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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기는 어떻게 개발되었는가?
  • 깨어라!—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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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공기가 상업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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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9
깨99 3/8 6-9면

비행기는 어떻게 개발되었는가?

설계자들은 결국 어떻게 중(重)항공기 제작에 성공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비행의 진정한 대가인 새에게로 다시 주의를 돌렸습니다. 1889년에 오토 릴리엔탈이라는 독일의 공학자는 황새의 비행 습관에서 영감을 얻어 “「새의 비행—항공학의 기초」(Bird Flight as the Basis of Aviation)”를 발행하였습니다. 2년 후에 그는 처음으로 간단한 글라이더를 만들었습니다. 2000번 정도 활공 비행을 한 후인 1896년에 릴리엔탈은 단엽기로 연습을 하던 중 사망하였습니다. 프랑스 태생의 미국인 공학자 옥타브 셔누트가 릴리엔탈의 설계를 보완해서 복엽 글라이더를 개발함으로, 중항공기 설계는 또다시 상당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라이트 형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데이턴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던 오빌 라이트와 윌버 라이트는, 릴리엔탈과 셔누트의 업적을 기초로 1900년부터 활공 실험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그 후 3년 동안 천천히 조직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에서 반복적으로 실험 비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풍동(風洞)을 이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했는데, 풍동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세탁용 풀이 담겨 있던 박스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최초로 동력 비행을 하기 위해 실린더가 네 개인 12마력짜리 엔진을 자체 제작하여 새 비행기의 아래쪽 날개에 장착하였습니다. 이 엔진으로 비행기 뒤쪽의 방향타 양쪽에 하나씩 있는 두 개의 나무 프로펠러를 돌렸습니다.

1903년 12월 14일에, 라이트 형제가 새로 발명한 비행기는 나무로 만든 발사 궤도를 최초로 이륙하여 3.5초 동안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3일 후에 라이트 형제는 이 비행기를 다시 이륙시켰습니다. 마침내 이 비행기는 거의 1분 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260미터를 날아갔습니다. 이 비행기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a

놀랍게도, 이 획기적인 업적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였습니다. 마침내 「뉴욕 타임스」지가 1906년 1월에 라이트 형제에 관한 기사를 실었을 때에도, 이 신문은 라이트 형제의 “항공기” 개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1903년에 그들이 “공중 비행에서” 거둔 “성공은 경미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오빌 라이트는 역사적인 비행이 있던 바로 그 날 밤에 아버지에게 전보를 쳐서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도록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있던 신문사 가운데 당시 이 사실을 애써 보도한 신문사는 3개에 불과하였습니다.

항공기가 상업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는가?

초기에는 세계가 전반적으로 항공기 산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항공 분야의 탁월한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셔누트도 1910년에 이렇게 예측하였습니다. “유능한 전문가들은 항공기가 앞으로 상업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공기의 수송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므로, 항공기가 승객이나 화물 수송용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을 한 후 여러 해 동안, 항공 기술은 급속도로 발달하였습니다. 5년도 채 되지 않아, 라이트 형제는 시속 71킬로미터로 비행하면서 해발 43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는 2인용 복엽기를 만들었습니다. 1911년에는 최초의 미국 대륙 횡단 비행이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는 데 약 49일이 걸렸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항공기의 속도가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시속 230킬로미터 이상으로 빨라졌습니다. 얼마 안 있어, 고도 기록도 9000미터를 넘어섰습니다.

1920년대에는 항공 관련 기록이 계속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1923년에는 미군 장교 두 사람이 최초로 미국 횡단 무착륙 비행을 했는데,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가는 데 27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4년 후에는 찰스 A. 린드버그가 33시간 20분 만에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 비행을 함으로 일약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한편, 아직 걸음마 단계인 상업용 정기 항공 여객기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였습니다. 1939년 말경에는 매년 거의 300만 명의 승객이 미국의 항공사들을 이용할 정도로 비행기 여행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에 표준이 되다시피 한 정기 항공 여객기인 DC-3은, 순항 속도가 시속 270킬로미터에 탑승객이 21명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상업용 비행기가 훨씬 더 커지고 또 훨씬 더 강력해져서 순항 속도가 시속 480킬로미터를 넘어섰습니다. 영국인들은 1952년에 상업용 터보 제트기를 취항시켰습니다. 그리고 1970년에는 400석을 갖춘 보잉 747과 같은 점보 제트기가 첫 선을 보였습니다.

