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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들이 침묵을 지킨 이유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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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5
깨95 9/1 12-15면

교회들이 침묵을 지킨 이유

베일러 대학교의 프랭클린 리텔 박사는 1993년 12월 8일 미국 유대인 대학살 기념 박물관에서 고통스러운 “엄연한 사실”에 관하여 연설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리텔이 말한 그 사실이란, “600만 명의 유대인이 그리스도교국의 한복판에서 공격 목표가 되어 조직적으로 살육당하였는데, 그 일을 자행한 세례받은 가톨릭교인, 프로테스탄트교인, 동방 정교회 교인들은 파문은커녕 질책을 받은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목소리가, 교직자들이 히틀러 정권에 개입한 사실을 꾸준히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바로 그 목소리는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목소리였습니다.

히틀러는 세례받은 로마 가톨릭교인이었으며, 그의 정부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들은 파문당하지 않았습니까? 왜 가톨릭 교회는 그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던 끔찍한 일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까? 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역시 침묵을 지켰습니까?

교회들은 정말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이 전쟁에 쏟는 히틀러의 노력을 후원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가톨릭 교회의 역할

가톨릭 역사가 E. I. 왓킨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인정하기가 괴롭기는 하지만, 우리는 거짓된 교화(教化)나 부정직한 충성을 꾀하기 위하여 주교들이 자국의 정부가 벌인 모든 전쟁을 끊임없이 후원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 호전적인 국가주의가 대두될 경우, 그들은 카이사르의 대변자로 입을 벌려 왔다.”

왓킨은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이 “자국의 정부가 벌인 모든 전쟁을 끊임없이 후원해 왔다”고 말했을 때, 히틀러가 벌인 침략 전쟁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빈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가톨릭교인인 프리드리히 헤어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독일 역사의 엄연한 사실로, 십자가와 스바스티카 간의 밀월이 시작되더니, 마침내 스바스티카가 독일 대성당들의 탑에서 나부껴 승전보를 알렸고 스바스티카 기(旗)가 제단 주위에까지 등장하였으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자, 교역자, 교직자, 정치가 들은 히틀러와의 제휴를 환영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 히틀러가 벌인 전쟁들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인인 고르던 찬 교수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히틀러의 전쟁에서 복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교직자에게서 영적 지침과 지도를 기대했던 독일 가톨릭 신자들은 나치 통치자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대답을 들었다.”

가톨릭교인들이 그들의 교회 지도자들의 지시에 순종적으로 따랐다는 사실이 헤어 교수에 의해 고증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하였습니다. “3200만 명의 독일 가톨릭교인 중에서—그 중 1550만 명은 남자인데—단지 일곱 [사람]만이 공개적으로 군 복무를 거부하였다. 이들 중 여섯 명은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좀더 최근의 증거를 보면, 그 외에도 가톨릭교인 몇 사람과 프로테스탄트교인 몇 사람이 종교적 확신 때문에 나치 국가에 반대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제삼 제국에 몸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잠자코 있던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헤어 교수는 “히틀러와의 제휴를 환영”한 자들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도 포함시켰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많은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은 히틀러의 침략 전쟁 기간에 침묵을 유지한 일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1945년 10월에 11명의 지도급 교직자들이 모여 소위 슈투트가르트 유죄 자인서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좀더 용감하게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지 못한 것을, 좀더 충실하게 기도를 올리지 못한 것을, 좀더 기쁘게 믿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을, 좀더 열렬하게 사랑을 나타내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바이다.”

폴 존슨의 「그리스도교사」에는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복음주의 교회 교역자 1만 7000명 가운데 [나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한] 장기 복역수가 50명을 넘은 적이 그 어느 시기에도 없었다.” 그러한 교역자들을 여호와의 증인과 대조하면서 존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그들은 시초부터 명명백백한 교리적 반대 입장을 천명하였고 그에 따른 고난을 감수하였다. 그들은 나치 국가에 대한 여하한 협력도 거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39년으로 돌아가서, 「위안」지는 프로테스탄트 교역자인 T. 브루파허의 이러한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인 시험에서 실패하고 있을 때, 알려지지 않은 이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양심을 억압하는 일과 이교적 우상 숭배에 맞서서 흔들림 없는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래의 역사가는 언젠가, 큰 교회들이 아니라 비방과 조소를 당하던 이들이 마귀 같은 나치의 광란에 처음으로 대항한 사람들이었음을 틀림없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 ·⁠·⁠· 그들은 히틀러 숭배와 스바스티카 경배를 거부하였다.”

