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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주의자들이어야 하는가?
  • 깨어라!—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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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7
깨97 5/8 22-23면

성서의 견해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주의자들이어야 하는가?

“교회들은 그리스도교의 처음 몇 세기 동안에 그러했듯이 다시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휴버트 버틀러, 아일랜드 작가.

휴버트 버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고 나서, 위와 같은 담대한 표현을 수필에 담았습니다! 그 수필은 1947년에 쓴 것으로 지난해에 와서야 출판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끔찍한 범죄들을 묵인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간” 데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버틀러는 인기 없는 대의나 집단을 옹호하여 솔직하게 발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는 대개 혼자였습니다. 그는 교회들의 행동과 여호와의 증인의 용감한 태도를 대조하여 말할 때에도 두려움 없이 자기 의견을 표현했는데, 「아일랜드 타임스」지에 실린 표현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은 “확실히 모든 종파 가운데 가장 결백하고 나무랄 데 없이 정치와 무관한 종파”입니다. 버틀러는 “유고슬라비아에 관한 보고”라는 그의 수필에서, “정치계와 종교계 지도자들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궤변을 배척”한 증인들이, 전쟁 운동에 참가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유고슬라비아 당국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을 평화주의자로 묘사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정확합니까? 명확히 말하자면, 그에 대한 대답은 “평화주의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버틀러는 여호와의 증인이 큰 개인적 희생을 치르면서도 전쟁에서 무기 들기를 거부하는 용기를 가진 것을 칭찬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쟁 열기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은 평화주의자란 “자기 나라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겁쟁이 혹은 반역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견해는 정확합니까?

전쟁이나 폭력에 반대함

「웹스터 신 대학생용 사전 제9판」(Webster’s Ninth New Collegiate Dictionary)은 평화주의자(pacifist)란 “싸움 특히 전쟁에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전은 “평화주의”(pacifism)를,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전쟁이나 폭력에 반대하는 것; 특히, 도덕적이나 종교적인 근거로 무기를 들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러한 정의들은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참으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근거로 무기를 들기를 거부’하였고 모든 ‘싸움과 전쟁’을 피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추종자들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며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15:19; 마태 26:52) 「초기 교회와 세상」(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이라는 책에서, 한 역사가는 “적어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때[기원 161-180년]까지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침례받은 후에는 군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알려 줍니다. 「구세계에 놓인 신세계의 기초」(The New World’s Foundations in the Old)라는 책에서, 또 다른 역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싸우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심지어 제국에 군인들이 필요한 때에도 군 복무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 24:14; 28:19, 20)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그분의 적과 전쟁하라는, 말하자면 하느님의 집행관으로서 행동하라는 사명을 받지 않았음을 이해하였습니다. (마태 5:9; 로마 12:17-21)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들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버틀러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경우에만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흔히 싸움의 양편에서, 교직자들은 군대를 축복하고 승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비교 요한 17:16; 18:36) 예를 들면, 과거 여러 세기 동안 프로테스탄트교인들과 가톨릭교인들은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싸웠고, 그 결과 “서유럽에 끔찍한 사태가 [닥치게] 되었는데 양편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진노의 도구라고 선포하였다”고, 케니스 클라크는 저서 「문명」(Civilisation)에 기술합니다.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저 「성서와 신학과 교회에 관한 문헌 백과 사전」(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에서는, 이런 종류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법은 “세속 당국의 환심을 사려는 욕망에서 발전된 것이 분명하며, 고대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그리고 복음서의 전체적인 취지에 명백하게 반대된다”고 말합니다.—야고보 4:4.

전쟁은 전적으로 반대하는가?

하지만 ‘고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복음서의 전체적인 취지’가 정말 평화주의적이었습니까? 참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앞에서 나온 정의대로 평화주의자들이라고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전쟁을 하실 하느님의 권리를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14:13, 14; 15:1-4; 여호수아 10:14; 이사야 30:30-32) 그뿐 아니라,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유일한 도구 역할을 했을 때 그 나라에게 그분을 위해 싸울 것을 허락한 하느님의 권리에 관해 전혀 논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시 144:1; 사도 7:45; 히브리 11:32-34.

하느님께서는 땅에서 악한 사람들을 제거하실 공의에 근거한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가지고 계십니다. 많은 행악자들은 자기들의 행실을 고치라는 하느님의 참을성 있는 호소에 결코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45:22; 마태 7:13, 14) 하느님께서 악을 관용하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사야 61:2; 사도 17:3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국은 하느님께서 땅에서 악한 사람들을 강제로 제거하실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 둘째 3:9, 10) 성서가 예언하는 바와 같이, 이 일은 “주 예수께서 자기의 강력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타오르는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우리 주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실 때에 있을 것입니다.”—데살로니가 둘째 1:6-9.

성서의 마지막 책은 이 싸움을 “전능자이신 하느님의 큰 날의 전쟁” 즉 아마겟돈으로 묘사합니다. (계시 16:14, 16) 그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전쟁에서 앞장서실 것이며 ‘의로 싸우신다’고 알려 줍니다. (계시 19:11, 14, 15)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군왕”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사야 9:6, 「신세」) 그러나 그분은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하늘에서 전쟁을 치르시어 하느님의 모든 반항적인 적들을 소탕하셨습니다. (계시 12:7-9) 곧 그분은 “땅을 파멸시키는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또 하나의 전쟁에서 싸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땅에 있는 그분의 추종자들은 그 하느님의 심판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계시 11:17, 18.

참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군사적, 정치적, 민족적 싸움에서 완전히 중립을 지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마침내 땅 위에 하느님의 뜻을 시행할 하느님의 전쟁—우주 주권이라는 중대한 쟁점을 해결하고 평화의 모든 적들을 땅에서 영원히 제거할 전쟁—을 환영하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 25:31-33; 다니엘 2:44; 마태 6:9, 10.

[22면 사진 자료 제공]

조롱당하는 그리스도/The Doré Bible Illustrations/Dover Publication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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