1976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일단의 공학자들이 콩코드를 제작함으로 다시 한 번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콩코드란 삼각형 날개가 달린 제트 여객기로서 승객 100명을 싣고 음속의 두 배, 즉 시속 230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운영비 때문에 상업용 초음속 비행기의 상용화는 제한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계에 미친 영향

비행기를 전혀 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생활은 이러한 급속한 기술 진보로 인해 아마 많은 영향을 받아 왔을 것입니다. 항공 화물 운송은 세계 전역을 망라합니다. 흔히, 우리가 먹는 식품, 입는 옷, 직장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기계류는 대양이나 대륙 건너편에서 비행기로 실어 온 것입니다. 편지나 소포는 항공 우편을 통해 나라에서 나라로 신속히 배달됩니다. 사업체들은 일상적인 거래를 할 때 항공 국제 택배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 및 그에 대해 우리가 지불하는 값은 모두 비행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항공기 산업으로 인해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항공기 산업 덕분에 세계는 좁아졌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거의 세계 전역 어느 곳이나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여유만 있다면 그러합니다. 뉴스가 전해지는 속도가 빠르듯, 사람들이 여행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진보의 대가

하지만 그러한 진보로 인해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항공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하늘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두려워합니다. 해마다, 개인용 비행기와 상업용 비행기가 관련된 추락 사고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경쟁으로 압력을 받은 나머지, 많은 항공사들은 추가 비용을 고객이 부담하게 할 수 있었을 때에는 일상적으로 취하던 추가 안전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포춘」지는 말합니다. 미국의 항공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연방 항공국은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고 경영이 부실한 상태”라고, 동 지는 보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트기의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대기 오염과 소음 공해의 증가에 대해 염려하는 환경 보호론자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음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다루는 일은 “세계 민간 항공기 산업에 많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주간 항공 및 우주 과학 기술」(Aviation Week & Space Technology)지는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행기들이 노후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복잡해집니다. 1990년에 미국의 정기 항공 여객기는 4대당 1대가 20년 이상 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 중 3분의 1은 제조업체가 원래 정해 놓은 “실질적인 목표 수명”이 다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항공 공학자들은 현재 엄청난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들은 비용이 치솟고 환경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 안전하고 비용은 덜 들면서도 더 많은 승객을 수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내야 합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해결책이 이미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짐 에릭슨은 「아시아위크」지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영국 합동 항공 우주 과학 연구팀과 영국 항공 우주 산업체는 승객을 최고 300명까지 싣고 음속의 두 배 속도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승객 한 명당 들어가는 비용과 연료 소비량이 낮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공항의 교통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산업계의 일부 미래 연구가들은 승객이 100명까지 탈 수 있는 차세대 대형 통근용 헬리콥터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들은 현재 기존의 고정익(翼) 항공기가 담당하고 있는 단거리 항공 교통의 상당 부분을 언젠가는 이러한 항공기가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형 헬리콥터와 초음속 비행기가 앞으로 항공 산업의 절실한 필요를 실제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까? 인간이 ‘하늘을 열’고 비행을 하려는 노력을 계속 추구해 나감에 따라, 오직 시간만이 그 점을 우리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각주]

a 어떤 사람들은 독일에서 이주하여 미국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던 구스타브 화이트헤드(바이스코프)가 자신이 발명한 비행기를 1901년에 띄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사진은 전혀 없다.

[6면 삽화]

오토 릴리엔탈, 1891년경

[자료 제공]

Library of Congress/Corbis

[6, 7면 삽화]

파리로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다음 런던에 도착한 찰스 A. 린드버그, 1927년

[자료 제공]

Corbis-Bettmann

[7면 삽화]

소프위드 캐멀, 1917년

[자료 제공]

Museum of Flight/Corbis

[7면 삽화]

DC-3, 1935년

[자료 제공]

Photograph courtesy of Boeing Aircraft Company

[7면 삽화]

시코르스키 S-43 비행정, 1937년

[8면 삽화]

연안 경비 구조대 헬리콥터

[8면 삽화]

곡예 비행이 가능한 피츠, 샘슨 모형

[8, 9면 삽화]

1976년부터 정기 운항이 시작된 콩코드

[8, 9면 삽화]

에어버스 A300

[9면 삽화]

우주 왕복선은 대기권에 재진입하면서부터 고속 활공기가 된다

[9면 삽화]

“루탄 바리에즈”,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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