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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된 기록의 전달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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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까지 보존되고 있는 기록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3
파53 2/1 1-14면

참된 기록의 전달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제4장)

1. 성경 기록은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 났는가? 또 어떠한 문제가 제기 되는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라사대 “이것을 기렴하기 위하여 한 책에 기록하라” 하신것이 주전 1513년 이였다. 이것은 기록을 위하여 제일 첫번 행하여진 신성한 명령이었으며 또한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여 두는것이 여호와의 뜻이 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 기렴은 사람의 불완전한 기억으로 말미아마 애매하여질 구두 전달에 맡겨지지 않었다. 이 하나님의 목적의 완전한 소산물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곧 성경인 것이다. 이 66권은 천 육백여년에 걸쳐 35인 이상의 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의 공통된 근원 즉 하나님의 성영의 감동으로 말미아마 기록되었다. 모세가 주전 1513년 이전에 성경 기록을 시작하여 사도 요한이 성경의 마지막 권을 주후 98년 경에 끝 마쳤다. 이 역사적 연대에 관하여 두가지 문제가 제기 되나니 즉 모세가 기록한 성경 첫재권 창세기에는 그의 생전 수천년의 발생된 창세의 기사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는데 어떻게 그가 믿을만한 지식을 얻었는가 하는 문제며 또한 성경의 마지막 권이 기록된지 19세기나 경과된 오늘날 어떻게 정확하고 신뢰할만하게 첫 모양 고대로 우리에게 전달 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2. 여호와께서 어떻게 창세기에 있는 기사를 모세에게 알릴 수 있었는가?

2 여호와께서 창세기 기록에 있어 모세에게 지식을 계시할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성령 즉 활동력이 이를 완성시킬수 있었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셨다” 하였고 누가는 선포하기를 “이것은 주께서 예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라고 하였으며 베드로는 또 증거하여 말하기를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히 풀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온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대로 말한 것이니라” 하였으며 바울은 의심이나 의의를 둘 여지가 없다는것을 철저하게 말한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들 자신이 그 지식에 속달 하게끔 하나님의 령이 성경을 만드는데 역사하신 것이다. (사무엘 하 23:2; 누가 1:70; 사도 1:16; 디모데 후서 3:16, 17; 베드로 후서 1:20, 21, 신세계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전부터의 거룩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모세는 일언 일구 직접 계시에 의하여 창세기 기록을 받어 쓸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리는 아무런 기록도 없다. 혹은 입으로 부터 전해 나려오는 말을 받어 기록 할수도 있었다. 아담으로 모세까지 연결시키기에는 단지 오대(무두셀라, 셈, 이삭, 레위, 아무람)가 필요하였으나 성경은 이조차 지시하지 않는다.

3. 어떤 사실이 노아 홍수 전에 기록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여 주는가?

3 성서 지역에서의 현대 고고학적 발견은 노아 홍수 이전에 서자술이 있었다는 것을 명시하여주며 또 모세는 그 이전에 있든 기록을 가지고 창세기를 편찬하였다는 결론을 내릴수 있게 한다. 갈데야 우루에서 레오나듸 울리경은 홍수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도장을 발견하였는데 그 당시의 계형 문자로 쓴 각자의 이름이 종종 들어 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노아 당시에 있든 수 천개의 계형 문자 토판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오스나빨의 기사는 홍수 이전의 문자 서술을 암시하고 있으니 즉 그는 말하기를 “나는 홍수전 시대의 석비에 사긴 기재문을 읽는데 흥미를 가졌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바로 인간 태초에 올라가 볼때 아담이 기록을 하였거나 혹은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 우리는 창세기 5:1에서 “아담 세대의 책은 이것이니라” 한 기사를 볼수 있다.

4. 창세기에 있는 “세대”라는 말은 어떻게 번역 할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4 여기 표시된 “세대”라는 것과 그 용도는 의미 심장한 것이다. 이는 창세기 2:4에 처음 나오는 “천지의 창조된 세대가 이리 하니라” 하였다. 그러나 지능이 없는 천지가 자손을 낳거나 출생시키지 못할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므로 원래 히브리 말 “톨래도드”를 세대라고 번역한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사 혹은 역사적 기원이라고 번역하여야 할것이다. “다-비” 씨는 창세기 2장 4절 만은 “역사들”이라고 번역하였다. 창세기 2장 4절을 모활씨는 내력이라고 번역하였고 미 현대 역에서는 “기원”이라는 말을 사용 하였으나 그 후에 나오는 구절에서는 종시일관하여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었다. 창세기 2:4; 5:1 후에도 이 “세대”라고 번역한 말이 9회나 나온다. 그러나 이때에는 매번 개인의 이름이나 칭호 즉 노아, 노아의 아들들, 셈, 데라, 이스마엘, 이삭, 야곱, 등이 연결 되어 있다.—창세기 6:9; 10:1; 11:10, 27; 25:12, 19; 36:1, 9; 37:2.

