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더 행복해지게 하는 일
무엇이 결혼 생활에서 성공을 거두게 할 수 있는가?
누구의 지침이 부부를 행복으로 인도할 수 있는가?
의사 소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여성 해방에 대한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야스히로와 그의 여자 친구 가요코는 언제라도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거를 시작하였다. 가요코가 임신한 뒤에야 법적으로 결혼하였다. 그런데 야스히로는 계속해서 가족 마련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재정 문제가 일어나고 서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자 두 사람은 미련 없이 이혼하고 말았다.
이혼한 지 얼마 후에 야스히로와 가요코는 서로 모르는 채로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성서 원칙을 적용함으로 상대방의 생활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재혼하기로 하였다. 이제 그들은 결혼에 대한 경건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른다.
무엇으로 인해 그들의 재혼은 성공을 거두었는가? 결혼의 창시자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창세 2:18-24) 가장 경험이 풍부한 결혼 문제 상담가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은 부부간의 행복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다.
부부간의 행복의 열쇠
배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런 말씀을 서로 적용할 때 부부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며, 결혼 생활을 보존할 수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느니라.]” (마태 22:37-39) 여기에 부부간의 행복의 열쇠가 있다. 남편과 아내는 자기를 사랑하거나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앞서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이 관계는 삼겹 줄에 비할 수 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 4:1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인간 행동에 관한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남편과 아내는 여호와께 대한 사랑을 가장 강한 줄로 하는 삼겹 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요한 1서 5:3은 말한다.
그렇게 여호와를 사랑하면 결혼을 영속적인 마련으로 보게 된다. (말라기 2:16) 결혼에 그런 기초를 둔 부부는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지, 이혼하여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사랑을 나타냄
배우자와 영속적인 유대를 가지려면, 가장 가까운 이웃인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한다. 이 사랑은 비이기적인 것이어야 한다. 성서가 이 원칙을 어떻게 권하는지 유의해 보자. “같은 사랑을 가[지고] ··· 영혼에 함께 연합되고, 정신에 한 생각을 가지며,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 본위로 하지 말고, 남을 여러분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정신으로 하고, 여러분 자신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도 눈을 두십시오.”—빌립보 2:2-4, 「신세」.
물론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전혀 다툼이나 자기 본위 없이 처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배우자가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 솔선하지 않을 경우 비이기적인 태도를 나타내기가 더 힘들다. 그러나 겸손한 정신을 가지고 배우자를 자기보다 낫게 여긴다면 배우자의 유익에 관심을 쏟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정신 태도를 가지라고 훈계한다. 예수께서는 능한 영이셨으나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셨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지상에 계실 때에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그분은 자기를 환영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유익을 얻게 하셨다. (빌립보 2:5-8) 이런 태도를 나타냄으로 예수께서는 많은 반대자의 마음을 사로잡으셨으며, 예수의 추종자들 역시 예수를 본받아 그렇게 하였다. (사도 6:7; 9:1, 2, 17, 18) 같은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배우자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배우자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 눈을 둠으로써, 차츰 배우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를 더 낫게 보아야 한다고 해서 동양의 경우처럼, 아내가 남편의 압제를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각기 배우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한다는 의미에서 상대방을 더 낫게 여겨야 한다. 부부가 겸손한 정신으로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며, 서로 비이기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교훈을 따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길에 제대로 들어선 셈이다. 이제 하나님의 교훈 중 일부를 생각해 보자.
“결혼 침상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게 하시오”
결혼 마련을 창시하신 여호와께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위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남편이 갖가지 이유로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합법적이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혼과 재혼의 유일한 법적 근거를 지적하시어 이렇게 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태 19:3-9.
혼외 성관계는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행해질지라도 어느 쪽에도 결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일본 중부의 한 남자는 여러 여자와 혼외 정사를 가졌다. 아내는 의혹을 품게 되었고 실망하였다. 결혼 생활이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정부(情婦) 중 한 여자가 그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면서 결혼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런 관계는 아무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그는 후회한다. 그는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준 후에야 그런 곤경에서 벗어났다. 이 문제에 대한 성서의 표준은 분명하다. “결혼이 모두에게 존귀한 것이 되게 하고, 결혼 침상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게 하시오. 하나님께서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3:4, 「신세」) 이 명령을 지키는 사람은 성 매개 질환이나 부부간의 갈등, 숨겨진 정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하게 된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라
가족 내의 머리 직분 원칙 역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라고 에베소서 5:22, 23은 말한다. 이 교훈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것은 내게 산더미같이 커다란 도전이었다”고 쇼코는 털어놓는다. 쇼코는 최종 결정을 내릴 남편의 권리를 빼앗곤 하였다. 남자는 20대 후반이면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 쇼코는 남편을 졸라서 자기가 미리 봐둔 집을 사게 하였다. 하지만 관련된 성서 원칙을 배운 뒤 쇼코는 남편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수동적이고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보이던 특성이 올바른 시각으로 보니까 분별력 있고 겸손하며 온화한 특성으로 보였다.
