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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5부: 기원전 1000년경-31년—신화 속의 무가치한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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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5부: 기원전 1000년경-31년—신화 속의 무가치한 신들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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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3/15 20-24면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

제 5부: 기원전 1000년경-31년—신화 속의 무가치한 신들

“모든 종교는 아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일본 격언

위의 일본 격언은 옳은 말이다. 종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시아에 이르게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의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종교의 기본 가르침과 의식은 아시아에 위치한 고대 바빌론(바벨론)에서 유래하였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종교」(The Religion of Babylonia and Assyria)라는 책에서는 그 점을 확증하여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이집트, 페르시아 및 그리스는 바빌로니아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 초기의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인의 숭배 의식에 셈족 요소가 진하게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현재 더 이상의 논평이 필요 없을 만큼 학자들에 의해 널리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셈족 요소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당한 정도가 바빌로니아적 요소다.”

그리스(헬라) 신화의 바빌로니아(바벨론)적 요소들은 초기의 그리스 종교로 쉽게 흡수되었다. 「종교 백과사전」에 의하면, 초기의 그리스 종교에는 “불변의 진리를 기록한 경전이 없었다. ·⁠·⁠·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배운 방대한 양의 이야기들을 믿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런 이야기들에는 각기 많은 변형이 있었기 때문에 폭넓은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들의 전형적인 예로는, 아마 기원전 8세기 혹은 9세기의 인물로 생각되는,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실린 이야기들을 들 수 있다. 영웅으로 추앙받는 반신 반인의 인물들을 포함하여 올림포스 산의 신화 속의 신들과 인간들과의 관계를 강조한 호머의 작품들은, 그리스 종교가 언제라도 끌어 쓸 수 있는 자료의 근원이 되었다. “신화와 종교에 공통 부분이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저술가인 G. S. 커크는 설명한다.

그리스 종교는 다른 근원들로부터 나오기도 하였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이렇게 지적한다. “신비적 종교를 매우 열렬히 애호했던 헬레니즘 세계는 [이집트로부터]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를 숭배하는 의식을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비롯된 “숭배 의식들이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게 되었는가?

그리스 신화가 로마를 사로잡다

로마의 옛 조상들은 신이란 모든 종류의 물질 형태로 존재하는 비인격적 영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종교를 신봉했다. 그것은 징조와 아울러 동식물의 마술적 속성들을 인정하는 미신 종교였다. 12월의 농신제와 같은 연례 축제들이 열렸는데, 농신제 때에는 사람들이 선물을 교환했다. 「로마 제국」(Imperial Rome)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형식과 의식의 종교였다. 로마인들은 신과 계약—신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면 나도 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을 맺었으며 그들의 종교는 주로 그러한 거래 계약을 아주 세심하게 지키는 의식이었다.” 그로 인해 로마인들의 종교는 영적으로 황폐한 종교가 되었으며, 로마인들은 다른 곳에서 영적인 자양분을 찾아야 했다.

신전과 조상(彫像) 및 형상의 사용과 더불어 더욱 복잡한 종교 의식들이 후에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a 같은 책에서는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로 하여금 그리스의 신들 및 여신들과 최초로 의미 깊은 접촉을 하게 한 사람들이며, 로마인들은 결국 대부분의 신들 및 여신들을 실제로 수정없이 받아들였다”라고 알려 준다. 오래지 않아 “로마의 종교는 많은 얼굴과 많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로마인들이 정복이나 무역을 통해 접촉하는 새로운 사람들마다 로마의 신들을 추가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 로마의 교직자들은 영적 혹은 도덕적 지도자로서 기대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에서는 그들이 “신을 부르는 적절한 격식, 숭배와 관련된 금기 사항, 그리고 복잡한 예배 의식”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알려 준다. 높은 관직을 얻을 수 없는, 평민으로 알려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지도적인 교직자들은 영향력있는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호머 시대로부터 그후 약 일천년 동안,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쳤는데,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그 점을 이렇게 알려 준다. “서양인들의 지성, 예술 및 정서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 신화가 지니는 중요성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종교적인 면만을 보더라도, 기원전 제 1세기의 라틴계 시인인 호라티우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정확하다. “사로잡힌 그리스가 로마를 사로잡았다.”

행진하는 그리스의 신

알렉산더 3세는 기원전 356년에 마케도니아의 펠라에서 태어났다. 왕가의 환경에서 양육받은 그는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개인 교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철학, 의학, 과학에 대한 흥미를 발전시키도록 도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가르침이 알렉산더의 사고 방식을 틀잡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호머가 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왜냐하면 열렬한 독서가인 알렉산더는 호머의 신화적 작품들에 대해 특별한 열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렉산더는 「일리아드」를 암기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려면 15,693행의 시를 외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암살당하자 알렉산더는 20세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즉시 정복 전쟁에 착수했으며, 결국은 그로 인해 알렉산더 대제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인정받는 알렉산더는 그의 위대함으로 인해 신의 지위로까지 높임을 받았다. 알렉산더는 죽음을 전후해서 신격화되었다.

알렉산더는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바사)인을 축출하고 그곳에서 구출자로 환영을 받았다. 「인간과 신화와 마술」(Man, Myth & Magic)이라는 책은 이렇게 알려 준다. “사람들은 그를 파라오로 받아들였다. 그가 암몬 신의 신탁소를 방문했을 때 ·⁠·⁠· 사제는 그를 ‘암몬의 아들’로서 공식적으로 환영했다.” 이 사건은 알렉산더가 그리스 신들의 주신인 제우스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생긴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알렉산더는 동쪽으로 진군하여 마침내 인도의 일부 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도중에 그는 바빌론을 정복하였는데, 그의 고향의 신화와 종교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사상들은 이곳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알렉산더가 그곳을 자기 제국의 수도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 6월 13일, 이 위대한 그리스의 신은 12년 남짓 통치한 후 세력을 잃고 말았다. 불과 32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이다!