5. 어떠한 오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 대 부분의 성경 학자들이 표현에 관하여 또 하나의 오해를 하고 있는것은 이 말이 그 다음에 따르는 구절을 유도한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 앞에 있는 기사를 결론 짓는 것이다. 미 현대역은 창세기 2:4을 번역할 때 “다음 것”이란 말을 더 사입하여 “다음 것은 천지 창조의 기원이라”한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기원의 내력은 이미 이 구절에 기록되어 있기때문이다. 모활씨는 이것을 알고 창세기 2:4을 바로 그곳에서 옮겨서 창세기 1:1 앞에 기입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의 문서체에 대한 쓸데 없는 능욕뿐이다. 모세와 모세이전 시대의 역사적 문헌에 관한 저술체에 있어서는 “이것은 그 세대”라든가 혹은 좀 더 나은 번역으로 “이것은 그 역사”라든가 이와 같은 어구로서 결론을 지어서 누가 그 저자이며 또는 그 문헌의 소유자 인가를 표시한다. 현대 서적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시초에 즉 머릿말 있는데 기재하고 있으나 모세 이전 시대에서는 나종에 기입한다는 사실을 현대 고고학은 확인하였다.

6. 모세 자신은 어데서 이러한 저술체로 기록 하였는가?

6 모세 자신도 자기의 저술의 어떤 부분에 이런 결론형식을 채용하였다. 레위기 마지막 절에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교훈에 대하여 결론한 것이고 그 후에 계속된 일 즉 민수기에 기록된 여행의 기사를 소개하지 않었다. 또 그는 민수기를 마칠때 에도 그와 같이 하여 “이는 예리고 마즌 편 요단 강가에 있는 모압 평야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계속되는 신명기를 소개 하지 않었다. 여기 쓴 이상 구절에 대하여 미 현대역은 “이것들은 그 계명들이었다”라고 하였다.

7. 모세의 창세기 편찬에 대한 결론은 무엇인가?

7 상기한 모든것으로 보아 모세는 그 이전에 이어 기록되여 있든 11개의 문헌 중에서 창세기 37:2까지의 재료를 편찬하였다는 것이 명백하다. 아담은 틀림 없이 창조에 관한 첫째 것을 기록하였으며 또한 둘째 것의 기록자로서 볼수 있다. 그 다음 나머지의 저자나 소유자는 그 결론으로서 알어 낼수 있다. 모세는 이런 결론이나 끝 맺이를 기입함으로서 그 당시의 저술 형식을 고수 하였다. 따라서 그가 썼다는 필적을 나타내어 창세기 편찬에 있어서 권위를 확립하고 있다. 창세기 37:3로 부터 이하에는 “이는 그 세대”라는 말이 더 나오지 않는데 이는 모세 자신이 창세기의 남어지와 모세 5경(성서 처음 다섯권)을 저술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목적으로 그는 이전 시대에 이러난 사건에 관한 지식을 요셉의 형제 레위로 부터 자기 아버지 아무람을 통하여 얻을수 있었다.

8. 모세가 죽은 후 성경은 어떻게 편집 되었는가?

8 모세가 죽은 이후 주전 442년 경에 말라기에 의하여 39권의 히브리 어 성경의 마지막 권이 기록될때 까지 천여년 동안 다른 충성스러운 히브리 인들은 영감을 받어 기록하였다. 그후 거이 5세기 동안은 아무런 성경 기록이 없이 경과되어 그리스도께서 와서 가르치시고 죽으신후 부활되어 승천하사 그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 성령은 그 중대한 진리들을 다시 기억하게 많은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의 성취와 새로운 예언과 그리스도 자신과 및 그가 한 인간으로서 이 지상에 거주한 사실과 아울러 후세까지 보존되어야할 산 진리를 기억케 하였다. 그리하여 성령은 한번 더 충성된 히브리인에게 역사하여 기록하게 하였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전기를 주후 41년 내지 50년으로 짐작되는 기간에 기록하였고 주후 98년 경에 그리스찬 히랍어 성경 27권의 마지막 권을 사도 요한이 기록할때 까지 다른 히브리 기자들도 그들이 쓴 책과 편지를 첨가 하였다.―요한 14:26; 로마 3:1, 2.