머리 직분 원칙으로 볼 때 남편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더 높은 권위 아래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고린도 전 11:3)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있기 때문에, 남편은 예수께서 추종자들을 사랑하신 방식대로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에베소 5:28-3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남편은 결정을 하기 전에 아내의 감정과 바람, 아내의 한계를 신중히 고려할 것이다.
‘소금으로 맛을 냄’
히사코는 남편과 의사 소통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남편과 어떤 문제를 상의하려고 할 때면 으레 남편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구려” 하고 대화를 피하였다. 히사코는 이렇게 기억을 떠올린다. “나의 부드럽지 못한 태도가 우리 부부의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내가 좀더 천천히 이야기하였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이제 히사코와 남편은 웃으면서 문제를 상의할 수 있다. 이렇게 달라진 것은 히사코가 이런 교훈을 따른 뒤부터였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은혜스럽게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같이 하시오. 그리고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골로새 4:6, 「새번역」) 소금을 잘 친 음식이 더 맛있듯이, 잘 생각한 말을 은혜로운 방식으로 하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잠언 15:1) 사실, 단지 말하는 방법을 주의 깊이 생각함으로 종종 부부간의 불화를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 여호와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결혼을 영속적인 유대로 보려는 동기를 갖게 하며 결혼을 보존하려는 결심을 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간의 온갖 불화에 대처하고 문제가 아무리 산처럼 커 보여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전한 지침을 마련하셨다.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혼은 더 행복한 인생의 문이 아니다. 그러나 성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더 행복한 인생의 문이다. 당신은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배양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가장 권위 있는 결혼 지침서인 성서에서 그분의 교훈을 더 배우지 않겠는가?
[9면 네모]
이혼을 택할 권리가 있을 경우
성서가 음행을 근거로 이혼과 재혼을 허용하지만, 간음했다고 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저절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고한 배우자에게는 이혼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마태 19:9.
야스코는 그런 식으로 양단간에 결정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남편이 첩을 얻어 딴살림을 차린 것이다. 시어머니는 야스코를 나무라며 “내 아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다 네 탓이다” 하고 말하였다. 야스코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야스코에게 조언을 하였으나 야스코의 남편의 처사를 정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친정 어머니가 야스코에게 “성서에서는 간음을 범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더구나” 하고 말하였다. (고린도 전 6:9) 야스코는 오늘날 이 세상에도 여전히 선악에 대한 표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큰 위안을 받았다.
이제 야스코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남편과 이혼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야스코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한 뒤 자기 역시 제대로 하지 않은 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서 원칙이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야스코는 성서 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 5:21-23) 야스코는 이렇게 기억을 떠올린다. “쉽지 않더군요. 거듭거듭 이전 습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여호와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도 많았지요.” 야스코가 달라지자 남편도 차츰 달라졌다. 약 5년 뒤 남편은 첩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야스코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분명히 유익함을 확신합니다.”
[11면 네모]
성적 부조화와 이혼
많은 남녀는 성적으로 맞지 않아서 이혼했다고 말한다. 「성생활과 가족」이라는 책은 오늘날의 변하는 가족 마련을 다루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렇게 지적한다. “오늘날 일부 일처 결혼 마련과 색정적인 성 정보는 어울릴 수 없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성 정보는 부부간의 애정을 왜곡시키고 정상적인 애정을 파괴한다. 성을 상품화하는 것만 아니라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묘사하는 외설 비디오테이프와 만화책은 인간의 감각과 마음을 더럽힌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에게서] 강간 같은 성행위를 당해 고통을 겪으며, 관계를 거절당한 남편은 성교 불능자가 된다.”
부도덕한 출판물, 비디오, TV 프로그램은 성을 왜곡한다. 이런 것들은 부부 생활의 진정한 즐거움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또한 그런 것들은 남편과 아내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이루기 위해 배양해야 하는 신뢰심을 파괴한다. 「오늘날의 심리학」(Psychology Today)지는 이렇게 말한다. “신뢰심이 있으면 자기의 속 깊은 감정과 두려움을 배우자의 손에 맡기게 된다. 배우자가 보살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나 성적 흥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지 모르지만, 이상적이게도, 신뢰심은 변하지 않는다.”
성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의 어려운 문제를 겪은 한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매우 격려를 준 말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책의 이런 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결혼 생활에서의 다른 모든 관계가 훌륭하고, 사랑과 존경, 훌륭한 의사 소통과 상호 이해가 있다면, 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a
배우자 사이를 실제로 결속시켜 주는 요소는 성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 없는 성은 공허한 것이지만, 사랑은 성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 성을 제자리에 두고 생활의 중심에 두지 않음으로 부부는 동반 관계를 즐기고 성적 부조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각주]
a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10면 삽화]
성서 원칙을 존중하는 것은 부부가 자유롭게 의사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