숭상받은 로마의 신

그리스가 알렉산더 휘하에서 세계 지배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수세기 전인 기원전 8세기 중엽에, 그리스와 이웃한 이탈리아 반도에 도시 로마가 건립되었었다. 알렉산더의 사망 이후 세계의 권력은 점차 로마의 지배 아래로 옮겨지게 되었다. 로마 정부의 수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 장군이 기원전 44년에 암살되고 나서 약 13년간의 동요를 겪은 후,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정적들을 무찌르고 계속 전진하여 기원전 31년에 로마 제국을 건립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옥타비아누스를 “로마의 많은 황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하면서, “로마인들은 그를 ‘숭상받는 자’를 의미하는 아우구스투스로 불렀으며 속주민들은 그를 신으로 환영했다”라고 알려 준다. 이러한 견해를 확증하기라도 하듯이, 아우구스투스는 자신과 자기보다 먼저 사망한 알렉산더의 초상을 새긴 인장 반지를 가지고 있었다. 후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신격화되었고 그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한 사원들이 제국 전역에 세워졌다.

그들의 이름은 가치가 있었는가?

오늘날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희망을 로마나 그리스 신들의 손에 맡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즉 올림포스 산에서 통치했던 신화 속의 신들이나 정치적 보좌에서 통치했던, 실제로는 인간이었던 신들에게 아무도 희망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기원한 때로부터 시작하여 바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짓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름은 있지만 그만한 가치가 없는 신화 속의 신들을 신뢰하도록 계속해서 그릇 인도하고 있다. 적절하게도 알렉산더가 아주 좋아했던 호머는 「일리아드」에 이렇게 적었다. “이름이란 참으로 헛되고 무가치한 것.”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리아드」를 “도덕적이고 매우 실용적인 교훈의 근원으로” 여겼다고 한다. 오늘날, 그와 비슷하게 여겨지는 많은 저술물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종교의 베스트 셀러들을 어떻게 적절히 평가하느냐 하는 것을 본지 4월 1일호 기사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각주]

a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그들이 기원전 8세기 혹은 7세기에 에게-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이탈리아로 이주하면서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를 함께 가져왔다는 학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23면 네모]

널리 보급된 그리스인의 신앙

고대 그리스인들은 종교 자체를 가리키는 특정한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유세베이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신앙,” “신들에 대한 옳은 행실,” “올바르게 숭상함” 및 “경건한 정성”으로 번역될 수 있다.b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리스 종교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오래 전 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발전된 형태로는 호머 시대(아마 기원전 9세기 혹은 8세기경)로부터 율리아누스 황제 통치 때(기원 4세기)까지 천여 년 간 지속되었다. 그 기간에 그리스 종교의 영향력은 서쪽으로는 멀리 스페인과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중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스 종교의 영향은 자신의 신들을 그리스의 신들과 동일시한 로마인들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리스도교 영향 아래서 그리스의 영웅들과 심지어는 신들까지도 성도로 존속했으며, 한편 유럽 남부 공동체들의 서로 비견되는 마돈나 상들은 지방의 숭배 의식의 독자성을 반영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과 과감히 맞서야 했다. 성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준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제우스, 그리스 신들의 주재신]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헤르메스, 다른 신들을 위해 사자(使者)로 일하는 신]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사도 14:11-15.

[각주]

b 뉴욕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희랍어 성경 왕국 행간역」(영문)에서 디모데 전서 4:7, 8을 참조할 것.

[24면 도표와 삽화]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과 여신은 로마 신화에서도 비슷한 지위를 차지했다. 아래에 실린 표는 그리스와 로마의 중요한 몇몇 신을 열거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지위

아프로디테 비너스 사랑의 여신

아폴로 아폴로 빛, 의술, 시(詩)의 신

아레스 마르스 전쟁의 신

아르테미스 디아나(다이애나) 수렵과 출산의 여신

아스클레피오스 아이스쿨라피우스 의술의 신

아테나 미네르바 공예, 전쟁, 지혜의 여신

크로노스 사투르누스(새턴) 그리스 신화에서는

티탄(타이탄)족의 통치자이자 제우스의 아버지; 로마

신화에서는 또한 농업의 신

데메테르 케레스 농작물의 여신

디오니소스 바커스 포도주, 다산, 방종한

행동의 신

에로스 큐피드 사랑의 신

가이아 테라 땅의 상징,

우라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

헤파이스토스 불카누스 신들을 위한 대장장이,

대장일과 불의 신

헤라 주노 결혼과 여자의 수호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 로마 신화에서는

주피터의 아내

헤르메스 메르쿠리우스(머큐리) 신들의 사자(使者),

상업과 과학의 신,

여행자, 도둑, 방랑자의 수호신

헤스티아 베스타 벽난로의 여신

히프노스 솜누스 잠의 신

플루톤 혹은 플루톤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

포세이돈 넵투누스 바다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또한 지진과 말의 신

레아 옵스 크로노스의 아내이자 누이

우라노스 우라노스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티탄족의 아버지

제우스 주피터 신들의 통치자

근거 자료: 「월드 북 백과사전」 1987년판, 제 13권 820면.

[삽화]

헤르메스

디아나

아스클레피오스

주피터

[자료 제공]

Photo Sources: Hermes, Diana, and Jupiter—Courtesy of British Museum, London

Asclepius—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Athens, Greece

[20면 삽화]

아테나, 전쟁과 지혜의 여신—독일, 베젤, 도시 입구에 있는 조상(彫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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