현대까지 보존되고 있는 기록

9. 사본은 어떻게 보존 되었으며 왜 증가 되었는가?

9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원본은 하나도 없으나 많은 사본을 만들어 전달된 것만이 보존되어 있다. 히브리 사람들은 성경 사본을 예배 중심지인 언약 궤와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신명기 31:26; 열왕기 하 22:8) 주전 607년 바벨론 사람에게 처음 성전이 파괴 되었을 때에도 성경 사본은 보존되었으니 다니엘은 포로 기간 중에도 이 성경을 공부 하였다. (다니엘 9:2) 에스라는 포로에서 놓여 온 후에 백성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주었다. 이것은 그 위험 기간을 통하여 성경 사본이 보존된 것을 알리고 있다. (느헤미야 8:1-3) 이로서 에스라가 느헤미야와 말라기를 제외한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모양을 편집 정비 하였다는 것을 믿을수 있다. 그리하여 그후 히브리어 성경의 많은 사본을 작성하는 맹 활동 기간이 도래하였다. 이는 포로로 부터 해방된 유대인들이 모다 예루살렘에 돌아 오지 않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곳에 남어 있어 그 곳에서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을 세웠다. 이 성전들은 널리 산재되어 있는 고로 많은 성경 사본으로서 이런 곳에 공급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약 1700본이나 되는 고대 히브리어 성경 사본이 오늘날 퍼져 있다.

10. “마소렛트 교본”이란 무엇인가?

10 직업적 히브리 서기관들은 사본을 복사 할때 가장 치밀한 주의를 하였다. 그들은 단어를 세어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글자 수효까지도 세어 보았다. 한 간단한 단어 일지라도 기억에 의하여 베끼는 것은 큰 죄로 생각 하였다. 그리스도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이처럼 베껴 쓰는 사람들을 서기관 혹은 “소페림”이라고 불렀는데 잘못 베껴 쓰는 것을 극도로 피하였으나 한편 교본의 변경을 가할 자유를 가졌었다. 즉 흔히 “여호와” 대신에 “하나님” 또는 “주”라는 말을 썼든 것이다. 그러나 그후에 “마소렛트”라고 부르는 숙련한 유대학자군이 나타났다. 그들은 사본을 사서 할때 대단히 단련한 주의와 성실로서 절대 변경이 없이 할뿐 아니라 전에 서기관 들로 말미아마 변경된 곳에 주의를 환기 하기 위하여 난외 주까지 기입 하였다. 그들은 소위 “마소렛트 교본”을 지어 내었는데 현재 우리의 부본과 히브리어 성경 번역은 여기 의거하게 되었다. 이 “마소렛트 교본”의 제일 오랜 것이 주후 916년에 기록된 “빠빌로니커스 페트로폴리타누스” 사본인 것이다.

11. 무엇이 정확성을 증거 하는가?

11 최근에 발견된 한 성경 사본은 현저하게 “마소렛트” 교본의 정확성을 확증하고 있다. 지금 이사야서의 사해 두루마리 책으로 유명한 사본이 1947년에 발견 되였는데 이는 주전 2세기에 다시 말하면 최고 연대를 가진 “마소렛트 교본”보다 천여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믿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 이사야서 두루마리에서 철자법의 극히 적은 차이를 제외 하고는 일반적으로 “마소렛트 교본”과 꼭 같다는 것을 발견할때 크게 놀랐던 것이다. 천여년간이나 이렇다 할만한 변경이 없이 복사되어 왔다는 것은 성서 보존에 대한 놀랠만한 증거다.

12. 히랍어 성경 사본은 왜 또 누구에게 의하여 만드러 젔는가?

12 히브리어 사본 경우와 같이 원본 히랍어 성경에서도 많은 부본을 만들 필요가 있었든 것이다. 첫째로는 널리 또한 속히 전달시키고저 함이었고 그후에는 사용과 장구한 시일로 말미아마 낡어 빠지는 것을 방비하고저 함이었다. 약 4000개나 되는 히랍어 성경의 사본이 현대 퍼져 있다. (8000개의 나전어 사본과 1000개의 기타의 방언의 사본이 있다.) 직업적인 히브리 서기관들의 정확한 복사법이 비 직업적인 히랍어 성경의 사서인들에게 훌륭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심 단정한 사서 일지라도 다소의 사서상 차오가 생겼다. 그러나 그 본 의미에 있어서는 중대시 할만한 차이가 없었다.

13. 어떻게 사본의 정확성이 확립 되었는가?