마찬가지로, 마르틴 니묄러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 지도자로서, 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진실로 회고하건대, 그리스도 교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전쟁과 무기와 군대를 축복하는 일에 동의하였으며, 적을 멸절시키게 해 달라고 매우 비그리스도인적인 방법으로 기도하였다.” 그는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 잘못이며 우리 조상 잘못이지, 절대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다.”

니묄러는 그 다음에 이렇게 부언하였습니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소위 진지한 성서학자들이라는 분파[여호와의 증인]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복무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에게 총을 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강제 수용소에 수백 수천 명씩 수감되었던 것이다.”

유대학 교수인 수재너 헤셸은 루터교 교직자들이 히틀러를 지지하려고 했다는, 아니 간절히 지지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교회 문서를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스바스티카를 그들의 교회에 게양하는 특권을 간청하였다고 이 여교수는 말하였습니다. 절대 다수의 교직자는 강압에 의해 협력한 자들이 아니라, 히틀러와 그의 아리아 인종에 대한 이상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자들이었음이 그의 연구 결과 밝혀졌습니다.

강의 도중, 헤셸은 교회 성원들에게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처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는 답변입니다.

그들이 잠잠했던 이유

교회들이 잠잠했던 이유가 명백해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과 그들의 양 무리가 성서의 가르침을 버리고 국가를 지지하는 쪽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1933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나치스와 정교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 추기경 파울하버는 히틀러에게 이러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금번 교황권과의 악수는 ·⁠·⁠· 무한한 축복의 성과입니다. ·⁠·⁠· 제국의 총통[히틀러]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실로 가톨릭 교회는, 다른 교회들도 마찬가지지만 사악한 히틀러 정부의 시녀로 전락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참 제자들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들과 그들의 교구민들은 히틀러의 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요한 17:16) 그 결과 그들은 나치스가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지른,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행위에 대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등 여러 종교에 속한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나치 국가에 맞서서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자기 목숨으로 값을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면서 제삼 제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과감히 입을 연 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보도 매체는 대체적으로, 교회들이 나치 드라마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눈감아 주었지만, 여호와의 증인은 교직자들의 배신과 위선을 그 막후 결탁의 소상한 내막과 함께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본지의 전신을 비롯한 출판물의 지면에서, 증인들은 나치스의 시녀로 전락한 종교 조직의 죄상을 지면을 통하여 강력히 고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추종자들을 식별함

여호와의 증인은 세상의 종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일부가 아닌 그들은 국가들의 전쟁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었습니다. (이사야 2:4)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요한 13:35) 이것은 그들이 결코 전쟁에 나가 고의적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참 숭배자들을 식별하는 문제에 관해서 성서는 명명백백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이 사실로 분명해집니다. 곧 의를 계속 행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에게서 나온 사람이 아니며,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어 온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인과 같이 되지 마십시오. 그는 악한 자에게서 나와 자기 형제를 죽였습니다.”—요한 첫째 3:10-12.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극심한 압력을 받을 때에도 언제나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왔음을 역사는 밝혀 줍니다. 히틀러가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증인들은 자신들을 살육의 난장판에 끌어들이려는 나치스의 잔인한 시도에 직면하여 결연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크리스틴 킹 교수는 그 문제를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과감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입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던져 줍니다.”

이 세상이 안전하게 여호와의 정부의 사랑에 찬 통치 아래 들어가 전쟁과 악이 없어질 때까지, 여호와의 증인은 계속해서 과감히 입을 열 것입니다. 지존하신 주 여호와의 뜻이 그러한 한, 본지는 이 사탄의 세상의 악을 폭로하며 인류의 유일한 참다운 희망인 하느님의 왕국을 예고할 것입니다.—마태 6:9, 10.

[13면 삽화]

미국 언론이 나치즘에 대한 교회의 지지를 입증하였다

「뉴욕 포스트」 1940년 8월 27일자 최종판 15면

「뉴욕 타임스」 1939년 9월 25일자 시내판 석간 6면

「뉴욕 타임스」 1941년 12월 7일자 시내판 석간 33면

[15면 삽화]

교회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증인은 나치즘에 대하여 과감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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