타나기 위하여 그들의 일을 한것과 같이 그들이 욕구하는 보수를 얻는다. 그러나 이들은 다 큰 기쁨과 일 함으로 느끼는 만족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일하고 그것을 즐기도록 창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일을 미워하며 일을 피하려하고 도리어 재물을 찾으며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하니 그들은 곧 물질주의에게 삼키워 버릴것이다.

헛된 물질주의

10. 수고에 대한 실패란 무엇인가? 그리고 일이 왜 헛된 것이 될때가있는가?

10 그러므로 수고한 것을 실패케하는 것은 주검의 방해로 말미암아 수고한 사람에 의하여 그 대가를 언제나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동안에도 수고의 열매를 즐기지 않음으로 그들의 일을 헛되게 하였다. 즉 그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낙을 누릴줄 모르는 구두쇠들이었다.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 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나그네가 즐거움을 누리니 이것도 헛되고 심한 고난이로다.』 당신은 각자가 자기의 노동의 열매를 즐길 것을 여호와께서 원하신다는 먼저 말한 성경적 사실을 기억하는가.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노동은 노동자에 대하여 쓸데 없는 것이며 헛된것이 된다.—전도 4:7, 8; 6:2, 미국역.

11. 오늘날 어떠한 정신이 많은 일을 하게하는가? 그리고 균형적인 견해는 무엇인가?

11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한 손에 가득한 평온이 두 손에 가득찬 수고와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 4:4-6, 유대역) 일하려하는 자극이 가치있는 어떠한 일을 수행하지 않고 도리어 그의 동료들보다 뛰어 나려는 시기적 경쟁이 되는 수가 많다. 그것은 경쟁적 압력이오 그들로 더욱 부지런히 일하게하고 그들의 이웃보다 더욱 뛰어나게 하려는 탐욕인 것이다. 그들은 질투의 정신으로 그들의 이웃의 물질주의와 동등되거나 혹은 능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그들은 『요나스와 같이 하려고하여』 여념이 없다. 이것은 사욕적이오 선동적이며, 번뇌하게 하는것이며, 헛된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으로 압제 되어 게으름으로 두손을 모으고 있는 어리석은 자가 있으며, 그는 주림으로 자기의 살을 먹는다 선동되거나 다른 사람의 소유를 부러워함이 없이 조용하고 평화스럽게 일하며, 충족된 한 움큼을 즐기는 중간 길을 가는 것이 격렬한 경쟁으로 두 움큼을 취하려고 질투 하거나 어리석은 게으름으로 두 손을 텅 비워놓고 앉아 있는 것보다 낫다. 너무 부하지도 말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것이 좋다. 전자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관계 없다고 느끼게하며 후자는 그들로 도적질을 하게 유혹할 것이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언 30:8, 9.

12. 솔로몬은 재물을 모으는 것의 헛됨을 어떻게 표시하였으며 미드라쉬는 어떻게 그의 말로 비유를 들었는가?

12 번뇌와 성난 경쟁으로 긁어 뫃은 재물이 영구적인 이익이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의 말과 같이 『너는 그것을 너와 함께 가지고 가지 못한다.』 솔로몬은 그것을 더욱 웅변적으로 설명하였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데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던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유대인 미드라쉬는 이것을 한 비유로서 설명한다. 한 여우가 울타리 안에있는 포도원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가 들어 갈수있는 한 구멍이 뚤려 있었다. 그는 그 구멍으로 들어 가기에는 너무 몸이 커서 사흘동안을 굶어 몸을 여위게 만들고 그 구멍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갔다. 그 안에서 그는 다시 뚱뚱해 질때까지 포도로 큰 잔치를 치렀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포도원을 나오려 할때는 그 구멍을 빠져 나올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구멍을 빠져나올수 있도록 여위게 하기 위하여 사흘을 굶었다. 밖으로 나왔을때 그는 포도원을 돌아다 보며 웨쳤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너로부터 얻는 이익이란 무엇이냐 그가 들어갈때와 같이 그가 나오는 것뿐이다.』 이 세상도 이와 같다는 것으로 비유는 끝난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며 또한 나올 때도 그러한 것이다.—전도 5:15, 17.