13 이 가장 오랜 이사야의 두루마리 책의 발견이 히브리어 성경 “마소렛트 교본”에 대한 신임을 더 일층 깊에 하는 동시에 히랍어 성경에 있어서도 최근에 발견된 주후 2세기 혹은 3세기에 된 파피루스 사본으로 말미아마 이 히랍어 성경의 확실성에 대한 의문도 없어지게 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학자 프레드릭 케넌 경의 결론을 들어 보자. “시초 저술한 때와 초대에 반포된 때와의 기간이란 사실상 무시하리 만큼 적은것이며 성서 기자들이 기록 한대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는가를 하는 성서에 관한 최후적 의문이 될만한 것도 지금 제거 되었다”라고 말하였다.―성서와 고고학 288, 289.

14. 왜 “아포크리파”는 성경의 일부가 되지 못하는가?

14 위경으로 알려진 책들을 령감으로 된 성경의 일부와 같이 보존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마 카돌릭 교회에서는 그 위경의 수집을 주후 4세기에 시작하여 주후 397년 카르다꼬 종교 회의에서 이 위경을 포함한 광대한 성경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널리 카돌릭 교권 내에서 반대를 받었다. 그리하여 이 반대 운동은 고급 교직자 층에 의하여 신교 종교 개혁 당시까지 계속 되었다. 이러한 책들이 성경에 속하여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그리스찬 시대의 제 4세기 초에 그리스찬 회중에서 령감으로 된 책으로서 인정 받은 성경 목록에 들어 있지 않으며 또한 그리스챤 히랍어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나 그 제자들로 부터 인용 또는 언급된 일이 없는 까닭이며 또한 그 위경의 한 토막도 처음 나온 70인역에 유대 사람들로 말미아마 포함되지 않었다. 위경은 그후에 나온 70인 역 사본에만 들어 있다. 령감으로 된 히브리어 성경의 경전은 참조하기 위하여 유대인 서기관들의 서재에 공개 전람 되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감동 받어 되지 않은 책들은 공중에서 은폐되어 있었든 고로 소위 “아포크리파”(위경)라 이르게 되었다. “아포크리파”라는 말은 감초었다는 뜻이다.

15. 어찌하여 70인 역이 만드러 졌으며 그후의 성경 기록은 왜 히랍어로 쓰게 하였는가?

15 70인 역이 성경 번역으로 나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여 보면 성경 번역은 성경 전달을 조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드라온 후 서기관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하면 백성들 에게는 아람 방언으로 해석 하였든 것이다. (느헤미야 8:8) 히브리어가 사어가 된후 공통 히랍어 소위 코위네 히랍어가 한 국제어가 되었다. 그후 70인 역이 생긴것은 애급에서 히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을 위함이었다. 이는 주전 280년 경에 시작되었는데 결국 전 히브리어 성경이 히랍어로 번역 되어있다. 예수께서 죽으신후 성서는 더 많은 성경 기록이 이루어 지게 되었다. 여호와의 령이 그 당시 가장 많이 이해되었든 방언 즉 코이네 히랍어로 기록되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로마 카돌릭 교회가 사어 나전어를 취급하듯이 사어 히브리 말을 존경하거나 특별히 신성시 하지 않으셨다. 여호와께서 성경을 보존하신 것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독케 하기 위함이었으며 단 종교적 교직자들만 위함이 아니었다.

16. 왜 또한 어떻게 성서의 번역은 우리에 시대까지 진전되어 왔는가?

16 성경 번역은 성경을 산 말로 보장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될수 있는대로 수다한 방언에 이용 시키려 함에 그 중대성이 있었으며 이를 여러 나라에 전파하여 읽게 하려 함이였다. (마태 28:19, 20; 사도 1:8) 히랍어 성경은 참으로 일찍이 나전어와 기타 방언으로 번역되었든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382-404년에 제롬에 의하여 나전어로 번역된 빌게이트 역이다. 이는 원 히브리 성경과 히랍어 성경으로 부터 나전어로 번역된 전 성경이 다 포함되어 있으며 천년간이나 성서학의 기본이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성서 번역은 급속도로 전전하여 가는바 성서 번역 수는 부분 역과 전 역을 합하여 1,125방언에 달하고 있다.

17. 로마 카돌릭 성리 정체는 어떻게 단독으로 성서를 보장하고저 하였는가?

