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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균형 잡힌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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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균형 잡힌 견해
  • 깨어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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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의 자유를 필요로 하는 때
  • 균형이 필요함
  • 다른 사람의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필요성
  •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전망
  • 사생활의 자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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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8 3/1 7-9면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균형 잡힌 견해

사람들이 사생활의 자유를 원하는 이유는 복잡하고도 다양하다. 청소년은 자기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서 사생활의 자유를 갈망할지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의심스런 뒷거래 때문에 자신의 재산 상태를 비밀에 붙이기를 원한다. AIDS 바이러스 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대개 그 결과를 비밀에 붙이는 데 관심이 많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묵상을 하기 위해서 방해 요소가 없는 호젓한 환경을 원한다.

사생활의 자유를 필요로 하는 때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일본, 도쿄에 사는 젊은 여성인 요코에 의하면, 그처럼 사생활의 자유가 보호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실례를 들면, 어느날, 정육점 직원이 요코의 주문품을 배달해 주었는데, 시어머니는 단순히 며느리를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하기 위해서 그 닭 한 마리를 받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매일 매일 직면하게 되자, 사생활의 자유를 누리며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에게 있어서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것이 되었다고 요코는 말한다.

혼자 있을 때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합당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명하게도 성서는 이렇게 충고한다. “너희는 떨며[분내어, 난외주]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시 4:4) 성서의 시편 필자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밤마다 내 심장[신장, 신세]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 16:7)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에, 그의 “신장,” 즉 가장 깊은 감정이 그를 시정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설립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생활의 자유를 매우 높이 평가하셨다. 친척인 침례자 요한이 목베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예수께서는 “혼자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다.” (마태 14:13, 현대인의 성경) 또한 죽으시기 전 밤에, 그분은 기도하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마태 26:36-47) 그 전에, 예수께서는 사생활의 자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셨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태 6:6.

균형이 필요함

그러나 우리에게 사생활의 자유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한다. “사생활의 자유(privacy)를 너무 많이 누리거나 너무 적게 누리는 것, 두 가지 모두 개인의 복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캐나다의 어느 집주인은 사생활의 자유를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대지 둘레의 울타리를 높이 0.6미터짜리에서 1.8미터짜리로 대치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웃간의 따뜻한 관심을 주고받는 일이 단절되었다. 보다 극단적인 예로, 한 가족은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지내기 위해서 광야로 이사를 했다. 그 부부는 통신 교육 과정을 통해 자녀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부부는 생활을 영위해 나갈 만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헤어졌으며 자녀들도 고통을 겪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려고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힘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성서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언 18:1.

예수께서는 이 점과 관련하여 균형 잡힌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는 특별히 힘든 활동을 하고 난 다음에, 제자들이 어느 정도 사생활의 자유를 누려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그러나 예수와 제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군중이 먼저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무리를 보시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가?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셨다.—마가 6:31-34.

다른 사람의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필요성

그러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나타내야 한다. 해변에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은 마음을 달래 주지만, 성난 파도는 파괴적일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평화로운 관계가 단절되게 만들 수 있다. 성서는 현명하게도 이와 같이 충고한다.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잠언 25:17.

이따금 우정적인 방문을 하는 것은 마음을 달래 주는 잔잔한 물결과 같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방문의 맹렬한 파도를 막기 위해서 심리적인 방파제를 쌓게 만들 수 있다.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무의미한 방문의 쓸모없는 황무지에서는 험담과 소문의 씨앗이 자라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면,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되는 질문이나 험담을 억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사생활의 자유 역시 존중해 주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고 성서는 경고한다. (베드로 전 4:15) 1세기 당시에 남의 일을 간섭하던 일부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교양있는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또한 그들은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 놀러 다니고 그뿐만 아니라 수다를 떨고 일만 만들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다닙니다.”—I 디모데 5:13, 새번역.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전망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사생활의 자유, 나에게 있어서는 은밀하고 구석진 보금자리이다. 나는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도 잊혀진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러나, 절대적인 사생활의 자유는 단지 신기루에 불과하다. 동방에 이런 속담이 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며,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이다.”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 4:13.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인자하신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에 대해 참으로 행복해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분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시므로, 그분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결국 생명 자체를 잃는 것일 것이다. (시 36:9; 73:27, 28)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에 대해 가지시는 관심은 지나친 간섭과는 달라서, 그분은 흠을 잡으려는 의도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시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준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느니라.]”—시 103:10, 13.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에게 사생활의 자유를 충분히 부여하는 동시에, 우리에 대해서 사랑에 찬 관심을 나타낸다면 얼마나 유쾌할 것인가! 확실히, 균형 잡힌 방법으로 사생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왕국 아래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낼 것이다. (다니엘 2:44; 계시 21:4)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러한 때에 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때때로 연구, 묵상 및 기도를 위해서 혼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예언자 미가의 다음과 같은 예언이 온전한 정도로 실현될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미가 4:4.

[8면 삽화]

‘너희 중에 누구든지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

[9면 삽화]

균형 잡힌 방법으로 사생활의 자유를 즐길 때가 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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