13. 솔로몬에 의하면 일에 대한 견해가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을 제거하기에 어떠한 일은 헛된 것이며 어떠한 일은 그렇지 아니한가?

13 그러면 자신을 물질주의에 바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가? 그로부터 얻는 영구적인 이익이란 무엇인가? 물질주의 견해로서의 수고는 헛된것이다. 재물을 저축하기 위하여 일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질투적 경쟁을 하는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번뇌의 투쟁이다. 물질적 보물을 쌓기 위하여 노동하는 것은 태만이 우매한 것과 같이 헛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한 양식을 위하여 일하며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솔로몬은 그러한일을 선한것이라고 불렀으며, 헛된 것으로 보지 않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활의 전부라고 말하였다. 끝으로 솔로몬은 여호와를 잊지도 않고 하나님과 장래를 생각함이 없는 육체적인 방종생활을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여기에 생각하여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여호와를 두려워 함으로 일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숨은자이든 우리 마음안에 있는 동기이든 우리의 일을 종국적으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선하게 그의 계명에 일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한 일은 헛된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기억에 계속하여 남아있고 우리로 은혜로운 심판을 받게 할것이다. 그러나 더욱 많은 것이 뒤에 있다.—전도 5:18; 12:13, 14.

14. 무엇이 이 세계를 괴롭히는가?

14 사람들은 물질주의가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며, 마음의 변화의 필요성과 영적(靈的)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 요구되고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은 더 깊은 즐거움으로 부터 빼앗기게 될것이다. 모든 노력은 돈에 의하여 평가됨으로 일함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먹고 마시는 것과 일함으로 즐기는 것은 하나님께 받는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부언한 먼저 인용된 솔로몬의 말을 상기하라. 『그를 떠나서 누가 먹을수 있으며 누가 즐거움을 가질수 있겠는가.』 (전도 2:20, 25, 미국역) 일은 선을 위한 일이어야 하며 올바른 동기로 시행되어야 하고 여호와의 목적과 일치하며 그의 손으로 맡기신 일이라야 한다. 그리고 충성과 도덕적 원리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와같이 행할수 있는것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미친사람들과 같이 돈과 물질을 긁어 모으기에 경쟁적으로 투쟁하며 그들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기때문에 그들은 수갑과 같이 그것을 벗어 버리고 다만 자신들이 그들의 욕심과 도덕적으로 쇠잔한 원자력 물질주의로 말미암아 공포로 위축(萎縮)되어 있는 그들의 세계에 의하여 감금되어 있으며 실패되고 있음을 발견할 뿐이다.

15. 물질적 부는 아마게돈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15 물질적 재물에 대한 그들의 추구(追求)는 그들을 영적으로 해치며 아마겟돈에 그들을 육체적으로 해칠것이다. 이 마지막 날에 있어서 그것은 그들에 대하여 증언한다.—야고보 5:1, 3, 5; 스바냐 1:18; 에스겔 7:19; 잠언 11:4.

16. 오늘날 왜 많은 일이 헛되며 어떠한 일은 그렇지 않은가?

16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더는 그들의 일을 즐기지 못하며 경쟁적 탐욕은 생활의 평화스러운 즐거움을 약탈하고 과학적 물질주의는 그들의 존재를 무섭게 위협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을때에는 그들의 수고의 열매를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참으로 그러한 일은 헛된 것이다. 그러나 영적 가치의 평가로 사람은 그의 일을 즐길수 있고 온화한 심적 상태로 먹고 잠 잘수 있으며 물질주의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죽는다 할지라도 그의 노동의 의로운 열매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이 일은 헛되지 않으며 더 깊은 만족을 거둔다. 다음 장에서 자세한 것을 연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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