17 그러나 이 성경을 산 방언으로 보장하여 각국 평민에게 쉽게 해독하도록 하기위하여 번역 사업은 아모 방해 없이 진행되어 온것은 아니었다. 로마 카돌릭 교회가 저들 자신이 성서의 보존자라고 자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의 주동적 반대자 였다는 것을 역사는 강력히 증명하고 있다. 카돌릭 교회는 평민이 해독할수 없는 사이에 의하여 성서를 보존하고저 기도 하였다. 로마 카돌릭 성리 정체가 강대하여진 것은 빌게트 역이 나온 이후였다. 저희는 백성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성경을 읽는 것을 좋아 하지 않었다. 그리하여 나전어를 일반 백성이 해독할수 없게 되었을때 그들은 기뻐 하였다. 11세기에 법왕 그레고리 7세는 이렇게 된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까지 하였다. 그러나 저희는 성서를 그냥 사이의 흑막 속에 매장하여 둘수는 없었다. 위클맆과 그 동지들에 의하여 영어 성경이 14세기 말엽에 처음으로 완성 되었다. 승리 정체에 핍박 밑에 기타 번역들이 연 달어 나왔다. 일상어 성경을 가진자를 박해 하기를 마치 들 즘생을 사냥 하듯이 하였으며 그들을 나무 위에 달어 그들이 가진 성경을 그 목에 달어 불 살우는 등 역사상 가장 잔인한 페-지를 비저 내었다.

18. 천주교에서 할수 없이 내종에 한것은 무엇인가?

18 15세기와 16세기의 대부분의 기간을 통하여 교권자들은 자국어 성경에 대적하여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드디어 그 투쟁에 실패됨이 판명되자 그것을 막을수 없음을 알고 다시 역행하였으나 하는수 없이 저희도 듀웨이 역이라고 하는 저의 자율적 영어 성경을 내게 되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많이 사용한 부자연스럽고도 불편한 번역이었다. 그러나 카돌릭 백과사전은 “보통 독자가 해독히 어려운 말을 찾어 내며 구독하여 그 의미를 찾을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을 만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량한 카돌릭 교도는 물론 일부러 꾸부려 만들어 놓은 교본을 줄수 있는 승리들에게 문의할 것이다. (1582년에 듀웨이 역의 히랍어 성경의 부분이 발행 되었고 1610년 후에 히브리어 성경의 부분은 발행 되었다.)

19. 어떻게 저의 허위 주장은 더욱 폭로 되었는가?

19 아마 성경 사본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치칸” 사본 1209호 일것이다. 이것은 주후 4세기에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본이나 그 이외의 것으로 오래된 가치있는 사본은 교권자들의 지배 밑에 있는 지역에는 하나도 발견된 일이 없다. 카돌릭 교는 이 “바치칸” 사본 1209호를 15세기에 입수 하였다. 그러면 누가 이를 후세까지 보존 하였는가? 물론 교권자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카돌릭 교는 이 사본을 손에 넣자 비 카돌릭 학자로 하여금 이를 유심히 조사하지 못하도록 하였든 것이다. 다만 시내 산 사본이라고 하는 주후 4세기에 기록된 유명한 다른 사본이 19세기에 이르러 발견되자 교권자들은 그것이 은폐됨을 두려워하여 저희가 소유하였든 사본을 똑같이 복사하여 출판 하였다. 그들이 성경들을 태워 버린 구실은 그들이 비 카돌릭 번역 성경이라는 것이 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영문 카돌릭 성경을 만들어 필요한 요구에 충당하지 않고 다른 번역을 억제하며 사어의 흑막 속에 성경을 매장 하였는가? 그와 같은 이유로서 바치칸 사본1209호를 보재기에 깊이 싸서 두었든 것이다. 저희는 단지 성경에 광명이 비최이는 데로 억지로 끄을려 갔다는 사실을 누구나 부인치 못할것이다. 오늘날 그들이 성경을 애독시키고 있는 나라들은 좀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 한하였으며 완전한 카돌릭 국가에서는 이면이 있어 그렇게하고 있지 않다.

20. 누가 성경의 보존자인가? 오늘날 성경은 어떻게 본 뜻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20 그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계속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참되심을 나타내게 할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보존자 이시다. 유대 소페림이 성경의 변경을 꾀하였으나 그 변경된 것은 곧 알려 졌으며 로마 카돌릭 교 복사자들과 신학자들은 날조한 구절을 그 속에 사입하였으나 현대 학자들은 그것을 폭로 시켰다. 그 중에 한개의 현저한 예는 요한 1서 5:7에서의 위조한 삼위일체 교리문이다. 현대 번역들은 성서를 기록한 원어에 대한 진보된 지식으로 말미아마 받은 혜택과 오래된 사본의 발견등으로 인하여 우리로 하여금 원어의 참뜻에 더욱 가깝게하고 있다. 아담시대로 부터 오늘날까지 전달된 기록은 그야말로 참된 기록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하여 지고 있다.―이사야 40:8; 베드로 전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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